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단군신앙의 핵심은 3(三)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계승되어진 무속신앙의 근본수이다(박흥주, ❮바닷가 마을굿에서 나타난 3수 원리 분석-당산굿을 중심으로❯ 경희대 석사학위논문 2004). 환웅이 내려온 곳이 삼위태백(三危太白)이고, 이는 봉우리 셋을 뜻하는 높고 흰 산을 의미한다(윤철중, 한국의 시조신화 1998). 환웅(1)이 자리 잡은 희고 높은 세봉우리(3)는 1이 3의 세계로 나아감을 뜻한다. 이는 1이 3이 됨을 뜻한다. 고로 삼위태백은 봉우리가 셋(3)이고 몸통은 하나(1)인 산을 뜻하는 것이다. 그 몸통에 있는 신단수 밑이 환웅이 펼칠 신시이고 단군의 나라 조선이다. 그러므로 3이 갖춰진 세계에 1의 뜻은 3으로 귀착함을 뜻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3은 3임을 뜻한다. 그리고 1이 3으로 그리고 3이 1로 수렴됨을 말한다. 천부인(天符印) 칼, 거울, 방울 세 개를 주어 지상에 내려가서 다스리게 하는데 이는 천자의 위(位)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하늘이 임금이 될 자에게 주는 세 개의 보인(寶印)이며 시작과 창조 등을 상징한다. 인간사의 곡식, 인명, 질병, 선악 등을 주관할 사람들은 풍백, 우사, 운사 등으로 3인이며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얼안/이창수(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오늘 토박이말]얼안 [뜻]테두리의 안 [보기월] '구내'라는 말을 써야 할 때'얼안'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널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더위도 이제 한 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여러 가지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두 이레(2주)가 훌쩍 흘렀습니다.보람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지만 내디딘 발걸음만큼 앞으로 나아갔으니 좋게 생각해야겠습니다.여름 겪배움(체험학습)을 다녀오고 사단법인 한국시조문학관과 울력다짐을 하고 나서 느낀 보람이 무엇보다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맛보여 드릴 토박이말은'얼안'입니다. '테두리의 안'이란 뜻이지만 언제 어떻게 쓰면 좋을지 얼른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배곳(학교)나 일터(회사,직장)안을'구내'라고 하지요.그래서'구내 식당', '구내 전화'라는 말도 있습니다.하지만 앞으로는'구내'라는 말보다'얼안'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면 좋겠습니다. '구내'라는 말을 써야 할 때'얼안'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널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는 논의된얼안에서 해결점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지금 회계일은 보통 계산기로 하지만 나는 오랜 습관으로 주산으로 하는 것이 편하다. 나는 퇴직 전까지 향병원의 회계업무를 주산으로 했는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주산은 바로 남편이 향진재정소일 그만두면서 나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 주산은 어찌 보면 남편이 순박한 사업심을 물려받은 것 같아서 남편이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주산이다. 남편이 땀과 노력 정직함과 성실함이 숨어있는 이 주산은 늘 내 곁을 지켜주었다. 퇴직하고 초빙 받은 새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할 때도 이 주산으로 매달 수입, 지출, 재무분석 등 업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여 회사 일을 항상 제집 살림처럼 알뜰히 했고 회사운영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요즈음 문학공부를 하면서 이것저것 뒤지다 서랍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이 주산을 보게 되었다. 남편이 떠나고 나서 혹시 이 주산을 보게 되면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 아픈 추억이 되살아날 것 같아 서랍 속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이다. 이 주산은 남편이 청춘을 그려볼 수 있고 남편의 손때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유일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주산을 마주하고 보니 잊은 줄 알고 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우리문화신문=김리박 시조시인] 배롱꽃(백일홍) 참아욱 배롱꽃 둘 다 고운 꽃이어라 하늘을 솟아 피고 가는 여름 바래준데 언제면 뒷마 믿고장 왔다갔다 할까나 * 참아욱 : 무궁화 * 배롱꽃 : 백일홍꽃 * 뒷마 : 남북 * 믿고장 : 고향 관향 본관
