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최 참판 댁의 기둥 군데군데 초롱이 내걸려 있고 행랑의 불빛도 환하게 밝었다.”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초롱이라고 하면 왠지 귀여운 등불이 연상된다. 전기가 없던 시절 불을 밝히는 도구였던 초롱은 꽃이름에도 붙어 있는데 금강초롱이 그것이다. 꽃모양이 흡사 신랑신부 가마타고 시집가던 날 들던 청사초롱 모양을 하고 있어 더욱 정겹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금강초롱 :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20~40cm이며, 잎은 끝이 뾰족한 달걀 모양이다. 여름에 초롱 모양의 자주색 꽃이 가지마다 몇 송이씩 핀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산지(山地)에서 자라는데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지에 분포한다. ≒금강초롱꽃. (Hanabusaya asiatica) "라고 해서 하나부사 학명이라는 것은 영어로만 살짝 써두고 있다. ▲ 학명이 하나부사인 금강초롱 1 / 사진작가 박효섭 제공 금강초롱이라고 요즈음 부르는 이 꽃이름은 화방초(花房草,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화방초는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1842-1917)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25살 때 유럽과 미국을 순방
[그린경제=서수향 기자] 통영옻칠미술관은 2006년 김성수 관장에 의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관된 옻칠전문미술관으로써 나전칠기의 고장, 통영에 설립되었다. 옻칠작품 감상은 물론 옻칠아카데미 강좌 등 옻칠을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와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통영옻칠미술관 선사시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수 천 년 동안 전래되어온 천 년의 신비 채화칠기와 나전칠기는 뿌리 깊은 전통예술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고려시대의 국보급 나전칠기는 민족예술로 승화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온 국민이 선호하는 민중예술로 발달하였다. 특히 성웅 이순신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에 부임한 이후 12공방을 설치하였고 12공방 중 상하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통영이 나전칠기를 생산하는 본 고장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4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선진 외래문화의 개방화로 인해,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서구의 디자인에 대처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침체기를 맞았다. 개방화시대를 맞이하여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통의 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옻칠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나 캐슈라는 합성칠이 옻칠로 변질되면서 옻칠문화가 쇠퇴하고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사회생활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갑을관계가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 동기들 중에도 으쓱대기 좋아하고 목에 힘주고 발주처랍시고 협력업체 불러다놓고 알지도 못하고 소리치는 놈들 있습니다만 솔직히 아무 것도 아닙니다. 협력업체에 똑똑한 분들 더 많구요. 술자리 가서 싸바싸바하며 계약서에 도장 받으려고 손비비는 그런 관계 아닙니다. 갑과 을에 대한 환상 때문에 갑도 을도 아닌 공기업을 찾으신다면 갑과 을에 대한 그 거창한환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사회생활 자체가 갑과 을로 얽히고 얽혀있는 겁니다. -다음- 요즘 뜨고 있는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누리꾼들의 뜨거운 의견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위 누리꾼처럼 세상은 갑과 을이 얽혀 사는 아무것도 아닌 사회라는 의견부터 갑이 센놈이고 을은 약자라는 등 나름의 정의가 난무하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갑을(甲乙) 관계의 성립은 언제부터인가 이참에 살펴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갑을(甲乙):「1」갑과 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2」순서나 우열을 나타낼 때, 첫째와 둘째를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일찍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갑을(甲乙)이란 예는 많이 보이지만 그러나 오늘날 흔
