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대한양돈협회(회장 이병모)는 지난 10월 15일 대전 유성 계룡스파텔에서 2010 아름다운 돼지농장돼지사진 콘테스트 시상식을 개최했다. (중략) 양돈협회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우수한 돼지사진들이 다수 선정됨에 따라, 소비자에게 친환경적인 양돈산업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알리고 양돈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이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대한양돈협회 누리집- 한층 업그레이드 된 우수한 돼지라는 표현이 재미나다. 아무리 우수하고 업그레드되었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잡혀먹는 게 돼지들의 숙명임에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양돈, 양계 라는 말을 흔히 들어온 우리는 양우(養牛)와 양마(養馬)에 대해서는 다소 생소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시대에는 이미 양계, 양돈, 양우, 양마가 한창이었음을 숱한 기록들이 증명하고 있다. 먼저 양마(養馬)의 기록을 보자. 세종실록 32권, 8년(1426)에 사복시에도 항상 말을 기르게 하되, 겨울에 3백 필, 여름에 2백 필을 기르게 하다. (自今司僕寺常養馬, 冬節則三百匹, 夏節則二百匹)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어서 양우(養牛)의 경우는 정종실록 3권, 2년(1400)에 보면 헌사(憲司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조선 중기(1530)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영조 41)까지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책으로 엮은 여지도서에서 파주의 성씨를 보면 파주에는 지(智), 윤(尹), 방(邦), 백(白), 피(皮). 봉성지역엔 서(徐), 염(廉), 야(夜), 차(車). 적성지역에는 유(劉), 신(申), 김(金), 노(盧), 최(崔), 현(玄), 조(趙), 서(徐), 양(梁). 교하 지역에는 노(盧), 김(金), 옥(玉), 박(朴), 윤(尹), 전(田). 심악지역엔 이(李), 박(朴), 전(全). 석천지역에는 야(夜), 염(廉), 차(車), 호(扈). 등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파주 관적 성씨인 윤, 야, 노, 염, 김씨 외에도 여러 성씨가 오래 전부터 파주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파평윤씨 정정공파 시제 파주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서교(西郊)라고 불려지면서 고려와 조선을 이어 도성 근처에 있고,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토착세력들 또한 조선에 들어와서도 그 기득권을 놓치지 않고 주요 사림들을 배출하거나 왕실과의 혼맥을 통하여 정치적인 주도권을 이어나갔다
[그린경제 = 김보람 기자] 2013년 8월 7일 진주박물관 역사문화배움터 2기 진주 어린이 박물관 학교 학생들이 통영옻칠미술관을 방문하였다. 통영옻칠미술관 학예사 선생님의 설명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열심히 듣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특히 한 번도 옻나무를 직접보지 못한 아이들은 미술관에서 자라고 있는 옻나무를 볼 때 우와~ 라는 감탄사를 절로 외쳤다. 모양과 빛깔이 다른 자개를 설명할 때는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열심히 설명을 들었고, 여러 가지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그 중 한 아이는 가공되지 않은 세모난 전복패(색패)를 보고는 키조개를 닮았다 하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회화전시를 볼 때 아이들의 눈은 더욱더 초롱초롱 빛났다.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우리 부부는 이태리에서 오래 살면서 성당에서 결혼축가를 여러 번 불렀었는데 신랑 신부가 가장 선호했던 노래 1순위는 역시 아베마리아(Ave Maria)였다. 대부분의 결혼식이 성당에서 혼배미사로 진행되며 엄숙하고 경건한 미사 중에 세속적인 곡을 연주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므로 그 축가는 성가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겠다. 