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단지 하늘만이 조화(造化)를 만들고 선악(善惡)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이 덕(德)을 주셨다면, 마땅히 수명(壽命)도 주셔야 하거늘 덕(德)과 수(壽)가 일치하지 않고, 그 이치 또한 알기가 어렵네. 조선 개국(開國) 이후에 성자(聖子)와 신손(神孫)이 계승하여 왔고 훌륭한 왕족은 많았다. 그러나 월산대군처럼 재주와 덕을 겸비하였더란 말인가? 진실로 대군이었다. 몸가짐이 성결하였다. 근면 검소하였으며, 경적(經籍)과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읽고, 문장(文章))을 지으면、옥을 꿰고 구슬을 이은 듯 솜씨가 대단했다. ▲ 고양시 신원동의 아담한 사당 이는 월산대군 신도비에 있는 글의 일부이다. 월산대군 이정(李婷1454~1488)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의 친형으로 두 분의 우애는 남달리 돈독했다고 전해진다. 성종은 예종이 즉위 1년 만인 1467년에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성종 나이 13살 때 일이다. 나이도 어리고 장자도 아닌 자을산군(성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실세인 한명회 때문이다. ▲ 월산대군 사당 표지석 흔히 왕이 되지 못한 형제들은 역적이 될 가능성이 많아 죽임을 당하곤
[그린경제=전주연 기자] 옻칠을 주재료로 한 기법은 다양하여 목심칠기(木心漆器) 또는 목태칠기(木胎漆器:소지가 나무로 제작된 백골), 나전칠기(螺鈿漆器), 와태칠기(瓦胎漆器: 소지가 도자기로 된 것), 남태칠기(籃胎漆器: 소지가 편죽編竹으로 된 대나무) 등으로 구분한다. 그 이외에도 금속에 칠을 하면 금태칠기(金胎漆器), 종이를 꼬아서 만든 기물 위에 칠을 하면 지승칠기(紙繩漆器), 가죽에 칠을 하면 피태칠기(皮胎漆器)라 한다. 여러 소지(素地)에 의한 칠기의 기법이 있으나 탈태(脫胎)는 독특한 제작기법에 의하여 제작된 탈태의 제작 공정은 소지가 없는데서 형을 성형시킬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그 위에 옻칠과 천을 번갈아 두께를 올려서 성형하는 기법이다. 그 주재료는 옻칠이며 부재료는 삼베, 무명, 모시, 한지 등 창작품에 알맞게 선택하며 토분이 사용된다. 옻칠과 천으로 제작된 것을 협저탈태(夾紵脫胎)기법이라 한다. 나전칠기란 어떤 재료로 만든 기물이나 용기의 바탕에 재료의 특성에 맞는 제작공정에 따라 옻칠을 하고 그 위에 자개를 장식무늬로 가공하여 기물에 붙여 옻칠로 완성한 것을 가리킨다. 전통적으로는 용기를 중심으로 칠기나전칠기가 발달하였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내가 여권을 처음 만들었던 때의 이야기다. 영어에서 D를 느끼한 유성음으로 발음하여 내 이름 '김동규 Kim Dong Kyu' 를 '킴덩~큐' 로 발음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남들과 다르게 여권이름을 Kim Tong Kyu로 신청하여 '킴통큐'라고 비슷한 소리로 들리도록 하였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나는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게 되어 또다시 이름으로 인한 은근한 스트레스가 생겼다. 이태리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식 발음을 무시하고 자기네들 식으로 내 이름 김동규 Kim Tong Kyu 를 킴므똥그큐 라고 읽어버리니 내 이름이 너무 우습게 들리는 것이었다. 이태리에 진출해 있는 기업의 이름도 현대(HyunDai)는 윤다이로, 대우(DaeWoo)는 다에부로 발음되며, 한국의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Jung Myung Hun)을 융그뮹그운이라고 읽어버린다. 심지어 어떤 유학생은 콩클에서 우승을 하였는데 자기 이름을 하도 요상하게 부르는 바람에 입상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알게 된 경우도 실제로 있었다. 나는 고민고민 하다가 내 세례명인 요셉 (이태리어로 주세페 Giuseppe)을 닉네임처럼 사용하는 것
