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회보에 실리는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신정숙 선생님이 쓴 <적색과 아이보리>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여러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빛깔을 뜻하는 우리말이 한자말과 서양말에 밀려서 아주 자리를 내놓고 말았으니 어쩌면 좋겠느냐 하는 걱정이었지요. 우리 겨레가 스스로 만들어 쓰는 토박이말이 중국말에 일천오백 년, 일본말에 일백 년, 서양말에 오십 년을 짓밟혀 많이도 죽었지요. 그렇게 죽어 버린 우리말들을 갈래에 따라 살펴보면 좋은 공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의 주검들을 어루만지며 서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 겨레의 삶을 뉘우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신 선생님이 ‘반물’이라는 낱말의 참뜻을 몰라서 애태운 것 때문입니다. 국어사전들이 ‘반물’을 올림말로 싣지도 않았으니 어디서 참뜻을 알아보겠습니까? 애를 태운 끝에 찾아낸 것이 반물은 ‘암키와색’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암키와든 수키와든 빛깔이야 다를 게 없으니, “반물색이라 하기보다 ‘기와색’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그랬지요? 그런데 그건 우리네 국어사전들이 모두 엉터리라서 그렇게 되었어요. ‘반물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배곳에서 하지 못하는 것들을 몸소 겪어 보면서 배우고 몸과 마음을 닦으러 왔습니다. 새로운 일을 맞이하는 것도 아이들마다 다릅니다. 앞장서서 해 보려고 하는 아이도 있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하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습니다. 혼자 하라고 하면 선뜻 하지 못할 아이도 여럿이 함께하기에 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좋은 게 많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를 겪을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을 무서워 하던 아이도 물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놀면서 무서움을 잊어 버리기도 하고 혼자서 많은 사람 앞에 서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기는 어려워도 동무들과 함께하면 할 수 있습니다. 배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남다른 솜씨를 마음껏 뽐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궂은 기별들과 떨어져 물, 사람, 놀이가 만들어준 놀이에 푹 빠진 뒤 단잠을 자는 아이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짧은 밤을 아쉬워하며 어둠 속에서도 더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느라 힘이 들었지만 그보다 많은 것을 얻어 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기운을 얻습니다. 또 이레가 흘러 그동안 맛보신 토박이말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존존하다 [뜻] 피륙의 짜임이 잘고 고르며 곱거나 부드럽다.[보기월] 그 좋은 머리로존존하게베를 짜듯 좋은 생각을 많이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말해 주었습니다. 지난 이레 있었던 토박이말 알음알이 잔치 마무리를 할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는데 어제 안 한 일이 한 가지 생각났습니다. 한 곳에 가서 물었더니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싶어서 다시 말씀하신 분께 가니 말이 잘못 이어진 것이더군요. 망가져 못 쓰게 되었으니 새로 사달라는 말씀이었다고 하셔서 다른 분께 말씀을 드려서 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토박이말 징 울리기에서 끝까지 남았던 열 사람에게 선물보람을 주고, 토박이말바라기 푸름이 모임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선물보람을 주기로 한 열 사람을 뽑았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가 꽃동이에 물을 주는 데 한 아이가 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었고 말로만 뉘우칠 뿐인 아이였습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알면서 그랬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눈치와 슬기를 바탕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 좋은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과학공부 6-1(1951), 우리한글박물관/(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이창수 오늘은4284해(1951년)만든‘과학공부6-1’의18쪽, 19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비록 두 쪽이지만 반가운 토박이말이 많습니다. 18쪽에 보면‘넘빨강살’, ‘넘보라살’이 있습니다.이 말은 우리가‘적외선’, ‘자외선’이란 말을 쓰기 때문에 아는 분이 거의 없는 말일 것입니다.옛배움책에 나오는 풀이처럼‘일곱 빛깔 무지개 아래쪽 빨강 밖에 있는 빛살’이니‘넘빨강살’이고‘무지개 위쪽 보라 밖에 있는 빛살’이니‘넘보라살’이라고 한 것입니다.이렇게 환하고 똑똑한 말을 두고 우리는‘적외선’, ‘자외선’이란 말로만 가르치고 배웠고 또 쓰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일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함’은 어떤 한자말을 갈음한 말로 보이십니까?처음 듣는 말이라 느낌이 안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이 말은‘작용’이라는 말을 갈음한 말입니다. 19쪽에는 또‘살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피부’라는 말을 쓰기 때문에 만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가운데 오늘 보여 드린 토박이말이 낯설고 어렵다고 느끼실 분이 많을 것입니다.