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외교관. 참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직업이다. 낯선 문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다가도 한순간에 무거운 나라의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멋지고도 위험한 자리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명예와 굴욕이 교차하는 삶이다. 지금이야 전문적인 외교 교육을 받은 직업 외교관이 있지만, 옛날에는 문무대신이 외교관 역할을 겸했다. 일반적인 공무를 보다가 사신이 올 때 영접하거나 타국에 사신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사신으로 잘못 갔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전쟁을 결심할 때 사신을 본보기로 처형하기도 하고, 옥에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기도 했다. 게다가 사신을 어떻게 영접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국가적 문제가 결정되기도 했으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은영 쓴 이 책, 《역사를 바꾼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이런 압박감을 뚫고 훌륭하게 국익을 지켜낸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이야기다. 흔히 훌륭한 외교관의 대명사로 알려진 고려시대 서희와 오늘날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뿐만 아니라, 김지남, 조엄, 홍영식 등 많이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그 가운데 통역을 담당하던 역관 신분으로 조선의 국경을 지켜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김
[우리문화신문=김순흥 한국사회조사연구소 소장] 세계가 이른바 ‘한류문화’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류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다. 드라마, 영화, 음악, 춤, 스포츠, 음식, 반도체, 조선, 온돌 ...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 문화가 두드러지고 있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한다. 선진국 대열에 선 한국에 가서 뭔가를 얻고자 하는 후진국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나가던 선진국들에서조차 한국문화에 빠져 한국말을 배우려고 한다. 언제부터 ‘한류문화’인가?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한국 대중예술이 갑자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영국의 가디언지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언제나 늘 좋은 영화와 좋은 드라마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지금 우리에게 갑자기 주목할 뿐이다.”고 답을 했다. 옳은 말이다. K-Pop, 기생충, BTS, K-drama 같은 연예 분야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 이미 로켓형 화포를 만들었고, 세계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썼다. 세계 처음으로 한글(훈민정음)이라는 문자를 만들어냈는데 디지털시대에 들어서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가을이 되면 뫼와 들에 푸나무(풀과 나무)들이 겨울맞이에 바쁘다. 봄부터 키워 온 씨와 열매를 떨어뜨려 내보내고, 뿌리와 몸통에다 힘을 갈무리하느라 안간힘을 다한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봄여름 내내 쉬지 않고 일한 잎은 몫을 다했다고 기꺼이 시들어 떨어지고, 덕분에 사람들은 푸짐한 먹거리를 얻고 아름다운 단풍 구경에 마냥 즐겁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풀은 땅속에서 뿌리만으로, 나무는 땅 위에서 꾀벗은 몸통으로 추위와 싸우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푸나무는 또다시 ‘움’을 틔우고 ‘싹’을 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마련이다. · 움 :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 · 싹 : 씨, 줄기, 뿌리 따위에서 처음 돋아나는 어린잎이나 줄기. ...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움’과 ‘싹’을 거의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움’과 ‘싹’은 말이 다르듯이 서로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들 둘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비슷해서 마음을 꼼꼼히 지니고 바라보지 않으면 가려내기 어려울 뿐이다. 