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사람마다 이름이 다 있건만 둘째 고모의 이름은 무엇인지 모두 큰엄마라 불러 고모의 이름은 결국 큰엄마였단다. 엄마에겐 이상 시누이 셋이 있었는데 둘째 시누이는 중국에서 살다가 해방 뒤에 조선 함경북도 청진군 온성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느 하루 엄마는 “이제 며칠 뒤에 우리 고모네 집에 가보자. 그 집엔 고모가 두분 계시는데 큰고모가 너희 아버지의 누님이시란다.”. “예? 그럼 한 분은 누구시죠? 고모라면서……” 하여 엄마는 “넌 아직 어려서 말해도 잘 모를 것이니 더 묻지 말고 그저 례절만 지켜주면 된다.”라고 하셨단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단다. 과연 며칠 뒤(1959년 겨울방학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도문해관을 걸쳐 조선 온성으로 갔단다. 온성고모는 달려 나와 우리를 맞았는데 훤칠한 키에 쌍겹진 두 눈, 말쑥한 얼굴은 이미 60살을 넘으셨다는 고모의 미모를 감추지 못하였더라. 고모는 한겨울 아침에 찾아간 나의 꽁꽁 언 두 손을 자기 가슴속에 넣어 녹여 주시면서 “너 많이 컸구나! 아버지 없이 막내로 서럽게 보냈겠구나!” 하여 난 불시에 눈물을 뚝 떨구면서 고모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단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가 보더라. 작은고모라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지난 닷날(금요일)에는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교육부가 열고 경기도교육청과 미래교육포럼단이 함께 마련한 ‘미래교육포럼’이 부산대학교에서 있었습니다. ‘미래 국가교육과정의 발전적 전망’이라는 벼름소(주제)로 많은 분들이 해 주신 말씀을 들으며 몰랐던 것도 알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 무엇인가를 바꿀 갖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왔습니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교육과정을 만드는 데 함께하자는 김대현 단장님의 모시는 말씀을 보고 기운을 내서 갔었고 짧고 모자라지만 제 생각을 보태고 왔습니다. 저는 세 가지 바람을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교육과정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다르지만 교육과정을 ‘설계도’라고 본다면 좀 더 꼼꼼하게 촘촘하게 꼲기(평가)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교육과정을 마련하려고 다른 나라의 좋은 보기들을 찾는 일도 하고 다가올 앞날을 어림하고 그에 맞는 힘이 무엇인지도 생각해야 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교육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잘한 것도 챙겨 보자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가장 잘 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나라를 되찾자마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정읍 천곡사터 칠층석탑 - 이 달 균 언제부턴가 여인은 선 채로 탑이 되었다 가녀린 어깨와 앙상한 허리선 한 편의 간결한 시(詩)처럼 묵상에 들었다 정읍시 망제동엔 빼빼 마르고 키 큰 여인을 닮은 탑이 서 있다. 바로 7.5m에 이르는 천곡사터 칠층석탑이다. 여인을 연상시킨다고 하나 부드러움과 섬세함, 탐미적 자태와는 다른, 기원에 오로지한 야윈 모습에 나그네도 덩달아 무념에 든다. 처연한 그림자 아래서 까닭 모를 갈증에 시달린다. 하루가 저무는 시간에도 오래 묵상에 든 탑은 군살 빼고 미사여구도 빼고 그저 부처님 향해 하늘로 솟아 있다. 허리를 지탱하는 몇 개의 길쭉하고 간결하게 짜 맞춘 장대석으로 인해 그런 느낌이 더 하다. 앙상한 외형에 비해 옥개석은 두껍고 둔중하여 그리 조화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런 고졸한 모습이 더 고려탑답다고나 할까. 껑충한 탑을 가운데 두고 초록 수풀은 하늘에 닿는다. (시인 이달균)
[우리문화신문=석화 중국지사장] 지난 12월 5일, 중국(연길)문학아카데미(회장 리정림) 회원들은 영하 20도를 밑도는 혹한을 무릅쓰고 육속 ‘연변박물관’에 모여들었다. 연중행사의 마무리를 민족의 숨결이 깃든 박물관에서 펼쳐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의미 있게 한 해를 떠나보내려는 것이다. 이들은 박물관 해설원의 안내를 따라 “조선족민속전시”, “연변혁명투쟁사”, “연변의 발자취― 연변조선족자치주성과도편전시” 그리고 “연변원시유물전시” 등 스페셜 전시관을 차례로 돌아보며 깊은 감회에 젖어 들었다. “조선족민속전시”관에서는 전시된 유물 속에서 어슴푸레 기억 속에 남아있는 방앗간, 야장간(대장간) 등 추억의 장소와 수레, 가대기(밭을 가는 기구의 하나), 호미, 낫과 같은 농기구 그리고 놋 식기, 가마솥 등 온갖 가장집물(집 안의 온갖 세간)을 마주하고 어린 시절 어머니,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굽(눈의 가장자리)을 적시기도 하고 “연변혁명투쟁사” 전시관에서는 일제와 국민당반동파를 몰아내고 새 중국을 일떠세우며 오늘의 행복을 위하여 귀한 생명까지 다 바친 각 역사시기 열사들의 유물과 사적을 둘러보며 깊은 감회에 젖기도 하였다. 