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기자] 다카쿠신사(高來神社)는 명치 때만 해도 고려신사로 불렸다. 고래신사연혁 기록에 따르면 1843년 만 해도 천태종 소속의 고려사(高麗寺, 고구려를 뜻함)였으며 도쿄 우에노에 있는 관영사(寬永寺) 말사로 나와 있다. ▲ 신편사가미국풍토기에 나오는 1883년 당시의 고려사경내도 고려사라 되어 있다.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고려산은 고래신사가 들어 서 있는 바로 뒷산이며 이 산 정상에는 상궁(上宮)이라 일컫는 전각이 있었다. 이곳을 사람들은 고려권현사(高麗権現社)라 불렀다. 서기 854년에는 자각대사 엔닌(慈覺大師, 円仁,794-864)에 의해 오른쪽 봉우리에는 백산권현(白山権現)을 모시는 백산사(白山社)가 세워졌고, 왼쪽 봉우리엔 비사문천(毘沙門天)을 모시는 비사문천사(毘沙門天寺)가 세워졌는데 이 두 고려신사를 합쳐 고려삼사권현(高麗三社権現)이라 불렀으며 이는 사가미(相模) 지방 최고의 명신신사로 한 몫을 했던 곳이다. 여기서 잠시 독자들은 혼동을 일으킬 것이다. 고려사(高麗寺)는 무엇이고 고려신사(高麗神社)는 무엇인가?하고 말이다. 같은 번지수 경내에 절도 있고 신사 건물도 있는 것은 일본고유의
[그린경제=홍사내 기자] 몇 년 전 주몽이라는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우리 역사의 처음 때 말과 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있었다. 서양 기원(예수 기원)으로 본다면 기원전 이야기인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이상국집≫, ≪동국사략≫, ≪삼국사절요≫, ≪세종실록 지리지≫등 우리 역사책에 흩어져 나타나는 기록에서마저 자세히 알 수 없는 신화시대를 저렇게 현실감 나게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006년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주몽의 한 장면 그래서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정말 우리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구나. 나 자신 그리스․로마신화나 알지 우리 조상의 신화나 역사를 너무도 모르고 있구나 하는 미안함 마저 들었다. 우선 신화 속 인물로 알고 있는 주몽이 저렇게 내 앞에 나타나 우리 조상의 삶을 말하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지고 보면 문화나 문명은 말의 힘이면서 글자의 힘이다. 이집트의 문자 유적은 기원전 3000년, 중국의 한자 유적은 기원전 1400년, 기독교 헤브라이어 구약성경은 기원전 1000년, 그리스신화는 호메로스에 의해 기원전 600년, 석가모니의 말씀은 기원전 600년,
[그린경제=전주연 기자] 통영고 학생 20여명이 통영RCE(유엔 지속가능발전교육재단 통영센터)와 함께 통영옻칠미술관을 방문하여 다양한 옻칠공예작품들과 현대적인 옻칠회화작품들을 관람했다 나전을 시문하는데쓰이는 여러 종류의조개패를 직접 보고전시해설을 들으며 흥미롭게 감상했다. 특히 현대옻칠회화를 감상하면서 기법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직접 느끼며 옻칠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체험했다.