두 개의 명당 [그린경제=소병호 기자] 삼정승 보다는 사정승! 한 지관이 수더분하게 생긴 촌부(村夫) 구산자(求山者)에게 지세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자리는 천금을 주고도 못삽네다. 좌청룡자락과 우백호자락이 대칭을 이루며 앞들을 소쿠리처럼 보듬고 있고 앞들언저리를 활처럼 감아 흐르는 도랑 너머로 탕건 모양의 안산(案山)이 다소곳이 업드려 있다. 그 뿐이랴? 뒷 날등이 힘차게 뻩어 내려오더니 용머리처럼 불쑥 치솟았다가, 다시떨어지듯 미끄러져 내리다가 딱 멈춘 곳! 굳이 지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누가 봐도 명당 터다. 윤생원, 이 안에 묘자리가 두 개 있소. 하나는 삼정승 날 자리이고 또 하나는 사정승 날 자리요. 어떤 자리에 쓰시겠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시고 말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정승 날 자리에 써야지. 정승이 뉘집 강아지 이름인가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나온다는데 이런 천재일우의 호기를 놓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처음에는 그저 가난이나면하기를 바랐던 구산자는 욕심이 발동하여 앞뒤잴 것 없이 사정승 날 자리에 조상을 이장했다. 정승의 버릇을 고친 영특한 소년 윤효순의 아버지 윤처관(尹處寬)은 의정부 녹사로 있었다. 처관은 어느 날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국내 포도 재배는 조기 증수를 목적으로 한 계획 밀식재배로 재식 45년차부터는 간벌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초기 밀식된 재식주수를 경제성이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여 꽃떨이현상 등의 밀식장해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농가에서는 간벌을 하면 수량이 감소된다고 생각하여 간벌을 기피하고 있으나 간벌시 주지연장지를 활용하면 간벌에 의한 수량 감소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 한 귀농 준비자 누리집에 올라있는 포도나무 간벌 이야기 속에는 생소한 말들이 잔뜩 들어 있다. 증수, 밀식재배, 간벌, 재식주수, 밀식장해, 주지연장지 같은 말들은 한글이지만 알아먹기가 힘들다. 간벌이라는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간벌(間伐) : 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여 잘 자라도록 불필요한 나무를 솎아 베어 냄. 솎아베기로 순화. ≒소벌(疏伐).이라고 풀이하고 있을 뿐 간벌이라는 말의 유래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간벌은 일본말 간빠츠에서 온 것이다. ▲ 압록강 유역에서 마구잡이로 간벌한 나무들 (동아일보 1931.9.2) 일본국어대사전 《大辞泉》에 보면 かん‐ばつ【間伐】:森林や果樹園で、主な木の生育を助けたり、採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평소에는 찾지 않던 시장이나 생산현장을 들를 때는 대개 선거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표가 중요한 이들에게 민생투어라는 고상한 이름의 이 정기행사는 빠트릴 수 없는 일입니다. 국민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그들의 충의를 마다할 일은 아닙니다만, 선거 때만 반짝 그러다가 그 뒤로는 나 몰라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민생 투어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행행(行幸)이 그것입니다. 임금이 대궐 밖으로 행차하는 거동 일체를 일컫는 이 말은 왕의 궁 밖 나들이 정도쯤 됩니다. 행행은 화려하고 장대한 의식으로 치러지기도 하지만, 호위군관 몇 명을 데리고 조심스럽게 행차하는 소박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궐 밖 행차,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 해소 ▲ 정조대왕의 능행차 장면(출처-수원시청 수원화성문화제 홈페이지) 전자의 행행은 왕과 왕비의 무덤에 가는 능행(陵幸)과 후궁이나 세자의 무덤에 가는 원행(園行), 사냥을 겸한 군대 훈련인 강무(講武)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선 후기 정조의 경우 재위 24년간 66회의 행행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는
