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권효숙 기자] 재너머 성권롱(勸農) 집의 술 닉닷 말 어제 듯고 누운 쇼 발로 박차 언치 노하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롱 계시냐, 정좌수(座首) 왔다 하여라 조선시대 낭만적인 대문학가 송강 정철은 참으로 술을 사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관동별곡,사미인곡 등의 작품을 남긴 가사문학의 대가로 윤선도와 함께 한국 고전문학을 대표하지요. 그러나 술을 좋아한 탓에 실수도 많아 유배를 떠날 때 선조임금이 은술잔 하나를 하사하며 이 술잔으로 하루 석잔만 마시면 술로 인한 실수로 남의 미움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 송강 정철 ▲ 송강 정철의 대표적인 가사 관동별곡 위 정철의 시조에서 재 너머 성권롱은 파주 우계에서 살고 있는 성혼을 말하는데 어찌 알았는지 그의 집에 술이 익어간다는 말을 듣고는 소에 언치를 놓아 타고 찾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그 당시 정철은 현재의 고양시 신원동 송강마을에서 부모님의 묘를 2년 간격으로 연이어 쓰고 시묘살이를 4년 7개월간이나 하며 살았습니다.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도 간간이 내려와 이곳에 머물렀고 죽은 후에는 부모님 근처에 자신의 묘가 마련되기도 했지요. 지금은 충북 진천으로 묘를 이장
[그린경제=전주연 기자] 자개는 진주층과 아교질층으로 형성된 조개껍데기를 가공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나전재료로 사용되는 조개는 소라螺, 전복全鰒, 진주眞珠 세 가지다. 또한 가공 두께에 따라 진주패는 후패厚貝, 전복과 소라는 박패薄貝로 나뉜다. ▲ 진주패 진주조개껍데기는 두께가 두꺼우면서도 명칭 그대로 진주보석같이 우아한 빛과 품위가 있어 진주패眞珠貝라고 한다. 진주패는 백색과 황색 두 가지로 구분되며 무지개 빛깔이 나는 것이 특징이ek. 아교질층이 약해 두껍게 가공하므로 후패라 하며 주로 음각이나 양각으로 조각하여 음양을 살리는 기법으로 사용된다. 원패 자체가 크고 두꺼워 겉껍질을 갈아내어 평면 형태로 3mm정도의 두께조절이 가능하며 조각을 통해 섬세하고 입체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박패란 원패를 일정한 두께로 갈아 내어 사용하는 자개로서 줄음질, 끊음질 기법에 이용되고, 두께가 대체로 일정하기 때문에 여러 겹 붙여 오릴 수 있어서 작업능률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야광패와 청패는 아교질층이 좋아 얇게 가공할 수 있어서 박패로 사용된다. ▲ 청패 전복껍데기를 가공한 자개는 푸른색의 영롱한 빛을 지니고 있어서 청패靑貝라고 한다. 청패 중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조선시대 문과 시험문제, 즉 책문은 임금이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적는 시험을 이릅니다. 국가의 비전에 대한 젊은 선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듣는 소통의 시간입니다. 예컨대 인재쓰기, 경제위기의 해결책, 국정운영의 방책 등을 임금이 물으면 젊은 인재들은 그에 따른 대책을 제시하는 열정적인 대화의 자리인 셈입니다. 태종 7년 4월 태종은 책문을 내리며, 다음과 같은 출제 배경을 밝힙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창업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법제 또한 갖추지 못했다. 또 천도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역사(役事)가 그치지 않는다.---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소강(小康)을 이루려고(중략) 정사를 듣는 틈틈이 책을 보고 그 뜻을 강구하지만 힘을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태종의 주문은 소강(小康)을 이루는 방책을 적어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강은 작지만 강한 나라로 태종이 꿈꾸는 조선의 미래상입니다. 따라서 이번 책문은 태종의 고민과 비전이 함께 담긴 시험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 태종이 꿈꾼 조선의 비전 그런데 소강을 이루려면 명나라와의 안정적인 외교관계는 필수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태종은 지성사대라는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조선시대 문과 시험문제, 즉 책문은 임금이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적는 시험을 이릅니다. 국가의 비전에 대한 젊은 선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듣는 소통의 시간입니다. 예컨대 인재쓰기, 경제위기의 해결책, 국정운영의 방책 등을 임금이 물으면 젊은 인재들은 그에 따른 대책을 제시하는 열정적인 대화의 자리인 셈입니다. 