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한줌의 흙 조국이란 이 한줌의 흙으로부터 시작된 것 땅김이 서리고 흙냄새 훈훈한 이 한줌의 흙! 루루천년 조상들의 뼈와 살로 기름지고 선렬들의 피와 땀으로 꽃을 피운 이 한줌의 흙이 모여 조국땅 이뤄졌노라 그렇다 밟고선 이 땅이 없다면 그대 어찌 저 하늘에 웃음 날리며 자유로이 두발 옮겨 디딜 수 있으랴… 따스한 해살이 고맙거든 시원한 바람결 즐겁거든 그대여 먼저 밟고 선 이 땅을 살찌우자 다시는 몰아치는 허풍에 이 땅에서 쭉정이만 날리지 않게 하자 우리 모두의 피와 땀을 쏟아 이 한 줌의 흙부터 알뜰히 가꾸자 조국이란 이 한줌의 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1983년2월2일) < 해 설 > 석화시인이 외친 “자아의식”, “주체의식”은 결코 이 세계와 사회를 외면한 폐쇄되고 협애한 “나”가 아니다. 인간은 패쇄적이 아니고 언제나 모든 사회관계의 총합으로서 인간의 의식은 시대와 민족과의 관련 속에서 생성된다. 그는 바로 “자아”를 시대의 거대한 교향곡에 넣어 저기가 밟고선 땅과 맥박을 같이 해왔던 것이다. 시인은 격변시대와 발밑의 토양에 두터운 애착을 안고 삶과 인간에 뜨거운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의
[우리문화신문=김리박 시조시인] 타오름달 보름(8.15) 어이들 잊을손가 타오름달 보름날 그러리 이날을 잊으면 무슨 겨레 뼈 곪고 온피 말라도 잊을리야 없으리 * 타오름달 : 8월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수럭스럽다/이창수(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오늘 토박이말]수럭스럽다 [뜻]말이나 짓이 보기에 씩씩하고 시원시원한 데가 있다. [보기월]놀거리와 먹거리에 토박이말까지 만나게 해 준 수럭스러운 동무가 참 고마웠습니다. 지난 엿날은 동무들 모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지난 겨울 모임에 못 갔기 때문에 꼭 한 해 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참 반가웠습니다.아이들은 몰라 볼 만큼 훌쩍 자라 있었습니다.아이들이 자란 만큼 저는 나이를 먹은 티가 얼굴에서 바로 났던가 봅니다.다들 저를 보자마자 하는 말을 들으니 말입니다.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기도 했고 서로 웃을 일도 많아 좋았습니다.맛있는 것도 먹고 아름다운 곳도 구경을 했습니다.게다가 저는 그곳에서 여러 가지 토박이말들을 만나서 더 반가웠습니다.우리가 만나 땀을 흘리며 즐긴 곳은'누리마당'이었고,저녁을 먹은 밥집 이름은'논두렁 밭두렁'이었습니다.구경을 간 곳에는'군것질'이라는 가게도 있었지요. 놀거리와 먹거리에 토박이말까지 만나게 해 준 수럭스러운 동무가 참 고마웠습니다.다른 일이 있어서 이튿날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겨울 모임 때 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서낭’은 사람에게로 와서 사람과 더불어 지내면서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슬프고 괴로운 삶을 어루만져 기쁘고 즐거운 삶으로 바꾸어 주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다. 아직도 온 나라 곳곳에 지난날 삶의 자취가 남은 마을에는 서낭의 자취도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조금씩 남아 있다. 우리 고향에도 여태 ‘당산’이 있는데, 거기에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 베어 버릴 때까지 아름드리 ‘당나무’가 한 해 내내 왼새끼를 발목에 두르고 서 있었고, 당나무가 서 있는 동산 위에는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며 헐어서 불태우던 날까지 ‘당집’이 있었다. ‘당집’은 서낭이 와서 머무는 집이라 ‘서낭당’이 본디 제 이름이고, ‘당나무’는 서낭이 하늘과 땅으로 오르내리도록 사다리 노릇을 하는 거룩한 나무이며, ‘당산’은 서낭당과 당나무가 있던 동산을 두루 싸잡아 서낭이 노닐던 거룩한 터전이었다. 서낭을 서낭당 바깥으로 모셔 내려면 마땅히 머물 자리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서낭대’다. 정월 초나흘부터 보름까지 마을에 지신밟기가 벌어지면 풍물패 맨 앞에는 언제나 서낭이 내린 서낭대가 앞장서서 이끌었다. 초나흘 새벽 그 해 당산을 책임진 산주를 앞