[그린경제=박보람 기자] 자개의 종류 중 소라껍데기와 전복껍데기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귀에도 대보며 관찰해보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자개를 직접 잘라 예쁜 문양으로 오려도 보고, 소라와 전복에서 나는 소리를 꼴라쥬 형태로 만들어보았다. 소리의 진동이 참으로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대두 새송이 버섯 된장 볶음 만드는 법 1 대두는 깨끗이 씻은 후 물을 넉넉하게 붓고 하룻밤 불린다. 2 새송이 버섯은 반 자른 뒤 1.5㎝ 크기로 썰고, 대파는 4㎝ 길이로 토막 낸 다음 채 썬다. 3 미소(일본 된장)는 체에 한 번 거르고 분량의 볶음 양념 재료와 합한다. 4 냄비에 대두를 넣고 충분히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 푹 삶는다. -다음- 설탕도 변변하게 없던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까만 콩장은 참으로 꿀맛이었다. 그러나 요즘 애들은 갖은 양념을 해서 만든 콩자반도 잘 먹질 않는다. 그래서 '대두 새송이버섯 요리' 같은 것이 등장 한 것일까? 위 예문의 콩 요리 방법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제는 그 대두에 일본된장 미소까지 넣어 먹는단다. 그러다가 일본 사람 될라? ▲ 메주콩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대두(大豆) : 콩. 콩으로 순화 하라고 되어 있다. 대두라는 한자말을 피하고 우리말 콩이라는 말로 순화하라는 말은 좋은 지적이다. 그러나 콩을 뜻하는 대두를 일본말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말은 일찍이 조선시대에도 널리 쓰던 말이다. 세종실록 19권(1422년 11월 22일)에 호조에서 계하기를, 헌릉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한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에게 지난 해 작곡하여 제작한 노래시 음반 한 장을 전해 주러 갔다가 오히려 최근 출판했다는 책을 다섯 권이나 선물 받았다.고마운 마음으로 점심을 대접하며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받은 책 3권이 이 윤옥이라는 시인이 쓴≪서간도에 들꽃 피다≫라는 아주 특별한 시집임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시집을 읽어 보니 거기에는 많은 조선의 구국여성 60여분이 시를 통하여 소개되어 있었다. 사실 내가 아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는 유관순 누나 밖에 없는데 한 장 한 장 넘겨 보니 가려져 있었던 많은 한국의 잔다르크들의 이야기가 나를 숙연하게 하였고, 시와 함께 곁들여 있는 그림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한국화가 이무성 선생님의 민속화여서 더욱 눈이 갔다. ... 일왕의 도쿄 황거를 폭격코자 장개석 휘하 혁명군이 되어 11년의 세월을 싸웠다는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 권기옥 ... 학교에서 중국 아이들이 나라도 없는 망국노라는 놀림을 해대는 것을 참지 못해 그 길로 책상을 뒤 엎고 광복군에 입대하였다는 16살 소녀 오희영 ... 허드렛일 하면서 밥을 얻어다 옥살이하는 아들 뒷바라지를 했고, 상해임시정부 시절 시장 골목
[그림경제=김호심 기자]1980년대는 73년과 79년의 2번의 오일쇼크의 후유증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외로 경기가 호전되면서 사회의 분위기가 점점 좋아졌습니다. 먼저 장발단속 완화, 통행금지 해제, 교복 자율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등 일련의 개방화 정책으로 국민들을 회유하기 시작한 군부정권은 이어서 컬러TV 방영과 프로야구, 프로씨름의 개막을 통해 대중들의 관심을 오락과 스포츠, 섹스로 바꿔놓습니다. 그리고 가장 활발한 성업이 시작된 곳은 소위 유흥가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심야다방과 가라오케 그리고 통행금지제도가 사라지면 모두 망해버릴 줄로만 알았던 여관이 오히려 자유로운 심야 활동과 함께 더욱 성업하기 시작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 토요일 밤의 열기를 보여주는 듯한 음반 표지 하지만 그들 모두 나이트클럽의 번성에는 명함도 못 내미는 정도였으니. 그동안 젊은이들만의 공간으로 여겨지던 춤방은 무도장인 캬바레, 그리고 쇼를 보여주던 나이트클럽, 그리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음료나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던 입장식 디스코텍의 혼합 형태인 디스코 나이트가 등장함으로써 향유 연령대와 업태가 다양해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시대가 소비 지향적으로 급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