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기자] 필자는 주로 국어선생이 될 국어교육과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학기 초에 꼭 하는 얘기가 있다. 여러분은 보고서를 아래한글로 내게 될 것이다. 엠에스워드 문서는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만 허용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국수주의가 아니다. 전 세계 문서작성기는 다국적 기업인 엠에스워드가 거의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아래한글도 삼키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것은 아래한글 만든 사람들이 잘 만든 탓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의 힘이었고 한글의 자부심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막강한 힘 앞에 토종 소프트웨어가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그 기적의 의미를 국어 교사가 지켜가지 않는다면 누가 지키겠는가. 이제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한글을 가꾸는 것이다. 둘째 정품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만이 디지털 시대의 한글을 지키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학생들한테는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줄 것이다. 나 또한 1989년 아래한글 1.0부터 정품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왜 특정 회사의 홍보맨이라는 오해를 가끔 받아가면서까지 이렇게 교육하는 핵심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래
[그림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 단종비 정순왕후의 정업원과 금남시장 ▲ 단종비 정순왕후를 돕기 위한 금남(禁男)이 있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순조 임금 때 펴낸 ≪한경지략≫이란 책에 보면 동대문 밖 동묘의 남서쪽에는 한양에서 가장 큰 푸성귀(채소)시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 시장은 남자들이 드나들 수 없었던 금남구역이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는 단종비인 정순왕후 송 씨가 단종이 죽고 과부가 된 뒤 초막을 짓고 살았던 정업원(淨業院)이 있었다. 이후 세조는 정순왕후가 동냥으로 끼니를 잇는다는 소문이 돌자 그 근처에 영빈정이란 집을 짓고 살게 했지만 정순왕후는 영빈정에 들어가기를 거절했다. 또 조정에서 식량을 주어도 완강히 거부하고, 말년에는 베에다 자줏물 들이는 염색을 하면서 겨우 풀칠을 했다. 그래서 이 근처 마을을 자줏골이라고 불렀는데 장안 부녀자들이 정순왕후를 도우려고 앞 다투어 몰려들었다. 그런데 조정에서 이를 금하자 시장을 만들고 장사하는 척하면서 정순왕후의 생계를 도왔으며 혹시 조정에 밀고할까 봐 남자들은 일절 출입을 금하였다. ** 성균관 선비와 종의 딸 사랑이 서린 곳, 정고개 ▲ 양반과 종의 슬픈
[그린경제/얼레빗=홍사내 기자] 1. 무릇 일의 공로를 세울 때는 쉽고 빠른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사온데, 나라가 근래에 조치하는 것이 모두 빨리 이루는 것에 힘쓰니, 두렵건대, 정치하는 올바른 체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옵니다. 만일에 언문이 꼭 필요해서 만드는 것이라면, 이것은 풍속을 변하여 바꿀 만한 큰일이므로, 마땅히 재상으로부터 아래로는 모든 신하들에 이르기까지 함께 의논하되, 나라 사람이 모두 옳다 하여도 오히려 선갑후경(先甲後庚; 일의 앞뒤 차례를 잘 살핌)하여 다시 세 번을 더 생각하고, 제왕(帝王; 황제와 임금)에 묻고 따져 바르게 하여 어그러지지 않고, 중국에 상고하여 부끄러움이 없으며, 백년이라도 성인(聖人)을 기다려 의혹됨이 없은 연후라야 이에 시행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널리 여러 사람의 의논을 구하지도 않고 갑자기 구실아치 10여 사람에게 가르쳐 익히게 하며, 또 가볍게 옛사람이 이미 이룩해 놓은 운서(韻書)를 고치고, 근거 없는 언문을 가져다 붙이고 장인(匠人) 수십 사람을 모아 나무판에 새겨 떠서 급하게 널리 반포하려 하시니, 뒷날 여론이 어떠하겠습니까? 또한 이번 청주 초수리(椒水里)에 거동하시는 데도 특히 농사가 흉년인 것을 염려하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 장구를 치게 된 계기는? 제가 사는 경기도 광명시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 광명농악보존회가 있습니다. 