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김후신은 대쾌도(大快圖)를 그렸는데 만취한 선비가 흐느적거리면서 갈 지(之) 자로 걷고 친구들이 부축하는 그림이다. 어쩌면 대쾌도는 술 취한 그림이지만 이는 술 취한 사회를 비웃는 김후신의 뜻이 담겨 있음이 아닐까? 당시는 살벌한 금주령이 내려진 영조임금 시대였다. ▲ 김후신 대쾌도(大快圖), 자본담채, 33.7 x 28.2 cm, 간송미술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술을 빚거나 마시는 것을 엄하게 다스리던 시절, 하지만 금주령 앞에 희생당하는 건 양반이 아닌 일반 백성이었다.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백성은 술을 빚어 팔았다고 잡혀가고, 몰래 술 마셨다고 잡혀가지만 금주령이 내려진 대낮에도 양반들은 거리낌 없이 술을 마셨던 것이다. 양반은 취하고 처벌은 백성이 받고, 그림 속 배경인 나무들이 이런 광경을 흘겨보는 양 묘사한 김후신의 번득이는 재치다. 이름을 날렸던 조선의 많은 유명 화가들이 이렇게 술에 빠졌던 까닭은 무엇일까? 술이 아니고는 붓을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술독에 빠진 화가들은 어쩌면 의식과 무의식 중 어느 한 쪽에서도 예술에 대한 영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 이경윤 수하취면도
[그린경제/얼레빗=진용옥 명예교수] 묘향산 만폭동을 올랐을 때 남녘 최고의 사진작가 한 사람이 외설 춘향가를 불렀다. 각설이 타령에 리듬 맞혀 부른 가사는 신록의 묘향산을 온통 홍등으로 물들일 수준이었지만 돼지 멱따는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예로부터 춘향의 사랑이야기는 한국인에게 영원한 스테디셀러다. 왜냐하면 의열과 로맨스를 함께 갖추고 있으며 신분초월이라는 서민적 정서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조시대 평양은 색향이라는 또 다른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강계 미인으로 상징되는 남남북녀의 미색에다가 평양기녀의 자유 분망함을 은밀히 빗대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평양기녀들을 단순한 기녀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녀들은 당대의 여류 문학가요 여류 예술가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속내가 있었으니 그것은 민중의 애환을 대변하는 해결사 들이었다. 왕조시대 벼슬아치들은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 이라는 속담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백성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에 맞설만한 수단이나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안이 바로 베갯머리송사였다. 이 말은 은밀히 밀실에서 해결한다는 것인데, 기녀들이 바로 백성의 대행자였다. 이른바 색주 해결법을 구사했
[오늘 토박이말] 덧두리 [뜻]정해 놓은 값보다 얼마만큼 더 보탬, 또는 그렇게 하는 값[보기월]누군가 그랬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덧두리를 주고 서라도 붙들고 싶은 날이라고 말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제 늦도록 안친 일을 하느라 잠을 못 잤지만 해돋이를 보러 때를 맞춰 나갔었습니다. 다들 어디서 왔냐 싶게 많은 분들이 해돋이를 보러 나와 있었습니다. 떡국도 있고 떡도 있어서 잔칫날 같았습니다. 구름이 끼어서 해돋이를 제대로 보기 어려울 것이란 기별을 들었던 터라 멋진 해돋이를 바라지도 않았었지요. 그래서 나온 김에 좀 더 높이 올라가는 데 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해가 떠올랐는지 찍그림 찍는 사람, 비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저도 해를 바라 봤습니다. 구름 위에 발갛게 솟은 해가 소나무와 어울려 참 예뻤습니다.저도 해님께 제가 바라는 것, 뜻한 일 모두 잘 이루어지게 해 주십사 빌었습니다. 해가 돋은 모습을 찍어 동무들께 나눠 드리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 오는 길에 눈살 찌푸려지는 것들을 봤습니다. 나눠 준 떡국, 떡, 차를 담았던 종이그릇을 곳곳에 버리고 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 곳에 모아 두기라도 하면 나눠 준 사람들이 치울 수도 있