[그린경제=김호심 기자] 70년대 후반 코미디언 출신 가수로 큰 인기를 얻었던 가수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미성. '아쉬움'과 '먼훗날'이란 노래로 당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녀의 본명은 이청자였다. 70년대 후반 코미디언 고(故) 서영춘과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는 그의 소개와 추천으로 가수로 데뷔하는 행운을 얻었다. 김미성이라는 예명도 사실은 서영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꾸었던 김미성은 처음에 무용, 사회자, 구봉서ㆍ배삼룡 등과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며 순회 공연단의 멤버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악극단의 멤버들을 소개하는 전단지에 자신의 이름을 가장 처음으로 올리고 싶었던 그녀를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이는 그녀의 남편 타미란 유명 제작자겸 매니저였다. 남편 타미가 키워낸 가수로는 태진아 정종숙, 진미령, 문주란, 김씨네, 장옥조 등이 있으며 당시 연예계의 마이다스 손으로 꼽혔다. ▲ 김미성 독집음반(먼훗날, 우리는 서로가) 김미성은 가수 장욱조로부터 '아쉬움'이란 곡을 받아 가요계에 첫 발을 디딘다. 그녀가 불렀던 아쉬움은 37살에 히트가 되었다.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와 온몸으로 부르는 서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파주 염씨(坡州廉氏)의 본관은 파주(坡州) 단일본이다. 문헌에는 파주 외에도 개성 광주 양주 충주 등 여러 본이 전하나 모두 파주 염씨의 분파 세거지(世居地)이다. 파주 염씨를 봉성 또는 서원(瑞原) 염씨라 했는데, 이는 모두 파주의 옛 별호이다. 시조는 고려 건국 때의 삼한공신으로 사도에 오른 염형명(廉邢明)이며, 중시조는 고려 공민왕, 우왕 등 다섯 임금을 섬기는 동안 문하시중을 지내고, 곡성부원군이 된 명재신 충경공 염제신(廉悌臣)이다. ▲ 2007년 5월 6일 강화사단 시향제 염제신에게는 고려 공민왕이 친히 그려 하사한 초상화가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 돌아가신 후 충경공 시호가 내려졌고, 왕명에 의하여 목은 이색이 찬하고 한수가 쓴 신도비가 경기도 장단군 묘소 앞에 세워졌다. 파주 염씨는 고려시대의 명문세도가로 신약(信若)은 명종 때의 명신으로 효자정문이 세워졌으며, 신약의 손자 승익(承益)은 충렬왕 때 크게 세도를 떨쳤고, 또 중시조 염제신의 아들 3형제 중 장남인 국보(國寶)가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서성군(瑞城君)에, 차남 흥방(興邦)은 공민왕 6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좌대언을 지내고 성균관대사성을
[그린경제=김리박 시조시인] 끝 더 위 다 가는 늦여름을 붙잡은 번개인지 소리없는 더위가 어쩐지 서글프고 뜰가에 우뚝 치솟은 해바라기야 어딜 가나? * 끝더위 : 말복 더위 ▲ 오늘은 말복, 그러나 이미 가을은 잉태되었다. (그림 강장원 한국화가) *** 김리박 : 대한민국 한글학회 일본 간사이지회 회장 재 일본한국문인협회 회장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선정 한국어어문 지킴이 (황금상) 2006년 일본 히라가타시 교육위원회 조선어강좌 특별강사 일본용곡대학(龍谷大學) 한국어강좌 강사 일본관서대학(關西大學)비교지역문화강좌 강사 누리편지 ribak@hera.eonet.ne.jp 손말틀 (일본) 090-8147-7689