또 제가 다녔던 충현고등학교는 광명농악 전수지정학교였지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자연스럽게 장구를 하게 되었는데 저희를 가르쳐 주신 광명농악 예능보유자 임웅수 선생님은 무척 엄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다 처음 장구를 배울 때 선배들은 무섭고 장구는 잘 쳐지지 않고 손가락엔 피가 나고 해서 솔직히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애먼 장구와 많이 싸웠지요.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장구를 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닐까? 남들도 하는데 나만 안 될 것 없잖아 하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정진하고 아직 어리지만 조금 나이가 들고 보니 장구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구를 안했다면 무얼 했을까 생각할 때 지금의 제가 있게 해주신 선생님의 은혜가 정말 큽니다. 광명농악에는 김종미 씨 말고도 임웅수 선생의 여러 제자가 있을 것. 왜 종미 씨를 추천했는지가 궁금했다. 대담하다 말고 전화를 걸게 했다. 임웅수 스승에게 굳이 종미 씨를 추천한 까닭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한 쪽은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 우거진 잡초와 험한 바위 사이에 있는 마을 집들은 모두 나무껍질로 기와를 대신하고 띠풀을 엮어 벽을 삼았으며 논밭은 본래 척박해서 물난리와 가뭄이 가장 먼저 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항산(恒産, 늘 있는 수입)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운데 줄임) 그래서 풍년이 들어도 반쯤은 콩을 먹어야 하는 실정이고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주워 모아야 연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하였을 때, 거의 파산 상태의 고을을 다시 일으키고자 임금에게 올린 진폐소의 일부이다. ▲ 금게 선생의 철학과 청빈한 삶이 담긴 금계집(退溪集) 그의 글은 이어진다. 그리하여 역사(役事)를 못하고 도망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일족과 인근 이웃에 책임을 분담시켜 부세를 징수하려고 하니 이들이 어떻게 배를 채우고 몸을 감쌀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물고기를 끓는 솥에서 키우고 새를 불타는 숲에 깃들게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무리 자애로운 부모라도 자식을 잡기 어려운데 임금이 어떻게 백성을 끌어안을 수 있겠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요즘 남자의 자격 프로로 더 유명해진 음악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와 관련하여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한가지 있다. 이 노래는 영화 미션(Mission)의 음악 중에서 가브리엘 오보에(Gbriels Oboe)가 원작인데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음악일 것이다. 오보에가 연주하는 이 기악곡에 가사가 붙여져 노래가 되어 불리고 있는 것이 바로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다. 가사의 내용이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는 것이 참 좋다.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환상 속에서 나는 정의로운 세상을 봅니다Lo tutti vivono in pace ed in onesta 모두들 평화롭고 정직하게 사는 세상을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chiaro 환상 속에서 나는 밝은 세상을 봅니다Gli anche la notte meno oscura 밤에도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을Nella fantasia esiste un vento caldo 환상 속에는 따뜻한 바람이 붑니다Che soffia sulle citt, come damic
[그린경제/얼레빗=성제훈 기자] '빈정이 상하다'나 '빈정상하다'지난번편지에서 '제가 밴댕이 소갈딱지라 그런지 모르지만 가끔은 좀 빈정이 상할 때도 있네요.'라고 썼는데요. 몇 분이 '빈정이 상하다'가 좀 이상하다는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빈정거리다'가 남을 은근히 비웃는 태도로 자꾸 놀리다.는 뜻이므로 '빈정거려서 맘이 상하다'가 바르다는 것이죠. 국립국어원에서는 '빈정거려서 맘이 상하다'가 바른 표현이나, '빈정상하다'는 말을 많은 사람이 쓰므로 신조어로 봤습니다. 언어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빈정이 상하다'나 '빈정상하다', '빈정거려서 맘이 상하다'모두 쓸 수 있습니다. 근데, 이왕이면, 그런 말을 쓰지 않는 삶이 더 좋겠죠? ^^* 오늘은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여 남을 비웃지 않고, 빈정거리지 않으며 살겠습니다.
