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리박 시조시인] 봄 아지랑이 아지랑 선 곳은 이쁜 아씨 버선 안아 오는 봄을 꿈꾸며 는개에 안기고 그리운 님 몸 더위를 버선코는 아느니라 * 는개 :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 * 몸 더위 : 체온(體溫) ▲ 그리운 님 몸 더위를 버선코는 아느니라(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한국문화신문 = 리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 부각 [뜻] 다시마, 김, 깻잎 따위에 찹쌀풀을 발라 말렸다가 기름에 튀긴 건건이(반찬)[보기월] 여러 가지 건건이 가운데 김부각이 제 입에 딱 맞았습니다.설은 잘 쇠셨습니까? 저도 잘 쇠고 왔습니다. 설 다음날 큰애가 아파서 잠을 설친 것 말고는 걱정 없이 잘 지냈습니다. 잇쉼(연휴) 마지막날을 뜻 깊게 보냈습니다. 미처 인사 드리지 못한 분들께 서둘러 인사를 드리고 와서는 집가심을 했습니다. 콩켸팥켸가 되어 있던 책상을 깔끔하게 치웠습니다. 버릴 것들을 가려서 버리고 갈무리할 것은 챙겨 넣고 나니 기분까지 맑아졌습니다.저녁밥은 가시집에 가서 먹었습니다. 큰애가 아픈 바람에 밥도 한 끼 같이 먹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그런 제 마음이 가 닿았던가 봅니다. 설날 장만했던 먹거리에 가시언니가 사 온 과메기까지 입맛을 당겼습니다. 여러 가지 건건이 가운데 김부각이 제 입에 딱 맞았습니다. 늘 그렇지만 그렇게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 배를 두드리며 뒤늦게 뉘우쳤습니다. 참아야 했다고 말입니다.^^'부각'하면 생각나는 게 '튀각'입니다. 둘 다 기름에 튀긴 것이지만 '부각'은 '찹쌀옷'을 발라 튀긴 것이고 '
[한국문화신문 = 지명순 교수] 전자렌지 단추 한번 누르면 따끈한 밥이 뚝딱 나오는 시대지만 아침에 밥 달라고 식탁에 앉아서 소리치는 남자와 밤늦게 들어와 밥 차려 달라는 남자는 간 큰 남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서 남편 뒷바라지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며, 다른 가사 일은 남편들도 할 수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만큼은 여성이 담당해야 된다는 얘기와 상통된다. 살기 위해 먹든, 먹기 위해 살든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며, 그 가운데서도 단연코 밥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밥 하면 쌀만으로 짓는 흰밥을 생각할 수 있지만, 콩팥조 따위를 섞어서 짓는 잡곡밥과 오곡밥, 지은 밥에 여러 가지 나물을 얹어내는 비빔밥,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재료를 넣어 짓는 김치밥, 콩나물밥, 버섯밥, 밤밥 등 별미 밥이 있다. ▲ 굴무밥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고 얼음이 얼 때쯤 생각나는 별미밥이 있으니 바로 굴무밥이다. 굴은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유명한 정력 식품이다. 희대의 플레이보이 카사노바는 매일 저녁 식사 때마다 굴을 50개나 먹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굴이 정력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연알르기닌글리코겐 따위가 풍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샹그릴라에서 맞이하는 아침. 태양이 3,200m의 샹그릴라 시내를 감싸고 있는 산 위로 떠오른다. 샹그릴라라고 하여서인지 샹그릴라에 떠오르는 태양도 뭐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싱거운 생각도 해본다. 오늘의 첫 번째 행선지는 납백해. 대리와 여강에서처럼 샹그릴라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현지 가이드가 회족 전통 복장으로 버스에 올라탄다. 현지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간선도로를 달리다가 조그만 시골길로 꺾어 들어간다. ▲ 샹그릴라 시내에서 버스 타고 가는데 저 앞에는 4천m가 넘는 산이 보인다. 전면에는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병풍에 굵은 띠를 두른 것처럼 흰 구름도 산맥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다. 이곳의 높이가 이미 3,200m 정도이니 저 산맥의 높이는 4,000m가 넘는다는 얘기이구나. 그런데 갑자기 눈앞으로 여객기가 기수를 낮춰 들어온다. 여객기가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길 왼쪽으로 샹그리라 공항이 여객기를 맞아들이고 있는데, 우리가 목표로 하는 납백해는 길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 비가 오지 않아 그저 푸른 풀밭인 납백해 ▲ 비가 오지 않아 그저 푸른 풀밭인
