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리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 무룡태 [뜻] 해낼 힘은 없고 착하기만 한 사람 [보기월] 앞으로 무룡태라고 할 만한 사람도 보기 힘들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집에서 배곳까지 가는 길에 비가 오락가락 하는 걸 보면서 갔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하늘이었는데 배곳 쪽으로 가면 갈수록 하늘이 어두워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매지구름이 늘어다더니 드디어 사천을 지날 때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조금 내리던 비가 또 그치더니 배곳 가까이 가서는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한바람 너구리가 일본으로 가긴 했지만 비바람이 불 거라고 했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낮동안 소나기같은 비가 여러 차례 오다 안 오다를 되풀이 했지만 많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바람도 그리 세게 불지 않았구요. 일을 마칠무렵에는 푸른 하늘에 해까지 보였었는데 저녁부터는 비가 낮보다 더 많이 왔습니다. 어제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토박이말 알음알이 잔치를 한 뒤로 여러 사람들이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주십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습니다. 그런 분들이 모여서 토박이말바라기' '진주모임'을 만들
[오늘 토박이말] 무르녹다 [뜻]1) 과일이나 먹거리가 넉넉하게 익어 흐무러지다. [보기월] 밥과 감자를 먹고 난 뒤였지만 무르녹은 듯한 복숭아까지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그린경제/얼레빗=리창수 기자] 어제까지 해 낼 게 있어서 일을 끝내고 나니 잘 수 있는 때새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짧게 눈을 붙이고 일어난 기분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수레를 몰고 가는 날이었는데 무거운 몸으로 여러 사람의 목숨을 맡을 수가 없어서 차례를 바꿨습니다. 배곳으로 가는 동안 짧게 잔 게 단잠이었던지 낮에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점심을 먹고 좀 졸리긴 했지만 말이지요. 비가 오락가락 하는 게 장마철다웠습니다.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아이들이 신나게 공을 차며 땀을 흘리는 게 많이 부러웠습니다. 배움때끝(학기말)이라 저도 해 달라고 할 게 있는데 바쁜 분들께 말을 꺼내기가 미안할 만큼 다들 많이 바쁘답니다. 그래도 한 가지씩 차례로 해서 뒷마감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일을 마치고 와 밥은 가시집에서 먹었습니다. 가시어머니께서 몸이 마뜩잖으시다는 기별을 받고 밥과 건건이를 싸 갔습니다. 걱정을 하고 갔었는데 저녁 채비를 하고 계신 가시어머니를 뵈니 마음이 조
[그린경제/얼레빗=김슬용 교수] 세종 26년, 1444년 여름이었다. 세종은 이렇게 말한다.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 것인데 농사는 입는 것과 먹는 것의 근원으로 임금의 정치에서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_1444년(세종 26년) 윤7월 25일 그 어느 시대건 먹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것은 제대로 먹어야 사람답게 이 세상을 떠받치는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은 바로 가장 중요한 사람의 문제, 백성의 문제를 정확히 꿰뚫었다. 정치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터전을 만들고 법을 만들고 더 나은 제도를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 세종 때 정초 등이 꼭 필요한 농사지식만 모아 펴낸 《농사직설(農事直說)》 1. 굶주리는 백성들 세종이 임금이 된 그 다음 해인 1419년(세종 1년)에 흉년이 들고 온갖 자연 재해가 끊이질 않았다. 세종은 굶어 죽는 백성들을 보고 그들을 제대로 구제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이 아파 신하들에게 2월 12일에 이렇게 말했다. “백성(국민)은 나라의 근본이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과 같이 우러러보는 것이니라. 요즈음 홍수와 가뭄 등
