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전수희기자] 서쪽에서 온 보배 촛불하나 괴로이 찾아 무엇하겠나 밤 깊어 산 비개인 뒤 싸늘한 달 동녘 봉에 오르네 깃처럼 펼친 띠집 호수 동쪽에 누워 나그네 오르자 만 겹의 시상 뱃전 두드리는 삿대 기러기 놀라고 물에 드린 낚시 용들 겁내네 푸른 강 흰돌 처마 끝 아슬하고 맑고 성긴 안개만 방안 찾아드네 죽방에 누웠어도 잠없이 청결한 몸 바람 결에 은은한 두어마디 종소리 이는 침굉대사(枕肱大師,1616∼1684)의 『침굉집』에 실려 있는 노래다. 침굉대사는 10살에 출가하여 18살 때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다쳐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는데 그때 대사는 “만 권의 경전을 읽어도 눈병 하나 구제하지 못하는구나. 부처가 무언가, 마음이 곧 부처지”라는 깨달음으로 모든 문자에서 벗어나 수행에 들었다고 한다. 침굉대사와 윤선도의 만남에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침굉대사가 윤선도를 찾아갔는데 마침 윤선도는 아들 의미(義美)가 죽고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침굉대사가 윤선도의 죽은 아들과 닮았는지, 윤선도는 침굉대사를 아들로 삼고 싶어 대사의 스승인 보광대사에게 침굉대사를 양자로 삼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보광대사는, “불가에서 스승과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우리 부부가 결혼한지도 어언간 27년이란 시간이 지나왔다. 서로 아끼기도 하고 서로 다투기도 하면서 꿈같이 흘러간 세월,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이국땅에서 겪었던 그 고난의 시간들이 우리 부부,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더욱 튼실한 하나로 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들이 있다. 금방 결혼하여 우리는 자그마한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였다. 시집의 가정형편과 서로간 생활습관의 차이, 그리고 남편이 단위일과 친구들 만남으로 매일 술과 동무하다 보니 우리 사이에는 충돌이 그칠 줄 몰랐다. 집에는 화약냄새로 가득하였고 다투기를 밥 먹듯 하였다. 나는 출근하면서 혼자서 애를 돌보는 형편이라 늦게 돌아오는 남편이 야속하여 집문을 잠근 채로 열어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탕, 탕…” 아무리 두드려도 안 되는지라 술김에 화가 잔뜩 난 남편이 발로 문을 걷어찬 탓에 집문이 망가지기도 하였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법원의 문턱까지 가기도 하였다. 지루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에서였던지 아니면 셋방살이를 면하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생활을 갈망해서였던지 병원에서 주원부주임 겸 의무과 과장직까지 맡아하며 잘 나가던 남편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되새김]더위달 두이레(7월 2주) 그제 배곳안(교내) 토박이말바라기 푸름이 동아리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만났습니다. 마무리 잔치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느낌글을 받았습니다. 늘 말이 없이 시큰둥하게 있던 아이가 토박이말 놀배움이 아주 재미가 있었고 몰랐던 새로운 토박이말들을 알게 되어 좋았으며 다음해에도 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남다른 솜씨와 뜨거운 마음으로 늘 앞장을 서며 다른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아이들이 있어 고맙고 기쁘게 생각했는데 그 아이가 남긴 글도 참으로 기뻤습니다. 이제 배곳 안에서는 따로 동아리 모임은 없지만 앞으로 밖에서 하는 토박이말 이바지하기(봉사활동)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어제 토박이말 갈배움 닦음(교수-학습 연수)에서는 옛배움책에서 캐낸 갈말(학술용어)인 졸보기눈(근시), 돋보기눈(원시)를 비롯해서 나날말(일상용어)인 '간수하다', '옮다', '쓸리다'를 먼저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살려 쓸 토박이말로 '구름 이름'들을 살펴보고 '구름'과 아랑곳한 토박이말 노래들을 들려 드렸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 하루를 살다보니 또 토박이말을 되새기는 날이 되었습니다. 글갚음(댓글 달기)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골짜기 들자 걸음은 댓숲 뚫고 누대 올라 시름을 달랜다 소나무 짙은 푸르름 집 안으로 들고 돌부리 차게 흐르는 물 여름을 마중하고 맑은 햇살도 시원한 가을인가 의심하다 저렇듯 아름다운 시내 산 사람들 한번쯤 되돌아보지 못하네 취미대사(翠微大師, 1590 ~ 1668)의 속성은 성(成)씨로 성삼문의 후손이다. 13살에 출가하여 벽암대사를 은사로 모시고 득도하였다. 