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450km 거리를 기차로 이동하는 날이다. 우리는 아침 9시 40분에 앙카라역을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로 이동하였다. 역에 도착하여 우리는 터키 남부의 항구 도시 안탈리아에서 온 30살 터키 청년(Mr. Berker Ekmekci)을 만났다. 이 청년은 로자씨가 인도에서 SNS를 통하여 알게 된 친구인데, 원래 고향은 트라브존이다. 트라브존은 터키의 북쪽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흑해에 면해 있다. 이 친구는 지중해 항구도시 안탈리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데, 휴가를 내어 고향에 왔다가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앙카라로 왔다. 이 친구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은 그가 1986년 체르노빌(당시는 소련 영토, 지금은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속함)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에서 퍼져 나오는 방사능은 계속해서 주변의 공기와 물과 흙을 오염시키고 있는데, 오염된 물은 강으로 흘러들고 강은 흑해로 흘러들어 흑해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다. 그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3년이 지난 1989년에 태어났는데, 어머니와 그는 모두 암이 발생하여 평생 암과 투쟁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
[우리문화신문=이영일 생태과학연구가] 함박꽃나무[학명: Magnolia sieboldii K.Koch]는 목련과의 ‘넓은 잎 낙엽 지는 키가 작은 나무’다. ‘함박꽃나무’는 꽃의 형태가 함박꽃(작약)과 비슷하고 나무에서 달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꽃이 함지박처럼 크고 탐스럽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지만, 흔히는 산에 사는 목련(木蓮)이란 의미로 산목련(山木蓮), 산목단, 개목련(제주)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야도초(野桃草), 합판초(合鈑草), 천금등(千金藤), 옥란화(玉蘭花), 신이(辛夷), 천녀화(天女花), 소화목란(小花木蘭), 대산연화(大山蓮花), 심산연화(深山蓮花), 함백이꽃, 함박이란 많은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한방에서는 천녀목란(天女木蘭)이라는 약재명으로 처방한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에서는 산목란(山木蘭)이란 이름으로 국화(國花)로 지정되어 있다. 화단 정원수로 이용하면 좋다. 향이 많이 나 낮은 곳에 심으면 바람을 타고 향이 전해오기 때문에 되도록 낮은 곳에 심는다. 비슷한 종류로 잎에 반점이 있는 것을 얼룩함박꽃나무(for. variegata), 꽃잎이 12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한국공원은 매우 넓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무궁화 나무 줄기에 무궁화꽃이 만발하고 있었고 화단에는 키가 작은 금잔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커다란 터기 국기와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4층탑 앞에 한국전에서 죽은 희생자의 명단이 기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참전비 앞쪽에 한국 참전의 내용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검은 돌에 새겨져 있었다. 한국공원 관리소에는 ‘터키참전용사협회’라는 단체에서 만든 유인물이 비치되어 있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터키어와 한글로 기록되어 있었다. “...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치러진 한국전에서 21,212명의 터키군 병력이 참전하였으며 종전 이후에도 1954년부터 1971년까지 터키 정부는 한국에 터키군 병력을 계속 파병하여 UN군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터키군은 총 56,536명이며 전사자는 총 892명입니다. 한국전에서 터키군은 중공군과 수차례 전투를 벌였으며 그때마다 중공군을 격파하였습니다. 이 전투 중에 아래 4개 전투는 한국전의 흐름을 바꿔놓은 중요한 전투였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북한 청천강 유역의 군우리 전투 (1950년 11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해마다 6월이 되면 잊혀 지지 않는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남북의 동포가 서로 총뿌리를 겨누고 싸웠던 6.25 한국전쟁! 