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보람기자] 토요문화학교 학생들이 드디어 '생칠'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옻칠에 신기해하는 모습이다. 첫번째 생칠을 한 학생들의 목걸이 팬던트가 건조장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잠깐!!! 옻칠건조 작업시 75~85%정도의 일정한 습도와 18~28c정도의 온도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난방과 청결에 유의해야 한다.
[그린경제=김승옹 문화전문기자] ▲ ㅁㄴㄹㅇㄹㅇㄶㄹ 그린경제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김슬옹 문화전문기자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고려시대 왜구 퇴치의 최고 장수를 들라하면 누구든 최영장군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최영장군은 고려 충숙왕(1294-1339)이 집권하던 1316년에 사헌부간관을 지낸 최원직의 아들로 태어나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새기며 성장했다. 최영장군은 훗날 이성계에게 살해된 우왕(1365-1389)의 장인으로 우왕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오르면 무덤 안내 팻말이 있다 우왕 4년(1378)에 왜구가 착량(窄梁, 지금의 강화)에 모여 승천부(昇天府)를 침입하니 최영장군은 이성계와 함께 적을 무찔렀는데 그 공적을 인정받아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서훈되었으며 우왕 6년에는 해도도통사를 겸하여 왜구방비에 힘썼다. 그러나 우왕은 가끔 엉뚱한 데가 있었다. 온나라에 왜구가 날뛰어 백성들의 삶이 곤궁한 가운데서도 놀러 다닐 생각을 했다. ▲ 무덤 입구 계단 오르기 전에 안내글 그러자 최영이 간하기를 요즘 기근이 자주 들어 백성이 살 수 없는 형편이며 또 곧 농사철인데 분별없이 왕께서 유람을 즐겨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옳지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우왕이 말하기를 우리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옛 의주로 길에는 사적 제323호로 지정된 윤관장군묘가 있다. 왕릉의 규모만큼 크고 묘역 아래 윤관 대원수가 타고 다니던 말과 교자를 묻은 의마총과 교자총도 있다. 윤관 묘 봉분 뒤에는 약 2m의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데 5년 전만 해도 그 담장 너머에는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심지원(沈之源)의 묘와 그의 할아버지 심종침(沈宗忱)과 할머니 단양우씨의 쌍분묘가 있었다. ▲ 1988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윤관 대원수의 묘역 윤관 대원수(1040년정종 6년~1111년예종 6년)는 고려 때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쪽 9성을 차지해 고려의 지도를 넓힌 명신으로 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격)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심지원(1593년선조 26년~1662년현종3년)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대사헌을 거쳐, 좌우의정과 영의정에 올랐다. 그의 아들 익현(益顯)이 효종의 딸인 숙명공주(淑明公主)에게 장가들어 사돈이 됨으로써 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심지원의 묘와 신도비는 경기도 기념물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 윤관 대원수가 타고 다녔다는 말과 교자를 묻은 의마총과 교자총 이 심지원의 묘와 윤관장군 묘를 둘러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 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냐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 고향- 가곡으로도 널리 불리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라는 시에는 오늘도 뫼 끝에라는 말이 나온다. 만일 이 부분을 정지용 시인이 산 정상에 올라라고 했으면 말의 맛은 떨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말에는 말의 맛이 있다. 뫼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지만 요즘 사람들은 거의 이 말을 잊고 산이란 말을 쓴다. 그것도 산정상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 요즘 정상 대신 마루라는 표기가 늘고 있다(왼쪽) 그러나 아직도 정상이라고 써둔 곳도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북악산에 오르면서 보니 백악정상이란 말 대신에 백악마루(북악마루)라는 말을 발견하고 무척 기뻐 사진까지 찍어 온 적이 있다. 정상이란 말은 일본말로 일본국어대사전 ≪大辞泉≫에 보면, ちょう‐じょう【頂上】1 山などのいちばん高いところ。いただ
[그린경제=서수향기자] 한국옻칠회화는 선사시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수 천 년 동안 전래되어온 문화적 뿌리인 채화칠기와 나전칠기에 기반을 두고 새롭게 그림을 그려 장식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새로운 영역의 옻칠회화이다. 영문명도 Korean Ottchil painting으로 고유명사화하여 부르고 있다. 옻칠을 사용하는 옻칠회화와 유화와는 사실상 아무런 개념적 차이는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림을 그리는 재료와 도구 그리고 미학상 아름다운 광채와 기법에 따라 장식성이 돋보이는 표현양식이다. 한국옻칠회화는 자개를 이용한 다양한 표현기법과 옻칠의 재료적 특성을 살려 회화성과 장식성이 돋보이는 독특한 화법으로 표현된다. ▲ 황 진, 옛적낚시 배, 103x91cm, 통영옻칠미술관 소장 유화와 옻칠회화의 제작상의 차이점을 말한다면 캔버스와 건조과정이다. 유화는 일반적으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지만 옻칠회화는 목태 (나무판재) 위에 옻칠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건조과정 또한 유화는 상온에서 건조가 가능하지만 옻칠은 건조실을 설치하고 건조실 내부의 온도는 섭씨 18도~28도, 습도는 75%~85%를 유지하여 8시간~12시간 내외에서 건조시킨다. 