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에 부활한 유자광 고향에서 배척받는 무령군 유자광 [그린경제=제산 기자] 전장(前章)에서 무령군(武靈君)은 희대의 영걸이라고 언급되었거니와 이는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한 그를 미화하거나 우상화하기 위한 말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검증된 객관적인 사료(史料)를 토대로 하여 제 3자의 중립적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내린 평가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령군은 탯자리인 남원 사회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배척당해 왔다. 지금도 유자광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보다는 가로 젓는 사람이 더 많다. 따라서 그에 대한 인식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령군의 묘소는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최근에 이백면 영광 유씨 선산에서 훼손된 망주석(望柱石)이 발견되었는데 그 지점이 무령군의 묘역(墓域)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무성할 뿐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리고 그 부근에서 오래된 거구(巨軀)의 유해가 한 구 나와 유씨 문중에서 이를 무령군의 유해가 분명하다고 믿고 행정당국에 그 유전자를 검사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관계자로부터 역적의 유전자 검사에 쓸 예산이 어디 있느냐?라는 투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일도 있다고 들었다. 역
[그린경제=김보람 기자] 인간이 처음 사용한 장신구는 주로 동물의 이빨이나 뼈, 돌멩이 조개 등에 구멍을 내어 끈으로 연결하여 목걸이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은 미적표현 보다는 인간의 강인함을 과시적으로 표현가기 위한 일종의 호신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문명의 발달로 부와 권력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신분의 표상으로 복식과 함께 장신구가 발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의 현대화를 위한 연구가 여러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채화칠기와 나전칠기에 기반을 둔 옻칠장신구는 옻칠만의 미학적 특성을 살린 옻칠조형작품과 함께 체계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는 새로운 분야이다. ▲ 이현경 作, 옻칠장신구 옻칠은 타 재료와의 접목이 용이하고 견고성도 뛰어날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표현과 풍부한 색 표현까지 가능하다. 또한 옻칠장신구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금속이나 보석류에 제작된 장신구들과는 달리 무게로 인한 문제점들을 해결 할 수 있으므로 의복에 착용하는 장신구로서 매우 유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옻칠은 깊고 차분한 색상과 고급스러운 광택이 있으므로 여성의 정서에 품격있는 재료로 여겨진다. 또한 옻칠장신구는 심플하고 우아함을 중점으로 디자인 하여 여유롭고 심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통일로와 자유로가 만나는 끝 지점에 임진각이 있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 옆에는 비무장지대 경의선 옛 장단역 남쪽 50여 미터 지점에서 6.25전쟁 때 중공군에게 피폭되어 멈춰 50여년간을 버려져 있던 화물차 증기기관 화통이 있다. ▲ 경의선 철교와 자유의 다리 이 증기기관차는 당시 연합군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개성역에서 황해도 한포역까지 올라갔다 전세가 악화되어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1950년 12월 31일 밤늦게 경의선 장단역(장단면 동장리)에서 피폭된 뒤탈선하여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이 기관차는 검붉게 녹슬고 부식된 채로 반세기 동안 비바람을 맞고 방치되어 있다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후 녹제거와 방지처리를 한 후 임진각관광지로 옮겨졌다. ▲ 비무장지대 옛 장단역에서 옮겨온 증기기관차 화통 이 증기기관차 화통 안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흙먼지가 조금씩 쌓여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온 뽕나무 씨앗이 그곳에서 싹을 틔웠고 빗물을 먹고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 증기기관차 화통 북측 화단에 옮겨 심어진 뽕나무 가지가 화통 밖으로 져나오면서 기적과도 같이 그 뽕나무는 살아남아 제법 나무모양새를 갖췄다. 