[그린경제/리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 무람 [뜻] 부끄러워하고 삼가고 조심하는 데가 있음. 또는 그런 품(태도) [보기월]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제대로 못 챙긴 것에 무람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요? 이어진 장마에 한바람까지 더해 비가 더 많이 올 거라고 합니다. 한바람 이름도 우리가 지어 준 이름으로 '너구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까지 올라오지 않았으면 싶은데 아직은 똑똑하게 알 수가 없답니다. 그러길 빌 수 밖에 할 수 있는 것도 없긴 합니다. 어제는 아이들과 말밑 공부를 좀 했습니다. 우리 겨레가 일본에 짓밟히며 지내는 동안 우리말을 못 쓰게 한 까닭이 무엇이며, 나라를 되찾자 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우리말을 도로 찾기였던 까닭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첫걸음은 잘 내디뎠는데 꾸준하게 이어오지 못한 까닭도 잘 알기에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온누리 사람들이 말이 참으로 종요로운 것이라 한 목소리로 말해 왔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제대로 못 챙긴 것에 무람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말을 챙기자는 말에 손사래를 치거나 언짢다는 사람들이 많아 아주 슬프기도 합니다. 아베 노부유키
[그린경제/얼레빗=리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 무럽다 [뜻] 모기, 빈대, 벼룩 따위에 물려서 가렵다. [보기월] 집에 와서 보니 모기한테 물린 뒤 무러워 긁은 자리가 곪아 노랗습니다. 더위에 놀라 찬바람과 딱 하루 사이좋게 지냈을 뿐인데 고뿔이 딱 올라 붙어버렸습니다. 코가 맹맹하고 재채기가 잦습니다. 어제는 콧물까지 줄줄 흘러서 남보기에 많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이레끝 토박이말 배움자리에 이어서 갈모임(학회)이 있어 비사벌(창녕) 가마실(부곡)까지 다녀왔습니다. 배움과 익힘, 그리고 그 열매를 나누고 물음이 있어 조금은 팽팽한 느낌도 있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서로 잘 되도록 도우는 자리이면서 힘이 되는 자리 끝에 보람까지 더해지면 더욱 좋은 자리 말입니다. 그곳이 메(산) 가까이 있어서 그랬는지 모기가 좀 많았습니다. 사나흘 사람이 없어서 굶었던지 사람들을 보고 많이 반가웠던 모양이었습니다. 맨살은 말할 것도 없고 옷 위로 마구 빨대를 꽂았습니다. 모임을 하는 동안 여러 곳을 물렸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느라 얼마나 물렸는지 몰랐었습니다. 집에 와서 보니 모기한테 물린 뒤 무러워 긁은 자리가 곪아 노랗습니다. '무럽다'는 '물다
[그린경제/얼레빗=진용옥 명예교수] 2004년 6월15일 평양에서는 남북 공동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꽃으론 본 내나라라는 주제로 남 북녘 작가 40여명이 평양문화상품전시관에다 200여점을 올린 것이다. 8년 전 렌즈로 본 조국 그리고 2001년 백두에서 한라까지전 이후 세 번째로, 6 15 공동선언 4주년에 맞추어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노동신문은 6월 15일자 4,5면에 이례적인 기사를 실었다. ▲ 안승일 작 백두산 2014년 전시회 출품작 그는 2002년 '렌즈로 본 조국'에서 북의 작가와 함께 별도의 코너에 백두산 사진을 전시했다. 불멸의 꽃 김정일 화, 김일성 화, 우리(조선인공)의 국화인 목란꽃, 백두산의 만병초, 묘향산 불영대의 두봉화, 금산산 도라지꽃과 해금강의 나리꽃, 명사십리 해당화와 백두대지에도 한나(한라)에도 붉게붉게 피어나는 진달래. (중략). 사진동맹 최경국 위원장은 우리민족은 남달리 꽃을 사랑하고 꽃놀이를 흥취 나게 벌여온다.고 강조하고 통일의 대화원을 가꾸는 좋은 계기가 되려는 것을 확신한다. 고 말했다. 이어서 류경선 남측 단장은 가장 큰 통일의
