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남의 글을 우리글로 바꾸어 놓는 일을 요즘 흔히 ‘옮김’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언해’ 또는 ‘번역’이라 했다. 요즘에도 ‘번역’ 또는 ‘역’이라 적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지난날 선조들이 쓰던 바를 본뜬 것이라기보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쓰니까 생각 없이 본뜨는 것이다. 언해든 번역이든 이것들은 모두 우리 토박이말이 아닌 들온말에 지나지 않고, ‘역’이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쓰겠지만 우리에게는 낱말도 아닌 한갓 한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토박이말을 쓰느라고 ‘옮김’이라 했을 터인데, 남의 말을 빌려다 쓰기보다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는 마음이 아름답고 거룩하다. 그러나 남의 글을 우리글로 바꾸어 놓는 일을 ‘옮김’이라고 한 것은 우리의 말본으로 보아 올바르지 않다. ‘옮기다’는 무엇을 있는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자리바꿈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본디 뜻에서 비롯하여 ‘발걸음을 옮기다’, ‘직장을 옮기다’, ‘말을 옮기다’, ‘모종을 옮기다’, ‘눈길을 옮기다’ 같은 데로 뜻을 넓혀서 쓴다. 하지만 언제나 무엇을 ‘있는 그대로’ 자리바꿈한다는 본디 뜻을 바탕으로 삼은 채로 넓혀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섯 번째 만남 일주일이 조금 지나 미스 최 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이 금요일인데 《아리랑》 제5권과 선물로 준 책을 다 읽었으니 만나자고 한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만날까 예상했었는데, 너무 속도가 빠르다. 이러다가 일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젊은 아가씨가 만나자고 하는데 남자로서 고자가 아닌 바에야 어떻게 거절한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5번 만났지만 아직까지 금전적인 면에서 그리고 성적인 면에서 부담이 없이 그저 친구 만나듯 했으니 더욱 뿌리치기 어렵다. 김 교수는 5시에 잠실의 호텔로 가겠다고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김 교수는 프라이드를 운전하고 잠실로 갔는데, 그날은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차가 밀려 5시 10분에야 겨우 도착했다. 십 분 지각이다. 2층 커피숍에 올라가 둘러보니 아가씨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다가 갔나? 김 교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이 나이에 바람맞는 것은 아닌가? 그럴 리가 없지. 아, 내가 아가씨에게 빠져드는가 보다. 김 교수는 ‘아가씨가 조금 늦겠지’라고 위안하면서 제일 안쪽 자리에서 입구를 바라보며 소파에 앉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지루한 법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아베 씨 내 좋은 아이디어가 있소 / 광복 두 시간 전 총독부 학무국 / 동인이 찾아간 사무실 안 침묵이 흐른다 / 아 아베 씨 좀 보소 / 그걸 만듭시다 / 시국에 공헌할 작가 단을 꾸리자구요 / 아베, 머리 절레절레 흔든 뜻은 / 이런 쓰레기 같은 조선놈 /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아부하기에 바쁜 조선놈 / 어서 꺼졌으면 싶었겠지 / 그리고 두 시간 뒤 조선은 빛을 찾았다.” (뒤 줄임) 이는 이윤옥 시인의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에 나오는 ‘김동인’ 시의 일부입니다. 소설가 김동인(1900∼1951)은 총독부에 빌붙어 광복 2시간 전까지 아첨했는데 그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김동인은 1942년 1월 23일 <매일신보>의 “감격과 전장”이라는 글에서 “대동아전쟁이 발발하자 이제는 내선일체도 문제가 안 되었다. 지금은 다만 일본시민일 따름이다. 한 천황폐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를 함께할 백성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그의 아들이 낸 ‘아버지 김동인의 소설 한 부분만 가지고 친일행위로 단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소송에서 재판부는 김동인의 친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이왕직 아악부 정간보》, 《이왕직 아악부 오선악보》, 《홍재일기》,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이번에 등록되는 이왕직 아악부의 악보는 조선시대 궁중음악 기관인 장악원을 계승한 이왕직 아악부에서 1920∼1930년대에 연주되던 조선시대 궁중음악 등을 주요 악기별로 펴낸 악보다. * 이왕직(李王職):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구 대한제국 황실의 의전 및 황족과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 모두 25곡이 수록된 《이왕직 아악부 정간보》는 변화된 연주법과 시김새(꾸밈음), 선율, 장단 등 아악부의 궁중음악이 체계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현대국악계에도 전승되어 연주되고 있다. 