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불여름(2) 오르며 뒷쪽 찾고 내리며 마쪽 찾고 숨 사이 캄캄길을 얼빠진 사람이냥 아히유 미리내 아래 잠 못 이룰 나그네. * 뒤쪽 : 북쪽, 마쪽 : 남쪽 * 캄캄길 : 암흑길, 미리내 : 은하수 왜정 때 나라와 땅 빼앗긴 우리 한겨레는 목숨을 이으려고 북에 가고 또 만주 땅도 찾았다가 별수가 없어 또 남쪽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흔했다. 헐벗고 굶주리던 우리 한겨레는 올 데 갈 데 없는 귀신과도 같았다. 그러나 은하수를 우러러보면서 고향을 생각하고 되찾아야 할 조국을 생각했다.
20. 불여름(1) 믿고장 숨은 노래 남기신 어머님은 넋모실 깊은 밤에 저승서 보내느니 언제면 아아 언제면 달래 드릴 날 오랴. * 믿고장 : 고향 * 넋모실 : 제사 지낼 일제에게 끌려 온 재일 한겨레는 교육을 덜 받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일제가 배움길을 막거나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 모르는 어머니라 해도 옛이야기와 자장가는 많이 알고 있어 어린 자식들에게 들려주었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신 뒷 날 그것이 한 얼을 키우는데 큰 힘과 슬기와 겨레 얼넋을 기르는데 큰 밑천이 되었다.
올해도 또 찾아온 겨레의 얼이어라 더위를 이겨내는 너이기에 아름답고 먼길을 오는 갈빛도 너인가 하노라.
벗 물결은 어디 가나 믿고장 닿을 것을 그대는 바람인양 하늘땅 헤매느나 동강난 우리 믿나라 뜻 못이룬 사내어니 젊은 벗이 밥통 앓이가 깊어 그만 숨졌다. 누린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사람에게는 다 박힌 나이가 있다고 하나 그 틀은 쇠로 된 것이 아니라 고무 같은 것이니 스스로 늘일 수 있다고도 한다.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고 내던지지 말고 때로는 악물고 살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닐까?
. 다 살아 몸 곪아도 다 늙어 몽당돼도 마음은 오직 하나 믿나라 풀흙돼료 남 땅에 몸을 세워도 아리랑 뼈 되잔다. 제 뜻이든 아니든 남나라에 오래 머물어 살면 외로움을 견디면서 얼을 지키고 사는가 아니면 남나라에 파묻혀 살면서 그 나라 사람이 되는가 하는 두 길밖에 없다. 재일동포는 다는 아니라도 많은 사람이 왜정 때 총칼힘으로 끌려 온 신세이니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이 귀화하여 '신 일본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민족의 얼을 꿋꿋이 지킨 사람들이 우리 말과 거룩한 한글을 지키면서 살았고 살고 있다.
바다 떠날 땐 바윗물이 닿으니 어이 짜냐 짝사랑 사나이의 눈물이라 하는데 하늘은 어디를 가고 땅 또한 어디 있나. 골 : 만 즈믄 : 천 골골히 : 영원히 바윗물로 떨어진 가람 물은 바다로 닿아 골골히 마를 줄 모르고 힘세고 넓은 즈믄 골 동아리가 되지만 소금을 지녀 그냥 마실 수는 없다. 따라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가람은 소중히 여겨 보내지 말고 바르게 다스려야 한다.
무 대 식히려 뒷쪽가고 데우려 마쪽 가나 오르고 내리고 새쪽 가고 갈쪽 가도 언제나 한 집안이라 상냥케 마주치네. 무대: 해류 뒷쪽: 북쪽 마쪽: 남쪽 새쪽: 동쪽 갈쪽: 서쪽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곶나라(반도 나라)여서 세 쪽이 바다다. 바닷물은 ‘남’도 ‘북’도 헤아리지 않고 한 해 열두 달 흐르며 오간다. 그런데 얼 담고 사는 우리는 쭈삣하면 ‘남’이요, ‘북’이요 하고 잘 맞선다. 무대처럼 서로 흘러가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뜨거우면 식혀야 하고 차면 데워야 몸과 맘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가?
뭍바람(2) 바람은 내 바람냐 알몸은 내것일까 멀어져 더 멀어져 외쳤던 피 타는 소리 어호야 늦마 되어서 건너보자 옛 여울. 바람 : 소원.희망.꿈 바람냐 : 바람이냐 늦마 : 서남 쪽으로 부는 바람 사람은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되어 있어야 곧게 앞날을 내다볼 수 있고 힘이 나고 슬기도 돋는다. 그러나 재일동포는 일본사회의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천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왔기에 아무리 머리가 우수하고 인품이 있어도 맘과 꿈을 다 포기하여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새 일본인이 되든지 똑똑한 이는 '주먹'세계서 도사리면서 사는 이가 적지 않았다. 믿나라 위정자들도 재일동포를 버린지 오래된다. 그러니 지금도 연금 없이 살지 않으면 안 된 노인들이 많다. 넉넉한 나라 대한민국이 있는데도… 믿나라가 그렇게 냉냉해도 재일동포들은 그래도 건너온 옛 여울(현해탄)을 다시 되건너 고향에 묻히고 싶은 것이다.
뭍바람(1) 해달은 끊임없이 오갈 날 잇돋는데 어제는 스승 가고 오늘은 또래 가고 남나라 눈칫밥이면 이런 일은 흔한 일. 뭍바람 ; 육풍.고향 쪽서 불어 오는 바람 해달 ; 세월 오갈 날 ; 오고 가는 날. 어제와 오늘 잇돋는데 ; 이어 돋는데. 계속하는데 "타향살이 10년이면 …내 고향되는 것을…"이라는 흘러간 노래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타향"으로 마감을 짓는데, 왜정 때 징용으로 끌려온 재일동포들은 죽어도 목비 하나 세울 곳도 없었다.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은 다 '빨강이'어서 고향을 찾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런 때면 서쪽을 향하여 울었다. 재일본 한국문인협회 회장 김리박
먼 곳이 하늘이면 이웃은 한울이요 밝음이 오는 날면 어둠은 오늘이네 그러리 밀물 썰물이 죽살이라 할까나 *한울 : 큰 나, 온 세상 곧 우주의 본체 오는 날면 : 오는 날이면 죽살이 : 인생,생애,평생 일본땅에 오래 머물어 살면, 일본땅과 일본 사람들이 못되어 밉고 침 뱉고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어쩌다가 정이 들어, 정이 들고 보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늘은 '한울'이 된 일이 적지 않다, 곧 우리 '이웃'이 된 것이다. 사람은 썩은 미움과 더러운 욕심을 품지 않고 안 돋구면 다 한집안 사람이 된다. 계절에 봄과 가을이 있고 여름과 겨울이 있듯이 인생에도 맘이 뜰 때가 있고 깔아 앉혀야 할 때가 있고 땀이 뻘뻘 흐르는 힘겨울 때가 있고 추위에 벌벌 떨 때도 있다. 그때 그 처지를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따라 사람의 값어치가 오르내린다. 우리 재일동포는 오랫동안 모국이 던져 주는 ‘콩밥’을 얻어먹고 '누더기'를 입고 다녔지만 '수구초심', 한 때도 모국을 잊지 않고 고향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믿나라·(본국) 사람들은 눈물겹고 분한 그런 역사와 처지를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