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 풍진(風塵) : 흙먼지 * 공변되다 :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사사롭지 않고 공평하다 고 운암(雲庵) 곽영민(郭永敏) 선생은 일본, 미국 ,중국 등에서 수십 차례의 전시회를 열었으며, 대한민국 동양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서예계의 원로 작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 이화문화출판사를 통해서 《갑골문집(甲骨文集)》을 펴낸 바 있는 갑골문(甲骨文)의 대가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잘 일하게, 튼튼하게, 될 수 있는 대로, 씩씩하게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은4283해(1950년)만든‘과학공부4-2’의40, 41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먼저40쪽에 있는 배울거리(학습문제)가 요즘 배움책과 다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몸이 잘 일하게 할 수 있는가?”라고 되어 있습니다.요즘 배움책에는“우리가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봅시다.”로 나옵니다. 오늘날 잣대로 보면 낯설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낯설지만 이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배움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나타내는가에 따라 달라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줄에“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몸이 어떻게 일하는가를 공부하였다.“가 나옵니다. ‘우리의 몸이 어떻게 일하는가’를 요즘 배움책에는‘우리 몸의 기능’이라고 나타내고 있습니다.저는 옛배움책에 있는 말이 아이들이 쉽게 알아차리고 오래 잊지 않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째 줄에 나온‘우리의 몸이 잘 일을 하고,튼튼하게 하기 위해’라는 것도 제게 참 반가운 말입니다.열네째 줄에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시렁/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시렁 [뜻]몬(물건)을 얹어 놓으려고 방이나 마루 벽에 긴 나무 두 낱을 가로질러 선반처럼 만든 것 [보기월]실컷 놀고 입이 심심하면시렁에 올려놓은 감껍질을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고뿔을 내보내려고 낮에 마음 놓고 잠을 자서 그런지 밤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아침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서 일부러 하던 일을 접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말입니다.숨도 깊이 천천히 쉬어 보고 할 일을 하나씩 챙겨 보았지만 좀처럼 잠은 안 오더군요.그냥 일어나 일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꾹 참고 누워 있었더니 저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맞춰 놓은 때가 되기도 앞서 잠이 깼는데 깊이 자서 그런지 몸은 한결 가볍고 머리도 맑았습니다.아침을 챙겨 먹고 같이 일을 하기로 한 분들과 기별을 했습니다.따로 일을 하고 뒤낮에 만나기로 해서 제가 할 일을 하면 되었습니다.아이들 낮밥을 챙기는 게 마음에 걸렸었는데 챙겨 줄 수가 있어 좋았습니다. 배곳 둘레와 마을 여러 곳을 돌아보았습니다.마치 배곳(학교)에 가는 날인 것처럼 밖에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아마 다들 학원에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에돌다/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에돌다 [뜻]곧바로 나아가지 않고 멀리 돌다. [보기월]옆에선 약을 먹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지만 에도는 것 같아도 이게 몸에는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몸을 놓고 봤을 때 지난 이레 사흘은 고뿔이 막 들어 왔을 때였나 봅니다.재채기에 콧물이 나서 그렇지 그리 힘이 들지는 않았으니까요.그런데 지난 닷날(금요일)아침을 먹고 나니 머리가 무겁고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름대로 고뿔에 좋은 것을 챙겨 먹고 쉬기로 했습니다.덧집(병원)에서 이틀 동안 차가운 바닥에서 잔 것도 고뿔한테 도움이 되었지 싶었습니다.목도리도 하고 몸을 데우는 데 도움이 되는 돌을 배에 올리고 푹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재채기와 콧물은 덜한데 머리가 아팠습니다.따뜻한 물을 자주 먹고 땀을 내는 데 마음을 썼습니다.옆에선 약을 먹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지만 에도는 것 같아도 이게 몸에는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스스로 나을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 코는 조금 맹맹하지만 머리는 맑고 가볍습니다.아침부터 안친 일들을 하나씩 챙겨 해야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 아리랑 목동은 민요풍의 노래이다. 우리 민요 아리랑에서 곡이 발상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다.이 곡을 처음 녹음했던 가수는 박단마(1955년)였다. 이 후 김치 캣츠가 재 녹음하여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대중화를 타기 시작한 건 1980년대 프로야구 리그에서 응원가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스포츠 경기에서의 응원가로도 굳어졌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동네방네 생각나는 내 사랑만 하오리까 아리아리 동동 쓰리쓰리 동동 아리랑 콧노래를 들려나 주오 4월 봄날의 시골풍경이 잘 나타나 있다. 바구니를 끼고 나물 캐러 나가는 시골 처녀의 첫사랑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시골에서 아가씨들이 봄이면 나물 캐러 나가는 것을 다목적으로 이용했다. 