같이 등록되는 《이왕직 아악부 오선악보》는 아악부에서 주도하여 궁중음악을 서양 오선보에 기록해 근대 서구음악 체계로 인식하는 시도와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궁중음악뿐 아니라 민간음악까지 포괄한 방대한 양을 보유하고 있어 자료적 값어치가 매우 큰 근대음악사적 기록물이다. 국가유산청은 이들 두 기록물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을 기려 소장기관인 국립국악원과 함께 8월 9일(금)부터 11월 24일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매주 수요일 야간개장 시간(18:00~21:00)에 ‘큐레이터와의 대화’를 운영한다.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는 큐레이터의 해설과 함께 전시품을 관람할 수 있다.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두 개의 특별전과 한 개의 심화전, 그리고 상설전 전시품의 다양한 이야기를 큐레이터와의 대화로 만나볼 수 있다. 특별전 <삼국삼색-동아시아의 칠기> 큐레이터와의 대화는 매주 수요일 저녁 6시에 상설전시관 내 특별전시실에 마련되었다. 아시아 고유의 천연 칠인 ‘옻칠’공예의 아름다움을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14~19세기에 제작된 삼국의 대표 칠기를 소개한다.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큐레이터와의 대화는 8월 둘째, 넷째 주 수요일 저녁 7시에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국내에서 처음 전시되는 미국 덴버박물관 소장품들을 만날 수 있으며, 북미 원주민의 다양한 문화와 세계관을 보여주는 전시품에 대한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14일에는 제79주년 광복절 기념 심화전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씨, 나석주> 주제 큐레이터 대화가 대한제국실에서 진행된다. 특히 이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스타북스가 도산 안창호, 그리고 그와 뜻을 함께한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걷다》를 펴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는 도산공원이 있다. 그곳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기념관과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부인 이혜련과 합장한 무덤이 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은 헌신적인 독립운동과 민족 계몽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조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친 혁명가로,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와 기관을 설립하고 이끌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흥사단과 신민회의 창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의 활동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업적 뒤에는 수많은 동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다. 이 책은 1913년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을 위해 창립한 흥사단에 60여 년을 몸담아온 이만근 작가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도산 안창호와 독립의 길을 함께하고 행동으로 실천한 애국지사들과 안창호 선생 가족들의 숨겨진 이야기다. 도산과 함께한 독립운동가는 필대은, 밀러, 임기반, 김필순, 이강, 정재관, 유길준, 이승훈, 이태준, 이갑, 송종익, 김종림, 김창세, 안태국,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는 꽃말을 가진 희귀식물 ‘해오라비난초’가 수원 칠보산에서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수원시는 2022년부터 국립수목원과 협력해 칠보습지 안에서 해오라비난초 복원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해오라비난초 알뿌리 51개체를 칠보습지에 옮겨 심었고, 올해 4월 49개체가 새싹을 틔웠다. 지난 8월 1일 1개체가 꽃이 핀 것을 시작으로 49개체 모두 꽃을 치웠거나 피기 직전 상태다. 해오라비난초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 산림청 선정 희귀식물로 국가적색목록에 위급(CR)으로 분류된 멸종위기식물이다.