[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여북/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여북 [뜻]얼마나,오죽 뜻으로,안타깝거나 좋지 않은 마음을 나타낼 때 쓰는 말 [보기월]제가 그런 솜씨를 가졌다면여북좋겠나 싶기도 합니다. 요즘 제가 하는 걸 보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다 싶습니다.이제까지 제가 맡은 일은 제게 주어진 일만 잘 챙기면 되는 일이었습니다.그런데 올해 맡은 일은 배곳(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거의 모두를 챙기는 일입니다.그럴 만한 힘이 없는데도 말이지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챙기려고 해도 다 챙기기는 어렵습니다.그렇다 보니 요즘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도 못 하고 있습니다.주어져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들일 때새(시간)도 모자라기 때문입니다.제가 그런 솜씨를 가졌다면여북좋겠나 싶기도 합니다.자꾸 일이 밀리니 마음이 바쁘답니다.^^ 배곳에 새로 오신 분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맞이모임(환영회)을 했습니다.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고 지난해처럼 했는데 뭔가 모르게 느낌이 달랐습니다.함께하는 사람이 지난해와 많이 다르지 않은데 그렇다는 것은 생각해 볼 게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봄비는 일비라고 하던데 봄비가 잦습니다.가뭄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맞춤 토박이말]34 /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지난 온봄달 이틀(3월2일)온 나라 배움이들이 새 배해(학년)를 맞았습니다.꽃등 배곳에 들어온 새내기들을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들배움풀이(입학식)가 배곳(학교)마다 있었습니다.자리에 함께한 어버이들 가운데 꽃등 배움이 어버이가 된 분들은 아이들과 같이 두려움과 설렘이 갈마든 날이었을 것입니다. 너울가지가 좋은 아이들은 처음 만난 아이한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걸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낯선 곳에 와 많은 사람들 때문에 바짝 얼어 어머니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그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기를 빌며 큰 손뼉을 쳐 주었습니다. 배해(학년)가 올라간 배움이들도 새로운 동무들과 갈침이(교사)를 만나 기쁨과 슬픔이 엇갈린 하루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아무래도 첫날이라 낯선 가운데 서로를 알리고 알아가느라 바빴을 것입니다.그리고 앞으로 같이 지내는 동안 함께 이러저런 것들을 지키며 잘 지내자는 입다짐에 글다짐까지 한 사람들도 있지 싶습니다. 그렇게 다짐한 것을 지며리 지키는 아이들은 그만큼 자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그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마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은근슬쩍 짠돌이남편의 동정을 살펴보지만 올해도 그냥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말끝마다 힌트를 날려도 먹혀들지 않는다. 남들은 생일이요 “3.8절”이요 결혼기념일이요하면서 안해한테 묵직한 선물들도 척척 안겨준다는데 나는 여태껏 남편한테서 선물다운 선물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처음부터 싸구려머리핀이나 꽃 한 송이 같은데 감격해하면서 너무 "싸게" 논 탓인 것 같다. 살다보면 싸우고 말다툼하고 앵돌아질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퇴근길에 사다주는 고작 “차단(茶蛋)” 두 알을 받아 쥐고도 해시시 했고 포장해서 들고 온 퉁퉁 불은 랭면 한 사발에도 헤벌쭉하는 순둥이였으니 값진 선물 한번 못 받은 것도 내 탓인 듯싶다. 가짜라도 진짜처럼 받아 줄테니 길거리에서 파는 가짜 반지라도 사 달라 했더니 들었는지 말았는지 한번 씽긋 웃으니 그만이다. 무뚝뚝한 자기 오빠한테 연신 쫑알거리는 이 올케가 보기 안쓰럽고 측은해서였을가? 십여 년전 시누이가 한국에서 힘들게 번 돈으로 나한테 금반지를 선물했다. 살기가 빠듯하다는 핑계로 시부모님이나 시누이한테 언제 통이 크게 마음 한번 써본 적이 없는 시누이에게서 받
[우리문화신문=김명호 시인]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시시콜콜/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시시콜콜 [뜻]자질구레한 것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따지거나 다루는 모양 [보기월]제가 맡은 일이시시콜콜다 알고 챙겨야 되는 일인데 그렇지 못해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제 앞낮까지 내리고 그친다고 했던 비는 낮밥을 먹은 뒤에도 내렸습니다.밖에 나가 뛰어야 할 아이들이 비 때문에 못 나가 안에서 지내니 안 시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게다가 노루처럼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말리러 다녔지만 하나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새로 일을 맡은 뒤 이틀이 지났습니다.하지 않던 새로운 일을 크게 벌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안 했으면 말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잇달아 들었습니다.놓치거나 빠트린 일도 여러 가지 입니다.제가 맡은 일이시시콜콜다 알고 챙겨야 되는 일인데 그렇지 못해 어려움이 많습니다.미루어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더 단단해지고 꼼꼼해져야겠습니다. 비가 그친 뒤에는 바람이 불면서 날씨가 더 추워졌습니다.높은 뫼에 눈이 내려서 그렇지 않나 생각도 했습니다.해가 지고 난 뒤에는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더라구요.