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윤재환 기자] 편집자 주 윤재환의 신 부여팔경을 시작하며 부여는 백제의 고도다. 그래서 누구나 부여를 찾고 부여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 윤재환의 신 부여팔경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여의 새로운 정경이 펼쳐진다. 윤재환 선생의 깊고 넓은 신부여팔경 우리 모두 함께 해보자. ▲ 창산 신맹선, 부여관광안내도, 창산은 묵매를 즐겨 그리는 화가였는데, 이와 같은 관광안내도를 소상하게 그려 남겼다는 것은 그의 부여 사랑을 엿보게 하는 자료라 여겨진다. 한 지방의 특히 빼어난 여덟 군데 경치를 일컬어 흔히 팔경(八景)이라 부른다. 중국 북송(北宋, 960~1126) 때 학자이던 심괄(沈括, 1030~1093)이 지은 《몽계필담(夢溪筆淡)》에 송적(宋廸)이란 사람이 삽화를 그렸다. 그 삽화 가운데 여덟 군데의 풍경 그림이 매우 아름다웠는데, 팔경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송적의 대표작인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양자강 남쪽의 소강(瀟江)과 상강(湘江)이 서로 만나는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광 여덟 군데를 그린 것인데, 그 사연은 이러하다. 산시청람(山市靑嵐) 산시의 푸른 아지랑이 연사모종(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관동 최고(最古)의 절인 센소지는 한반도계 출신인 히노구마 형제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이들이 바다에서 건진 금동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것이 센소지이며 아사쿠사 신사는 이들 어부 형제와 마을 원로 하지 씨를 모신 사당이다. 또한 센소(浅草)라는 땅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당시 푸른 초원 지대로 말을 기르던 곳이다. 목장을 경영하며 경제권을 장악하여 야마토정부의 관동개발 프로젝트를 완성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한반도 출신자들로 그들은 오늘의 관동지방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들이기도하다. 이곳을 2회에 걸쳐 싣는다. 참고로 이 글은 2010년 1월에 답사를 마치고 쓴 글이다. 아사쿠사 센소지는 신도들에게 관세음신앙의 명소이지만 관광객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나카미세(절 입구에 즐비한 상점)의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가미나리몽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상점가는 다양한 일본 전통인형은 물론이고 직접 구워 파는 전통과자와 모찌 등의 먹거리와 핸드백을 비롯한 여성들의 소품 액세서리, 옷, 신발, 기모노를 만들 수 있는 옷감류 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거기에 뒷골목에는 식당들도 즐비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러한 나카미
[그린경제=서수향기자] 지난 8월 16일 통영옻칠미술관에서는 2013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김은경 박사님을 초청하여 일본 옻칠예술의 발전과 현황 세미나가 열렸다. 김은경 박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를 졸업하고 동방대학원대학교에서 옻칠조형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2010년에는 일본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 초빙연구원으로 지낸 바 있다. 국내 공모전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옻칠미연구소 소장으로 있고, 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옻칠조형 전공 수업으로 강의를 하며, 서울 북촌한옥마을 내에 있는 옻칠공방 칠원 운영위원, 한국미술협회 등에서 회원으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옻칠예술의 발전과 현황이라는 주제로 2시간가량 열띤 강의가 이루어졌는데, 일본옻칠예술의 발전 과정을 시대적 특징과 의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현재 일본의 현황 분석을 통하여 옻칠예술의 방향성을 조명하는 시간이었다. 죠몬시대의 유적에서 출토된 옻칠기물부터 현대 일본옻칠예술의 현황까지 역사적 특징과 발전과정에 대한 폭넓은 강의가 이루어졌다. 마키에 (蒔絵. 칠기의 표면에 옻칠로 밑그림을 그리고 칠이마르기 전에 금은주석가루색가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9호 만취당, 김사원 선생이 1584년 지은 건물로 한번도 해체 복원되지 않았다. ▲ 한석봉이 쓴 만취당 현판 송은공의 어진 자손이요 퇴계의 문도였네 만취당을 짓고 수양을 쌓았으니 옛날 만년송 언저리라 나를 알아주는 이 드물어도 품은 생각 손상되지 않았다네 후손에게 은혜 베풀었으니 그 성광 지금에 빛나도다 위는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만취당 김사원(金士元, 1539(중종 34)1601)의 묘갈명(墓碣銘, 묘비에 새겨진 죽은 사람의 행적과 인적 사항에 대한 글)이다. 대학자 채제공이 김사원 선생의 묘비에 새긴 글을 보면 김사원 선생이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교통편도 불편한 경북 의성 사촌마을의 만취당(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만취당길 17)에 가는 날은 막바지 더위가 숨을 헐떡이게 했다. 하지만, 이웃에게 베푸는 마음이 하늘같았던 어른의 체취를 맡으러 가는 길을 더위 정도가 막을 수는 없었다. 김사원의 14세 종손 김희윤(金熙允) 선생은 온화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아준다. 경북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된 만취당(晩翠堂)은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 만취당 김사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언젠가부터 먹거리문화라는 용어가 자주 거론되더니 이제는 전국 어디를 지나든 자동차 네비게이션에서 근처의 맛집들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몇 집 안되었는데 요즘은 여러 맛집들을 알려주기에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황하게 된다. 거기에 스마트폰의 다양한 서비스도 한 몫을 한다. 복 중에도 먹을 복이 따로 있다는데 요즘은 진수성찬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저 고기는 혹시나 나쁜 고기 ? / 저 야채에는 혹시나 농약이 ? / 저 생선은 혹시나 ?혹시나 병이 생기면 ? / 혹시나 ? / 역시나 ?(그러다가 주인이 이거는 유기농, 저거는 자연산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이 그쪽으로만 가는 요지경 세상이 되고 말았다.)이제는 좋은 것을 적은 듯이 먹는 것이 현명하다고들 한다. 