[그린경제 = 조기태 기자] 청송당은 성혼(1535~1598)의 아버지인 청송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별당이었다.청송당 이란 이름은 눌재 박상 (1474~1530)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그가 북악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부친 성세순(1463~1514) 때 부터로 성혼은 조부 성세순 행장인「조고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시사숙공 행장」에서 백악산 아래 집을 정하였는데 숲이 깊고 땅이 외져 자못 산수의 멋이 있었다. 공무를 마치면 지팡이를 들고 신발을 끌며 왕래 하였다. 계곡마다 두루 찾아다니며 시를 읊조리고 돌아갈 줄 몰랐다 라고 사연을 밝혔다. 성수침이 본격적으로 이곳에 기거하게 된 계기는 1519년 기묘사화 때 스승이 처형 되고 선비들이 화를 입자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청송당을 짓고 제자 양성에 힘을 써서 많은 석학들을 배출하였다. 임억령(1496~1568)은「청송당기」에서 성수침의 청송당 생활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의롭지 않은 명성과 공명,부귀 따위는 썩은 쥐나 똥으로 보았다. 고고하게 누워 몸을 일으키지 않고 이곳에서 10년을 살았다 성수침이 죽은 뒤 1668년에 외손 윤순거와 윤선거 등이 다시 중건하여 송시열,남구만 등과
옻칠, 천년 옻칠문화의 모든 것과 위대한 옻칠예술세계 [그린경제 = 김보람 기자]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님이 집필한 첫 저서이자 저자의 옻칠입문 60년의 역사도 함께 실린 옻칠, 천년 옻칠문화의 모든 것과 위대한 옻칠예술세계출판기념회가 2013년 7월 23일 오후 7시 통영옻칠미술관에서 열렸다. 옻칠의 정의와 특징으로 시작되는 저서는 역사 속의 옻칠예술, 옻칠과 나전의 실제, 옻칠예 제작 과정과 표현기법 을 비롯하여 김성수 옻칠 역사 와 현대 칠예와 전망 이 소개 되어있다. 김성수 관장님의 옻칠 역사는 총 6기로 나뉘어져 있다. 제 1기(1951-1960) 옻칠 입문, 제 2기(1961-1970) 창작, 제 3기(1971-1980) 세계로, 제 4기(1981-1990) 현대화, 제 5기(1991-2000)세계화, 제 6기(2001-) 옻칠회화 정립 이 자세히 소개 되어있어 관장님의 옻칠예술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산신문과 통영옻칠미술관 후원으로 마련된 이 날 행사는 김홍종 통영예총회장님의 트럼펫 연주와 전 통영음악협회 지부장 김소곤 님의 클라리넷연주, 통영시립합창단 지휘자 김정애 님의 성악으로 작은 콘서트와 내빈소개, 행사를 주최한 통영
[그린경제 = 조기태 기자]청계천은 인왕산과 북악산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원하여백운동계곡을 시작으로 청풍계곡 물과 수성동계곡 물이 합류해서 세종마을을 관통하여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서출동류(西出東流)이다. ▲ 청계천 발원지 표지석 28개의 지류가 본류에 흘러들어 청계천을 이루는데, 그중 가장 멀고, 가장 길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지점에 2003년 종로구에서 발원지 표지석을 설치하였다. 인근에 창의문과 윤동주문학관,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있다. ** 조기태 : 세종마을가꾸기회 대표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아버지에게 밥사발을 던지면 죄가 될까, 안 될까? 조선 중종 임금 때 아버지께 밥사발을 던진 백성이 있었다. 중종 13년인 1518년 사재 김정국이 황해감사로 나갔을 때 아비에게 밥사발을 던진 아들이 관가에 잡혀 온 일이 있어 시끄러웠다. 황해감사이던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내가 황해감사로 가 있을 때 연안(延安)에 백성 이동(李同)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 자는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와 말다툼이 일었는데 그만 아비에게 밥사발을 던져버렸다. 이웃사람이 이를 보고 아들을 잡아서 내가 있는 감영(監營)으로 보내왔다. 그런데 이 자가 추국을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죄를 자백한 것이다. 나는 죄수에게 너의 죄는 사형이 마땅하다. 너는 부자간이 하늘과 땅의 위치요 임금과 신하의 자리란 것을 모르느냐? 아비가 없으면 어찌 네 몸뚱이가 있겠느냐? 따라서 부모를 잘 모시면 효자가 되고 욕하거나 구타하면 악역이 되는 것이다. 너는 밥사발로 아비를 때렸으니 땅이 하늘을 범한 것이나 다름없고 신하가 임금을 범한 것과 같다. 법에 비추어 사형이 당연한 고로 내가 너를 사형에 처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죄인이 말했
