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리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 무릇 [뜻] 대체로 헤아려 생각하건대 [보기월] 무릇 앎은 스스로 하고자 할 때 더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바람이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운 날씨였을 것입니다. 힘들게 보낸 하루 단잠을 이루지 못하고 글자를 읽느라 눈이 많이 아팠습니다. 틀린 글자 찾기 놀이를 했습니다.^^ 배움때끝 아이들을 꼲은 말을 읽고 앞뒤가 맞지 않는 곳이나 잘못 된 글을 찾았지요. 다들 마음을 써서 한 것을 봤는데 빨간 금을 그은 곳이 적지 않았습니다. 제가 눈이 시리도록 본 것도 틀림이 없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게 참일입니다. 하지만 서로 바꿔서 보고 또 보고 해야 틀린 곳을 줄일 수 있다는 것에는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앎은 스스로 하고자 할 때 더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스스로 알고 싶을 때 또는 스스로 알고자 할 때 더 쉽게 더 똑똑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맞춤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스스로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나서면 더 잘 알고 덜 틀리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배곳에서
[그린경제/얼레빗=리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 무름하다 [뜻] 알맞게 무르다. 또는 꽤 무르다. [보기월] 무름한 과일이 제 입에 딱 맞았습니다. 사람이 겪어 보지 않은 일에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새삼 했습니다. 배움책을 보면 여러 가지로 아쉬운 데가 있어서 투덜거린 적이 많은데 제가 해 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을 하면서 배움책 만드는 일을 해야 하고 모여서 이야기 하는 것도 남들 쉬는 날 하고 그것도 밤이 늦도록 합니다. 배움책 만드는 일에만 힘을 쏟을 수 있는 길을 찾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일이 겹쳐서 새벽에 길을 나서서 날이 바뀌고 집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먼길을 다녀 온 뒤 몸이 말했습니다. 좀 쉬라고 말이죠. 일이 좀 일찍 끝나면 내려 와서 만날 분도 있었고, 다른 할 일도 있었는데 몸이 제게 하는 말대로 했습니다. 밝날에 하는 집가심은 좀 늦게 했습니다. 먼지를 빨아들이고 닦는 일이었지만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소리가 적게 나도록 마음을 쓰면서 하다보니 더 그랬습니다. 땀을 흘린 보람이 따로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깔끔해진 집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늦은 저녁밥을
[그린경제/얼레빗=김리박 시조시인] 풋 고 추 가난하던 어린 때 이때면 찐콩잎 풋고추로 보리밥을 눈물로 먹었건만 오늘은 보기 힘들어 옛 생각만 돋는구나 ▲ 눈물로 먹었던 보리밥과 풋고추 ** 김리박 : 대한민국 한글학회 일본 간사이지회 회장 재 일본한국문인협회 회장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선정 한국어어문 지킴이 (황금상) 2006년 일본 히라가타시 교육위원회 조선어강좌 특별강사 일본용곡대학(龍谷大學) 한국어강좌 강사 일본관서대학(關西大學)비교지역문화강좌 강사 누리편지 ribak@hera.eonet.ne.jp 손말틀 (일본) 090-8147-7689
[그린경제/얼레빗=진용옥 명예교수] 평양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명칭도 달라졌다. 왕검성(王儉城)기성(箕城),낙랑, 서경, 호경(鎬京) 유경(柳京) 등이다. 단군이 이곳에 도읍을 옮겨 정하고, BC 813년에는 기자(箕子)가 후조선의 도읍으로 삼았고 BC 194년에는 위만조선의 도읍으로 계승되었다. 한때 낙랑군의 중심지였지만 고구려의 영향권으로 다시 편입되었다. 427년(장수왕 15)에는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의 평양 동북의 안학궁(安鶴宮)이 중심에 자리 잡은 이후 522년(양원왕 8)에 지금의 평양을 중심으로 장안성(長安城)을 쌓고 586년(평원왕 28)왕궁을 이곳으로 옮겨, 전후 240년 동안 고구려의 정치경제문화군사의 중심지로 삼았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묘청이 서경 천도를 주장하면서 난을 일으키고 결국은 실패하게 되자 반역의 땅으로 낙인찍혔다. 조선시대에는 평양부에 관찰사를 두었지만, 1896년 8도에서 13도(道)로 분할하게 됨에 따라 평안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으며, 광복이후 현재까지 조선인공의 수도이다. 이런 역사성 때문인지 평양이 한반도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내친김에 역사적 정통성에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독일의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 정식 이름이 라이히스 아우토반(Reichs Autobahn)이지만 우리는 흔히 아우토반(Autobahn)이라고 부른다. 도로의 너비는 18.520m이고, 길 가운데는 3.55m 너비의 중앙분리대가 있다. 1932년 쾰른과 본 사이를 왕래하는 최초의 아우토반이 완공됐는데 오늘날에는 총연장 1만1000㎞에 이르며 독일 땅의 대부분에 미치고 있다. 제한 속도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의 하나이지만, 위험지역에서는 100㎞ 또는 130㎞의 제한속도 표지가 붙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6년 월드컵 직전 공연단 취재차 가봤던 독일, 일반도로에서는 철저히 제한속도를 지키며 다니던 자동차들은 아우토반에만 들어서면 대부분 시속 200㎞로 달렸다. 빨라야 110㎞를 달리던 한국에서 200㎞를 달리니 오금이 저리기도 했지만, 짜릿한 쾌감도 순간 느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했고, 이 아우토반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본에서 쾰른으로 가는 20㎞ 구간의 아우토반을 지나가면서 박 대통령은 두 차례나 차를 멈추고 독일 관계자들에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한다. 어떻게 고속도로를 건설했고, 공사비용은 얼마나
