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 강토는 70% 이상이 산악지형으로 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고을은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각 지방 지명에 뫼 산자가 들어가는 곳이 가장 많은 이유가 되었다. 필자가 태어난 곳 역시 깊은 산골이어서 지평선이 무엇인지 상상으로만 그리며 자랐다. 우리 학급에서 내가 가장 먼저 기차도 타보고 도회지 구경을 한 아이일 정도였다. 시집 온 후로 장터 외에는 한 번도 바깥세상을 구경해보지 못한 부녀자들이 수두룩하였다. 그러한 지리적 여건들이 우리 민족을 좁은 고을 안에 정주하게 만들었고,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고개는 내부세계와 외부세계를 구분 짓는 경계가 되었다. 외부의 이방인이나 신문물이 고개를 통해 들어왔고 야망을 품은 남정네들이 고개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기도 하였다. 고개를 넘어간 남정네 가운데는 다시 고개를 넘어오지 못 한 이들도 많았고 그로 인하여 고개는 한(恨)과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나아가서는 고개 안쪽은 현실세계요, 고개 너머는 영(靈)의 세계로까지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갯마루에 장승을 세우거나 서낭당을 짓고 외부로부터의 잡귀를 막거나 고개를 오가는 이들의 무사안녕을 빌었다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천체물리학의 태두(泰斗)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 이후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 팽창이 멈추는 시점이 오고 그 뒤엔 반대로 수축하며 따라서 시간도 역전하여 과거와 미래가 뒤바뀐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순간으로 다시 올 것이고 우리가 두고 온 그리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젊어서는 꿈을 먹고살고 늙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처럼 추억을 찾아 방황하는 나의 발길은 1970년대로 돌아가 쇼의 열기가 한창인 어느 극장 앞에 멈추었다. TV 보급률이 낮던 그 시절 극장 쇼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쇼가 있는 날은 온 동네가 술렁거렸고 특히 뒷골목 청년들은 마치 제가 장가라도 드는 양 얼굴이 발개져 들떠 있었다. 극장 쇼의 백미는 유명가수의 순서가 아니라 소위 양아치 클럽이라 불리는 극장 쇼 스타들의 무대였다. 무대에선 정장을 하는 게 통념이던 시절 청바지를 즐겨 입었던 정원, 트위스트김, 쟈니 리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가운데 쟈니리가 뜨거운 안녕을 흐느끼며 열창하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 쟈니 리의 뜨거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새까만 나날이었다. 산도 까맣고 떡갈나무 잎도 까맣고 길도 까맸다. 옆집 경현이는 미술시간에 개울물을 까맣게 그려 놓았다. 바람마저 까매서 새로 산 난닝구가 금방 검정색이 되었다. 만경대산 꼭대기, 구름이 모여드는 동네라 하여 모운동. 탄광 동네에 가면 그래도 먹고 살 것이 있다하여 어머니는 여덟 살 배기 아들을 끌고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장사라면 닥치는 대로 무엇이건 떼어다 팔았다. 차비를 아끼려고 영월도 제천도 걸어 다녔다. 어떤 때는 살쾡이에게 미행당하며 머릿짐을 인 채 밤길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늘 혼자였다. 쉰 나물밥 한술 뜨고 엄마가 돌아오는 산길을 건너다보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어머이 어머이 어머이 ... 이웃들 모두 잠들고 메아리도 목이 멜쯤이면 누군가가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일으켜 세우곤 하였다.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고 꼬옥 안아 주기도 하였으며, 자기 집으로 데려가 이밥도 먹이고 공부도 가르쳐 주었다.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선생님. 웃을 때 눈모양이 초승달 같던 나의 선생님. 간절히 그리운 마음을 To sir with love를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나이는 약45억 살쯤 되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우리 인간의 시간개념으로는 무척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데, 그건 인간의 수명이 지구 나이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매우 짧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는 생성 후 8억년 정도가 흐른 후 원시박테리아에 의해 최초의 생명활동을 시작한다. 