많은 가족이 죽고 헤어져야 했던 우리의 불행한 역사입니다. 전쟁이 아니라도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져야 했지만 전쟁과 이별은 깊은 상처와 함께 좀처럼 잊혀지지 않겠지요. 평화 민주주의자 고 함석헌 선생의 정신을 높이 받들고 따르고자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려는 멋쟁이 시인이 있습니다. 남몰래 나눈 그 사랑의 흔적을 드러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자신의 능력만큼 이웃과 나누어가고 봉사하며 살아간다면 그는 분명 작은 한 알의 씨앗이지만 희망의 꿈을 이룰 것입니다. 시인은 시(詩)로써 사회를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여야 하지만 작품 이전에 시인의 생각과 행함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작은 한 알의 씨앗이 되고자 하는 이상현 시인을 이야기합니다. --------------------------------------------------------------------------' 이상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며 살았다 사랑한다 했었지만 물거품이 되기도 했고 잊으려 했었지만 잊지 못하는 인연도 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진주 묘엄사터 삼층석탑 이 달 균 사람들아 제발 날 찾아오지 마시게 허허 내게 날개가 없는 줄 아시는가? 방금도 남해에 갔다가 덕천강에도 갔던걸 묘엄사터(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 447-1)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시원하다. 이곳은 서부경남을 대표하는 큰 인공호수인 진양호와 가깝다. 근처 마을들은 수몰되어 사라진 고향의 아픔을 함께한 기억도 있다. 진양호는 덕천강물을 가두었는데, 이로 인해 남강 주변의 물난리를 다스렸다. 가까운 곳에 대평마을이 있는데 풍부한 물이 있어 큰 들이 형성된 까닭이기도 하다. 부처님 세상은 이렇듯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이런 곳에 석탑이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열 채쯤 되어 보이는 집들 사이로 삼층탑(보물 제379호)이 보인다. 이 탑은 고려 시대 화강암으로 만든 것으로 높이는 4.6m이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석탑 1층에는 빛바랜 염주가 햇살에 익어간다. 주위에는 주춧돌과 석주, 부도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팔각형의 석재가 흩어져 있어 사각사각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대부분 석탑이 그렇듯 이 탑의 상륜부도 없어진 상태다. 하지만 뿌리 박혀 있다고 날개가 없을까. 우리들 몰래 남해바다에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인간의 활동을 크게 구분하면 구조와 기능으로 말할 수 있다. 곧 인간의 건강한 몸과 왕성한 활동을 말함인데 몸을 무엇으로 만들고, 활동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얻는가 하는 것에 따라 섭생이 달라지고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이분법 논리로 말하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구조는 질소(N)를 기반으로 한 단백질로 이루어졌다. 한편 기능을 위한 에너지원은 탄소(C)를 기반으로 한 탄수화물에서 얻는다. 따라서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을 지속하여 삶은 영위하기 위해서는 단백질과 에너지원의 꾸준한 공급이 필요하며, 이들을 매개하는 물의 섭취가 필요하다. 이때 인간은 단백질을 자체 생산하는 시스템이 없으므로 외부로부터 공급을 받아야만 한다. 곧 여타의 동물과 다름없이 나와 다른 것의 단백질을 먹어야만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단백질은 크게 보면 콩과 씨앗을 중심으로 한 식물성 단백질과 어류 육류를 중심으로 한 동물성 단백질이 있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취하는 단백질을 어디에서 얻는가에 따라 육식과 채식의 구분이 발생하고, 육식 범위에서도 어느 단백질을 선호하고 기피하는 가에 따라