눈에 맞는 총각과의 데이트 시간이기도 하고, 무료한 봄날의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진짜 싱싱한 봄나물을 캐다가 식탁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골의 나물 캐는 정경은 노래의 좋은 소재인 것 같다.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화공은 꽃 제작뿐 아니라 신도(神圖)를 꾸미고 굿에 쓰이는 장식품을 제작하는 무속세계의 종이 다루기 전문가이다. 화공의 꽃일은 굿판 외에도 사대부집 큰 잔치나 장례식 또는 절간의 재에서도 이루어졌었다. 이를 테면, 황해도 화공으로 이름 석 자를 날렸던 배문일(남, 1900~1992)은 황해도 연백출신으로 한국동란 때 남하하여 1980년대 까지도 황해도 무당들을 대상으로 화공을 일을 하였던 인물인데 젊은 시절 사대부집 큰 잔치에 불려가 상화를 제작하였고 장례식에 필요한 꽃이나 절간의 장엄지화를 제작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이와는 달리, 절간에서 화만(華鬘, 불전공양에 사용되는 꽃다발)을 제작하였던 스님들 또한 무속의례에 사용된 신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은산 별신제에서 사용되는 신화를 근래에까지 인근 절에 부탁을 하였다고 한 점에서 알 수 있다. 1988년 당시 은산에서 장의용품을 판매하는 홍용포씨(71세)가 굿에 사용되는 신화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20~30여 년 전에는 마을 주민인 최왕대, 윤삼봉이 만들었으며, 그 윗대로 올라가면 절에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로보아, 1950대 전까지는 스님들이 무속 꽃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문화신문=김리박 시조시인]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날은 봄이라고 할 만큼 따뜻하고 좋습니다.그런데 제 몸이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다른 사람 고수련을 해야 하는데 제몸이 고뿔 때문에 얄궂습니다.머리도 지끈지끈 아프고 콧물이 쉬지 않고 흘러서 코를 종이로 막고 싶답니다.다른 사람들이 돌림고뿔(독감)걸릴 때도 잘 넘겼는데 말이지요.얼른 나가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해도 나가지 않을 테니 아무래도 사나흘은 고뿔과 지내야 되지 싶습니다. 옆자리에 계시던 분이 집으로 가셨습니다.받을 것 다 받고 줄 것 주고 나가시면서 한 마디 하셨습니다.왜 사람이 아파서 왔고 그 때문에 살펴보고 약도 넣었는데 보험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저도 그게 왜 그런지 궁금했습니다.사람을 낫게 하는 솜씨를 돈으로 값을 매길 수는 없지만 아픈 것을 낫게 하는 데 쓰는 거라면 다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맛보신 토박이말을 되새기는 날입니다.이 이레에는 두 낱말을 맛보여 드렸습니다.하나는 낯이 익은 말이고 하나는 조금 낯선 말이었습니다.뜻과 쓰임을 다시 보시고 익히시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토박이말 되새김]1-3 /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4351해 한밝달 열아흐레 닷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시들부들/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시들부들 [뜻]2)생기가 없어 시들해 보이는 꼴(모양) [보기월]아침 일찍 와서 뒤낮까지 기다리다 보니 다들 시들부들 얼굴에 지침이 드러났습니다. 언제 그렇게 추웠나 싶을 만큼 포근한 가운데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눈이 많이 온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날이 밝기 앞서 집에서 나와 빗길을 달렸습니다.어둡고 비까지 내려서 길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느 날 같았으면 제가 잠을 자고 있을 때였는데 길 위를 달리는 수레가 많았습니다.짐을 싣고 가는 짐수레가 많았습니다.여러 사람들이 곳곳으로 보낸 짐을 남들이 자는 동안 실어 나르는 것이었지요.엊그제 제가 산 책을 싣고 오는 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절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때새가웃(시간반)을 달려 닿은 곳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남달리 일찍 문을 여는 곳이라 새벽에 일떠나 왔는데 더 일찍 온 분들이었지요.다들 같은 곳이 마뜩잖은 분들이라니 살짝 놀랍기도 했습니다. 저마다 삶을 불꽃처럼 사느라 닳고 끊어진 힘줄과 뼈마디를 보이러 온 분
[신국문화신문=석화 시인] *언녕 : 진작, 좀더 일찍이 < 해설 > 중국 조선족 3세인 시인 석화는 1958년 중국 룡정 출신으로 다른 조선족들보다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1982년 연변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월간 《연변문학》 편집을 맡게 된다. 등단과 함께 “아리랑문학상”, “압록강문학상”, “도라지문학상” 등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연변조선족사회에서는 일찌감치 자리 매김을 확실히 했다. 시인 석화는 다른 연변조선족시인들에 비해 다채로운 시작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유리컵과 사랑학 개론”, 이 시이라든가 “작품” 연작시가 그것인데 이는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참신성과 기발한 소재채택에서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 연변의 문화를 체함 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바로 여기에 연변조선족사회에서 그의 시가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예술이란 그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그것을 내 것으로 하려는 의지를 필요로 한다. 쉽게 서정이라 불리는 자칫 무력한 시풍에서 벗어나 사물을 기호화하고 끊임없이 뻗어 가는 정신세계를 시로 끌어들이려는 그의 노력은 그래서 귀한 것이다. 위의 시에서는 시인의 언어적 탐구가 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