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아침에 배곳에 가자마자 하루 일을 챙겼습니다. 마치고 밖에 나갈 일이 있는데 가만 보니 나가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서둘러 만나기로 한 분께 못 가겠다고 기별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말틀(전화)을 끊자마자 제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 가겠다는 기별을 드리는 수선을 떨어서 좀 열없었습니다. 좀 더 꼼꼼하게 알아보고 기별을 해도 늦지 않은데 말이지요. 5배해(학년) 아이들이 헤엄(수영)을 배우러 가는 바람에 다른 일을 챙길 겨를이 났습니다. 해 달라는 것도 있었고 보낼 것도 있었습니다. 일을 하느라 때새(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새 낮밥(점심) 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배꼽 때틀(시계)이 먼저 알려주긴 했지만 일을 하느라 참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낮밥을 맛있게 먹고와서 다시 셈틀(컴퓨터)에 앉았는데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꼭 보여 줄 것이 있어서 다시 껐다가 켰는데도 안 되더군요. 그래서 다시 억지로 껐다가 켜니 되어서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보니 들갈무리모(유에스비)가 망가져 있었습니다. 하던 일거리가 다 담겨 있는데 토박이말 맛보기 틀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레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어제 토박이말바라기 어버이 동아리 모임이 있었습니다. 늘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분들이 오셔서 '토박이말 맛보기1' 책에 나오는 토박이말과 아랑곳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나간 제 하루와 얽힌 이야기인데 책에 다 담지 못한 것을 풀어 이야기해 드렸지요. 글로 다 이야기하지 못한 것을 나눌 수도 있고 토박이말의 뜻과 보기를 더 잘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뒤낮(오후)에 토박이말바라기 푸름이 동아리 아이들과 토박이말 놀배움을 해 주러 오신 이영선, 이진희 두 분과 더 많은 분들께 이야기를 들려 드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노래와 이야기를 곁들이고 마음이 있는 분들이 오셔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면 더 좋겠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토박이말 맛보기1'에 나오는 토박이말이 들어 간 '놀이딱지'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더 자주 만나 슬기를 나누면 더 좋은 수가 나올 것입니다. '토박이말바라기' 모람(회원)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더욱 힘을 써야겠습니다. 오늘 맛보여 드리는 '갈음하다'는 어제 맛본 '갈음옷'과 이어지는 말이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인사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어제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그제 저녁에 부는 바람이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인가 싶었는데 맞았나 봅니다. 제가 배곳으로 가는 때는 더 많이 내렸습니다. 바람까지 불어서 더 많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밖에 나갈 일이 있어 걱정이 되었는데 갈 때는 비가 많이 와도 올 때는 그리 많이 내리지 않아 좀 나았습니다. 먼 길을 다녀와서 그런지 앞낮(오전)부터 몸이 좀 무거웠습니다. 하품도 자주 나오고 몸이 자꾸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토닥토닥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숨 자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찌짐을 먹고 낮잠을 잤던 일도 생각났습니다.^^ 오늘 맛보시는 '갈음옷'은 우리가 흔히 쓰는 '여벌옷'과 뜻이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여벌옷'이란 말이 한자 '남을 여'에 옷을 셀 때 쓰는 '벌'을 더한 데다가 다시 '옷'이 붙은 좀 얄궂은 말입니다. 집을 떠나 나들이를 갈 때 또 일을 하러 갈 때 꼭 챙기는 것이면서 잘 몰라서 못 쓰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으로 '여벌' 또는 '여벌옷'을 써야 할 때 떠올려 써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한국 독자들에게 중국 조선족 문학이 다른 지역 한국계 이주자 문학보다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공용어 이외의 각 민족의 독자적인 언어, 문화를 허용해온 중국 특유의 소수민족 정책 때문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민족언어와 공동체의 고유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제도, 민족의 역사문화를 연구하는 연구기관, 민족어를 사용하는 매체(방송, 신문)와 독자적인 문단이 형성되어 있다. 