태종 7년 4월 태종은 책문을 내리며, 다음과 같은 출제 배경을 밝힙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창업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법제 또한 갖추지 못했다. 또 천도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역사(役事)가 그치지 않는다.---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소강(小康)을 이루려고(중략) 정사를 듣는 틈틈이 책을 보고 그 뜻을 강구하지만 힘을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태종의 주문은 소강(小康)을 이루는 방책을 적어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강은 작지만 강한 나라로 태종이 꿈꾸는 조선의 미래상입니다. 따라서 이번 책문은 태종의 고민과 비전이 함께 담긴 시험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 태종이 꿈꾼 조선의 비전 그런데 소강을 이루려면 명나라와의 안정적인 외교관계는 필수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태종은 지성사대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公은 흉년 배고픈 시절 황금을 털어 가난을 규휼했네 주민들 송덕비 세워 1920년대 기근 때 연못과 12假山 만들어 마을사람들에게 일자리 마련해줘 춘궁기 소작인들에게 받은 토지세 돌려주고 돈 빌려준 채권 장부도 불태워 용호정원도 담장 밖 마을 어귀에 지어 '개인정원' 아닌 '만인의 정원'으로 ▲ 박헌경 선생이 기근 구제 차원에서 취로사업으로 만든 용호정과 연못 공의 높은 덕은 자비와 사랑으로 공평하고 균등했네 힘을 다하시어 조상을 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황금을 덜어내 가난을 구휼했네 흉년 배고픈 시절에 고달픈 사람들을 구제하여 백성을 편케 했네 바다와 같은 은혜요 산과 같은 자비심이네 집집마다 기리는 소리 넘치고 사람마다 입을 모아 이 비를 만들었네 온 마을이 정성과 감격으로 돌을 세워 이웃으로 만들었네 이는 진주 박헌경(朴憲慶) 선생 송덕비에 적힌 글이다.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에 가면 용호정(龍湖亭)이란 정자와 연못 그리고 한국식 정원 용호정원(龍湖亭園)이 있다. 정원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입구)에는 크고 작은 송덕비 7개가 나란히 정원을 찾는 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 송덕비는 포악한 지방 수령의 눈치를 보다가 마지못
[그린경제=전주연 기자] 통영옻칠미술관에서 어린이 교육프로로그램 2013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톡톡튀는 옻칠로 장신구를 만들어라 1기 17주 동안의 수업을 마치고 6월 22일에 수료식 및 평가회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 5, 6학년 학생들이 매주 토요일 수업에 참여하여 직접 디자인하고 자개를 붙여서 톡톡튀는 옻칠로 개성있는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수업을 이끌어 주신 김성수 관장님, 특강을 해주신 권순섭 교수님과 선생님들을 모시고 작품 평가와 더불어 꾸준하게 열심히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을 격려하고 칭찬하며 앞으로도 옻칠에 대한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가져주기를 당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1명의 학생들이 수료하였으며 수업 참여 소감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옻칠장신구를 감상하였습니다.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음악을 배우러 이태리에 가서 나는 본받을 만한 이태리 사람들의 습관 하나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옆집 할아버지와 마을 어귀 공동묘지 앞을 지나게 되었다. 향나무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동묘지를 향하여 할아버지는 성당에서 하듯이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묘지에 할아버지의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이 묻혀 있겠거니 생각하며 나도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쳤다. 이어서 고등학교 다니는 이웃집 여학생도 그 곳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았다.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묘지를 지날 때 살아생전을 회상하며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좋은 성찰의 시간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여겨졌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이태리에 있어 보니 이태리 사람들은 길을 가다 공동묘지가 보이거나 시내나 고속도로에서 장례차량을 보게 되면 대다수가 성호를 긋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타인의 죽음에 대해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그들이 왠지 모르게 좋아졌었던 기억이 난다. 