이런 말을 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얼김 [뜻] 어떤 일이 되거나 벌어지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얼떨떨한 김[보기월] 하지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얼김에 다 할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릴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어제 아침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지난 몇 날과 달리 바람이 시원함을 넘어 차갑게 느껴져서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덥다는 말이 쏙 들어갔지요. 저도 여러 날만에 땀을 흘리지 않고 앞낮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얼른 보내 달라는 게 있어서 마음이 바빴습니다. 해 둔 일인데도 살펴보고 넘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손을 보느라 좀 늦었습니다. 다른 분들한테도 서둘러야 한다는 말을 해 달라고 하셨지만 뻔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차마 그런 말을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아는 듯이 한 분이 일을 해 보내 주셔서 한결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그야말로 일에 겹겹이 둘러싸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얼김에 다 할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릴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필리핀이 스페인에 억눌려 지냈던 지난 날의 자국들을 지우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바꾸는 법을 만들려고 한다는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사과도 배도 아닌 것이, 연변사과배 사과도 아닌 것이 배도 아닌 것이 한 알의 과일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백두산 산줄기 줄기져 내리다가 모아산이란 이름으로 우뚝 멈춰 서버린 곳 그 기슭을 따라서 둘레둘레에 만무라 과원이 펼쳐지었거니 사과도 아닌 것이 배도 아닌 것이 한 알의 과일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 땅의 기름기 한껏 빨아올려서 이 하늘의 해살을 가닥가닥 부여잡고서 봄에는 화사하게 하얀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푸름 넘쳐 내더니 9월, 해란강 물결처럼 황금이삭 설렐 때 사과도 아닌 것이 배도 아닌 것이 한 알의 과일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우리만의 “식물도감”에 우리만의 이름으로 또박또박 적혀있는 ― “연변사과배” 사과만이 아닌 배만이 아닌 달콤하고 시원한 새 이름으로 한 알의 과일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해설 연변 지역의 향토색이 물씬 풍겨 나오는 고유한 과일 “사과배”는 연변의 자연을 대표한다. “사과”와 “배”의 결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조화의 세계를 지향하는 동양정신의 상징을 “사과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솥지기 [뜻] 밥을 한솥 짓는 동안 (밥을 한 솥 짓는 데 걸리는 때새)[보기월] 그 가운데 어떤 일은 한솥지기면 할 일인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먼 길을 수레를 몰고 다니는 게 참으로 힘이 든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놀러 가는 길이라면 가다가 힘들어도 쉬었다 가면 되는데 때를 맞춰 가야 하는 자리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배움책 만드는 일로 모임이 있어서 수레를 빌려 갔다 왔습니다. 쓰고 고치는 일이 되풀이 되는 참 힘든 일이지만 배우는 게 많아 보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가는 날마다 일이 있어서 끝까지 자리를 하지 못 하고 와서 마음이 쓰였습니다. 아는 게 모자라 많은 도움은 안 되더라도 자리를 지켜 주는 건 할 수 있는데 말이지요.^^ 돌아오는 길 가장 힘들었던 것은 졸음이었습니다. 심심할 겨를이 없도록 생각도 하고 노래도 따라 불렀는데 졸음은 쉽게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자면 다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글을 보고도 말입니다. 가장 좋은 수는 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쉼터에 들어가 쉬었다 왔습니다. 그 바람에 창원에서 다른 모임이 있었는데 좀 늦
[우리문화신문=김리박 시조시인] 달 팽 이 앗긴다고 집을 업어 즈믄 길을 가는가 알고 보니 열 뼘도 못되는 지름인데 그래도 쉬지 않고서 누비듯 가는구나 * 즈믄 길 : 천릿길
[우리문화신문=김명호 시인] 약 수 수천 년 묵은 인연 거르고 삭히어서 오늘에 다가서니 유별한 해후인가 나그네 마음을 적셔 머나먼 길 가벼워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엄마! 무지개가 비꼈어요! 빨리 와봐요! 빨리빨리!” 아들의 다급한 외침소리에 나는 신나게 해대던 칼질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동녘하늘에 칠색무지개가 곱게 걸려있었다. 참 간만에 보는 무지개라 너무나도 반가웠다. “무지개의 끝에는 보물이 묻혀있단다.” 아들과 함께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뜩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들, 저 무지개의 끝에 보물이 묻혀있대.” “와! 정말요?” “그래, 엄마가 어릴 적에 너의 증조할머니께서 그렇게 알려주셨거든.” “무지개의 끝에 층집이 있는데… 그럼 층집 밑을 파봐야 하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아들의 말에 나는 해일(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아들, 엄마랑 보물 찾으러 갈래?” 나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그래, 어디든 쫓아가보는 거야.) 아들애와 함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덩달아 신났다. 비가 온 뒤라 거리는 유달리 깨끗해보였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 덕분인지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마다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아까 우리 집 창문으로 내다본 그 층집아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