그러나 불도(佛道)외의 학문을 익혀야 할 필요성을 느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잠시 한양으로 나아갔다. “옛날 덕을 쌓고 도를 행하는 이는 모두가 다른 종교와 다른 학문에도 밝아 유가를 대하면 유가를 이야기하고, 노장을 대하면 노장을 이야기 하여 업신여김이나 비방함을 막아 부처님의 교화를 일으켰거늘 어찌 오늘날 마음을 닫아 담에 낯을 대한 자 같으랴” 문장은 조그만 재주일뿐 도 보다 높단 말 못하지요 두보의 훌륭한 지식이 우리에게는 참다운 걱언이지만 어쩌면 운수(雲水)의 게송을 가지고 속세의 선비와 논할 수 있겠오 오히려 이 문필의 꾸민 버리고 그대의 불이문(不二門)에 귀의하고 싶소 이는 재상 임유휴가 취미대사에게 보낸 시로 취미대사는 유가의 내로라하는 선비들과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찌 / 이창수 (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오늘 토박이말] 찌 [뜻] 1)따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보이게 하려고 그대로 글을 써서 붙이는 좁은 종이쪽[보기월] 그렇게 책을 찾다가 옛날에 보던 책에 제가 붙였던찌를 보았습니다. 어제 아침부터 제 살갗에 느껴지는 바람이 남달랐습니다. 배곳에 가서 앉으니 벌써 머리카락에 땀방울이 맺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람틀(선풍기)만으로는 얼른 땀이 식지 않아 찬바람틀(에어컨) 힘을 빌려야 했습니다. 한낮에는 이게 더위구나 싶을 만큼 더위달다운 날씨였습니다. 뛰고 달리며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한낮에는 그늘에서 공을 차고 있었으니까요. 저를 닮았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저보다 더하다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싶은 두 아이들 때문에 찬바람틀을 고쳤습니다. 큰애와 나이가 같은 찬바람틀은 이제까지 열 차례도 안 틀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깨끗하게 먼지를 가신 뒤에 틀었는데 시원하지 않아서 돌리지 않고 여름을 났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더운 것 같아 미리 손을 봤으니 걱정 하나는 덜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닦음(연수) 갖춤(준비)을 하느라 책꽂이에 꽂힌 책을 이것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본풀이’는 무교의 제의인 ‘굿’에서 쓰는 낱말이다. 굿은 여러 ‘거리’로 이루어지는데, 거리마다 한 서낭님을 모시고 굿을 논다. 이를테면 ‘가망거리’에서는 가망서낭님을, ‘제석거리’에서는 제석서낭님을, ‘장군거리’에서는 장군서낭님을 모시고 논다. 굿거리의 짜임새는 대체로 맨 먼저 서낭님을 불러 모시고, 다음에 서낭님을 우러러 찬미하여 즐겁게 해 드리고, 이어서 굿을 벌인 단골의 청원을 서낭님께 올리고, 다음에는 단골의 청원에 서낭님이 내려 주시는 공수(가르침)를 받고, 마지막으로 서낭님을 보내 드리는 차례로 이루어진다. ‘본풀이’는 이런 굿거리의 차례에서, 서낭님을 불러 모시는 맨 처음 대목에 무당이 부르는 노래이면서 이야기다. 노래에 담긴 이야기는 불러 모시고자 하는 서낭님이 어떻게 해서 서낭님의 몫을 하느님에게서 받았는지 그 처음과 끝을 알려 주는 것으로, 서낭님으로 몫을 받기까지 사람으로 태어나 살면서 겪어야 했던 온갖 서러움과 어려움을 빼어난 슬기와 놀라운 힘으로 이겨 낸 이야기다. 한마디로 ‘서낭 이야기’라 하겠는데, 한자말로 ‘신화’라고 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런 ‘본풀이’는 굿에서 단골과 청중들에게, 이번 거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제철 토박이말]1 / 이창수 (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우리가 먹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 제철 먹거리가 몸에도 좋고 맛도 좋다고들 합니다.토박이말도 철에 맞는 제철 토박이말이 있습니다.그래서 오늘은 요즘과 같은 철에 어울리는 토박이말 몇 가지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여러 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이렇게 오랫동안 비가 오락가락하는 것을‘장마’라고 하고 이런 철을‘장마철’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며 또 쓰고 있는 이‘장마’라는 말의 말밑을 살펴보면 토박이말이 아니라고 합니다.그리고‘장마’를 뜻하는 토박이말로‘오란비’라는 말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오란비’는‘오래’라는 뜻의‘오란’과‘비’를 더한 말이라고 합니다. 