이태리 사람들은 슈베르트의 독어로 된 가사대신 그들이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암송하는 기도문인 라틴어 성모송으로 가사를 붙여 Ave Maria를 듣기를 좋아한다. 이태리 사람들은 세기의 명곡인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에 가톨릭의 가장 중요한 기도문인 성모송을 라틴어로 붙여서 부른다. 필자도 성악가로서 독일어 발음이 노래하기에 좀 불편함을 느껴 이 노래를 부르게 될 경우 발음하기가 편한 라틴어 아베마리아를 선호하는 편이다. ▲ 아베마리아를 작곡한 슈베르트(왼쪽) 구노 그런데 맹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산레모가요제 데뷔 이후 발표한 깐쪼네 Con te partir (그대와 함께 떠나리)가 발표되자 젊은 연인들은 자신들의 결혼식에서 Con te partir를 축가로 듣기를 원하여 결국 성당에서도 Con te par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논산의 명재(윤증)고택을 찾아가는 날, 비는 오락가락하고 더위도 제법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대문이 없는 집안에 들어가면서 만난 아름다운 정원과 붉게 핀 배롱나무는 불쾌지수를 깨끗이 씻고도 남음이 있었다. 누마루 같이 탁 트인 사랑채에 오르면서 고택이 주는 편안함 그 이상의 운치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사랑채 앞 정원 의전과 의창제도로 가난한 이들을 구제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 종가는 나눔을 실천한 집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나눔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사랑채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이는 명재의 12대 후손인 윤완식(尹完植·1955~) 선생. 그는 서울에서 사업하다 15년 전 모든 걸 접고 귀향했다고 한다. 원래 종손은 형님이었지만 몇 년 전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현재 봉사손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 종가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는 명재의 12대 후손인 윤완식(尹完植·1955~) 선생 “명재 할아버님의 큰아버지 윤순거(尹舜擧) 할아버님 이후 우리 집안은 이웃과 함께 살기 위해서 의전(義田)과 의창(義倉) 제도를 운영하였습니다.” 윤순거 이후 윤씨 노종파는 다시
[그린경제 육철희 기자〕내가 요즘 일과를 정해서 새로 펴낸 《춘추(春秋)》를 읽어 왔는데 오늘에야 겨우 끝났다. 그런데 자궁(慈宮, 조선 시대 임금의 후궁 또는 왕세자빈(王世子嬪)으로부터 태어난 아들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 임금의 친어머니를 임금이나 신하들이 부르는 말)께서 내가 어렸을 때 책씻이[冊施時, 우리나라 풍속에 아동이 독서하다가 책을 다 떼면 그 부모가 음식을 차려놓고 기쁨을 표시하는데 그것을 책씻이라고 한다.] 하던 일을 생각하시고 음식상을 마련해 주셨기에 경들과 함께 맛보려고 하는 것이다. 위 글은 정조 23년(1799년) 12월 8일 왕조실록에 정조임금이 책씻이 곧, 어릴 때 세책례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춘추를 읽고 난 후 그것을 기념하여 신하들과 함께 축하한 내용이다. ▲ 전통 세책례 모습 이와 관련한 기록으로 정약용은임금이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음식을 준비하여 세서례를 하셨으니 임금이 시를 짓고 나로 하여금 화답 시를 짓게 하셨다.고 하여 그의 책 여유당전서에서 왕실의 세책례에 대해 밝히고 있다. 정조실록에 보이는 것처럼 왕실에서도 세책례를 했지만 세책례란 보통 조선시대 서당에서 책을 한 권 뗄 때마다 학동이 훈장님에게 감사함을
책을 씻고 스승과 제자가 함께 만나는 세책례(洗冊禮)새로운 세상을 여는 스승과 제자의 발걸음〔그린경제 육철희 기자〕각신(閣臣)을 소견(召見)하였다. 하교하기를 내가 요즘 일과를 정해서 새로 간행된 《춘추(春秋)》를 읽어 왔는데 오늘에야 겨우 끝났다. 그런데 자궁(慈宮)께서 내가 어렸을 때 책씻이冊施時] 하던 일을 생각하시고 음식상을 마련해 주셨기에 경들과 함께 맛보려고 하는 것이다.하니,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축하하였다. [상이 어제(御製)를 써서 내리며, 입시(入侍)한 신하들 및 《춘추》에 구두를 달거나 감독하며 간행하는 일에 참여한 신하들과 상이 동궁으로 있을 때 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춘방(春坊)과 세자를 호위하던 계방(桂坊)의 신하들에게 화답하여 올리라고 명하였다.위 글은 정조 23년(1799년) 12월 8일 왕조실록에 정조임금이 책씻이 곧, 어릴 때 세책례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춘추를 읽고 난 후 그것을 기념하여 신하들과 함께 축하한 내용이다.이와 관련한 기록으로 정약용은임금이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음식을 준비하여 세서례를 하셨으니 임금이 시를 짓고 나로 하여금 화답 시를 짓게 하셨다.고 하여 그의 책 여유당전서에서 왕실의 세책례에 대해 밝
