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산책 겸 운동 겸 도는 둘레길의 시작이자 끝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아파트 옆이어서 둘레길 들어가는 입구에 인공으로 둑을 쌓아 작은 연못이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저 밑에서 놀던 오리 한 쌍이 올라와서 잘 헤엄치며 놀고 있다. 오리도 그냥 오리가 아니라 수컷의 목덜미에 파란 깃털이 있어 아주 고급스러운 청둥오리이다. 달 포 전에 처음 보고 반가웠는데 어제도 또 나왔다. 그런데 남자들이야 그저 아 오리 한 쌍이 잘 놀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 끝나고 곧 갈 길을 가는 것인데 그날 집사람은 조금 늦게 오더니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두 마리가 있는데 수컷은 자맥질도 안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암컷이 부지런히 먹이를 찾으며 저 앞으로 가니까 수컷이 좀 늦게 눈을 떠 보니 옆에 암컷이 없잖아요? 그걸 보더니 앞으로 바지런히 물살을 저어 가서 암컷이 있는 그 옆에 가서는 다시 또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이고 저 수컷 오리가 어쩌면 나하고 저리 행동하는 게 똑같을까 하고는 속으로 조금 뜨끔했다. "그렇구나. 저 작은 동물계에서도 주변에서 먹을 것을 부지런히 챙기고 정리하고 하는 것이 암컷이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족상잔의 비극 70주년을 맞은 지난해 6월 25일, 그 의미를 되새기는 보도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사회면 한쪽에는 이런 기사가 떴다.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 대법원 무죄 확정”. 이 소식은 그 4년 전인 2016년 3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히 다뤄졌고 사람들의 기억에도 “아 그렇게 되었나? 그렇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을 주고 다시 역사 속으로 들어간 듯했다. 그러다가 최근 모 언론이 조영남 씨로부터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받아 연재를 시작함으로써 다시 세간에 작은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80년 초반에 KBS TV뉴스에서 미술분야를 담당했던 필자는 지난 2016년 상반기에 “조영남 씨가 무명의 후배 가수를 시켜 화투짝 그림을 그리게 해 비싸게 팔아먹었다”라는 주장으로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 보통 사람 이상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미술 담당기자였기 때문도 있지만 바로 더 4년 전에 백남준문화재단에서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 씨를 조명하는 책을 펴낼 때 조영남 씨의 글을 받아서 책에 함께 실었고, 그때 서울 청담동에 있는 조 씨의 집을 방문해 거기서 간단한 출판기념회를 가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정말 봄이구나! 아침 산책길에 진달래가 어느새 방긋한다. 산수유도 못 참고 노란 꽃을 활짝 피었다. 입춘, 우수, 경칩을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당연히 봄이지만, 여전히 밤이 낮보다 길었는데 드디어 이번 주말이 춘분이고 이제 내주부터는 낮이 더 길어지니, 이거야말로 진짜 봄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렇지 않아요. 춘분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오늘(17일) 수요일에 이미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내일부터는 낮이 더 길어진다고 천문학자들이 예고하고 있다. 사실 오늘 수요일은 봄의 분수령인 것은 맞다. 다만 춘분이라고 꼭 이날 낮밤의 길이가 같은 것이 아니고 그 전에 이미 같아진다고 하니 춘분 사흘 전에 낮밤이 같다고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그렇다면 오늘부터 진짜 봄이다. 봄이 되면서 밤하늘에 달라지는 것이 있단다. 겨우내 북쪽 지평선 근처에 머물던 북두칠성이 북동쪽 하늘로 높이 올라오는 것이다. 북두칠성이 올라오면서 큰 국자 형상의 이 별이 약간 기울어지고 그러면 그 국자에 담겨있던 하늘 샘물이 봄비가 되어 내린다고 생각했단다. 며칠 전 봄비가 오긴 했지만, 이번 주말 춘분에 다시 비가 온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졸졸졸졸졸..." 우리 말의 자랑이 소리를 적어내는 의성어와 모양을 적어내는 의태어가 풍부하고 다채롭다는 것이라는데, 물소리를 적어보려니 두 음으로는 안될 것 같다. '졸졸' 그러면 조금 흐르다가 마는 것 같고 '졸졸졸' 그러면 흐르는 것은 맞는데 뭔가 그냥 느낌이 없고 '졸졸졸졸' 그러면 제법 비슷하게 갔지만 4자로 어색하고... 결국엔 다섯자로 된 '졸졸졸졸졸'이란 표현이 나왔다. 