[한국문화신문 = 김연갑 국가상장연구회 위원] 1895년 청일전쟁의 승리로 조선에 대한 입지가 강화된 일본은 1898년 시베리아 철도 부설과 부동항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은 러시아와 조선을 사이에 두고 충돌했다. 이러한 상황에 주눅이 든 고종은 급기야 1882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옮겨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러시아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싶다.며 조미수호조약대로 조선을 도와줄 것을 미국에 기대하는 나약함의 소유자였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 독립신문 폐간 까지의 로고 , 글판과 영문화 이러한 상황을 국가의 위기로 인식한 일부 지식인들, 이를 테면 서재필과 같은 인물들은 국권수호와 자주독립을 위하여 국민을 계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곧 계몽을 목적으로 한 신문의 창간으로 바로 독립신문이다. 이 신문의 독립 용어 사용은 1894년 음력 12월 12일 고종이 종묘에 올리는 고유문(告由文)에서 처음 쓴 것을 시작으로 세 번째 사용으로독립신문은 제호에 태극무늬까지 넣어 시대정신인 독립을 사시(社是)로 제시하였다. 이 신문의 독립은 국가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문명에 눈을 떠 인권을 존중하고, 국민 각자가 직분을 다하여 나라의 부
[한국문화신문 = 리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 부기 [뜻] 누리(세상) 일에 어둡고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북숭이[보기월]바쁜 걸로 치면 안 바쁜 사람이 없을 텐데 참 저 밖에 모르는부기같이 보였습니다.언제부터 왔는지 모를 비가 내려 땅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언제부터 내렸는지 알겠지만 저한테는 도둑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소리도 없이 내려서 오는 줄도 모르고 나갔다가 수레까지 가면서 비를 맞고 가야했습니다.비가 오면 수레도 여느때보다 많아서 배곳 가는 길이 오래 걸립니다. 집에서 나서기도 좀 늦게 나섰지만 아니나 다를까 길에는 수레가 많았습니다. 저는 네쪽을 살피며 천천히 가는데 무엇이 그리 바쁜지 불쑥 끼어들었다가 나갔다가를 되풀이하더니 길을 바꿔서 이러저리 오가는 수레가 보였습니다.저러다 일을 내지 싶을 만큼 좋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수레를 본 사람들은 모두가 언짢았을 겁니다. 바쁜 걸로 치면 안 바쁜 사람이 없을 텐데 참 저 밖에 모르는부기같이 보였습니다. 못 배워서 또는 몰라서 그런 것이라면 헤아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레를 몰고 다닐 나이라면 그건 아니겠지요.좋은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누리(세상) 일에 어둡고
[한국문화신문 = 리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 볼메다 [뜻] 말소리나 낯빛에 성난 게 드러나 있다.[보기월] 하지만 일이 끝난 뒤에볼멘소리를 하거나 얼굴을 붉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토박이말바라기' 둘째 발표 토의를 잘 마쳤습니다. 신나는 북춤으로 모임을 연 다음 세 분의 좋은 말씀을 듣고 모임이 더 나아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좋은 말씀을 들려주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리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다만 멋진 춤과 값진 이야기를 더 많은 분들이 보고 들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좀 남았습니다.