그 몇 억년 후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생물인 남조류가 출현하여 산소를 만들어 내면서 동식물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변화해갔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30억년 가까운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으로부터 6억 년 전쯤 다세포생물의 등장으로 지구는 녹색혁명과 함께 다양한 동식물이 진화하는데, 지질학에선 이때까지 40억년 가까운 기간을 은생누대, 그 이후를 현생누대로 구분 짓는다. 그 기나긴 지구의 역사에서 우리 인류의 출현은 극히 최근의 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인류의 조상 지위를 부여한다 하더라도 고작 300 만년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서도 현생인류가 나타나 문명생활을 시작한 것은 채 일만 년을 넘지 못한다. 그 기간에 인류는 지구의 자원을 거의 고갈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이라는 찰나와도 같은 짧디짧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어슴푸레 윤곽만 보였다. 출입문이 선자령을 마주보는 까닭에, 하오의 역광을 받은 그의 모습은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직 개점준비가 덜된 터라 되돌려 보내려 했으나, 벽면을 빼곡히 채운 음반을 보고 경탄하며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에 얼설픈 청소를 마치고 그를 맞았다. 그는 엉덩이를 채 붙이기도 전에 영화를 만나라는 노래가 있느냐고 물었다. 목이 무척 타는 것 같았다. 수분부족에서 오는 갈증이 아니라 영화를 만나에 대한 목마름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짐짓 아끼는 음악일수록 호흡을 가다듬고 들어야지 감동이 배가됩니다. 무슨 불문율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를 깔며 그에게 맥주부터 한 잔 권했다. 그는 그동안 강릉은 여러 차례 다녀가서 웬만한 곳은 다 둘러보았기에 이제는 강릉의 속살을 보고 싶다하였다. 택시를 몇 번씩 갈아타가며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헤매다 천신만고 끝에 이곳을 발견하여 행운이라며 흡족해했다. 그의 호흡이 진정되는 것 같고, 약간의 알코올기도 도는 것 같아 나는 예고 없이 사월과 오월의 영화를 만나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노래가 시작되자 그는 말문을 닫더니 첫 소절이 끝나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소풍을 가면 요즘 학생들이야 슬기전화(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가겠지만, 소위 70,80세대들은 한 반에 두 세 명 정도는 휴대용 전축(야외전축)을 들고 소풍을 갔다. 소풍장소에 도착하면 선생님의 눈을 피해 적당히 으슥한 곳에 자리를 잡고 그걸 틀어놓고는 트위스트며 고고 춤을 신나게 춰댔다. 교복바지에 천을 잇대어 나팔바지를 만들어 입고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도 내보고,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며 톰 존스를 베끼기도 했다. 흩날릴 머리카락도 없는 빡빡머리를 정신없이 흔들며 소울 춤도 추고 개다리 춤도 추며 억눌린 젊음의 욕구를 발산해냈다.그 당시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를 청년문화의 3대요소라 불렀지만 그건 유감천만의 말씀이다. 어느 통기타가수가 야간업소에서 별 뜻 없이 던진 한마디가 유행어가 되고 말았는데, 야외전축을 뺀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기억해 보라! 프라우드 메리, 버닝 러브, 슈가 슈가, 디지, 필링 소 굿, 인디언 보호구역.기억만으로도 마음이 아련해오고 기분 좋아지는 노래제목이 아닌가. 그 시절 야외전축은 청년문화의 최우선 순위의 필수품이었다. 그 야외전축 나비효과가 음악다방의 전성기를 불러왔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그 때도 사월이었다. 강가의 조약돌 같이 옹골차게 생긴 그녀가 내게 처음 오던 날이. 세상은 어지러웠다. 철옹성 같던 유신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더 단단한 성을 쌓으려는 세력들의 이름이 연일 매스미디어를 장식하던 때였다. 나는 그 시절 서울의 한 음악 감상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유채 밭이 노란 물결로 출렁인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날, 근무를 마치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솔깃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형, 제가 여자 소개해 드릴까요? 형 하고 잘 통할 것 같은 친구예요. 나는 그때 그 후배의 소개로 한 여성과 평생 지울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다. 