도움을 주신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분이 사는 말씀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여미다/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여미다 [뜻]벌어진 옷깃 따위를 바로잡아 반듯하게 하다. [보기월]아이의 옷깃을여며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에 사랑이 넘쳐 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닷날(금요일)은 온봄달(3월)들어 둘째 날이자 새배해(새학년)을 비롯하는 날이었습니다.배곳에 꽃등 들어오는 새내기들을 맞이하는 들배움풀이(입학식)이 있었고 새배해를 비롯하는 비롯풀이(시업식)도 있었습니다. 새내기들과 그들의 손을 잡고 줄줄이 들어오신 어버이들이 어울마당을 가득 채운 뒤 들배움풀이(입학식)를 했습니다.아이들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는 어버이들께 옆으로 나와 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아이 손을 놓고 다들 나오는 데 한 어머니께서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습니다.아이의 옷깃을여며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에 사랑이 넘쳐 나는 것 같았습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느꼈지 싶습니다. 배곳(학교)가 즐거운 배움과 만남이 가득한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들배움풀이를 만들고자 마음을 썼습니다.선물도 두 가지를 챙기고 말그대로 온 식구들이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며 큰 손뼉을 쳐 주었습니다.좋은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仁祖, 1623-1649) 즉위 2년인 1624년에 경기도 광주 유수(留守) 이서(李曙)가 남한산성(南漢山城) 축성공사를 하게 되었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한양 방어를 위해 쌓은 산성으로써 주봉인 청량산(해발 497.9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467.6m), 동쪽으로는 망월봉(502m)과 벌봉(515m) 그리고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은 곳이다. 성벽 바깥쪽은 경사가 급하지만, 안쪽은 완만하여 적의 접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방어 또한 유리하게 하였다.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이 함께 연결돼 견고한 방어망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남한산성에서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고 있어 그 역사는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거의 남한한성은 성벽과 성안에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동, 서, 남문루와 장대(將臺), 돈대(墩臺), 보(堡), 누(壘), 암문, 우물 등의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의 정도가 남아 있다. 어찌 되었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아이들에게는 봄말미(봄방학)라고 하는 지난 열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배곳에 나갔습니다.버릴 것을 챙겨 버리기도 했고 짐을 챙겨 옮기기도 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셈틀(컴퓨터)앞에 앉아서 여러 가지 일을 배워 해 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지내고 보니 무엇을 했나 싶기도 하고 일을 한 보람을 느낄 수가 없어 허전한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배곳 일을 잊고 바람을 쐬고 왔습니다.일이 없이 간 것은 아니고 밖으로 일을 가지고 갔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벌써 봄을 알리는 몇 가지 꽃이 피었다는 기별을 듣보았는데 바람은 좀 차가웠습니다.마바다(남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올라 맞은 바람은 더 차가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갈모임(학회)를 이끌어 온 분들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올해 해야 할 일을 가지고 좋은 이야기도 나누고 왔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배움해(학년)를 비롯하는 날입니다.새로운 만남으로 설레는 날이기도 합니다.들배움(입학)을 하는 새내기들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새배해(새학년)이 되어 꽃등 배곳에 와서 하루를 열였습니다.오늘 저마다 여러 가지 속다짐,입다짐을 하게 될 것입니다.그 다짐들
[우리문화신문=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3ㆍ1만세운동 초기 ‘애국가를 불렀다’를 ‘national cry’로 표기한 세브란스의전 오웬스가 1919년 3월 24일 <브리스조사위원회(Bryce Viscoint Investing Commission)> 소속 오웬스가 보낸 보고서 일부 애국가 역사에서 고유 곡명 ‘애국가(愛國歌)’ 시대와 ‘국가 애국가(國歌 愛國歌)’는 구분 된다. 1902년 대한제국이 윤용선을 책임자로 하여 <대한제국애국가>(大韓帝國愛國歌)를 제정하게 했다. 당시 일본 <기미가요>를 작곡, 정착, 일반화 시키고 독일로 귀국한 후란츠 에케르트(FranzEckert/1852~1916)를 초청하여 작곡한 것이다. 이를 고종에게 천거한 이는 민영환으로 이미 유치호 등을 인솔하여 1896년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갔다 근대식 의전(儀典) 절차를 보고 군제를 러시아식으로 삼으며 국가의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였다.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으소서 성수무강하사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소서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 어천만세에 복록이 무궁케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으소서 작사자를 악보의 서문을 쓴 민영환으로 보기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