[우리문화신문=글ㆍ사진 이영일 생태과학연구가] 때죽나무[학명: Styrax japonica Siebold et Zucc.]는 때죽나무과의 ‘낙엽이 지는 넓은잎 키 작은 나무’다. 한방에서는 제돈목(齊墩木)이란 약제명으로 약용한다. 야말리(野茉莉), 오색말리(五色茉莉), 금대화(錦帶花), 제돈목(齊墩木), 제돈과(齊墩果), 노가나무, 족나무 라고도 한다. 물고기 잡을 때 푸른 열매를 갈아서 물에 풀어 넣으면 물고기들이 잠시 기절하여 때로 죽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누 원료, 머릿기름 재료, 향수, 목걸이 재료, 목기, 장기알 가구재 밀원식물로 이용한다. 꽃말은 겸손이다. 옛날에 물이 부족한 섬에서는 이 나무를 제주도 사투리로 ‘족낭’이라고 했는데, 이는 외진 산골에서 빗물을 받아 식수로 할 때 때죽나무 가지에 띠를 매고 줄을 매달아서 빗물을 모으면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고 오히려 깨끗해지고 물맛도 좋았다고 한다. 전국의 계곡이나 시냇가 주변 등의 물기가 많은 토양에서 잘 자란다. 가지는 높이 5~15m이며, 흑갈색이다. 잎은 어긋나며, 달걀 모양 또는 긴 타원형, 길이 2~8cm, 폭 2~4cm다. 잎자루는 길이 5~10mm다. 꽃은 5∼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코로나 19’ 사태는 단순히 사회적 변화가 아닌 우리나라의 의료체계, 시민의식, 경제 활동 등 전 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코로나 발생과 방역에 대해 중국과 미국의 책임론과 나아가 무역으로 연결되는 경제 질서의 재편 등 국제적 공조의 파급효과도 가져오고 있다. 자발적 시민의식 국내 시민생활에 국한해 보면 생활 규칙의 강조다. 정부는 그간의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지난 5월 6일부터 생활방역으로 전환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중규모 집단의 사회규칙이고 생활방역은 소집단 곧 가족 단위의 규칙을 일컬음이다. 1~2미터 거리 유지로부터 50여 센티미터 거리도 좋지만 밀폐된 곳에서 밀집하지 말고 마스크를 쓰라는 것이다. 그간 잘 막아오던 코로나 방역이 4월 30일 이태원클럽 사태로 일거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인천 학원 강사로 시작된 전파는 7차 감염까지 발생시켰지만, 여전히 감염원을 찾지 못해 연결고리를 끊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5월 26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이태원클럽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확진자가 이날 255명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유흥업소는 마스크 쓰기, 사람들 연락처 적기, 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양양 낙산사 7층 석탑 시인 이 달 균 미친 듯 불기둥이 천지를 덮쳐왔다 훌훌 잿더미를 홀로 걸어 나오며 죽음이 영생(永生)의 문(門)임을 깨우쳐 주었다 설악의 끝자락이 동해에 이를 때 만나는 절이 바로 낙산사다. 수평선이 시작되는 이곳 단애에 관음보살이 계셨던가. 그 물음을 안고 의상대사는 여기까지 찾아왔으리라. 법력 깊은 기도가 통했던지 용에게 여의주와 염주를 받게 되고, “대나무가 솟아나는 꼭대기에 불전을 지어라.”라는 말씀에 따라 낙산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유서 깊은 절도 화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2005년 4월 5일, 하필이면 식목일에 일어난 불은 홍련암 하나만을 남기고 죄다 태워버렸다. 누구도 제어 못 할 불기둥 속에서 탑은 저 홀로 걸어 나와 바다를 향해 섰다. 영생의 문은 이곳에서 비롯되는가. 이 죽음의 순간이 아니었으면 생명의 소중함을 어찌 알았으랴. 그래서인지 유난히 탑 앞에서 손을 모으는 이의 기원은 간절해 보인다. 이 7층 석탑도 조선 세조 때 낙산사 중창 당시 함께 세워진 것이다. 제아무리 석탑이라고 하나 그 화마를 온전히 피해갈 수는 없었고, 표면이 균열되는 등 상당한 훼손을 입었다. 이 탑은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평안도 성황대제를 오늘날까지 전승할 수 있도록 크게 이바지한 사람은 평안도 출신으로 한국 동란 때 서울로 월남한 대무당 이선호(여, 李禪好, 1912~1989)다. 이춘옥(李春玉)이라는 이명을 갖고 있었고, 창덕궁의 돈화문 옆 한옥에 살았기에 대궐할머니로도 불렸고, 레슬링 선수 김일 장모이기에 김일이 장모라는 별칭도 있었다. 이선호는 평양 경저리에서 태어나 15살에 신이 내려 당시 50살이었던 임용문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업을 하다 27살 되던 해 극단 단장을 하였던 남편을 따라 서울로 월남하였다.(참조: 황루시, 「재체험을 통한 죽음에의 이해 - 다리굿 구조와 기능」, 《한국의 굿(5) - 평안도 다리굿》, 1985, 84쪽) 열 살 아래인 여동생 이춘홍(여, 李春紅, 1922~1985)도 데리고 함께 살면서 평안도굿을 알리는 데 애를 썼다. 당시 이선호의 전문 장구 악사는 술말이 김연화(여, 金蓮花, 1916~미상)였다. 평안도굿에서의 술말이는 술(소리), 말(언어), 이(행위자)를 뜻하며, 굿의 청배소리와 재담 등을 행하는 전문 악사다. 평양 죽전리 출신 김연화는 어려서부터 평양 권번에 들어가 소리, 춤, 장고를 배워 대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