[그린경제/얼레빗=김리박 시조시인] 새쪽미역감기(유두-流頭날) 아가씨 마음씨는 미리내 맑물인가 새쪽을 가는 가람 맑고맑아 머리감고 다음 해 돋는 진달래 어디서 쉴까나 * 미리내 : 은하수 * 맑물 : 정화수(井華水) * 새쪽 : 동쪽 * 가람 : 강 오는 11일은 우리 겨레의 명절 유두이다. 이때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물에 머리를 감는 아가씨들의 마음씨는 은하수로 흐르는 정화수와 같지 않을까? 봄이 가면 흐드러졌던 진달래는 어디서 쉬었다가 다음해 다시 돋아날는지 ▲ 유두 풍습이 그려진 김홍도의 옥계청류첩(玉溪淸遊帖)유두에는 가까운 이들과 몸을 씻고, 음식을 나누며 더위를 식혔다.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최근 어떤 아는 젊은 여성을 공적인 일로 만났는데 배가 남산만 했다. 임신 몇 개월인데 아직도 일하고 있냐고 물었다. 임신 8개월이라고 했다. 그럼 출산 휴가는 언제 가려느냐고 했더니 고민 중이라고 했다. 공식(월급이 나오는) 출산 휴가는 아기 낳기 전후 3개월인데 아기 낳기 전에 많이 쉬면 아기 낳고 빨리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 시기를 저울질한다고 했다. 세종대왕은 관노비에게 무려 네 달이 넘은 137일, 그 남편에게도 한 달을 출산 휴가를 주었다고 했더니 그럼 지금이 세종 시대보다 못하다는 거냐고 쓴웃음을 짓는다. 세종 임금 이전에 산모는 아기 낳기 전 한 달, 아기 낳고 나서 7일 모두 37일을 쉬었다. 아기 낳기 한 달 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기 낳고나서 7일 만에 일을 하라는 것은 산모 상태로 보아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세종은 1426년(세종 8년) 4월 17일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성의 출산 휴가 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형조에 지시하기를 관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백일 동안 주게 하고, 이를 일정한 규정으로 삼게 하라.라고 하였다. ▲ 그림 오수민 1430년 10월 25일에도 조선 시대 국가의 법규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한강인도교 공사로 6대 건설사에 등극한 정주영은 그것에 만족할 사나이가 아니었다. 공사를 해나가면서 장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군으로부터 장비를 사들인 큰 덕을 봤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은 시멘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공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자재 시멘트는 1950년대 후반 무렵에 크게 부족한 실정이었다. 1958년을 보면 약 56만t의 시멘트가 필요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시멘트는 25만t에 그쳤으며, 1959년에도 45만t이 있어야 했지만 41만t에 그쳤다. 부족한 시멘트는 다른 나라에서 들여와야 했지만, 수입 시멘트는 관세가 붙어 그만큼 가격도 높아져 공사원가도 덩달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6‧25전쟁이 끝난 뒤 본격적인 복구 작업이 진행되면서 시멘트 수요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전쟁 뒤여서 길을 건설하고, 다리를 놓고, 학교를 지어야만 했는데 시멘트가 없어 현장에선 일손을 멈추어야만 하는 일이 잦았다. 여기에 바로 정주영의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게 된다. 시멘트가 모자라면 만들면 되지 않을까? 자동차, 건설에 이어 시멘트 사업을 벌이려는 정주영의 야심찬 계획이 시작되던 순간이다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아파트 신발장이 무너져 두 어린아이를 덮치는 끔직한 사고가 있었다. 한 아이는 뇌를 다쳐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국민들의 보금자리를 보급하는 공기업 엘에이취(LH)가 지은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사고를 겪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또 신발장이 한 아이를 덮쳤고 끝내 아이는 생명을 잃고 말았다. 더욱 비통하고 가슴 아픈 것은 엘에이취 공기업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불만제로 보도에 의하면 이와 똑같이 부실시공한 아파트가 아직도 많다고 한다. 신발장이 넘어진 핵심 이유는 신발장을 고정하는 못이나 나사 하나 안 박아서이다. 나사 하나만 제대로 박았어도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거의 모든 대형 사고도 사소한 부주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 한양도성, 세종 때 고쳐 쌓은 부분. 성을 쌓을 때는 저 돌멩이 하나도 소홀이 쌓아서는 안 된다. 세종대왕은 1422년 1월 17일 도성을 쌓는 공사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한다. 도성을 보수하고 쌓은 뒤에 혹시 돌 한 개라도 무너져 떨어지는 것이 있으면, 즉시 그 방면의 감독관으로 하여금 보수하게 하고 그리고 나서 관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