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홍사내 기자] 한글이 세상에 나온 지도 어느덧 58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한자 타령에 세월을 좀먹는 사람이 있다. 교육부는 2015년에 개정될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 법안에다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라는 문구를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살짝 끼워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은 국회에서 작년에 통과시킨 상위법 ‘선행학습 금지법’에 위배되는 하위 법안(?)임에 틀림없는데, 한자 학습에 이권이 개입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반역사적이고 비교육적이며, 사교육을 부추기는 이런 정책을 펼 리가 없다. 한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2천여 년이나 되고, 정규 교육과 모든 기록물이 오로지 한문(한자)으로만 이루어지며 보낸 세월이 1,900여년이고 보면, 한글로 교육을 하고 한글로 공문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고작 100년도 안 된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당했으니 우리 말글이 제구실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은 광복 이후 7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부 국한 혼용론자들이, 대한민국의 문자가 한글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제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도 백성을 가르치고 제 생각을 쉽게 전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신문 = 김슬옹 교수] 한글은 1443년 12월(음력)에 창제되고 1446년 9월 상순(음력)에 반포되었다. 북한은 창제한 날을 기리고 남한은 반포한 날을 각각 양력으로 바꿔 기린다. 그래서 북한의 조선글날(훈민정음 기념일)은 1월 15일이고 남한의 한글날은 10월 9일이다. 창제를 기리는 의미에서 한글에 대한 기본 상식 또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퀴즈 28 문제를 마련해 보았다. * 맞춘문제 수: 25문제 이상 -아주 뛰어남 / 20문제~24문제 - 뛰어남/19문제 ~ 15문제 보통 / 14 ~10문제 - 노력 필요 / 9문제 이하 - 치열하게 노력 필요 ▲ 세종은 백성을 위해 쉽게 배울 글자를 고민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한글 기본 상식 짚어보기 0X 28문제 1. 세종이 우리말을 만들었다.( ) 2. 한글을 창제한 사실을 세종이 처음 알린 날은 1443년 12월(음력)이다. ( ) 3. 한글(훈민정음)을 일반 백성들에게 반포한 날은 1446년 10월 9일(음력)이다. ( ) 4. 한글은 조선시대 고종의 국문 칙령이 반포(1895년) 되기 전에는 공식문자(공용문자)가 아니었다. ( ) 5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함께 창제했다
[한국문화신문=김리박 시조시인] 으뜸날 아침 비오는 으뜸 아침 뜰 해가 보이잖네 다음날은 돋으리라 믿고서 또 가는 길 누리가 어지러워서 늙은이는 아프기만 코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박물관을 나온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타고 오늘 머무를 대리에 있는 얼하이 호수의 섬 남조풍정도로 향한다. 차는 다시금 고속도로를 올라 타 한참을 달려 대리로 들어선다. 대리시는 얼하이 호수의 서쪽 가에 자리 잡은 도시로 우리가 익히 아는 대리석이 바로 이곳 대리에서 나오는 것이었기에 돌 이름도 대리석이 되었지. ▲ 대리시 북쪽에 있는 얼하이호(耳湖)의 모습 대리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얼하이(洱海)는 중국에서 6번째로 큰 넓이 249평방킬로미터의 호수로 호수가 바다처럼 넓고 귀처럼 길쭉하다 하여 洱海라는 이름이 붙었다한다. 해발 1,973m의 고지에 어떻게 이런 큰 호수가 생겼을까?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는데 좌우로는 호수의 끝을 알 수가 없어 洱海라는 이름이 실감난다. 남조풍정도는 호수 건너편에 바짝 붙어 있어 배는 호수를 횡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호수는 바다라고 부르는 만큼 파도도 있고 바람도 세다. 건너가는 동안 우리가 호수를 무슨 바다라고 하느냐 했더니, 洱海는 자기를 얕잡아봤다고 당장 박 선생님의 모자를 호수 위로 날려버린다. 그 모자에는 선
[한국문화신문=마완근 기자] 연보(年譜) 이육사(李陸史) '너는 돌다리목에 쥐왔다.'든 할머니 핀잔이 참니라고하자 나는 진정 강(江)언덕 그마을에 버려진 문바지였은지몰라? 그러기에 열여덟 새봄은 버들피리 곡조에 부러보내고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港口)의 밤 눈물섞어 마신술 피보다 달드라 공명이 마다곤들 언제 말이나했나? 바람에부처 도라온 고장도 비고 서리밟고 걸어간 새벽길우에 간(肝)입만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 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해도 쇠사슬을 잡어맨듯 무거워졌다 눈우에 걸어가면 자국이 자리라고 때로는 설래이며 파람도부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오전 9시 22분 임진각. 화환을 목에 건 황소 옆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한 마리의 소가 1000 마리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고 말했다. 1998년 6월 16일 언론은 이렇게 83살의 정주영 회장이 트럭 50대에 500마리의 소떼를 싣고 판문점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오전 임진각에서 정주영 회장은 이번 방문이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그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은 이후 10여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트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지난 5월 9일 나는 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 연재를 이렇게 시작했다. 정주영, 그는 실향민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이룬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그는 17살 때 현재 북한지역인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의 고향집에서 아버지가 소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가출했는데 그의 나이 83살이 되던 1998년 6월 16일 소떼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하게 된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소떼 방북을 위해 이미 1992년부터 자신의 서산농장에 소 150마리를
