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얼레빗=이윤옥 전문기자] 어렸을 때 우리는 오재미 놀이를 즐겼다. 작은 헝겊 주머니를 만들어 모래나 콩을 넣어 만든 이것으로 상대방과 편을 짜 서로 던지고 노는 놀이다. 특히 초등학교 운동회날 장대를 높이 세우고 커다란 공 주머니를 매달아 놓고는 청군 백군 나뉘어서 오재미를 던지면 커다란 공 주머니는 팍 하고 터지는데 대부분 그 안에는 점심시간 같은 말이 쓰여 있던 기억이 난다.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진흥재단 세종특별자치시지부(지부장 조주환), 세종종합사회복지관(관장 장백기), 세종청소년자활지원관(센터장 윤성웅)이 공동주관해 23일 세종시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을 개최해 지역 청소년들과 주민들이 다양한 민속놀이를 체험했다. (중략) 특히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펼쳐진 엿치기, 오재미 던지기 경연마당을 기획해, 어르신들의 유년시절 추억을 되살려 지역 어르신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 더욱더 뜻 깊은 시간이 됐다. 지난 3월 25일 치 충청투데이에 실린 기사에는 오재미놀이를 민속놀이로 여기고 있다. 뿐만아니라 인터넷에도 이 놀이를 전통놀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오재미 놀이는 어디서 온 말일까?
[그린경제=김보람기자] 따뜻한 봄이 한발짝 다가온 3월 첫주 토요일, 통영옻칠미술관에서는 2013년꿈다락토요문화학교 [톡톡 튀는 옻칠로 장신구를 만들어라] 수업이 진행되었다.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님의 옻칠예술 설명과 함께 설레이는 첫만남을 시작하였다. ▲ [2013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통영옻칠미술관 '톡톡튀는 장신구를 만들어라' 개강식 2주차 수업주제는 '생활 속의 옻칠식기 체험' 이었다. 옻칠 식기를 만져보고 여러가지 소재의 그릇에 뜨거운 물과 바나나를 담아보고, 음료도 마셔보며, 일반 그릇에 담았을 때와 차이점을 느껴보고 관찰일지를 적었다. ▲ [2013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통영옻칠미술관 2주차 수업 '생활 속의 옻칠식기 체험'
[한국문화신문 얼레빗=서수향기자] 옻나무에서 추출되는 수액을 정제하여 만든 천연도료를 옻칠이라고 하며, 나전칠기(螺鈿漆器)의 '칠'도 옻나무 漆이라고 쓴다. 옻나무는 한자로 漆 이라고 쓰며, 영어로는 통상 Lacquer tree 또는 Rhus verniciflua 라고 불리지만, 현재는 Toxicodendron vernicifluum 이 정확한 학명이다. 옻나무는 피자식물 (被子植物)의 쌍자엽 (雙子葉) 식물로써, 옻칠나무과 (漆樹科) 에 속한 식물은 전세계적으로 70여속 (餘屬) 600여종 (餘種) 이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 양자강을 중심으로 북쪽은 압록강, 남쪽은 인도차이나 반도와 베트남 등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한국에는 참옻나무, 개옻나무, 붉나무, 검양옻나무, 산검양옻나무 등의 종류가 있다. 그 중 Toxicodendron vernicifluum (참옻나무) 에서 옻칠작품에 쓰이는 옻칠을 채취하여 사용한다. ▲ 옻나무 (부분) 옻나무는 20m 정도까지 자랄 수 있으며 타원형 달걀모양의 잎사귀가 쌍자엽으로 뻗는 것이 특징이다. 열매는 작고 동그란 형태로 여러 개 뭉쳐져 있으며 푸른 흑색의 매끈한 수피에 가로로 튼 무늬가 있다. 옻나무는 토양, 기
[그린경제=서수향기자]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정제하여 만든 옻칠을 주재료로 하여 제작한 예술을 옻칠예술이라한다. 예전에 화학도료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도료를 가리키는 단어 자체가 칠(漆)이였다고 한다. 옻칠은 나라마다 각기 다르게 불린다. 한국에선 옻칠이라고 하고 일본은 Urushi (うるし), 중국은 漆 [qī]라고한다. 옻칠을 이용한 문화는 주로 동아시아지역. 특히 한국, 일본, 중국에서 발달하였고 나라별로 즐겨쓰고 발달한 기법 또한 다르다. 한국은 자개로 장식을 한 나전칠 기법이 발달하였고, 일본은 작은 금알갱이나 금ㆍ은, 색 가루 등을 뿌려 장식을 하는 마끼에 (まき-え [蒔絵])가, 중국은 옻칠을 한 표면에 조각을 하는 조칠(雕漆)이 발달하였다. 