정리해 보면 이태리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톨릭 신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청정 (加藤淸正 임진왜란 때 조선침략에 앞장선 가토기요마사를 말함)의 일에 대해 승지의 의견은 어떠한가? 선조의 질문에 홍이상이 답하길, 오랑캐들이란 짐승과 같습니다. 그들의 세력이 당당하면 절대로 애걸할 리가 만무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말한 것을 보면 너무나 흉악스럽습니다. 우리나라로서는 그들이 중국군과 서로 버티고 있는 틈을 이용하여 무슨 조처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강화만은 반드시 이루어서는 안 됩니다. 대의(大義)로 말하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혹 그렇게 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나라로서는 만세토록 기필코 갚아야 할 원수들인데 어떻게 그들과 강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 조정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도 따를 수 없는 일입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선조실록 27년(1594) 4월 1일) ▲ 모당 홍이상 무덤 모당 홍이상(洪履祥,1549-1615)은 선조임금으로부터 신임이 컸던 인물로 고양 8현(8賢) 가운데 한 분이다. 고양시 성석동에는 선생의 무덤과 신도비가 서있는데 신도비에 비친 모당 선생의 인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공은 성품이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효도와 우애는 천성에서 우러났다. 자식의 분분을 지켜 하나같이 성인
▲ 복숭아 화채 [그린경제=지명순 교수] 중국 소설의 대표 삼국지는 복숭아꽃이 활짝 핀 봄날 유비관우장비가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의형제를 맺는 도원결의로부터 시작된다. 화사한 꽃을 자랑하던 복숭아가 꽃이 어느새 열매가 되어 시장에 출하되기 시작했다. 복숭아의 원산지는 중국 황하유역과 서북부인 섬서성(陝西省)감숙성(甘肅省)의 고원지대이다. 행복과 부귀를 상징하는 나무로 혼인의 문장으로 쓰이는 등 일생 중 가장 상서로운 날을 꾸미는 장식물로 사용된다. '신선의 과일'이라 불리고, 도연명의 '도화원기'에는 이상세계의 입구에 복숭아 숲이 등장한다. 복숭아는 봄이 되면 제일 먼저 개화하는 양기(陽氣) 왕성한 과수로 음귀(陰鬼)인 귀신이 가장 두려워한다 하여 '귀신 떼는 데는 복숭아나무 방망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집 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으며, 제수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는 복숭아가 축귀(逐鬼)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상신까지도 내쫓는다고 생각한 이유에서이다. 아울러 사기(邪氣)나 병귀(病鬼)를 몰아내는 데도 효과적이라 믿었기 때문에 정신병을 치료하고 여역 등의 전염병을 다스리는 데 쓰기도 했다. 특히 중국인은 이 복숭아나무와
[그린경제=이윤옥 기자]고려신사 도리이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나있는 조붓한 길은 성천원 (聖天院)가는 길이다. 제법 넓은 마당을 낀 주택 몇 채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을 200여 미터 걸어가다 보면 커다란 주차장이 나타나고 돌로 만든 듬직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 170년 역사를 지닌 고색창연한 성천원 산문 성천원 산문(山門)으로 일컬어지는 고색창연한 2층 산문은 170년 역사를 지닌 중후한 건물로 이 문을 지나 바로 오른쪽으로 가면 약광의 무덤으로 일컬어지는 작은 전각이 나오는데 전각 안에는 다중석탑(多重石塔)이 귀퉁이마다 마모된 채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서있다. 그 안쪽에는 고려왕묘(高麗王廟)라는 현판이 깊숙이 걸려있어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양광왕이 죽자 고려명신으로 맏들어 고마신사의 고려계도(高麗系図)에는 약광이 죽은 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성 외곽에 묻고 그 앞에 영묘(靈廟)를 세웠으며 고려명신(高麗明神)으로 받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약광왕 무덤은 초라했다. 아무렴, 막강하다는 수,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유감없이 늠름한 기상을 보여주던 씩씩한 고구려, 드넓은 중원 벌의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