어짜피 먹어야 사는 것이 인간인데 농약이나 방부제등 환경 호르몬의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적절히 적게 먹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먹을 것들이 점점 제한되고 있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 된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주장은 이제 점점 구시대의 발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과식을 해도 체하지 않고,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아사쿠사는 옛도시의 분위기를 간직한 유서깊은 절이 있는 도쿄에서 가장 전통적인 거리 입니다. 수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아사쿠사간논절(浅草觀音)과 아사쿠사신사(浅草神社)는 물론 주변 지역에까지 아사쿠사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사쿠사에서는 에도시대 서민 경제와 오락의 중심이었던 옛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또한 현재 이 시대 서민들의 활기찬 생활 모습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이토쿠(臺東區) 관광과에서 만든 <아사쿠사 일대와 센소지>에 대한 한국어판 안내문은 일본어를 몰라도 아사쿠사 일대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친절한 한글로 되어 있으며 아사쿠사 역 근처 여행안내소에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를 도쿄의 인사동거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인지 인사동 골목의 아기자기한 상점가인지 헷갈리는 곳. 절 입구에 나란히 나있는 나카미세(仲見世, 상점가)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바글거린다. 이곳이 관동 최고의 관세음신앙지 센소지(浅草寺)다. 센소지는 가장 오래된 절을 뜻하는 최고(最古)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절로도 최고(最高)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도쿄 시내를 순환
[그린경제=육철희 기자] 조선시대에 어른이 되면 처음으로 술 마실 수 있는 자격을 주며 술은 적당히 마시면 맛이 좋고 향기로운 음식이지만 지나쳐서 몸을 해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의 말을 하지만 예전에도 고주망태니 술 먹은 개라는 표현을 했던 것을 보면 술로 인해 일어나는 부작용은 과거에도 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술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이제는 개인차원을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술 마시는 법에 대해 어른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술 마시는 예절에 대해 잘 모른다. 술 마시는 예절에 대해 조금 배워서 아는 사람들도 실제 술자리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조선시대에는 향촌의 선비와 유생들이 향교나 서원에 모여 예로써 주연(酒宴)을 함께 즐기는 의례인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하였다. 향음주례는 학덕과 연륜이 높은 분을 큰 손님으로 모시고 여러 유생들을 손님으로 모셔서 진행하였다. 향음주례는 주인이 손님을 초청하여 주인과 손님 사이의 예절바른 주연을 통하여 연장자를 존중하고 덕 있는 사람을 높이며, 바른 예법과 풍속을 일으키기 위하여 시행하였다. 《예기(禮記)》 45편 향음주의에 의하면, 향음주란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한국 전통문화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무형문화재만이 전부는 아니다. 젊은 명인명창들이 차세대를 예약하고 있음도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차세대 명인명창으로 꼽히는 젊은 명인명창들을 찾아내 그들의 철학을 확인하고 용기를 심어주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제 그 첫발을 내딛는다. 아직 27살로 풋풋한 나이의 이나라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교육조교 유지숙 명창 아래서 어언 20년 세월을 갈고 닦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악학과를 수료하고 석사논문 준비 중이며, 국악그룹 별樂의 대표이다. [편집자 주] - 어떤 계기로 서도민요를 하게 되었나요? 아버지께서는 함경도 북청이 고향이었습니다. 6.25 때 피난 온 아버지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고, 늦게 보신 딸인 제가 서도민요를 해주기를 바라셨지요. 그래서 제가 7살 때 아버지께서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이셨던 오복녀 선생님께 저를 데리고 가셔서 상의를 하셨는데 너무 어리니 조금 더 있다 오라고 하셔서 다른 민요 선생님께 배우다가 11살 때 유지숙 선생님께 본격적으로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창피하고 아버지가 원망스럽
[그린경제 =이윤옥 기자]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이 땅에 태어난 우리모두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야(중략) 우리 몸엔 우리건데 남의 것을 왜 찾느냐 고추장에 된장 김치에 깍두기 잊지 마라 잊지마 너와 나는 한국인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야. -신토불이/배일호- 가수 배일호의 대표곡은 누가 뭐래도 ‘신토불이’다. 그는 90년대 초에 KBS TV ‘6시 내고향’ 프로 촬영차 농촌을 방문했을 때 동네 어귀에 걸린 ‘신토불이’ 안내판을 보고 이거다 싶어 서울로 올라와 작사자· 작곡자를 찾아다니며 ‘신토불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좋다’라는 뜻의 제목과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 신토불이”를 외친 노랫말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마침 그때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한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때로 ‘우리 농산물 애용운동’ 붐과 맞물려 그의 ‘신토불이’는 대박을 터뜨렸다. 신토불이 덕에 가수 생활에 꽃이 피었고, 2006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고향 논산에는 ‘신토불이’ 노래비까지 세워졌으니 가수 배일호만큼 ‘신토불이’ 덕을
[그린경제 = 김보람 기자] 2013.08.15. 통영차문화원에서 성균관대 예다 회원들과 통영옻칠미술관을 방문하였다.전시실 이곳 저곳 둘러며 전시설명을 들었다.옻칠과 자개에 관한 설명을 자세히 듣게된 것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하였다. 특히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에서는 더욱 관심을 보였다. 이날 통영옻칠미술관을 방문한 통영차문화원 성균관대 예다 회원들은 전시를 보는 내내 아주 즐거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