옻칠 색으로 그림을 그린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서울 낙원동에서 40년 넘게 전통 표구 작업을 해온 이효우(69) 낙원표구사 대표는 옛 사람들이 시나 편지를 쓰는 데 사용한 작은 종이인 시전지(詩箋紙) 수집가다. 전남 강진의 병풍을 제작하는 집안에서 자란 그는 10대 때 상경해 인사동 표구사에 들어가 일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국내 몇 안 되는 장황(裝潢: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책이나 화첩, 족자 등을 꾸미는 일) 장인이자 고서화 수리복원 전문가인 그가 시전지 수집을 시작한 것은 20년 전, 조선 후기 문인 이복현의 편지지를 보고 반하면서부터다 (후략) - 2010.11.15. 국민일보- 위 글에 보면 표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예전에 집 주변에 널려있던 표구집이 하나 둘 사라져 요즈음엔 인사동이나 가야 구경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하면 따라 다니는 표구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 일본 표구사들의 제57회 표구전시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표구(表具) : 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이라고 나와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본말로 우리는 예부터 장황(粧䌙)이란 말을 써 왔다. 조선왕조실록을 보자. 중종실록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덕진산성을 찾아가기로 한 그날은 개성공단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7명의 직원들이 들어온다던 날이었다. 통일대교 남단 검문소에는 수많은 취재진들이 카메라와 방송 장비를 펼쳐놓고 북쪽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검문소 한쪽 도로에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접경지역의 현장을 보기 위하여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줄을 서있었다.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 13번지. 덕진산성에 오르는 길은 자동차가 갈 수 있도록 길이 잘 나있었다. 반은 포장, 반은 비포장이라 덜커덩거리며 낮은 구릉 꼭대기에 이르렀다.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어서인지 주차장도 안내판도 잘 정비되어 있다. ▲ 덕진산성 안내판 해발 85미터. 높지 않으나 꼭대기에 서니 가슴이 탁 트인다. 눈맛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불어오는 바람도 이를 데 없이 상쾌하여 폐 속을 정화시켜주는 듯 하다. 이렇게 발 아래 펼쳐지는 임진강 하구의 장면은 평화롭기 그지없는데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뺏고 뺏기면서 수많은 전투를 치러낸 곳이라 하니 아이러니 하다. ▲ 초평도로 인해 갈라져 흐르던 임진강이 다시 합쳐서 흐른다. 멀리 통일대교가 보인다.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 산맥의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오늘 대림역12번 출구 중국동포들 많이 사는 동네에서 중국 샤브샤브 훠궈를 먹었다. 직원들이 한국어를 못했다. 주변 손님들 모두 중국어. 음식도 본토 맛 그대로. 오! 신기...담엔 여권 들고 가야겠어 -다음- 팔팔 끊는 물에 푸성귀나 얇게 저민 고기를 살짝 담가 건져 먹는 샤브샤브는 한국인들도 좋아 하는 일본요리다. 샤브샤브(しゃぶしゃぶ)라는 말은 1952년 일본 오사카에서 스테이크 요리점인 스에히로에서 팔기 시작한 요리이다. 이 요리는 1955년에 고기샤브샤브 (肉のしゃぶしゃぶ)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일설에는 몽골의 쿠빌라이 주치의 였던 홀사혜(忽思慧)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고, 한편으로는 북경의 화과(火鍋)라는 양고기 요리가 있는데 이를 일본의 민예운동가인 요시다(吉田璋也)씨가 들여와서 지금의 형태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일본의 샤브샤브 상차림, 곁들이찬(스키다시)이 없다. 문제는 샤브샤브나 오뎅(어묵), 스시(초밥), 사시미(생선회) 같은 일본 음식을 한국인들도 즐겨먹고 있는데 어떤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있고 어떤 말은 없다보니 이 말이 궁금한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오뎅과 사
[그린경제=서수향기자] 옻칠을 채취하려면 옻나무의 껍질(外皮)과 목질(木質)사이의 칠액구에 칼금으로 흠을 내고 옻칠 수액이 흘러나오게 하여 주걱으로 긁어서 수집해야 한다. 옻칠 수액이 흘러나올 때는 유백색 (乳白色)이지만 상온에서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옻나무에서 옻을 채취하는 방법은 살소법과 양생법, 화소법 (화칠법)으로 세 가지가 있다. 살소법(殺搔法)은 한 해에 칠을 다 채취한 후에 옻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움이 돋아나 7~8년 성장하면 칠액을 채취한 후 다시 베어내는 방식이다. 토지가 넓지 않아서 옻나무 재배가 한정되어 있을 때 이용하는 방법으로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한다. ▲ 살소법 성칠 채취 살소법으로 채취하는 방법은 나무의 칠액구을 절단하듯이 칼금으로 횡긋기하여 옻칠을 채취한다. ▲ 살소법 양생법(養生法)은 나무를 베지 않고 매년 혹은 격년제로 조금씩 칠액을 채취하는 방법으로 옻나무 재배가 비교적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중국, 인도차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주로 사용한다. 양생법은 칼금을 내는 방법에 따라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 양생법 입술모양으로 칼금을 내어 끝부분에 대나무 대를 꽂아 채취하는 방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