앞에서 인용한 석화 시에는 중국의 동북3성 연변지역에 처음으로 이주, 정착했던 시인 자신의 조상 이야기가 들어 있으며 가족을 주제로 한 시에도 그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가 등장한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 조밭 김 매시 듯 가꿔오신 살림살이에 / 즐겁던 일 노엽던 일 아프던 일이 / 두벌김 가라지만큼이나 많았겠지만 / 말로 해서 조 이삭 영근다더냐는 듯이 / 언제나 몸을 먼저 움직이던 아버지” 그의 시작품은 이렇게 조상들이 살아온 땅과 자연에 뿌리박고 있으며 중국 조선족 사회가 대대로 이어온 역사, 풍속, 문화를 창작의 원천으로 대하면서 이를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최근 해외 이주자 문학, 동포 문학에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지난 닷날(금요일) 들말마을배곳 갈침이(교사) 모임을 했습니다. 살려 쓸 토박이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 이야기에 이어 토박이말을 잘 살린 노래를 노랫말을 되새기며 불러 보기도 했습니다. 노랫말이 제가 이제까지 해 온 토박이말 사랑과 딱 맞아 떨어져 더 와닿는 노래였습니다. 다들 노래를 듣고 좋아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버이 모임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배곳(학교) 안에 계신 갈침이(교사)들 모임이 더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커졌습니다. 엿날(토요일)에는 갈모임(학회)에 다녀왔습니다. 나라 밖에 나가서 우리나라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해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런 일을 해 보고 싶은 꿈을 꾸는 분들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배곳(대학원)에서 배움을 도와 드렸던 분들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어 더 반갑고 좋았습니다. 다만 가까운 곳에서 열린 뜻깊은 자리에 더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밤이 이슥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들말마을배곳 이레끝 놀배움터를 논개제가 열리는 촉석루 안 뜰로 옮겨 재미있게 놀았다는 기별을 보았습니다. 제가 함께하지 못해 마음이 쓰였는데 새로운 수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티베트 불교는 크게 두 세력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관세음보살의 현신인 달라이 라마를 추종하는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아미타불의 현신인 판첸 라마를 추종하는 세력이다. 달라이 라마의 추종자들은 1959년에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했다. 그러나 판첸 라마의 추종자들은 중국 공산당과 타협해서 지금도 티베트에서 종교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은 달라이 라마가 망명한 지 60돌이 되는 해이다. 티베트 망명 정부는 2018년 초에 뉴델리에서 인도 망명 60돌 사전 기념행사를 대규모로 열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의 영향력을 의식한 인도 정부가 반대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행사 장소를 다람살라로 옮겨야 했고 인도 정부의 주요 인사 대부분은 이 행사에 불참했다. 최근 인도 정부가 티베트 망명 정부와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달라이 라마에게 고민거리이다. 달라이 라마는 2014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기가 죽으면 환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달라이 라마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환생자를 공인할 승려(판첸 라마)가 필요한데 중국이 지명한 현재의 판첸 라마를 티베트인들이 인정하지 않으므로 환생 제도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조선족하면 고추장은 빠질 수 없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아니니? 하기에 파, 마늘, 고추는 우리의 식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저항력을 키워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어릴 때 체질이 약했던 나는 냄새가 나는 마을, 파, 당근, 썅채* 등은 무조건 싫어했고 고추장은 맵다고 그 언저리에도 안가는 나쁜 습관이 있었단다. 