이 표현이 의성어인 것 같지만 그것만은 아니고 의태어라고만 해도 좀 이상하니 결국엔 의성어와 의태어가 다 되는, 말하자면 3차원의 표현법이라 하겠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지난주 3월이 되는 첫날 온종일 비가 내렸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별생각 없이 산에 올랐다가 굽이굽이 도는 둘레길 저 밑 작은 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듣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이 느낌을 글로 표현하려니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겨울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달이 바뀌면서 저렇게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쳐흐르는구나. 그야말로 봄비였구나. 그리고는 밤사이에 눈도 엄청나게 왔는데 그 눈 밑으로 밤사이 온 비가 메말랐던 겨울의 흙과 나무, 풀들을 다 적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니다 ... 서정주, '선운사 동구' 선운사를 찾아간 미당 서정주 시인이 보고 싶었던 것이 동백꽃인지 주막집 노래하는 아주머니인지가 헷갈리기는 하지만 선운사 하면 선운사 입구 오른쪽 비탈에서부터 절 뒤쪽까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수천 그루의 동백꽃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창 꽃을 피웠을 때 복스럽게 꽃이 피다가도 질 때가 되면 후두둑 송이째 떨어져, 우리의 가슴에 담아있던 눈물도 후두둑 떨어지며 가슴이 텅 비어버린다. 선운사 동백은 동백 자생지의 최북단이라고 하니 꽃 피는 시기가 늦은데 그보다 훨씬 남쪽에서는 지금쯤이면 벌써 꽃이 피고도 활짝 피었을 것이다. 십여 년 전 부산에 지역책임자로 근무하게 되면서 알게 된 동백꽃, 나는 물어보았다. "도대체 싱싱한 이 꽃은 시들지도 않았는데도 왜 땅에 뚝뚝 떨어지는 것인가요?“ 처음에는 아주 조그맣게 시작된 그 궁금증은 점점 진폭이 커지면서 빨리 답을 얻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큰 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것도 작은 꽃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2년 전(2019년) 우리는 3.1절을 크게 기렸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이 막힌 숨통을 트기 위해 우리나라 전역에서 비무장 평화운동을 일으킨 지 100년이 됐음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3.1운동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한 독감 때문. 3.1만세운동이 번져나가던 그때 우리나라에도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에 의한 독감이 크게 유행했었다는 사실이 다시 알려지면서부터다. 그것이 스페인 독감이었다고 한다. 1918년에 가장 창궐해서 전 세계적으로 몇천 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독감이 우리나라에서도 엄청 피해를 주었는데 그때 1차, 2차 유행에 이어 3차 유행이 마침 3.1만세운동이 일어날 때 밀려와 피해가 가중됐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1918년 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변종이 생겨 9월 이후 세계에서 사망자가 3,000만 명 넘게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2005년에 미국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한 여성 스페인 독감 희생자의 폐 조직을 채취한 뒤 여기서 이 바이러스의 8개 유전자 배열을 재구성해 냄으로써 스페인 독감 바이러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사를 하면서 책장에 꽂힌 책들이 정리하고 버리는 가운데 구석에 있었기에 눈여겨보지 못하던 조그만 책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日本이 美國을 추월하고 韓國에 지게 되는 理由 》 35년 전인 1986년 7월에 나온 책이다. 일본 도카이(東海)대학의 謝世輝(사세휘, 일본 발음으로는 사세키) 박사가 저술한 것을 김희진씨가 번역해 한국경제신문사에서 펴냈다. 당시 사세휘 박사의 이 책은 큰 인기였다. 맨 먼저 한국경제신문이 지면에 연재한 이후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 결국엔 펴내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일본이 미국을 추월하고 한국에 지게 되는 이유”라는 내용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이고 또 신나는 것이어서 우리 사회 각계에서 이 책을 사서 보았고 당시 문명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사세휘 박사는 1985년까지의 통계를 가지고 미국과 일본, 한국의 경제력을 비교하고 있는데. 