저보다 더 아쉬움이 크신 분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이 끝난 뒤에볼멘소리를 하거나 얼굴을 붉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걸 다들 잘 아시기에 더 많은 분들이 오실 수 있도록 날도 잘 잡고 더욱 널리 알리자고 다짐했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볼메다'는 '볼+메다'의 짜임입니다. '메다'가 '뚫려 있거나 비어 있는 곳이 막히거나 채워지다', '가득 차다'라는 뜻이 있으므로 '볼이 채워졌다, 볼이 찼다'의 뜻이라고 볼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트레킹 둘째 날이다. 오늘도 차마고도의 길은 별로 큰 오르막 없이 산허리를 따라 가거나, 절벽에 난 길을 따라간다. 협곡 밑에서 금사강이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절벽으로 난 길로 들어선다. 그 옛날 마방들은 길을 내기 위하여 순전히 곡괭이와 망치 등만 사용하여 이 길을 냈을 것 아닌가? 길을 내다가 아차 미끄러져 저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은 이들도 많지 않았을까? 아까 길을 지나오면서 무덤들을 보았는데, 마방들이 이렇게 길을 만들다가, 또 길을 가다가 죽으면 그렇게 길옆에 영원한 안식처를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겨우 길을 낸 거라 바닥이 평평할 리가 없다. 미끄러지지 않게 발밑에 신경을 쓰면서 산허리를 돌아가니 저 산 높은 데서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 금사강의 급류 모습 ▲ 절벽에 난 차마고도 ▲ 절벽을 따라 흐르는 차마고도의 폭포 관음폭포(觀音瀑布)다. 단순히 소리를 볼 수 있는 폭포라는 얘기인가, 아니면 여기서 관음보살의 현신을 보았다는 얘기인가? 폭포를 조금 지난 곳에는 현관사라는 조그만 사당이 절벽 위쪽에 겨우 터를 잡고 있다. 올라가보나 문은 꼭 닫혀있어 안을 볼 수가 없다. 틀림없이 이
[한국문회신문 = 지명순 교수] 중국의 하은주 삼대 시절의 《주례(周禮)》 천관(天官) 편에 보면 의관직을 다섯으로 나누어 첫째는 의사(醫師최고 책임자), 둘째는 식의(食醫), 셋째는 질의(疾醫내과의사), 넷째 창의(瘡醫외과의사)), 다섯째의 수의(獸醫-수의사) 등으로 나누고 있다. 식의(食醫)를 두 번째 등급으로 병증을 직접 칠하는 내과, 외과의사보다 높게 우대함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 음식의 중요성을 일치감치 깨달았음을 알 수 있다. 상나라 때 이윤(伊尹)은 식의로서 황제의 요리사였다. 그는 약을 음식과 곁들여 복용하고, 음식을 약물에 넣어 조리하는 등 약선음식(藥膳飮食)의 시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요리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본초(本草) 이론을 근거로 해 탕약의 배합제조 방법을 향상시켜 《탕액경(湯液經)》까지 저술하였다. 음식으로 황제의 건강을 돌봐야 했던 그는 생강과 계피를 잘 활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생강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재배되었다고 전해진다. 옛날에는 향신료와 생약제로 귀하게 취급되었고, 임금의 하사품으로도 쓰였으나 요즘은 보편화된 식품 가운데 하나이다. 《동의보감》에 생강은 맛이 맵고 특이한
[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해 후 이육사 모든 별들이 비취계단(翡翠階段)을 나리고 풍악소래 바루 조수처럼 부푸러 오르던 그밤 우리는 바다의 전당(殿堂)을 떠났다 가을 꽃을 하직하는 나비모냥 떨어져선 다시 가까이 되돌아 보곤 또 멀어지던 흰 날개우엔 볕ㅅ살도 따겁더라 머나먼 기억(記憶)은 끝없는 나그네의 시름속에 자라나는 너를 간직하고 너도 나를 아껴 항상 단조한 물껼에 익었다 그러나 물껼은 흔들려 끝끝내 보이지 않고 나조차 계절풍(季節風)의 넋이 가치 휩쓸려 정치못 일곱 바다에 밀렸거늘 너는 무삼 일로 사막(沙漠)의 공주(公主)같아 연지(脂)찍은 붉은 입술을 내 근심에 표백(漂白)된 돛대에 거느뇨 오―안타까운 신월(新月) 때론 너를 불러 꿈마다 눈덮인 내 섬속 투명(透明)한 영락(玲珞)으로 세운 집안에 머리 푼 알몸을 황금(黃金) 항쇄(項鎖) 족쇄(足鎖)로 매여 두고 귀ㅅ밤에 우는 구슬과 사슬 끊는 소리 들으며 나는 일흠도 모를 꽃밭에 물을 뿌리며 머―ㄴ 다음 날을 빌었더니 꽃들이 피면 향기에 취(醉)한 나는 잠든 틈을 타 너는 온갖 화판(花瓣)을 따서 날개를 붙이고 그만 어데로 날러 갔더냐 지금 놀이 나려 선창(船窓)이 고향(故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