[우리문화신문= 전수희기자] 서쪽에서 온 보배 촛불하나 괴로이 찾아 무엇하겠나 밤 깊어 산 비개인 뒤 싸늘한 달 동녘 봉에 오르네 깃처럼 펼친 띠집 호수 동쪽에 누워 나그네 오르자 만 겹의 시상 뱃전 두드리는 삿대 기러기 놀라고 물에 드린 낚시 용들 겁내네 푸른 강 흰돌 처마 끝 아슬하고 맑고 성긴 안개만 방안 찾아드네 죽방에 누웠어도 잠없이 청결한 몸 바람 결에 은은한 두어마디 종소리 이는 침굉대사(枕肱大師,1616∼1684)의 『침굉집』에 실려 있는 노래다. 침굉대사는 10살에 출가하여 18살 때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다쳐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는데 그때 대사는 “만 권의 경전을 읽어도 눈병 하나 구제하지 못하는구나. 부처가 무언가, 마음이 곧 부처지”라는 깨달음으로 모든 문자에서 벗어나 수행에 들었다고 한다. 침굉대사와 윤선도의 만남에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침굉대사가 윤선도를 찾아갔는데 마침 윤선도는 아들 의미(義美)가 죽고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침굉대사가 윤선도의 죽은 아들과 닮았는지, 윤선도는 침굉대사를 아들로 삼고 싶어 대사의 스승인 보광대사에게 침굉대사를 양자로 삼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보광대사는, “불가에서 스승
[우리문화신문=김명호 시인] 매원(梅院村)마을*에서 4 간밤에 찌던 더위 이슬이 되었느냐 아침에 연기되어 저녁에 다시오나 연잎에 맺힌 물이여 오고감이 무어냐 * 매원마을 : 경북 칠곡군 왜관읍 소재하는 마을로 광주이씨 집성촌 원래 400여 호가 번성하였으나 지금은 20여 호만 남아 있다. 동산재, 감호당등 문화재가 다수 있음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나라는 찾았으나 나라말 어딨느냐 '가오'를 못 버리고'벤처'를 앞세우니 되찾은 빛이 무어냐 다시 묻게 되구나 저마다 가는 길이 같을 수 있겠냐만 먹고 살 길이라도 좋궂음 따져야지 몸 살릴 생각만 말고 얼도 살려 봅시다 우리말 가운데서 참다운 우리말인 쉬운 말 토박이말 살리고 일으켜서 온누리 토박이말이 넘쳐나게 합시다 오늘은 나라를 되찾은 날인 광복절 일흔 두 돌을 앞둔 제 마음을 가락글로 나타내 보았습니다.주절주절 길게 써 놓아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토박이말과 제 글이 비슷하다는 어떤 분의 말씀이 제 가슴을 후펴 파는 듯이 아팠습니다.안 좋은 쪽이 아닌 좋은 쪽에서 토박이말과 제 글이 같아지는 날이 올 때까지 더욱 힘을 써야겠습니다. 지난 이레 되새김을 하지 못해 조금 많아 보이지만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토박이말 되새김]8-2 /이창수(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옳은 갚음(정답)엿보기 1)ㅅㄷㅂㅎㄷ 2)ㅇㅁㅇㅁ 3)ㅉㅌ 4)ㅅㄸㄷ 5)ㅇㅂㅊㄷ 4350해 들가을달 열하루 닷날(2017년8월10일 금요일)ㅂㄷㅁㅈㄱ.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얼비치다/이창수(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오늘 토박이말]얼비치다 [뜻] 1)빛이 눈에 어른거리게 비치다. [보기월]시원하게 씻고 기분 좋게 잠자리 누웠는데 앞집에서 켜 놓은 불이얼비치어눈에 거슬렸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더위 때문에 다들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더위를 많이 타는 저도 적잖게 힘이 든 요즘입니다.그래도 될 수 있으면 찬바람틀에 기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잠을 잘 때도 앞뒤 문을 다 열어 놓고 바람틀 바람을 쐬며 잡니다. 