동아시아의 옻칠공예는 그 기원이 900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한국의 옻칠공예는 기원전 4세기 경에 시작되어 기원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약 400년 동안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창원 다호리 고분의 옻칠유물 (붓대, 부채, 원형칠두 (제기), 방형칠두 등)이 있다. 특히 원형칠두와 방형칠두는 원형 그대로 발굴되었다. ▲ 원형칠두 삼국시대와 통일신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1999년 10월 9일 한글날, 언론은 “국립국어연구원(국어원의 전신) 이 1992년부터 심혈을 기울인 끝에 드디어 ≪표준국어대사전≫은 드디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이 사전은 국비와 발행처인 두산동아의 투자비를 합쳐 112억 원을 들인 것으로 나라가 직접 국어사전을 펴낸 것은 처음이었다. 전체 쪽수는 무려 7,300여 쪽에 달해 보통 4,00여 쪽인 기존 국어대사전보다 무려 곱절 가까이 되었다. 펴내는 데는 박사 과정 수료 이상의 국어학 전공자가 200여명이 참여하여 집필과 교열을 맡았고, 전문어는 따로 120여 명의 해당 전문가에게 감수를 받았다. 당시 국립국어연구원은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내면서 자랑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가장 두르러진 특징은 한글맞춤법, 표준어규정, 외래어표기법 등 현행 어문규정에 정해진 원칙을 구체적인 단어 하나하나에 적용해 사전을 찾는 사람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했다. 또 한민족 언어 동질성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어 7만 개를 실었고, 5,000만 어절 분량의 자료를 입수해 그동안 국어사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부족한 예문’을 해소했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저 큰소리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1-1. 비틀즈만 있나? 조선엔 밀리언셀러 임방울이 있었다 ▲ 일제강점기 '쑥대머리'로 120만 장의 음반을 판 임방울 명창 예전엔 음반 백만 장을 판 가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십만 장 팔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백십이만 장을 판 사람이 있었다. 지금이야 집에 누구든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 한 대쯤은 가지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새까맣고 넓은 SP라는 음반을 유성기라는 기기에 얹고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야 음악이 나오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유성기는 부잣집만 가지고 있었으니까 몇 천 대나 있었을까? 그런 그때 조선(한국)과 일본 그리고 만주에서 판소리 음반 120만 장을 판 사람이 있었다. 바로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로 유명한 임방울 명창이 그다. 임방울 명창은 쑥대머리를 부르며 일제강점기의 비참한 민족현실과 가난에 대한 한스러움을 춘향의 신세에 견주어 울분의 소리를 토해냈다. 목이 잡혔다 트였다 하기를 수십 번 가슴이 붓고 목에서 피가 쏟아지는 고비를 거듭하여 비로소 제대로 소리하게 된 임방울은 외삼촌인 국창 김창환의 도움으로 25살에 서울로 올라와 첫무대에서 쑥대머리를 불러 선풍을 일으