해설원의 안내에 따라 두 시간 남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결실의 계절이 가고 겨울이 오면 모든 생명은 생기를 잃고 추위에 대비한다. 곰ㆍ개구리ㆍ거북이ㆍ미꾸라지ㆍ다람쥐 등은 겨울잠을 자고, 제비는 따뜻한 나라로 이동한다. 또 벌레들은 나뭇가지 사이나 나무줄기에 그 몸을 숨기고,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그 자리에 겨울눈을 달고 봄이 올 때까지 생명을 감춘다. 동식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활동을 자제할 동안 우리 몸도 양상만 다를 뿐 겨울을 이기기 위해 대비한다. 체내와 뼛속에 영양분을 충분히 저장시켜야만 겨우내 그리고 봄과 여름까지 건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가을이 거두어들이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저장하는 때라고 볼 수 있다. 흔히 가을에는 보약을 먹는 계절이라고 알고 있지만, 대자연의 순환 원리에 따르면 오히려 겨울철이야말로 보가 되는 음식이나 약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계절이다. 잦은 피로를 호소하거나 질병에 자주 걸리는 등 허약한 아이들은 겨울을 이용해 건강하게 나게 되면 반전의 기회로 삼아 튼튼해질 수 있다. 겨울, 양기가 부족해지기 쉬워 겨울에는 우리 몸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양기(陽氣)가 부족해지기 쉽다.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면서 위축되어 양기가 내부에 움츠러들고 외부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때가 때라서 요즘 배곳(배곳)은 꼲기(평가)철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느낌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겠지만 저는 아이들이 풀거리(문제)를 푸는 것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옛날과 달라서 요즘 아이들은 외우고 있는 것도 많지 않고 글을 읽고도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책에 있는 것을 찾아 쓰는 것도 잘 못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 아이들이 배곳을 마치면 영어를 배우러 가는 것을 보면 더 걱정스럽습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말을 더욱 알차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 먼저인데 앞뒤가 안 맞아도 엄청 안 맞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는 까닭은 우리 갈배움의 풀거리(교육의 문제)를 가르치고 배우는 수(방법)에서만 찾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삶과 멀뿐더러 일본 사람들이 뒤쳐(번역해) 만든 어려운 한자말로 된 알맹이(내용)가 더 큰 풀거리(문제)인데 말이지요. 그걸 풀거리(문제)라고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제가 제 가슴을 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과 얼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우리문화신문=이영일 생태과학연구가] 박주가리[학명: Metaplexis japonica (Thunb.) Makino]는 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다. 열매껍질이 바가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박주가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박주가리는 마치 남녀가 교접하듯 서로 부둥켜안고 자라기에 ‘교등(交藤)’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또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에 걸쳐 월남에서의 중국 세력을 대표했던 곳, 즉 현재의 통킹, 예전에 구진으로 불리던 지역에서 많이 자라기 때문에 ‘구진등(九眞藤)’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약명은 ‘나마(蘿藦)’, 나마자(蘿藦子), 나마근(蘿藦根), 양각채(羊角菜)다. 줄기나 잎을 꺾으면 흰 즙이 마치 젖처럼 나온다. 그래서 ‘젓 같은 액을 가진 덩굴풀’이라는 뜻으로 ‘내장등(奶漿藤)’이라고도 하며, 잎은 심장을 닮은 하트 모양으로 뒷면이 분처럼 희어서 ‘흰반지덩굴풀’이라는 뜻으로 ‘백환등(白環藤)’이라고도 한다. 줄기를 자르면 흰즙이 나오고 열매가 길며 마디가 많이 있어 ‘작표(雀瓢) 또는 열매를 작표자(雀瓢子)’라 하였다. 