푸나무의 목숨이 처음 나타날 적에는 씨앗에서 거나 뿌리에서 거나 줄기에서 거나 ‘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 주일쯤 지난 뒤 미스 최가 전화를 걸어왔다. 여느 때처럼 금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김 교수는 은근히 금요일이 기다려지면서 한편으로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언제까지 미스 최를 만나야 하나? 이번에 만나면 무슨 결단을 내려야 할까 보다. 금요일은 마침 대학 입시의 면접일이었다. 김 교수가 속한 면접 팀은 음악 대학 지원자를 면접하게 되었다. 면접은 간단한 질문을 두세 가지 던지고 응시자의 답변 태도와 행동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점수 차가 크게 나지 않게 채점하지만 1, 2점의 점수는 가감할 수 있다. 질문은 아무 것이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그날 음악대학 입시생이라는 점을 살펴 평소에 궁금하던 질문을 던졌다. “국악과 서양음악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응시자는 여학생이 대부분이었는데, 학생들의 답변은 대개 비슷하였다. 이들의 답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얻어진다. 서양음악은 7음계인데, 국악은 5음계이다. 서양음악은 화성을 중요시하여 벽돌 같은 몇 개의 음이 합쳐져야 아름다운데, 국악은 음 하나하나가 수석(壽石)처럼 중요하게 여겨진다. 서양음악은 쉼표의 길이가 정해져 있는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조선조 임금의 정치에서 어떤 논제가 올라오면 논의를 통해 신중히 처리되겠지만 세종 때 기록을 보면 ‘반복사지’의 표현이 눈에 띈다. ‘반복사지(反復思之)’는 ⟪조선실록⟫에 모두 129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세종 때 51건, 다음은 성종 19건이고 나머지 임금에서는 한두 건이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어떤 과제를 신중히 처리한 것인지 아니면 실록의 해당 기사 기록 표현상 ‘신중히 처리했다’라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답은 실록 기사 세종조에서 찾을 수 있다. 한결같이 이런 ‘반복사지’의 표현이 쓰인 기록은 일반 사건보다는 신중을 요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사람의 범죄 유무, 민생과 직결되는 답험손실법에 관련된 문제, 세자의 남면(南面) 문제, 불교의 폐단, 저화 사용문제 등 당시 정치 현안으로서는 변화나 변혁과 관계되는 신중한 토론을 요 하는 과제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숙고 처리했다는 실증이다. 그 예들의 기사를 보자. (삼성에서 이종무의 공신권을 걷어 들이도록 상소하다.) 삼성(3개의 최고의 의정 기관)에서 상소하기를, "이종무는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하였는데, 낮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조금 더 오르자, 삼거리가 나오는데 평창바위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왼편 길로 가면 임진노성전적비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나는 혼자서 왼편으로 10여 미터 내려가 보았다. 커다란 임진노성전적비와 노성산성지 비석이 보인다. 노성산성지의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조선조(朝鮮朝) 중기 흉폭한 왜적(倭賊)의 침입이 있었을 때 이 고장을 지키려는 조상들이 피 흘려 싸운 곳이다. 이곳에 처음 성을 쌓은 것은 조선 중기라 하나 성을 쌓은 모양으로 보아 그보다 더 오래인 고려시대 이전에 이 고장을 지키려는 선민들이 쌓은 산성이라고 보는 편이 옳은 것 같다. 특히 이곳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평창군수 권두문(權斗文) 공이 이 산성을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한 바 있으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많은 관민이 함께 피란했던 응암굴이 있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400여 미터의 작은 산성이나 천험(天險)을 이용하여 수축한 산성이다. 이 고장을 지켜온 호국의 유적지를 길이 보존하고자 표석을 세워 옛일을 후세에 전한다. - 1984. 10. 7 평창군수 노성산성지 비석은 이곳이 “왜적의 침입이 있었을 때 이 고장을 지키려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9월로 접어들어 아침저녁 공기는 선선해졌지만 이미 중순인데도 한낮은 여전히 30도를 넘어 여름을 벗어나기가 이리 어렵나 하는 탄식이 나도 모르게 토하게 한다. 우리들은 늦더위를 참아야 곡식과 과일이 익어 풍성한 가을이 온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으니 참고 이길 자신은 있다. 더구나 다음 주가 한가위 아니던가? 