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다. 나를 다독이시고 나를 기르시며, 나를 자라게 하고 나를 키우시며, 나를 돌아보시고 나를 다시 살피시며, 출입할 땐 나를 배에 안으셨다. 이 은혜를 갚으려면 하늘처럼 망극해 한량이 없구나. 父兮生我 母兮鞠我 拊我畜我 長我育我 顧我復我 出入腹我 欲報之德 昊天罔極” ...《시경》 〈육아(蓼莪)〉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올해로 혼인 70주년을 맞았다. 거꾸로 세어보면 625동란이 나던 1950년 초겨울에 혼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신 것이다. 두 분이 혼인하실 당시 아버지는 집의 나이로 18세, 어머니는 한 살 위인 19세셨다. 문경 주흘산 동쪽 계곡의 너른 분지의 윗동네에 사는 할아버지와 아랫동네에 사는 외할아버지가 서로 친구분이신데 두 분이 둘째 아들과 둘째 딸을 맺어 주셔서 부부가 되고 두 분이 자녀를 3남 2녀를 낳아 그 밑에서 이제 손자 손녀 10명에 우선 증손주 8명이 태어나 자라고 있다. 마침 아버지 생신이 늦가을 초겨울이라서 올해 혼인 70주년을 맞아 생신축하 겸 성대한 기념 축하연을 열어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로서 마땅하나 식구들이 모두 한데 모이다가 혹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그것도 벌써 근 30년 전의 일이구나. 언젠가 점심을 마치고 영등포역 앞 지하상가를 지나다가 레코드를 파는 집이 보여 잠깐 들렸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CD. ‘줄리에트 그레코’였다. 그날 오후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기억도 안 될 정도로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얼른 CD를 걸었지. 옛 축음기가 돌아가는 듯한, 가을비가 내리는 듯한 분위기의 전주 부분에 이어 촉촉한, 비음의 목소리가 거실을 감싸고 돌아온다. 오, 네가 기억해 주었으면 우리 사랑하며 행복했던 시절을 그 무렵 인생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태양은 지금보다 더 뜨거웠지 죽은 낙엽들은 삽 속에 모여 담기는데 추억도 회한도 고엽처럼 모여 담기는데 북풍은 싸늘한 망각의 어둠 속으로 그걸 싣고 사라져버린다. 이런 내용의 이 노랫말이 줄리에트 그레코의 물 흐르는 듯한 목소리에 담겨 흐르는 동안 나의 머리도 근 50년 전 옛날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70년대 초 대학생 때 클래식 기타동호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기분을 내어 자주 들리던 곳이 있었다. 지금 한국일보 남쪽 이마빌딩 앞 삼거리에 있던 '해심(海心)'이라는 조그만 술집... 의자라야 무척 좁고 낡고 것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목마른 계절” 이 가을에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 “아 목이 마르구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술 생각이 나느냐고 하겠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모든 게 목이 마르다. 어디든 가고 싶은 것도 그렇고 누구든 만나고 싶은 것도 그렇고 무슨 이야기이든 밤새워 하고 싶은 것도 그렇고 ... 그렇다. 나는 목이 마른 계절을 살고 있다. 술이 넘치지만, 술을 같이할 사람도 없고. 술 많이 마시자고 하면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을 것이고, 술 대신에 맑은 음료를 놓고 이야기의 강물을 마시고 싶어도 같이 이야기할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지금 내가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 알고 싶은데 어디다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 《목마른 계절》 사실은 책 이름이다. 우리의 전설이 된 수필가 전혜린의 수필집이다. 전에 본 수필 ‘먼 곳에의 그리움’에서 이미 알아버린 그녀의 마음, 어딘가 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내 마음에도 방랑의 바이러스를 뿌린 게 아닌가 헷갈리는 때에 나는 인터넷으로 옛 책 검색을 하다가 이 《목마른 계절》이란 이름의 책을 발견했다. 1976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이 2018년에 5판 4쇄까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가을 수채화 ... 윤갑수 따스하던 한낮의 날씨는 금세 지는 해처럼 갈바람은 차갑게 옷깃을 파고든다. 자람이 멈춘 나뭇잎마다 푸른빛을 내려놓고 탈색 중이다. 밤낮 기온 차가 화가로 변신 연일 멋진 수채화를 그린다. 이제 가을이네. 사람이 다니는 길옆에는 수천, 수만 장의 수채화가 그려지고 있구나. 