[우리문화신문=김명호 시인] 진도만가(輓歌) 한바탕 놀았으니 아쉽다 하지마소 슬픔이 지극하니 오히려 웃음나네 이세상 하적*하면서 미련없이 가리다. * 하적: 상여꾼들이 '하적이오 하적이요' 하며 함께 부른다. 진도방언으로 떠날 때 인사하는 의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덕을 쌓은 집안엔 경사가 모이고 德門集慶 덕(德)을 쌓은 집안엔 경사가 모이고 仁宅弘祥 인(仁)을 닦는 집안엔 상서로움이 크도다 雲散見日 구름이 흩어지니 해가 드러나고 月明疑霜 달이 밝으니 서리인가 의심스럽네 고 운암(雲庵) 곽영민(郭永敏) 선생은 일본, 미국 ,중국 등에서 수십 차례의 전시회를 열었으며, 대한민국 동양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서예계의 원로 작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 이화문화출판사를 통해서 《갑골문집(甲骨文集)》을 펴낸 바 있는 갑골문(甲骨文)의 대가다.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네 살고 내 죽었다면 죽음 무엇 슬프랴만 네 죽고 내 삶, 삶 또한 슬프다 서풍에 뿌리는 눈물, 원망만 아득하여 늘그막 지는 해에 끝없는 슬픔. 이는 무경대사(無竟大師, 1664~1737)가 제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시다. 대사는 16살에 출가하여 운문사의 추계대사 밑에서 10여년간 수행 정진하였다. 25살 되던 해 은사인 추계대사와 쌍계암으로 돌아왔으나 은사가 이듬해 입적한다. 비록 출가한 몸이지만 속가의 어머니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고 모셔다 지극 정성으로 18년간 모시다가 돌아가시자 양지 바른 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이전에 무덤자리가 안좋아 걱정하던 아버지의 무덤과 함께 길지를 택해 이장하여 대사의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그뒤 강원의 초청 등을 물리치고 적조암 서쪽에 암자를 지어 보경당이라 짓고 수행 정진하였다. 대사의 시문집은 『무경집』 3권과 게송문집인 『무경당실중어록』 2권이 전한다. 고요한 산사에서 소리없이 수행하면서 읊은 시를 감상해보자. 긴 봄날 암자에 탐낼 물건이 무엇 가는 버들 그늘가에 망울 틔는 살구꽃 유별난 곳 좋은 풍경 엉킬 만큼 짙어 비 몰고 오는 바람 청홍색깔 희롱하네. 깊고 깊은 마을
[우리문화신문=김리박 시조시인] 매 미 좋아서 우느냐 서러워 소리치냐 캄캄한 땅속 열해 가지 얹혀 이레니 보아라 떨어진 주검 개미들이 옮기네
[우리문화신문=김연갑 아리랑학교 교장] 우리들의 8월은 ‘애국가의 달’이다. 해방과 광복과 정부수립이란 역사적인 기념의 달이기에 가장 의미있게 애국가가 불리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8월에는 애국가의 역사를 한 번쯤 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최초의 기록을 살피기로 한다. 현<애국가>를 수록한 첫 문헌은 1908년 발행 재판 《찬미가》(초판은 1907년으로 추정되나 미확인)이다. 비록 현<애국가>를 비롯한 두 편의 애국가류와 영미(英美) 찬송가 12편을 수록한 18쪽의 소책자지만 여러 측면에서 조명해 볼 가치가 있다. 애국가를 수록했고, 개화기 출판물이고, 발행사가 광학서포이고, ‘역술(譯述)’ 같은 출판 용어를 사용한 점 등으로 그렇다. 음악인이 아니면서 학생들을 위해 제한적인 목적으로 발행 된 무곡보(無曲譜) 애국창가집이다. 지금까지 이 자료는 공식적인 영인 출판이 되지 않은 탓인지 창송가사(讚頌歌史)에 한정된 석사 논문의 대상이 되었을 뿐 특별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제 《찬미가》의 개론적 접근을 통해 그 가치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은 최초의 서지 정보를 제공해 주는 국립중앙도서관 사서(司書) 윤학구의 <해제 찬미가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수레 떠들썩 산문에 들어 하루밤 이야기 몇생의 인연 내일 아침 홀연 행차 떠나면 깨어도 못잊을 꿈 속의 신선 한 굽이 맑은 시냇물 콸콸 겹겹의 구름나무에 골문도 깊어 중 돌길로 가고 구름 골짜기 찾고 새는 꽃 가지에 나그네는 누대에 드네 스스로 얻은 임천의 끝없는 멋 속세에 남은 근심 알리 없네 삼황이나 오제는 무엇 하신분 태초의 참새와 노느니 못해 이는 무용당 대사(無用堂 大師,1651~1719)가 속세의 선비와 나눈 노래다. 대사는 19살에 출가하여 송광사의 혜공 대사를 은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선암사, 조계사, 신흥사 등을 거치며 수행 정진 하였으며 1694년(숙종 20년) 지리산 신흥사에 있던 은사 스님인 백암 선사의 입적으로 강원을 맡아 제자들의 교육에 힘썼다. 그러나 무용당 대사의 명성을 듣고 밤낮으로 제자들이 몰려들자 홀연히 물리치고 “한갓 혀나 놀려대는 것이 어찌 염불에 전념하는 것만 하랴” 면서 용문산 은봉암에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저술에 몰두하였으며 숙종 45년(1719) 세수 69살, 법람 51살에 입적하였다. 무용당 대사의 선시(禪詩) 한 수를 감상해보자. 만물이 한결 같지 않음 알겠지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