곡식도 과일도 많이 많이 익어 우리의 한가위가 풍성해서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빌어본다. 지난주 친구 하나가 뜰에 핀 빨간 꽃 사진을 하나 보내준다, 이 꽃은 이쁘고 아름다운 꽃이 아니다. 울퉁불퉁, 삐쭉삐쭉한 꽃잎들이기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데 막상 여름을 다 지나고 이 꽃을 보니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맨드라미꽃이다. 시골의 담벼락이나 울 안, 사립문 부근에 많이 피지 않았던가? 도회지에 그런 곳이 없어 이미 꽃을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친구 사진으로 보는구나. 사실 맨드라미는 보기만 해도 덥다. 꽃은 달린 것이 아니라 몸체를 누르고 있는 것 같다. 빛깔도 걸쭉한 붉은빛이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생각게 한다. 그러기에 이 꽃은 아름답다고 보기보다는 괴상하다고 보는 사람이 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51) 서울 달 밝은 밤에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로되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쩌랴 아라비아 상인이었던 처용이 외간 남자와 있는 아내를 보고 부른 노래다. 처용은 신라 49대 헌강왕 때 아라비아에서 건너와 오랫동안 서라벌에서 신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처용은 아내를 용서했지만, 다시 혼인하지 않고 풍류를 즐기며 행복하게 지냈고, 죽어서는 동해바다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정혜원이 쓴 이 책, 《우리 역사에 뿌리내린 외국인들》은 생각보다 많은 우리 역사 속 외국인들을 차례차례 조명한 책이다. 흔히 ‘단일민족’이라는 인상 때문에 역사 속 외국인이 많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뜻밖에 역사에 발자국을 남긴 굵직한 인물들이 많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와 가야 김수로왕과 혼인한 허황옥 공주, 신라의 수호신이 된 푸른 눈의 아라비아 상인 처용, 베트남 왕실의 혼란을 피해 고려로 망명한 안남국 왕자 이용상, 조선의 유학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 《하멜표류기》로 널리 알려진 하멜이 그 주인공이다. 그뿐 아니라 외국에 뿌리내린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도 두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 火 2음 7양 : 쓴맛과 매운맛이 2:7이 되면 화가 된다 2음의 쓴맛이 7양을 다독여야 진정한 화기가 만들어진다. 화기가 약한 사람은 매운 맛인 생강 무 대파 양파 초석잠(식물의 뿌리로 누에고치처럼 생겼음) 고추장 후추 겨자를 먹어야 한다. 그 성분 중에 매운맛이 주종인 파 마늘 삼채 쑥 냉이 달래 당근 등도 화기가 충만한 식품이다. 매운맛은 장에서 수분을 그대로 배출되게 한다. 매운맛은 어떤 성분도 몸 안으로 들이기보다 내보내려 한다. 매운 맛은 목기 화기에 모두 있으니 양기의 본질이다. 매운 고추를 먹으면 설사가 나고, 땀이 나고 심장 박동이 높아지며 날숨이 드세어진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이를 확 날려버리고 싶을 땐 매운 떡볶이를 먹는다. 양기로 음기의 잡생각을 발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다 너무 과열이 되어서 진정이 필요하면 씁쓸한 씀바귀를 먹는다. 쓴맛은 생각만 해도 양기를 내린다. 입안에 돌던 양기로 가득한 침이 꿀꺽 넘어가 버리고 만다. 쓴맛이 화기를 썩 꺼지게 하는 것이다. 봄철에 이런 저런 일로 신경을 많이 쓰다보면 화기가 쌓여서 몸이 덩달아 과열된다. 이렇게 되면 소화액이 마르고 단내가 나며 식욕이 부진해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이렇게 비롯하는 <진주 난봉가>는 지난 시절 우리 아낙네들의 서럽고도 애달픈 삶을 그림처럼 이야기하는 노래다. ‘울’이나 ‘담’이나 모두 삶의 터전을 지켜 주고 막아 주는 노릇을 한다. 이것들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그 안에서 마음 놓고 쉬고 놀고 일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울도 담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믿고 기대고 숨을 데가 없이 내동댕이쳐진 신세라는 뜻이다. ‘울’은 집이나 논밭을 지키느라고 둘러막아 놓은 가리개의 하나로, ‘바자’로 만드는 것과 ‘타리’로 만드는 것의 두 가지가 있었다. ‘바자’는 대, 갈대, 수수깡, 싸리 따위를 길이가 가지런하도록 가다듬어 새끼줄로 엮거나 결어서 만든다. 드문드문 박아 둔 ‘울대’라고 부르는 말뚝에다 바자를 붙들어 매어 놓으면 ‘울바자’가 된다. ‘타리’는 나무를 심어 기르거나 다 자란 나무를 베어다 세워서 만든다. 탱자나무, 잔솔나무, 동백나무 같은 나무를 심어서 기르면 저절로 자라서 ‘생울타리’가 되고, 알맞게 자란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쳐서 세우고 울대 사이를 새끼줄로 엮어서 묶으면 그냥 ‘울타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