기차화통이 임진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유기농 우리밀 통밀을 이용하여 크림치즈와 카야잼을 넣고 앙꼬빵을 반들어 봤답니다. 작게 만들어 하나씩 먹기에 부담이 없고 우리밀 통밀을 이용하여 몸에도 좋고 속도 편한 빵이랍니다. -다음- 우리밀로 앙꼬빵을 만들었다? 왜 멀쩡한 조선 밀에 일본말을 섞는가? 인터넷에 자랑스러운 듯 우리밀 빵 사진을 올린 사람은 20대 아가씨 같다. 딴엔 우리밀 빵을 자랑하고 싶은 거겠지만 앙꼬가 일본말인줄은 모른다. 이 아가씨뿐이 아니다. 다음 블로그에는 온통 앙꼬빵 찬양 문구가 즐비하다. 밥맛없는 아침대용으로 간단히 먹고 출근길에 나설 수 있는 앙꼬빵은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 빵이란다. 대관절 앙꼬란 무엇일까? ▲ 앙꼬빵 위 일본어사전 풀이처럼 앙꼬의 재료는 팥강낭콩 뿐 아니라 속을 채우는 것이면 뭐든지 앙꼬이다. 따라서 녹두, 밤, 검은깨, 땅콩, 호두, 대추, 바나나 등이 모두 앙꼬가 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팥에만 한정하고 있다. 실제로는 일본처럼 밤이나 고구마 검은깨 등도 속 재료로 쓰면서 말이다. 속재료로 밤을 넣으면 밤빵이요, 팥을 넣으면 팥빵이라 부르면 되는 것을 앙꼬빵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서양밀가루도 아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전 도원수 권율(權慄)이 졸하였다. 율은 임진년 변란을 당하여 몸을 던져 싸움터에 달려가 전투 때마다 견고한 성을 함락시켰었다. 그 이치(梨峙)의 승리와 행주(幸州)의 대첩(大捷)은 비록 옛날 명장(名將)이라 하더라도 어찌 그보다 더하겠는가. 국가가 중흥(中興)의 업을 이룬 것은 실로 이에 힘입은 것이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위는 《선조수정실록 33권》(1599) 7월 1일 치 기록으로 선조 때 권율 장군 이름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이름이 나온다. 그만큼 임진왜란은 조선에 있어 위급한 전쟁이었고 그 한가운데 권율 (1537~1599)이 있었던 것이다. 행주대첩 하면 떠오르는 권율장군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관직에 나왔다. ▲ 양주시 장흥 석현리에 있는 권율 무덤, 좌우로 부인과 함께 묻힌 권율 권율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인 1582년(선조 15)에 45살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당시의 평균 수명과 보통 30살 전후에 문과에 급제하는 추세에 견주면 매우 늦은 출발이었다. 그는 승문원 정자(正字, 정9품)로 관직을 시작해 전라도 도사(都事, 정5품)경성판관(종5품) 등의 관직을 거쳤다. 그러나 급제한 나이로
수백억대 전 재산 처분 후 만주서 항일 독립운동 임정 국무령 역임 "나라를 찾기전까지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이장말라…" 유언 남겨 아들은 일제 변절강요에 '수치' 자결…가문 풍비박산 후손들 고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이장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안동 유림의 거목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대통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石州 李相龍·1858~1932) 선생이 태어난 경북 안동의 임청각(보물 제182호)을 찾아 간 날은 5월 중순인데도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런데 임청각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입구)가 왜 이리 복잡할까? 낙동강을 따라 난 육사로에서 법흥교와 맞닿은 법흥6거리를 지나자 왼쪽으로 ‘임청각’이란 안내판이 보이지만 철도길이 놓여 있어 쉽게 접근할 길을 찾지 못해 전화 통화 뒤에서야 겨우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임청각, 일제의 흉계에 의해 훼손되다 그 까닭을 확인하니 일제강점기 일제의 흉계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일제는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항일투사의 집을 아예 없애려 했다. 그러나 여론이 좋지 않자 집 몇 채를 허물고 마당으로 철길을 내버린 것이다. 철길이란 보