비가 오랫동안 오게 되면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빨래입니다.빨래를 해도 잘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비가 오다가 그치고 해가 쨍쨍 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그렇게 빨래를 말릴 만큼 해가 나는 겨를을‘빨래말미’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밥을 할 때도 땔감인 나무가 있어야 해서 비가 잦은 요즘과 같은 철에는 마른 나무가 참 아쉬웠습니다.그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산이 맑은 시냇물에 잠기니 위 아래로 붉은 단풍 숲 중을 불러 반석에 앉으니 이것이 그림 속이 아닐까 태수는 일 없으신 몸 산인도 마음이 비었소 서로 이끌어 시내 위에 앉으니 서풍에 지는 누른 단풍잎 이는 운곡 선사(雲谷 禪師)의 시다. 운곡 선사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대의 이름난 문인들과 교유하며 지은 시가 『운곡집』에 전한다. 『지봉유설』을 지은 이수광(1563 ~ 1628)을 비롯하여, 동악 이안눌(1571∼1637), 계곡 장유(1587∼1638) 등 조선 중기의 쟁쟁한 문장가들과 주고받은 시를 통해 운곡 선사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운곡집』에는 170여 수가 전하는데 특히 이안눌과 주고 받은 시가 30수나 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태수는 원래 도를 좋아했고 스님은 특별히 시를 하죠 풍진 세속에는 길을 달리했지만 운수의 자연에는 똑 같은 마음 옛 고을에서 맞이하겠다 하여 봄 성을 지나다 들렸구료 지금 이 허락한 교분 늙어도 끝내 변함없겠지요. 여기서 태수는 이안눌 선생이다. 서로가 걸어가는 길은 다르지만 ‘자연에 노니는 마음’은 똑 같은 마음이라는 데서 운곡 선사의 승속에 대한 관념을 이해 할 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얼뜨리다 / 이창수 (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오늘 토박이말] 얼뜨리다 [뜻] 사람이 두 가지 넘는 것을 이것저것 서로 섞이게 하다.[보기월] 가끔은 건건이를얼뜨려먹으면 새로운 맛이 나기도 합니다. 어제는 집에서 나갈 무렵부터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젖을 만큼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수레를 쓸 일이 있어서 수레를 타고 갔습니다. 비 때문인지 길에는 여는 때보다 수레가 많았습니다. 배곳 앞뒤로 아이들을 내려 주려고 줄을 서 있었습니다. 비를 덜 맞도록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내려 주고 싶은 어버이 마음을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바로 배곳 앞에 수레를 세워 다른 사람이 들어 가지도 못하게 하는 분이 있어 보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길잡이를 하시는 어르신들께서 세우지 말라고 하는데도 말입니다. 그 아이가 다른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저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틀 동안 멀리 다녀오느라 아무래도 몸이 힘들었나 봅니다. 앞낮에는 일을 잡고 있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았습니다. 낮밥을 먹고 난 뒤에야 제대로 일이 되었지요. 한 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하루를 마칠 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바다 하늘 다한 곳 풍경도 뛰어나 만 이랑 푸른 물결 노닐어 풍류 멋 있으니 피리소리 달과 어울려 구름 사이 닿다 이는 유달리 금강산을 사랑한 제월당( 霽月堂, 1544~1633)대사가 강원도 청간정을 지나며 지은 시다. 끝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를 보며 제월당 대사는 ‘만 이랑 물결’에서 풍류를 느낀다고 했다. 계단 옆 뜰가 두루 돋은 이끼 깊이 잠긴 솔문 열지 않음 오래다 아마도 주인이 신선된 까닭일까 달 밝은 밤 때때로 학 타고 오겠지 제월당 대사는 당호인 ‘제월(霽月)’에서 보듯이 달을 매개로 많은 시를 썼다. 영혼은 하늘 날아 천 길 계수나무에 날고 꿈은 비로봉 만 길의 소나무에 맴돈다 깨어나면 옛 침상에 옛 모습의 자신과 시내에 가득한 바람이요, 봉우리에 숨는 달뿐 이는 몽유금강산(夢遊金剛山)이란 시다. 신선, 학, 계수나무, 달의 시어가 주는 풍류는 제월당 대사 만이 가진 선경(仙境)의 정서일지 모른다. 어느 곳 푸른 산인들 도량이 아니랴 신세만 고달프게 딴 곳으로 달리네 진실로 자기 집 보배만 얻을 수 있다면 물 물 산 산 모두가 고향인 것을 (뒷 줄임) 제월당 대사는 40여년 설법을 하면서 어디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