그녀를 처음 볼 때부터 왠지 낯설지가 않았고, 그녀 역시 어디서 나를 많이 본 듯하다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첫 만남부터 마음이 통한 우리는 머잖아 금병산으로 봄맞이 산행에 나섰다. 진달래꽃이 무더기로 피어난 산풍경은 동화책 삽화 같았다. 그녀는 세상에서 봄이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김유정이 이런 곳에서 태어났으니 봄봄 같은 가작들이 나오지 않았겠느냐며 환히 웃었다. 그녀는 음악도 많이 알고 있었지만 문학에 대한 식견도 대단했다. 이상(李想)을 논하더니 소월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언제부터인가 봄이 좋아졌다. 청년시절엔 낙엽마저 다 떨어진 11월의 쓸쓸함이 그렇게 좋더니. 오늘은 원조 비바리가수 백난아의 찔레꽃을 감상하며 고향의 오솔길을 거닐어 본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춥니다. 그리운 고향아 백난아는 1925년 제주에서 오금숙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 후 함경도 청진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 하였고 서울양재고등여숙을 졸업하였다. 1940년에 개최된 제1회 레코드 예술상이란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2위로 입상하며 가요계에 입문하였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김교성의 눈에 들어 진방남과 함께 태평 레코드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김교성은 콩쿠르를 통해 신인가수를 많이 발굴해내 콩쿨대왕이란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백난아라는 이름은 선배가수 백년설이 지어 줬으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오늘 날 전 세계의 대중음악은 대부분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음악들이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속성을 지니는데, 여기서 높은 곳과 낮은 곳은 문화의 우수성 외에도 국력을 포함하기도 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무력으로 그리스를 지배했지만, 우수한 그리스 문화만큼은 흠모하여 앞 다투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제국 전역에 전파하여 찬란한 꽃을 피우게 했다. 그리스문화의 우수성과 로마제국의 국력이 이루어낸 합작품이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중국문화가 높은 곳 역할을 했다. 한자문화권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중국문화의 짙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국력이 막강했음에도 자기네 문화를 전파하지 못한 나라가 있다. 몽골제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광대한 대제국을 건설하였지만 변변한 문화를 지니지 못해 전파는 고사하고 오히려 지배지의 문화에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별로 뛰어 나지는 못하지만 국력 덕택에 세계를 휩쓸고 있는 문화가 있으니 바로 미국문화이다. 특히, 영화와 대중음악이 본보기로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로큰롤이 기폭제 역할을 하였는데, 일부를 제외한 거개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봄의 전령사 얼음새꽃이 피었는가 싶더니 어느새 매화가 만발이다. 멀리 청옥산은 아직 하얀 솜두루마기를 걸치고 웅크리고 있는데 삼화벌판엔 벌써 청보리가 한 뼘이다. 온갖 멧새 때 소리에 아침이 앞당겨져 양달 쪽 목련은 나발을 불고, 복사꽃 망울 속엔 연지가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먼저 피려고 꽃잎들이 다투는 소리에 밤마다 들뜬 잠을 잔다. 이미 남녘에선 벚꽃 개화소식이 들려오니 머잖아 상춘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다닐 것이다. 누구나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얼굴이 환해지지만, 꽃잎을 보면 떠나간 연인이 생각나 슬퍼진다고 노래하는 여인이 있어 소개한다. 나는 그룹 에드 포의 운영에 한계를 느껴 해산을 하고 미8군 무대 복귀를 결정 하였다. 새로운 밴드 결성에 있어 실력자들을 쉽게 영입할 수 있었으나 여성 보컬이 필요했다. 마땅한 적임자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중 우연히 한 신인여가수가 무대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실력에 반해 즉석에서 발탁하여 팀에 합류 시켰다. 그 여가수가 바로 이정화이다. 그때가 1966년으로 팀 이름은 덩키스였다. 우리는 8군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정화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