엄마가 아무리 말해도 이 습관만은 고칠 수 없었단다. 엄마는 알뜰하기로 마을에서 소문 높았고 음식솜씨도 누구한테 짝지지* 않은 분이었단다. 늘 음식을 만들 때면 하얀 앞치마를 꼭 두르고 머릿수건을 쳤는데 고추장을 만들 때에도 잘 말린 고추를 씨를 털어내곤 잘 찧었단다. 그리고 눅게 한 하얀 찰밥과 물엿을 넣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게 빨갛고 달콤한 고추장이었지 이것을 작은 항아리에 꼭 넣고 조금씩 꺼내어 먹군하였단다. 엄마표 고추장은 색깔도 맛도 좋아서 동네 엄마들이 늘 칭찬을 하셨고 종지를 가지고와선 좀씩 빌어가면서 “이 고추장 하나면 다른 반찬 필요 없겠는데. 이집 저 새끼는 안 먹는다면서요? 저 새끼 몫을 우리 다 먹자구……”하면서 나를 놀려도 주었단다. 엄마는 봄이면 달래, 세투리*, 민들레, 반짜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84-거죽,민물,해뜨기,해지기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셈본4-2’의44쪽, 45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44쪽 여섯째 줄,여덟째 줄과 아홉째 줄에 걸쳐 나오며 열넷째 줄에도 되풀이해서 나오는“들이는 얼마가 되겠느냐?”는 물음이 새롭게 보입니다.요즘 배움책에서는“들이는 몇mL입니까?”로 묻기 때문입니다.어느 한 쪽이 좋고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물음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아 저는 좋았습니다. 열째 줄에‘거죽’이 나옵니다.요즘에는‘표면’이라는 말을 많이 쓰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표면’, ‘외면’, ‘겉면’과 비슷한 말이므로 이와 같은 말을 써야 할 때 떠올려 써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줄에‘민물’이 나옵니다. ‘바닷물’과 맞서는 말로서‘민물’은 소금기(염분)없는 물이라는 뜻입니다.무늬가 없는 것을‘민무늬’라고 하고 소매가 없는 옷을‘민소매’라고 하는 것을떠올려 보시면 얼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시’또는‘소데나시’라는 말을 쓰는 분들을 가끔 보는데‘민소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제 토박이말바라기 어버이 동아리 모임을 했습니다. 늘 자리해 주시는 분들이 짜장 고마운데 오실 때마다 더 잘해 달라는 말을 하고 있는 못난 저를 보게 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모일 때마다 와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해도 모자란데 말이지요. 모임 뒷풀이를 하면서 토박이말을 잘 살린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는 말씀을 이어주셔서 앞으로 그쪽으로 더욱 힘을 써야겠다는 속다짐을 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여러 날만에 밤마실을 갔습니다. 먹는 것을 줄여도 몸에 끼인 기름이 빠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덜 움직이기 때문인 걸 알면서도 일 핑계를 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살짝 불어서 걷기에 좋았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서 바람막이 옷을 벗어야 될 만큼 땀도 났습니다. 제 몸에 있는 기름들이 타는 것을 생각하며 걸었더니 몸도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어제 밤마실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걸어서 배곳으로 왔는데 그것도 걸은 거라고 안에 들어오니 더웠습니다. 바람틀(선풍기)과 더 가깝게 지내야 할 날이 온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게 오늘 토박이말을 맛보여 주었습니다. 오늘 토박이말은 '갈말'입니다. '갈말'은 '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제3대 달라이 라마로 알려진 소남 갸초(1543∼1588)가 몽골의 동부 튀메드부의 군주인 알탄칸(俺答汗, 1507~1582)으로부터 1577년에 초대를 받았다. 징기스칸의 17대 후손인 알탄칸은 소남 갸쵸에 대한 얘기를 듣고 깊은 신심이 일어났다. 알탄칸의 궁전에 도착했을 때 만 명이 넘는 엄청난 군중의 환영을 받았다. 소남 갸초가 몽골에 머물면서 알탄칸의 전생을 보니 쿠빌라이칸의 환생이고 자신은 쿠빌라이칸의 스승이었던 샤카 팍파였다. 과거 전생인연이 다시 스승과 제자 인연으로 돌아온 것이다. 알탄칸은 티베트에서 온 소남 갸초를 스승으로 받들면서 칭호를 올렸다. 그때 올린 이름이 ‘달라이 라마’이다. '바다'를 뜻하는 그의 이름 '갸초'가 몽고어로 '달라이'이고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뜻한다. 그러니까 해석하면 달라이 라마는 ‘바다 같은 스승’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소남 갸초는 겸손의 의미로 자신의 스승, 그리고 스승의 스승에게 1대, 2대 달라이 라마의 칭호를 봉헌하고 자신은 3대 달라이 라마가 되었다. 롭쌍 갸초(1617-1682)는 티베트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