어제 밤에는 오랜만에 마실을 나가 땀을 좀 흘리고 왔습니다.시원하게 씻고 기분 좋게 잠자리에 누웠는데 앞집에서 켜 놓은 불이 얼비치어 눈에 거슬렸습니다.무슨 불인지 모르지만 제가 누운 곳까지 닿는 걸 볼 때 참 밝은 불이었습니다.여느 날보다 좀 일찍 잠을 자나 싶었는데 그 불빛 때문에 얼른 잠이 들지 않아 일어나 일을 했습니다. 좋게 생각하면 불빛이 도움을 줘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뒤낮부터 모여 이야기를 나눈 토박이말 누리닦음 거리(원격연수 자료)살핀 열매 갈무리도 했고 토박이말바라기 꾸림빛 모임(운영위원회)갈무리도 했으니 말입니다.불빛은 핑계고 잠이 올 때가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이창수 (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지난 이레끝(주말)에는 태풍‘노루’가 우리나라에 오니 안 오니를 놓고 말이 많았습니다. ‘노루’라는 이름이 토박이말이라서 엄청 반갑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로 오는 게 걱정이 앞섰습니다.그래서 우리나라로 오면 비가 많이 와서 어려움을 겪은 곳으로 가지 말고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에 비만 좀 많이 뿌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비손했습니다.그런데 일본으로 가는 바람에 제 바람과는 많이 멀어져버렸습니다. 오늘은 이‘태풍’이야기를 좀 할까합니다.여러 곳을 찾아보니 우리나라 옛날 책에는‘대풍’이 쓰였고,중국에서는‘구풍’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태풍’이란 말은 일본 학자들이 만든 말로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무렵부터 써 오고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토박이말로는 무엇이라 했는지 똑똑히 알 수 없지만‘싹쓸바람’이 가장 가까운 말이라 풀이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람 세기에 따라 붙인 바람 이름 가운데 가장 센 바람을‘싹쓸바람’으로 해 놓아서 헷갈리기는 합니다.그래서 옛날 책에 적혀 있는‘대풍’을 뒤쳐서(번역해서) ‘한바람’이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밭’을‘대전’으로 바꿔 쓴 것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이모!"정겨운 시골집이 한눈에 들어오자 애들처럼 목청껏 웨치는 내 부름소리에 이모와 이모부가 부엌문을 왈칵 열고 급히 달려 나오신다. 어쩌다 찾아간 시골 이모네 댁, 삼십여 호되던 마을은 이제 달랑 세집뿐이다. 뜨락을 감싸고 있는 헐렁한 널바자*는 이제 조금씩 구부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모부가 힘이 딸려 대충 해놓은 듯한 창문의 문풍지는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채 제 구실이나 하나 싶게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 밑에는 가쯘하게* 패 놓은 장작들이 차곡차곡 곱게 쌓여져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그 구경에 신이 난 강아지와 병아리들의 요란스런 동참으로 조용하던 시골집 뜨락은 삽시간에 왁짝 끓어번졌다*. 동년시절, 대부분 방학시간을 나는 이곳 큰이모댁에서 보냈다. 이모네는 위로 아들 둘 아래로 딸 하나로 슬하에 이남일녀를 두셨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여읜 내가 혹 주눅이라도 들까봐 이모는 나를 각별히 아껴 주셨다.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사촌언니가 엄청 질투할 정도로… 열두 살쯤 될 때의 일로 기억된다. 마을에 보따리옷장수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그 시절농촌에는 현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