[그린경제=전주연기자] 통영옻칠미술관에서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5월 25일과 6월 1일 2회에 걸쳐동방대학원 대학교 옻칠조형학과 권순섭 교수님 초청 특강이 진행됩니다. 5월 25일에는 '옻과 생명과학'을 주제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강의를 통해 옻에 대해 잘 알지못했던 아이들도 다양한 질문을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 인류가 사용한 옻, 우리나라 옻의 역사, 옻의 우수한점, 옻의 아름다움, 생명현상과 옻 등에 대하여 특강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옻의 도막은 단순히 건조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현상의 기본인 단백질 조합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핑크땡땡이 주문했는데 무지핑크 원피스가 왔어요. 화가 나서 전화하니 땡땡이랑 무지랑 주문번호를 같이 해놓은 자기들의 실수를 인정 안하고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하네여... 첨부터 주문번호를 틀리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 헷갈리게 주문번호는 똑같이 해놓구선 낚시질 하는 것도 아니고..기분 엄청 나빴어여.. 다시 돌려버리고 싶었지만 배송비도 내가 물어야 된다고 해서 그냥 입기로 했지만 솔직히 볼 때 마다 화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여.. -다음- ~하네여, ~어여 라고 쓰는 것을 요새 많이 본다. 귀엽게 봐주기엔 우리말이 너무 불쌍하다. 여름이라 땡땡이 원피스를 입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흰 바탕에 검정 땡땡이도 괜찮고 검은 바탕에 흰 땡땡이도 괜찮다. 나도 땡땡이를 좋아해서 옷장에 두어 벌 땡땡이 무늬 옷이 있다. 누리집엔 온통 땡땡이 옷들이 넘쳐난다. 잘 팔린다는 증거다. 어렸을 적엔 땡땡이를 땡땡이가라라고 했다. 일본말을 공부하다 보니 땡땡이도 땡땡이가라도 모두 일본말이다. ▲ 땡땡(点点)이 무늬 옷감 엑? 하고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일본말이라서 그런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름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지름길로 가면 빨리 갈 수 있기에 대부분 지름길을 좋아한다. 현대의 경쟁사회에서 지름길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그래서 그런지 요즘 학생들과 부모들은 바쁜 세상이니 빨리빨리 배워서 바로 유학 가서, 빨리빨리 전문의사, 전문변호사, 박사가 되고 ..일정기간을 거치면 빨리빨리 개업하여 돈 벌어서점점더 크게 .. 아마도 빨리빨리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런데나는학생을가르치면서 지름길이 보이는데 그 길을 빨리빨리 알려주어야 할지 아니면 더 있다가 알려주어야 교육자로서 옳은 것인지 갈등하곤 한다. 왜냐하면 지름길만이 최상의 길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지름길에 대한 고민은 아이 이름을 짓는데도 은근한영향을 주었다. 이태리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의 이름을 수로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받침이 없는 이름이어야 이태리학교 선생님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고 선생님도 아이의 이름이 쉽게 각인되어야 부담감 없이 빨리빨리 익숙해져서 우리 아이의 이름을 더 많이 불러줄 것이라는 이태리교사친구의 충고를 따른 결과였다. 아이의 돌림자는 섭燮자였고 이태리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고양시 끝자락인 덕양구 동산동에서 구파발쪽으로 가다보면 고가도로 밑에 목이 잘린 커다라 돌부처가 세워져 있는데 이름하여 고양(高陽) 밥 할머니 석상이다. 이를 두고 고양의 잔다르크 동산동 밥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 동산동 창릉모퉁이공원에 있는 밥 할머니 석상. 글쓴이가 찾아갔을 때는 작년 제향 때의 펼침막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밥 할머니 석상에 관한 유래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의 산천을 피로 물들인 지 8개월이 지난 선조 26년 정월의 일이다. 무방비 상태의 조정은 긴급히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명나라는 이여송을 대장으로 삼아 명군 4만 명을 파견했다. 명과 합세한 조선군은 왜군에게 함락되었던 평양성을 탈환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한양을 향해 남진하였다. 그러나 그해 정월 26일 한양을 눈앞에 둔 고양시 벽제관의 남쪽 숫돌 고개 전투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왜군에게 참패하여 북한산으로 뿔뿔이 패주, 이여송과 장수들의 일부는 북한산 노적봉 밑에 집결하게 되었다. 왜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이여송과 조선의 도원수 김명원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진로를 구상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