[그린경제=김호심 기자]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아- 마지막 한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밑에 점 하나 입가의 미소까지 그렸지만 은 아-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 방주연 음반 1 이 노래는 김지평 선생이 가사를 쓰고, 김학송 선생이 곡을 붙였다. 당신의 마음은 모래 위에 그리는 여인의 초상이다. 얼굴 모습은 턱밑에 점하나 까지 다 그렸지만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그 사람의 마음, 그것은 끝날 수 없는 사모함이며, 영원히 깜박거린 그리움으로 남고 있다. 마치 한 떨기 흰꽃 나도 사프란처럼 소중한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사랑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70년대 자주색 가방, 기다리게 해놓고, 꽃과 나비 등 숱한 히트곡으로 20대의 젊은 시절을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화려하게 보냈던 여가수 방주연이다. 그녀의 노래 속에는 특유의 청순하고 우아한 분위기속에, 움트는 그리움을 깊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시켜주고 있다. 방주연의 음색은 만나고 가는 썰물이 아니고 만나러 가는 밀물의 목소리를 닳았다. 그리고
[그린경제=김리박 시조시인] 적삼 아가씨 가람가 가랑비를 달게 젖는 아가씨 내리는 흰쇠 비는 씩혀 주듯 아름답고 둘 돋은 적삼 젖가슴 사내는 숨을 잃고 ▲ 둘 돋은 적삼 젖가슴 사내는 숨을 잃고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흰쇠 비 : 가는 은실처럼 내리는 비 *** 김리박 : 대한민국 한글학회 일본 간사이지회 회장 재 일본한국문인협회 회장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선정 한국어어문 지킴이 (황금상) 2006년 일본 히라가타시 교육위원회 조선어강좌 특별강사 일본용곡대학(龍谷大學) 한국어강좌 강사 일본관서대학(關西大學)비교지역문화강좌 강사 누리편지 ribak@hera.eonet.ne.jp 손말틀 (일본) 090-8147-7689
[그린경제 = 김보람 기자] 며칠 전 7월에통영시티투어에서 단체관람으로 통영옻칠미술관을 방문하였다. 통영시티투어는 통영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통영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기 위해 통영옻칠미술관을 자주 찾고 있다. 우리민족의 전통문화인 옻칠을 예술로 승화시켜 옻칠회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관장님의 혼이 배어있는 통영옻칠미술관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관된 옻칠전문 미술관이다. 통영은 삼도수군 통제영 12공방의 상하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하면서부터 나전칠기의 본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400여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통영옻칠미술관에서는 전통나전칠기를 토대로 현대화시킨 옻칠예술작품, 옻칠장신구, 옻칠회화를 상설 전시하여 독특한 한국의 미를 감상할 수 있으며, 통영시민의 문화향유와 교육의 장소로써 옻칠예술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옻칠이 우리의 생활문화에 얼마나 많은 쓰임새가 있는지, 우리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순수한 옻칠작품으로 보존성이 뛰어나고,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광채와 빛깔에 실용성과 예술성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품격 높은 옻칠예술 작품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