[그린경제=전주연 기자]옻나무의 생장조건에는 토양이나 기후가 매우 중요하다. 옻나무는 산성토양에 약하므로 중성이나 알칼리성 토양에 튼실한 종자를 심어야 한다. 또한 옻나무는 표근성(表根性)을 갖고 있어 배수가 특히 중요하며 토양이 쉽게 건조되지 않는 곳에 심는 것이 좋다. 옻나무 주요 산지의 특성을 살펴보면 여름에 일조량이 많고 겨울에도 옻나무 표피가 동해(凍害)를 입지 않을 정도의 기온이다. 역사적으로 옻나무는 신라시대 이전부터 재배되었으며 옻칠 생산이 많았던 곳은 평북 태천, 강원 원주, 경기 부평, 충북 옥천, 전북 남원, 경북 등이 유명 산지로 꼽혀왔다. (2003년 한국칠예가회 세미나 주제발표 1. 참옻나무 재배, 박치현 원주옻 영농조합 대표이사) 아울러 경남 함안군 칠원, 칠서, 칠북, 거제도 칠천도가 옻칠의 산지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옻나무를 심어서 옻칠을 채취하는 지역 중에서 강원도 원주 지역의 면적이 가장 넓다. 원주 이외의 지역으로는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 충북 옥천 등에 옻나무가 일부 자생하고 있거나 텃밭에 남아 채취되고 있는 실정이다. 원주지역은 조선 초기부터 옻나무를 생산하여 왔다. 원주는 지형적으로 치악산과 태백산이 남북으로 길게
[그린경제=김호심 기자]1930년대 중반 서울 청진동 어느 여염집에선 소녀의 앳된 노랫소리가 흘러나와 길을 가던 행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어느 날 이 노래에 매혹된 한 청년이 이 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 사람은 바로 빅터레코드사의 문예부 직원. 그 이튿날로 레코드사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받은 목소리의 주인공인 17세의 앳된 소녀가 바로 황금심(黃琴心)이었다. 황금심(黃琴心)의 본명은 黃錦同(황금동)이다. 1936년, 그녀의 나이 18세 때 가수로 발탁되어 데뷔하였다. 데뷔곡은 알뜰한 당신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당시 구성진 콧소리와 함께 뭇남성의 가슴을 흔들만했다. 그리고 서울 청진동의 목소리 좋은 무명의 소녀를 일약 스타로 군림시킨 노래이기도 하다. ▲ 황금심의 버들피리 음반 1937년 12월에 발표된 알뜰한 당신이 히트하자, 당시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머리까지 깎이고 집에 구금되고 말았다. 18세의 황금심은 단식을 하면서 고집을 꺽지않자 어머니의 간청으로 가수의 길을 계속하게 되면서 본명 황금동과 OK레코드 취입 때의 황금자 대신 작사가 이부풍이 지어준 황금심으로 빅터 전속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오케레코드와 빅터레코드에서 황금심을 먼저 차지하
아시는 것처럼 저는 월요일 아침에 수원에서 세종시로 오는데요. 가끔은 일요일에 올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 일이 있다거나, 다른 데 들렀다 회사에 올 때가 그렇습니다. 이번 주에도 일요일 오후에 세종시로 왔습니다. 애들과 떨어져 사날 정도 지나면 애들이 눈에 선 한데, 오늘 유난히 애들이 보고 싶네요. 이번 주에는 금요일에 연가라도 내고 내일쯤 수원에 가야할까 봅니다. ^^* 우리말에 사흘이나 나흘을 뜻하는 낱말이 '사날'입니다. 사흘+나흘에서 겹치는 흘자를 한 번만 써서 '사나흘'이고 이를 줄여 '사날'이라고 합니다. 나흘이나 닷새는 '나달'이라고 합니다. '나닷'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소리내기 쉽게 '나달'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애들을 본 게 3~4일 전이다'고 해도 되고, '애들을 본 게 사날 전이다.'고 써도 됩니다.
[그린경제=홍사내 기자] 녘이란 ① 어떤 쪽이나 가. ② 어떤 무렵을 이르는 말이다.(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어문각, 1992)) 이 말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이 쓰는 말인데, 지금은 쪽, 무렵, 가, 때, 편 따위의 말을 쓰면서 차츰 사라져가는 형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말 사전에서도 그 쓰임새를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다. 또 띄어쓰기도 달라서 올려진 낱말은 붙여 쓰고, 올려지지 않은 낱말은 띄어 써야 하므로, 전체적으로 보면 체계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많이 써서 열심히 살려내야 할 낱말이라 생각한다. (2013. 8. 9. Ⓒ홍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