[한국문화신문 = 리창수 기자][오늘 토박이말]벌물 [뜻] 맛도 모르고 마구 들이켜는 물[보기월] 앞으로는 맛을 보라고만 할 게 아니라벌물마시 듯이 할 수 있도록 둘레를 토박이말로 넘쳐 나게 하는 데 더 힘을 써야겠습니다. 4347해이자 2014해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4347이 뭐예요? 라고 묻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걸 알려 줄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잣대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삶이지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잣대로 일몬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우리가 숨을 쉬듯이 쓰는 우리 말도 알고 쓰는 게 다가 아니고 모르는 말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낯설지만 알아서 쓰면 좋겠다 싶은 말들을 맛보여 드리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제가 들인 힘과 때새와 견주어 봤을 때 그리 보람이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와는 아주 다른 입맛을 가진 사람들에게 제 입에 맛있다 싶은 것들을 자꾸 맛보여 드렸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 생각만큼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웠구요. 토박이말 맛을 보신 분들이 저절로 토박이말을 찾도록 하겠다는 마음만 앞섰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맛을 보라고만 할 게 아니라벌물마시
[한국문화신문 = 이규봉 교수] 무한의 체계를 처음으로 다룬 사람은 19세기의 칸토어이다. 칸토어는 실제적 무한을 이미 완성된 수학적 대상으로 수용했고, 이전까지의 지배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오직 하나의 무한 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무한이 있음을 보였다. 셀 수 있는 무한 무한집합은 자신이 아닌 부분집합과 일대일 대응을 이룬다고 정의했다. 무한인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을 맺을 수 있는 모든 집합을 셀 수 있는 집합이라 하고 그 수를 א0로 나타냈다. 자연수와 짝수의 개수는 같다고 했다. 그러면 정수와 자연수는 누가 더 많을까? 정수의 집합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자. 0, 1, -1, 2, -2, 3, -3, ... 그렇다면 위의 수는 순서대로 1, 2, 3, 4, 5, 6, 7,...과 일대일 대응을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수의 개수와 자연수의 개수도 둘 다 무한으로서 서로 같다. 유리수와 자연수는 누가 더 많을까? 유리수란 정수를 0이 아닌 정수로 나눈 수이다. 집합으로 표시하면 {q/p|p와 q는 정수, p는 0이 아닌 정수}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1874년 칸토어는 유리수들이 매우 조밀함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배열하면 수를 셀
[한국문화신문 = 리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 벋대다 [뜻] 1) 쉬이 따르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다.[보기월] 책을 읽어 준다고 하니벋대지않고 따라왔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여느 때보다 더 늦도록 일을 하게 됩니다. 자는 때가 늦어진 만큼 늦게 일어나면 괜찮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낮에 하품이 잦습니다. 아우를 보는 바람에 돌봐 줄 사람이 없어진 조카를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을 하는 동안에는 언니 오빠하고 잘 놀았지요. 그런데 언니 오빠가 제 일보러 나가고 나니 많이 심심해 하였습니다. 이거 해 줄까 저거 해 줄까 물어도 싫다고 하고마루가 차가워서 안방으로 가자고해도 안 간다고 벋댔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 준다고 하니벋대지않고 따라왔습니다. 처음 책은 앉아서 들었고, 다음 책은 누워서 듣더군요. 그래서 셋째 책은 저도 누워서 읽어 주었습니다. 책을 두 세 쪽 읽었을까 조용하다 싶어 보니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잠이 와서 이도저도 싫다고 벋댔던 모양이었습니다. '벋대다'는 말을 쓸 때면 어릴 때 염소를 먹이러 다닐 때가 생각나곤 합니다. 풀이 많은 곳에 데려가 매어 놓았다가 해가 질무렵에 끌고 오는 일을 맡
[한국문화신문 = 김리박 시조시인] 한 그믐 선농단(先農壇) 알고 보니 진한 맛은 설렁탕 추운 겨울 설렁설렁 배 채우면 골길 간데 못 먹어 눈물 돋으니 마누라도 같이 울고 * 골길 간데: 만릿길도 가는데, 먼길도 가는데 * 참고자료: 김영조 지음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마누라 치마감 사줄 돈마저 털어 사먹던 인기 만점 설렁탕 시험으로 먹어 본다는 것이 한그릇 두그릇 먹기 시작을 하면 누구나 자미를 드려서 집에 갈 로자 돈이나 자긔 마누라의 치마감 사줄 돈이라도 안이 사먹고는 견듸지 못할 것이다. 갑이 눅은 것도 눅은 것이어니와 맛으로던지 영양으로던지 상당한 가치가 잇는 것이다. 自來로 서울의 폐병(肺病)쟁이와 중병 알코 난 사람들이 이것을 먹고 소복(蘇復, 원기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근래(近來)에 소위 신식결혼을 하얏다는 하이카라 청년들도 이 설넝탕이 안이면 조석(朝夕, 아침저녁)을 굴물 지경이다. 위는 일제강점기의 잡지 ≪별건곤≫ 제23호(1929년 발행) 경성명물집(京城名物集)에 나오는 설렁탕이야기입니다. 일제강점기 서울에서는 이렇게 설렁탕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지요. 설렁탕을 사전에서는 소의 여러 부위를 함께 넣고 푹 끓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