[그린경제/얼레빗=이규봉 교수] 조선시대 청백리의 대명사인 황희 정승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이 사랑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밖에서 계집종 둘이 악을 쓰고 다투고 있었다. 황희가 밖으로 내다보자 원체 마음이 너그러운 주인인지라 다투던 계집종 중 예쁜이가 쪼르르 달려가 사실을 일러바치며 자신이 옳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황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네가 옳다고 답을 했다. 그러자 다른 계집종 곱단이가 다시 그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황희는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너 역시 옳구나 했다. 그러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황희 정승의 부인이 어처구니가 없어 한 쪽이 옳으면 다른 한 쪽이 그른 일이 아닙니까? 나라 정치도 그와 같이 하면 어떻게 되옵니까?하니 황희 정승은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 말도 옳소라고 대답했다.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이와 같은 황희 정승의 말을 이도저도 아닌 말장난일 뿐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황희 정승의 대응은 다툼을 피해가는 매우 현명한 일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 그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닌 한 그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역지사지(易地思之)라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1434년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혜정교와 종묘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댔다. 어머, 저게 우리 임금님께서 누구나 시각을 알 수 있게 만든 오목해시계래. 우리 같은 까막눈 백성들이 시각을 알 수 있게 시각 표시를 동물로 표시했대. 말 그림을 바로 가리키면 낮 12시래. ▲ [사진 1] 세종 때 앙부일구를 전시해 놓았던 받침돌, 현재 탑골 공원 한 구석에 있다. ▲ [사진 2]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옆의 혜정교터 표시 비석. 세종은 이곳에 오목해시계를 설치하여 오고가는 백성들이 시간을 알게 하였다. ▲ [사진 3] 종묘에 복원해 놓은 오목해시계와 동물이 표시 된 내부 모습 번다한 길거리에 있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각을 보고 한 마디씩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아빠 따라 나온 덩치 큰 어린애들은 돌 위에 올라가 시간을 살피기도 했다. 사진 1이 바로 그 당시 오목해시계(앙부일구, 仰釜日晷)가 설치되어 있던 돌이다. 길이가 1미터 남짓인데다가 2단 위에 있어 네다섯 살 아이들까지도 돌 위에 올라가 시간을 알 수 있었다. 혜정교에는 복원이 안 되어 있고 기념 비석만 있고(사진 2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의 4대 명절은 설날, 단오, 한식, 한가위를 말한다. 이 밖에도 정월대보름, 초파일, 유두, 백중, 중양절, 동지도 명절로 지냈다. 하지만, 이제 유두와 백중(百中), 중양절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유두에 유두국수를 먹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유두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세시풍속은 이제 아쉽게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1) 물맞이하는 날 유두는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인데 이는 동방의 원기가 가장 왕성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다. 신라 때는 유두를 이두문자로 '소두'(머리 빗다), '수두'라 썼다. 수두란 머리의 옛말 마리를 써서 물마리라는 말인데 '물맞이'라는 뜻이다. 요즘도 신라의 옛 땅인 경상도에서는 유두를 '물맞이'라 부른다. 유두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았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 ▲ 유두의 풍속이 기록된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편 표지 유두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라 때부터 명절로 지낸 것으로 짐작된다. 13세기 고려 희종 때 학자 김극기의 ≪김거사집(金
[오늘 토박이말]무르춤하다[뜻]뜻밖의 일에 놀라 뒤로 물러서려는 듯이 하여 움직임을 갑자기 멈추다.[보기월]"끼이익" 하는 소리에 무르춤하고 뒷거울을 봤습니다. 몇 날 해를 못보다 봐서 그런지 참 더웠습니다. 이것도 다 너구리가 몰고 온 것이라고 하니 참 힘이 세다 싶었습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땀은 좀 흘렸습니다. 어제 밤에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여느 날과 달리 챙길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아 힘은 들었습니다. 제가 힘든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힘든 아내 앞에 할 말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일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와서 먼저 수레를 손봤습니다. 멀리 다녀 올 일이 있어서 여기저기 잘 살펴봐 달라고 했습니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못 다 본 장을 보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네거리를 지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끼이익" 하는 소리에 무르춤하고 뒷거울을 봤습니다. 제 뒤에 오던 수레하고 다른 쪽에서 오던 수레가 부딪칠뻔 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이 수레를 세우고 내려서 서로 말싸움을 하더라구요. 날이 더러워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그렇게 놀라고 나니 더 화가 난 모양이었습니다. 그래도 수레도 사람도 다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들
[그린경제/얼레빗=손현목 기자] ▶ 작가 소개: 송운 한부득 선생은 현재 임고중학교(경북 영천시 임고면 소재) 국어 교사이다. 그의 손말틀은 010-4914-0600, 누리편지는 hbd9180@hanmail.net 이다. 작가 한부득 선생과 필자의 인연은 1991년 3월 경북 영천에 있는 여자고등학교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어떻게 살다보니 벌써 20년이 넘는 인연이다. 20여 년 전 당시에는 작가나 필자나 총각선생으로 여학생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학교생활이 많이 난감했다. 전근으로 1년 만에 한 선생이 인사이동으로 다른 학교로 옮겼다. 그 이후에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단 1년 같이 근무하고 20년이 넘도록 끈을 이어 준 것은 무엇일까? 한부득 선생과 필자는 전공이 국어교육이다. 그래서 지금도 경북에서 중등학교 국어 교사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동문이나 선후배 관계인 것은 아니다. 한 선생과 이렇게 오랜 인연을 이어오게 된 것은 아마 비슷하거나 같은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미리 약속하지도 않고도 20년이 넘는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운명이다. 그 운명 중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