[그린경제/ 얼레빗=김영조기자] 경북 예천 송곡리의 사고(沙皐) 이덕창(李德昌‧1569~1616) 별좌공 종택을 찾아 가던 날은 함박눈이 펑펑 내려 자동차들이 설설 기던 날이었다. 평소 예천은 갈 기회가 없었는데 벼르고 별러 찾아 나선 길이 빙판길이라 조심조심 찾아 갔다. 예천군 호명면 송곡리 별좌공 종택에 이르렀을 때는 눈은 뚝 그치고 하늘은 마치 비 갠 뒤의 날씨처럼 높고 푸르렀다. 내려 와도 별로 들려 줄 이야기가 없는데.라며 찾아뵙기 전 나눈 전화 통화 너머에서 바튼 기침 소리를 내던 이의선 종손 어르신은 불편한 몸으로 기자의 방문에 대문을 활짝 열고 반겨 주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선 앞마당 위쪽에는 오래된 고택 한 채가 버티고 있었다. ▲ 별좌공(사고) 종택 전경 ▲ 이응 선생 후손 이태형 공이 지은 병인양요 당시의 의병기록 동야일기 의병장으로 적을 토벌하고 주검 못 찾아 의관 거두어 장사 지내 이유(李愈)는 자가 자흠이요 호를 매촌(梅村)이라 하는데, 연안인(延安人)인으로 예천 출생이다. 가정 임오에 형제가 함께 진사가 되고 퇴계문하가 되었다. 4개의 읍을 다스려 치적을 쌓고 임진년에 용궁(龍宮) 현감으로 부임하자 군사를 모아
[뜻]이미 있는 것에 덧대거나 덧보탬. 또는 그런 일이나 몬(물건)[보기월]마음을 먹고 있던 일이 있어서 이 일이 덧게비처럼 여겨졌던 것이지요. [그린경제/얼레빗=리창수 기자] 어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나서 하려고 했던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한 날이었습니다. 참일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 갈친이들과 함께했던 토박이말 갈닦음(연수)과 아랑곳한 마무리를 하는 일이라 뜻이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먹고 있던 일이 있어서 이 일이 덧게비처럼 여겨졌던 것이지요. 하지만 가서 반가운 분들을 만나기도 했고 앞으로 더 잘 될 거라는 새로운 바람을 가지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잠을 깨고 보니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여느 날보다 일찍 하루를 연 탓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니 좋은 일이 참 많았던 해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토박이말 앎,삶,품 기르기를 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토박이말을 좋아해 주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 반가웠던 해이기도 합니다.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엎드려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참말로 고맙습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더 좋은 일들이 많을 것이라 믿습니다. 올해 뿌려둔
[오늘 토박이말] 덧거리 [뜻]정해진 수량 밖으로 덧붙여지는 몬(물건)=곁들이[보기월]굴국밥에 그렇게 맛있는 덧거리가 나올 줄 몰랐습니다. 이레끝 짜인 일들을 끝내고 가시집 모임에 갔다왔습니다. 마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집에 모여 맛있는 먹거리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지요. 값이 많이 나가고 먹기 쉽지 않은 것이 맛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달라지고 그리고 제철에 나는 것이 맛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침에 일어나니 늦게까지 챙겨 온 걸 먹어서 그런지 뱃살이 좀 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원한 국물과 함께 아침밥까지 잘 먹고 구경을 갔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새식구가 가 보지 못한 곳을 가 구경을 시켜주었습니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는 보리암에 갔습니다. 바람이 많이 차가운 날씨에도 들머리 앞까지 수레들이 늘어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겨우 들어가서 올라간 보리암에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왔을 때보다는 적었지만 참 많았습니다. 파란 하늘빛과 닮은 바다빛 사이로 조그만 섬들이 떠있는 그림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멋진 그림을 눈에 담는 것으로는