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국내에는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자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칠보산 일대에만 유일하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시 관계자는 “자생지인 칠보산 습지에서 해오라비난초가 복원돼 꽃을 피워 큰 의미가 있다”라며 “멸종위기종 2급 칠보치마와 더불어 해오라비난초 서식지도 꾸준히 관리해 생물다양성을 증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장상훈)과 주시드니한국문화원(원장 윤선민)은 7월 26일(금)부터 9월 27일(금)까지 호주 주시드니한국문화원에서 순회전《매듭, Korean Knots》을 연다. 이번 전시는 주시드니한국문화원에서 연 뒤 같은 해 11월에 필리핀 메트로폴리탄마닐라박물관에서 이어 열리는 순회전시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130여 점의 매듭 자료를 선보인다. □ 한국 매듭의 기본형부터 만드는 과정 및 다양한 매듭 작품 선보여 한국 매듭은 맺는 방법과 형태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며 다양한 이름을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기본형 매듭을 실물로 전시하고 한국 매듭의 간략한 역사와 매듭을 만드는 도구, 매듭 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소개한다. 전시에는 남성이 사용하는 물건에 멋을 더하는 선추ㆍ안경집ㆍ띠ㆍ세조대는 물론 여성의 대표적 매듭 장식인 노리개를 선보인다. 또한 주머니ㆍ조바위ㆍ장도ㆍ수저집 등 매듭으로 꾸민 소품과 발걸이나 횃대 유소와 같이 공간을 꾸미는 매듭 작품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매듭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묵주ㆍ염주ㆍ목걸이ㆍ핸드백과 같이 매듭을 응용한 현대적인 작품도 전시한다. 특히 전통 매듭을 응용한 대형 묵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소안(笑顔, 웃는 얼굴), 화(和, 화목), 감사(感謝), 자(慈, 자비), 반(絆, 인연), 락(樂, 즐거움), 애(愛, 사랑)…. 이러한 말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비교적 선한 마음, 좋은 마음을 나타내는 낱말 가운데 하나다. 아니, 누가 이르길 당신이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단 하나의 낱말을 고르라면 대부분 이 가운데 있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 적힌 말들을 무덤의 묘비에서 가져온 말이라고 하면 뭐지? 싶어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묘비가 잘 정돈된 일본의 무덤을 찾아간 것은 지난 7월 27일(토)로, 이곳은 시즈오카현 나가이즈미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한 불교사원이 관리하는 공원묘지였다. 이곳에 묻힌 분은 25년 지기인 이토 노리코 씨의 친정어머니로 노리코 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5월 21일, 95살로 삶을 마감하고 이곳에 묻혀있다. 평소 기자가 일본의 노리코 씨 집에 들를 때마다 딸처럼 여겨주던 자상한 분이다. "우리의 국적은 하늘에 있나이다. -빌립보서 3장 20절-" 노리코 어머니의 무덤 앞 묘비에는 일본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일본 무덤의 묘비에는 감사(感謝), 자(慈,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사람이 과거의 자기에게서 벗어나 새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실록 속의 글을 통해 보면 몇 단계로 나누어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이 변화해 갈 수 있다는 전제로는 ‘사람의 본성은 같다’라는 것이다. 시작 단계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다음 단계는 자성과 각성 등이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회개와 후회, 회오다. 그리고 다음 단계인 회생과 재생이다. 마지막 단계는 갱생의 단계다. 이때 ‘자신지리(自新之理)’의 원리에 따라 감오(感悟)에 이른다. 이런 전제에서 ‘자신지리’에 이르는 길을 찾아보자. 이 길의 전제에 ‘본성의 회복’이 있다. 병이지천(秉彝之天) : 사람은 진실로 각기 상도(常道)를 지키는 천성(天性)이 있다. (⟪세종실록⟫ 11/4/4) 천성 : (집현전에서 《삼강행실》을 펴내 서와 전문을 더불어 올리다) 삼대(三代)* 의 정치가 훌륭하였던 것은 다 인륜(人倫)을 밝혔기 때문이다. 후세에서는 교화가 점점 쇠퇴하여져, 백성들이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부부(夫婦)의 큰 인륜에 친숙하지 아니하고, 거의 다 타고난 천성(天性)에 어두워서 항상 각박한 데에 빠졌다. 간혹 훌륭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있어도, 풍속ㆍ습관에 옮겨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