단순히 경제만이 아니라 역사ㆍ문화ㆍ정치 등 요소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서 미래를 전망하였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때 당시 한국의 국민총생산은 일본의 7%에 불과하였고, 전 분야에서 최소 20년은 뒤처져 있다는 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미국을 많이 아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시애틀이란 도시는 좀 생소할 것이다. 로스앤젤리스나 샌프란시스코는 어느 정도 듣거나 보고 알지만, 그보다 훨씬 북쪽, 캐나다와 국경을 거의 접하고 있는 시애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 가운데는 우리나라 어디에나 매장이 있는 미국 커피브랜드인 스타벅스의 발상지가 시애틀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언론계 30년 이상을 근무한 나 같은 사람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정보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시애틀이라는 이름이 사실은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라는 것은 더욱더 그렇다. 7년 전 이맘때, LA에 사는 처제 동서를 보러 갔는데 두 내외가 우리를 차에 태우고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시애틀까지 자동차 여행을 준비했기에 그 덕에 시애틀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가면서 동서의 설명을 들으며 시애틀이 이런 곳인가 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현대를 대표하는 상당수 미국 트렌드의 발상지가 시애틀이었던 것이다. 컴퓨터 산업을 일으켜 미국을 21세기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본사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희망의 새해니 뭐니 하면서 해를 바꾸어도 사람들은 오로지 코로나 발생이 줄어들기만을 바랄 뿐, 계절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듯하다. 예전에 혹독한 추위가 오면 봄 봄 노래를 불렀는데, 요즘에는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바깥나들이도 못 하고 대부분 집콕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영 봄을 기다리지도 찾지도 않는다. 하긴 예전보다 난방시설이 좋아져 굳이 따뜻한 봄날이 사무칠 이유는 없으렷다. 한동안 영하 십몇 도 이하로 내려가다가 어느 틈엔가 영상 15도까지 올라가는 변화무쌍함도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일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집안에만 있으면서 하늘만 보다 보니 벌써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째인데, 문득 달력을 보니 아니 오늘이 입춘이구나! 盤登細菜燕依人 오신반(五辛盤)을 내오고 처마에 제비 드니 此是東皇按節辰 지금은 봄의 신이 행차하는 때로세 誰言極否難回泰 그 누가 말했던가 꽉 막히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忽破窮陰復睹春 어느덧 심한 추위 다 지나고 봄이 돌아왔는 걸 ...《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입춘/임인년(1782, 정조6) 예전에는 이랬단다. 입춘에는 오신반을 먹었단다. 매운맛이 나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나는 현재 공자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지만, 인생 칠십에 배우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음을 깨닫고 있다. 지금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냐는 말들을 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고,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어디에 써먹으려고 배우는 것보다도 배우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런 말도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신 분들로부터 들으면 그 의미가 새로워질 수 있다. 위의 말을 한 사람은 가야금 음악가이신 황병기 님이다. 가야금 연주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황병기 선생은 2013년에 갑자기 《논어 백 가락》이란 책을 내셨는데 공자의 어록이라고 할 《논어》의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인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귀절을 설명하면서 배움의 중요성을 다시 말씀하신다. 이 책이 나온 2013년에 황병기 선생은 77살이셨다. 말하자면 70대 후반에 접어든 때인데, 이 때에도 배움의 중요성, 아니 배움의 즐거움과 기쁨에 대해서 잔잔하게 말씀을 하신다. "아무리 노인이 되어도 뭔가를 알고 배우려는 게 사람이다. 노인도 세상 뉴스는 알고 싶고 손주들이 어떻게 지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