또 세사등(細絲藤), 고환(苦丸), 환란(芄蘭), 새박덩굴, 새박, 새박뿌리, 박조가리, 노아등, 뢰과,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제 아침에는 날씨가 많이 추울 것이라는 기별을 듣고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춥지 않았습니다. 배곳으로 갈 때는 따뜻해서 좋았는데 안에 들어가니 더워서 윗도리는 벗어야했습니다. 추울 거라는 기별은 제가 사는 곳에는 맞지 않았었나 봅니다. 티비엔 경남교통방송 ‘토박이말바라기’ 꼭지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어제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쓰는 들온말(외래어)과 다른 나라 말(외국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몬(물건) 이름, 집 이름, 일터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일을 할 때 서로 주고받는 말에도 넘쳐나는데 그것이 안 좋은 것이라 느끼지 못하고 쓰는 게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둘레(환경)를 더럽히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에 맞는 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처럼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고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값을 치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토박이말을 지키고 가꾸는 일을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하는 자리느낌(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오늘 맛보여 드리는 토박이말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 고대 연구의 중심지로서 2001년에 <사마르칸트, 문화의 교차로>라는 제목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인터넷에서 사마르칸트를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온다. 중앙아시아에서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다. 기원전 4세기에는 마라칸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기원전 329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되었다. 기원후 6세기에는 투르크인, 8세기에는 아랍인, 9~10세기에는 이란의 사만 왕조, 11~13세기에는 투르크계 종족들의 지배 아래 있다가 호라즘 왕국에 합병되었다. 1220년에는 몽골의 정복자 칭기즈칸에게 점령되고 호라즘 왕국은 멸망하였다. 1365년 아미르 티무르가 몽골 통치자들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후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티무르는 공공집회를 할 수 있는 모스크(mosque, 군사ㆍ정치ㆍ사회ㆍ교육 따위의 공공 행사가 이루어지는 건물)인 비비하눔과 자신의 능묘를 세우고 사마르칸트를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ㆍ문화 중심지로 만들었다. 1,500년 우즈베크인들에게 정복되었고 부하라칸국의 영토가 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사마르칸트는 쇠퇴했으며 1720~1770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112 일어남 옮겨지다 흘러 들어가다 떨어지다 붙어살다 커짐 오늘은 4284해(1951년) 펴낸 ‘우리나라의 발달 6-1’의 51, 52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51쪽 둘째 줄에 ‘일어남’이 있습니다. 요즘 배움책에서 ‘건국’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과 견주어 볼 때 아주 다른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줄에 ‘옮겨지고’가 있습니다. 요즘에 흔히 쓰는 ‘이주되고’와 뜻이 비슷한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나온 ‘흩어져 가기도’ 도 쉬운 말이고 여섯째 줄에 나오는 ‘흘러 들어갔다’는 흔히 쓰는 ‘유입되었다’는 말을 쉽게 풀어 쓴 말이라 더 반가웠습니다. 여섯째 줄에 있는 ‘떨어지고’는 ‘함락되고’라는 말을 많이 보고 들은 사람들에게 낯설어서 오히려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덟째 줄에 ‘다 떨어진 것은 아니어서’에서 보듯이 한결같이 쓴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곱째 줄에 나오는 ‘잡혀갔으나’도 ‘압송되고’라는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서 좋았고 아홉째 줄에 있는 ‘붙어살던’도 쉬운 말이라 좋았습니다. 열셋째 줄에 ‘새 나라를 세웠다’는 말도 ‘건국하였다’를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