▲ 9대 종부로 운조루를 지키고 있는 이길순 할머니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굴뚝을 섬돌 밑으로 내어라. 그래서 밥 짓는 연기가 멀리서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쌀이 없어 밥을 지을 수 없는 사람에겐 밥 짓는 연기만 보여도 속상할 수 있느니. 위는 양식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 말로 구례 운조루(전남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 (오미리))를 지은 문화 류씨 류이주(1726~1797) 선생이 235년 전에 한 말이다. 굴뚝은 원래 불을 땔 때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만든 구조물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연기가 잘 빠져나가도록 하늘을 올려다보게 굴뚝을 만드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굴뚝을 섬돌 밑으로 가게 하라니 이 무슨 말이던가? 요즘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기는커녕 어떻게든 가난한 이들의 쌀 한 톨까지 빼앗으려 안달한다. 재벌기업이 골목상권까지 모조리 휩쓸어 사회문제로까지 부각되어 결국은 나라에서 나서게까지 되었다. 이런 세태에 우리는 운조루 정신을 되새겨봄직하다. ▲ 섬돌 밑을 기게 한 운조루만의 굴뚝 ▲ 아무나 퍼갈 수 있게 한 타인능해 쌀뒤주 굴뚝뿐만이 아니다. 운조루에는 아주 희귀한 쌀뒤주가 있는 데 他人能解(타인
[그린경제=김영조문화전문기자] 그동안 공휴일에서 빠져있던 한글날이 올해부터는 공휴일이 되었다. 이제 세계 최고의 글자 한글을 기리는 한글날은 이름 그대로 국가가 인정하는 날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자말이나 영어에 푹 빠져 우리 말글의 중요성을 모를뿐더러 서슴없이 짓밟기도 한다. 특히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의 말이나 글을 보면 어려운 한자말이나 영어를 심하게 섞어 버무리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마치 영어나 한자말이 아니면 글 한 줄 완성하기 어렵다는 식이다. 정말 그럴까? 다행히 문학작품에서는 우리 말글을 살려 쓰고 있어 위안을 받는다. 소설의 예를 보자. 소설은 그 시대의 현실 언어를 가장 잘 반영한다고 한다. 국립국어원에서 1990년대 현대소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토박이말과 한자어를 살펴보면, 50위 안에 든 한자말은 33위에 '여자'란 한 낱말이 있을 뿐이며, 100위 안에도 여덟 단어 정도이다. 이것은 사전에 실린 한자어가 우리말 전체의 70%나 된다고 하지만, 실제 말글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낮음을 말해준다. 소설에서 그렇다면 입말에서는 더더욱 입말에서는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자말을 쓰는 것이 말글생활
김성수최종관서유승 등 작가 10명 참여 [그린경제=노정용기자] '천년의 신비' 옻칠. 그동안 옻칠은 가구나 생활용품에 친환경 도료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이 같은 옻칠이 최근 '옻칠회화'라는 새로운 예술장르를 탄생시키며 선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 김성수_2013_동행_1240x890mm 옻칠의 고장으로 불리는 통영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통영옻칠미술관 소속 작가들이 오는 23일까지 경남 창원 대우갤러리에서 옻칠회화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한국옻칠예술작품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옻칠예술의 새로운 탄생과 현대화로 '천년의 신비' 옻칠문화를 경남도 브랜드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통영옻칠미술관과 경남자동차판매(주)가 메세나 협약을 통해 공동 주최했다. ▲ 김성수_2013_원반 전시에는 60여 년 간 옻칠예술에 몰두해온 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최종관, 김설, 최민우, 서유승, 최은란, 하정선, 김미옥, 이진숙, 서수향 작가의 옻칠공예와 옻칠회화 작품이 선을 보인다. 나전칠기와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원반, 운하 보석함, 육각보석함, 붉은 협저탈태칠기를 비롯해 한려수도와 통영의 풍경과 꽃, 동물 등 다양한 소재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옻칠회
누군들 알손가 봄 번개 가슴속을 움 트는 철이라 햇빛은 고맙고만 올 여름 여무는 벼는 차기를 바라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