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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나타난 그러나 평생 못 잊는 사랑

<메밀꽃 필 무렵>ㆍ<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견줌 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매디슨은 장편 소설이다. 번역본 초판은 ㈜시공사에서 1993년에 펴냈다. 내가 가진 개정판은 2011년에 21쇄를 찍은 문고판이다. 내가 쪽수를 조사해보니 서문부터 시작하여 ‘책을 쓰고 나서’라는 별도의 후문까지 무려 200쪽에 달한다.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는 물론 사건의 전개와 분위기 묘사까지 아주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메밀꽃은 처녀총각의 이야기다. 허생원의 나이를 짐작할 단서가 없지만, 혼인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성서방네 처녀는 봉평에서 소문난 미인이었다.

 

메디슨은 기혼 남녀의 이야기이다. 프란체스카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 평범한 유부녀다. 혼인에 실패한 킨케이드는 아이가 없는 이혼남이었다. 그는 사진기를 들고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외로운 방랑자였다.

 

메밀꽃에서 작가는 남자인 허생원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아마도 1930년대 어느 여름에, 봉평장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수묵화 그리듯이 그려낸다.

 

메디슨에서는 작가는 여자인 프란체스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사건은 아이오아주 매디슨 카운티라는 시골 마을에서 1965년 8월에 일어났다. 작가는 제3자의 관점에서 프란체스카의 집과 마을과 시골 생활, 킨케이드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심리 변화를 세밀화 그리듯이 섬세하게 묘사한다.

 

메밀꽃에서 여자는 처음 만난 남자에게 한순간에 무너진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분위기 탓이었을 것이다. 메밀밭은 소금을 뿌린 듯이 하얗고 달빛이 교교한 밤이다.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가 처얼썩 처얼썩 들리는 방아간이라는 기묘한 분위기에 젖어 여자는 낯선 남자에게 몸을 맡긴다.

 

메디슨에서 여자는 남자를 만난 지 하루 만에 육체의 문을 연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끌려 다리에 가 보고, 식사 초대를 하고, 포도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고 등등 모든 절차를 다 거친 뒤에 남자를 허락한다.

 

메밀꽃에서 두 남녀는 어두운 물방앗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마음이 열린다. 무엇에 홀린 듯이, 번갯불에 콩 튀어 먹듯이 단 한 번의 정사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는 헤어진다.

 

메디슨에서 두 남녀는 시골집에서 4일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낸다. 좋은 침대에서 격식 있는 정사를 여러 번 가진다.

 

메밀꽃에서 정사 장면의 묘사는 매우 추상적이며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 장면은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라고 단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있다. 독자는 달밤에 물방앗간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을 나름대로 상상하게 된다.

 

매디슨에서 정사 장면은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킨케이드는 이제 그녀 안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도 그의 안으로 떨어졌다. 프란체스카는 그의 뺨에서 뺨을 떼고, 검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고, 그녀도 그에게 입맞춤했다. 부드럽고 오랜 키스가 강이 되어 흘려들었다. 그들은 춤을 핑계로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프란체스카는 팔을 그의 목에 둘렀다. 그는 왼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안고,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목덜미와 볼,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이 지난 뒤,

 

메밀꽃에서 허생원은 사건 이후에 여자를 찾으러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여자를 찾지 못했다. 여자는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하나 처녀의 꼴은 꿩 궈먹은 자리야. 첫날 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매디슨에서 킨케이드는 사건 이후에 함께 마을을 떠나자고 여자에게 제안한다. 그러나 남편과 두 자녀에 대한 의무를 저버릴 수 없는 프란체스카는 울면서 헤어진다. 이별의 장면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마침내 그는 포옹을 풀고, 트럭에 올라가 운전석에 앉았다. 문은 열어둔 채였다.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사람은 서로 주소를 알고 있었다. 편지를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연락하지 않았다.

 

메밀꽃에서 허생원은 그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소설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허생원은 오늘 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백이도록 들어 왔다.”

동이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떠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허생원과 동이가 다음과 같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매디슨에서 킨케이드는 그 이야기를 가슴에 묻어둔 채 죽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프란체스카 역시 그 이야기를 평생 간직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 묻어만 둔다. 남편은 그 이야기를 모른 채 죽고, 두 자녀는 어머니가 죽은 뒤 유품 속 편지를 통해 비로소 그 이야기를 알게 된다.

 

나는 두 소설을 밑줄까지 쳐 가면서 정독한 후에 차이점을 여덟 가지나 찾아냈다.

그러면 두 소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나는 세 가지를 찾아내었다.

 

첫째 두 소설 모두 ‘우연히 나타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래 살아본 사람은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생을 뒤돌아보면, 사랑이란 푸른 하늘에 우연히 나타나는 구름과 같은 것이다. 여름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것이 사랑이다. 언제 어디에서 사랑의 상대가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사랑의 상대는 그저 우연히 나타나는 법인가 보다.

 

메밀꽃에서 허생원은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갔다.

 

매디슨에서 킨케이드는 “트럭을 운전하여 다리를 찾다가 길을 잃어서 이층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둘째 우연히 나타나지만, 평생 못 잊는 것이 사랑이다. 이루어지지 못해도 그 여운은 평생을 가는 것이 사랑이다. 때로는 죽음을 넘어서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랑이다.

 

메밀꽃에서 허생원은 장돌뱅이로 무려 20년이나 봉평장을 드나들었다. 허생원은 그녀를 만난다면 언제라도 같이 살겠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매디슨에서 킨케이드는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먼저 죽게 된다, 그는 변호사에게 편지와 유품을 그녀에게 전달하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녀에게 편지를 써서 유골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뿌려달라고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