[그린경제/얼레빗 =성제훈 기자] 어제 오후에 눈이 내렸습니다. 다행히 어젯밤과 새벽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 더는 쌓이지 않더군요. 오늘은 새벽 5시에 나와 직원들과 함께 비료를 뿌리는 장치를 트랙터에 붙여 일터 길에 염화칼슘을 살포하고, 트랙터로 눈을 치웠습니다. 눈이 내릴 때마다 새벽에 나오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제가 조금 힘들어서 남들이 크게 편할 수 있다면 그런 일은 기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제가 있는 기획실이라는 곳이 직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니까요. 뒤에서 일을 보살펴 도와주는 일을 뒤치다꺼리라고 합니다. 애들 뒤치다꺼리에 바쁘다, 자식이 많으니 학비 뒤치다꺼리도 힘들다.처럼 씁니다. 이를 뒤치닥거리나 뒷치닥거리로 쓰면 틀립니다. 남의 자잘한 일을 보살펴서 도와주는 것도 치다꺼리로 씁니다. 치닥거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무당이 하는 굿의 하나로,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부정이나 살 따위를 푸는 것은 푸다꺼리가 아니라 푸닥거리가 바릅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기쁨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오늘도 자주 웃으시면서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그린경제/얼레빗=김리박 시조시인] 으뜸그믐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 맞으니 죽살이 일흔살은 빛끝이라 할까나 그래도 봄가을밭은 새 겨레얼 돋느나 * 으뜸그믐 : 섣달그믐(가장 뜻이 큰 그믐이라는 뜻으로 씀) * 죽살이 : 인생 * 빛끝 : 살별(혜성) * 봄가을밭 : 한해살이 * 겨레얼 : 민족정신 한해가 가고 또 한해를 맞는다. 인생 칠십은 살별처럼 흘러갔지만 우리네 한해살이에도 새롭게 민족정신이 돋아나기를 빌어본다. (편집자 풀이) ▲ 신년휘호(치마도-馳馬圖)45.5x53.0cm (운곡 강장원 한국화가)
[그린경제얼레빗 = 김보람 기자] 2013년 12월 21일 경상남도 창원시 여성의원 11명이 통영옻칠미술관을 찾았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 들어서는 여성의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에 대한설명을 진지하게 듣는 모습에 함께 현장에 있던 다른 관람객들 또한 진지한 눈빛으로 설명을 들었다. 색옻칠을 만드는 방법, 여러가지 표현기법, 특히 옻칠의 방부, 방습, 방충 등 여러가지 좋은 효과로 인해 작품에는 유리를 끼우지 않는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작품을 감상한후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님을 만나 옻칠잔에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린경제/얼레빗=윤재환 기자] 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황당한 것을 좋아하는가? 조룡대는 백마강가에 바짝 붙어있다. 이 정도면 이미 부소산 기슭에 닿은 것이나 진배없다. 죽을힘으로 용과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룡대의 위치로 보면 소정방의 군사는 이미 부소산성을 함락한 뒤라고 생각된다. 배를 타고 서해바다를 건너 금강으로 올랐다면 굳이 절벽이 있는 부소산 북쪽 백마강까지 올 까닭도 없다. 그 이전에 상륙할 쉬운 지점을 놔두고 조룡대가 있는 곳까지 거슬러 온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신라 시조가 탄생한 때는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일이다. 당시에 기록된 내용도 황당하기 그지없으며, 백제가 망한 시기는 당(唐)나라 고종(高宗) 때다. 용을 낚시로 낚아 올렸다는 이야기는 지극히 황당하다. 그러므로 한나라나 당나라 이전의 이야기들은 그 사실 여부가 불분명하다. 우리나라 역사도 고려시대 이전의 일은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조룡대 ▲ 조룡대 글씨 정약용이 부여를 들러보고 이런 기록을 남긴 것은 참으로 이례적이다. 고증이 안 된 문헌을 배격하고 실제로 소용이 되는 학문을 닦았던 실학파였던 정약용으로서는 당연한 지적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