[그린경제/얼레빗=전주연 기자] 10월 19일 토요일 통영옻칠미술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학생들과 남원으로 옻칠문화탐방을 다녀왔다. 우수한 목공예와 옻칠공예가 발달한 곳으로 알려진 남원의 목운공예사와 광한루원을 견학하였다. 남원목운공예사는 전통공예의 계승발전을 도모하고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시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박강용 선생님의 공방이다. 박강용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로 학생들은 나무가 잘리고 깎기고 다듬어지며 목기로 완성되는 과정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옻칠그릇이 여러 과정과 여러 사람의 노력을 통해 까다롭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을 직접 보고 유심히 관찰하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옻칠공예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도 하였다. 박강용 선생님께서는 다듬어진 백골에 직접 옻칠을 하시며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주시고 우리나라 전통옻칠문화의 우수성과 계승발전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나무 백골 뿐 아니라 종이를 이용한 옻칠공예작품을 본 아이들은 신기한 듯 어루만져보기도 하고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과 기법으로 완성된 작품들을 감상하며 감탄하였다. 광한루원에서는 전시관과 춘향의 사당을 둘러보고 연못 속 잉어에게 먹이주기,
[그린경제/얼레빗=성제훈 기자] 저는 '멋진 아빠 캠프'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애들 엄마는 집에 있고 아빠와 초등학교 이상 애들만 1박2일로 가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재밌게 놀기도 하고, 아침에 등산도 하며 오랜만에 애들과 뜻 깊은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아빠와 떠나는 여행이라서 그런지 애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즐겁게 놀더군요.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아빠와 너무 세게 안아 목이 아프다고 칭얼대기도 하고... ^^* 아침에 야트막한 산에 올랐는데, 애가 튀어나온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아마 등산을 안 해봐서 그랬나 봅니다. ^^* 흔히 땅 위로 내민 돌멩이의 뾰족한 부분을 '돌뿌리'라고 하는데요. 이는 '돌부리'가 바릅니다. 돌에는 뿌리가 없습니다. 설사 있다 해도 뿌리는 땅 속에 있으므로 그 뿌리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겠죠. '부리'는 어떤 물건의 끝이 뾰족한 부분을 뜻하는 이름씨(명사)입니다. 소매의 부리, 총의 부리에서 쓰는 '부리'가 바로 그 부리입니다. 새나 일부 짐승의 주둥이가 길고 뾰족한 때도 부리라고 하고, 병과 같이 속이 비고 한끝이 막혀 있는 물건에서 가느다라며 터진 다른
[그린경제/얼레빗=김리박 시조시인] 갈냄꽃 한여름 견뎠다가 가을에 피었으니 그 옷고슬 가을철 이노이라 사것이 가는 사내와 아가씨의 사랑일까 * 갈냄꽃 : 국화꽃 * 옷고슬 : 향내, 향기 * 이노 : 신선(神仙) * 사것이 : 단장(丹粧)하고 국화는 향기가 맑고 좋은 꽃이다. 가을의 대표적인 꽃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편은 그 국화가 일왕과 이른바 일본 우익들이 제 목숨처럼 소중이 여기는 꽃이라 광복 전에는 조선사람이 가까이 가지도 못했던 꽃이기도 했다. 우리 선고(돌아가신 아버지)와 유인(돌아가신 어머니)은 그런 탓인지 운명하실 때까지 국화꽃을 싫어했고 맑고 좋은 냄새가 풍기는 쑥갓조차 싫어했다. 꽃에는 아무 죄는 없었지만 ▲ 그림 운곡 강장원 한국화가 *** 김리박 : 대한민국 한글학회 일본 간사이지회 회장 재 일본한국문인협회 회장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선정 한국어어문 지킴이 (황금상) 2006년 일본 히라가타시 교육위원회 조선어강좌 특별강사 일본용곡대학(龍谷大學) 한국어강좌 강사 일본관서대학(關西大學)비교지역문화강좌 강사 누리편지 ribak@hera.eonet.ne.jp 손말틀 (일본) 090-814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