[그린경제=양병완 기자] 조선 후기에는 전문적인 소리꾼에 의하여 공연되는 무대가 많이 나타났다. 소리 광대에 의하여 흥행되어지는 판소리가 그 중에서 대표되는 것이었다. 유진한의 ≪만화집(晩華集), 1574≫에 따르면 18세기에 이미 춘향가(春香歌)가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 19세기 중반≫에 따르면 19세기 중엽에 춘향가 심청가 박 타령 토끼 타령 적벽가 배비장전 강릉매화 타령 옹고집전 변강쇠 타령 장끼타령 무숙이 타령 가짜 신선타령등 열 두 마당의 판소리가 형성되어 공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판소리는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판소리의 삼 요소를 제대로 갖춘 완성도가 높은 판소리만 여섯 마당이 전해 오고 있다. 이것을 가인(歌人) 신재효 선생께서 판소리 사설(辭說)을 정리하여 이론적으로 확립시켜 놓았다. 판소리는 18세기의 영조, 정조시대에 우춘대 명창, 하한담 명창, 최선달 명창이 적극적으로 활동 하였다. 19세기 전에는 권삼득 명창, 모흥갑 명창, 송흥록 명창 등 여러 명창이 새롭게 나타나서 기존의 판소리에 새로운 내용(內容)의 사설(辭說)과 판소리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노랫말과 가락을 새롭게 짜고 구성하여 부른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1962년 3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재미난 기사가 하나있다. 사연인즉슨 52살의 이차손이라는 남자가 아르헨티나 이민 20년 만에 자수성가하여 부자가 되었으나 부인인 아르헨티나 여성과 사별하게 되자 동아일보에 고국의 참한 여성을 신부로 맞이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기사로 내보내기가 무섭게 전국의 기라성 같은 여성들이 구혼을 해왔는데 무료 93명의 여성이 응모했다고 한다. 처녀부터 유부녀도 있었으며 동기로는 외로워서, 일거리가 없어서, 외국생활이 좋아보여서.. 등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위 신문 기사에 기라성 같은 여성들이 구혼에 응모했다는 말이 있는데 흔히 듣고 쓰는 말 기라성은무슨 뜻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기라성(綺羅星):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이라는 뜻으로, 신분이 높거나 권력이나 명예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빛나는 별로 순화 하라고만 되어 있다. ▲ 1962.3.26 동아일보에 공개구혼장을 낸 기사 그렇다면 국어사전에서 순화하라고 한 빛나는 별이라는 말을 넣어위 예문의 동아일보 기사를 바꿔보자. 빛나는 별과 같은 여성들이 구혼에 응했다라고 하면 어울릴 말
[그린경제 육철희 기자〕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로는 맹자의 어머니가 단연 으뜸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 하여 맹자(孟子) 어머니 급씨(伋氏)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하여 맹자가 스스로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자녀교육에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과연 맹자의 어머니가 이사를 다니는 것만으로 맹자에게 깨우침을 주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맹자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진정한 교육방법은 베를 잘라 아들을 가르쳤다는 열녀전의 단저교자(斷杼敎子)에서 더 잘 드러난다.집을 떠나 공부하던 맹자가 어느날 갑자기 공부도 싫증나고 부모가 그리워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맹자의 어머니는 마침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돌아온 맹자를 따뜻하게 반겨주기는커녕 맹자를 돌아보지도 않고 오히려 엄하게 맹자에게 물었다.공부를 다 마치고 왔느냐?맹자가 대답하기를 공부를 여전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하자, 그런데 어찌하여 중간에 돌아왔느냐?하고 다시 묻자 맹자는 제 물건이 하나 없어져 그 물건을 찾고자 돌아왔습니다.라며 변명을 하였다.이때 맹자의 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