차가운 공기에 나뭇잎들이 어이쿠 안 되겠구나 하면서 몸의 물기를 거두면 싱그럽던 녹색의 이파리들도 노랗게 누렇게 빨갛게 색을 바꾼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이런 가을엔 모두가 시인이다. 모두가 시를 쓰고 싶고 그 시로 이 가을의 무드를 잡고 그 속에 빠져들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시집이라는 책 속에 들어가거나 어디 창이 있는 방안에서 뭔가를 찾을 때 가능한 마음의 소풍이다. 길거리에서는 빠르게 지나가는 차량 사이에서 그런 호사를 누리기가 어렵다. 가을의 길거리는 자칫 마음만 바쁘고 쓸쓸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길 가다가 전봇대에서 멋진 시를 마주친다. 그 시는 이렇게 속삭인다.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방랑시인 '김삿갓'이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그 집 아낙이 설거지물을 밖으로 휙~ 뿌린다는 것이 그만 '김삿갓'에게 쏟아졌다. 구정물을 지나가던 객(客)이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사과를 해야 마땅하지만, '삿갓'의 행색이 워낙 초라해 보이는지라 이 아낙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돌아선다. 그래서 '삿갓'이 등 뒤에 대고 한마디 욕을 했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상스러운 욕을 할 수는 없어서 단 두 마디를 했다. "해. 해." 이게 무슨 욕인가? 그러나 잘 풀어보면 해=年이니까 "해. 해." 그러면 '년(年)'자(字)가 2개니까 2年(=이년)이든지 아니면 두 번 연속이니까 쌍(雙), 곧 '雙年(쌍년)'이 될 것이다. 김삿갓에 관해 일화나 유머와 재치, 해학에 가득 찬 멋진 시가 어디 한두 개인가? 한 농부의 처가 죽어 그에게 부고를 써달라고 하자 '유유화화(柳柳花花)'라고 써주었다는 얘기는 국민이 외울 정도이다. '버들버들하다가 꼿꼿해졌다'는 뜻이 아닌가? 이처럼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표현하기도 하며 한시를 한글의 음을 빌어 멋지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그의 솜씨는 우리나라 고대문학사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 그 대표적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양력 10월만 되면 두려운 날이 하루 있다. 결혼기념일이다. 결혼기념일을 부부가 같이 기념하고 즐기는 날이라는 사회 통념에 따르면 나는 지금까지 이날을 제대로 같이 기념한 적이 없다. 우선 결혼기념일이 정확히 언제인지가 기억되지 않은 해가 많았다. 8월에 있는 부인 생일은 챙겼지만, 그 두 달쯤 뒤인 이 결혼기념일은 날짜가 꼭 이틀쯤 헷갈려서, 무심코 지나고 나서는 ‘아이쿠 이런’하고는 후회를 한다. 대개 그런 날은 부인에게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뒤늦게 깨달은 경우이다. 그리고 어쩌다 미리 생각이 나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그게 서로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잘 맞지를 않아 삐끗거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아주 챙기지 않았으면 70을 바라보는 내가 아직까지 다리가 성한 채로 나다닐 수 있었겠는가? 지난 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결혼 15주년을 맞은 1995년 북경에 있을 때에 시간을 내어 천진을 하루 다녀온 일이 있었고, 10년이 더 지난 2005년에는 결혼 25주년을 기념해 일본 단풍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 말하자면 25주년이니 은혼식을 일본 여행으로 치른 셈이 된다. 그렇지만 이런 큰 두 기억 말고는 대개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벌써 아침인가? 부스스 눈을 부비며 일어나보니 창밖이 훤하다. 날이 벌써 새나? 이런 생각에 밖을 내다보니 아직 지지 않은 둥근 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있다. 내일이면 8월 보름 아닌가? 곧 더 원만해질 달이 자애롭게 서쪽 하늘에서 웃고 있는 새벽이다. 한가위 대보름을 위해 마치 수레바퀴처럼 둥글어지며 달려온 저 달이 오늘 새벽에 일찍 나를 깨운 것이다. 그 달을 올려다보다가 눈을 밑으로 내리니 세상이 온통 은빛 속에 춤을 춘다. 북한산 자락에 세워진 아파트 사이의 도로도 차량의 흔적이 끊긴 채 고요하고, 올려다보이는 나지막한 봉우리들이 시립(侍立, 웃어른을 모시고 섬)한 그 위로 달빛 공주의 춤을 보며 손뼉을 쳐주고 있다.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은 어떻게 그리 이 달빛을 보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을 절창을 했을까? 어떻게 이 달빛을 보며 고단한 인생, 고향을 떠나 살 수밖에 없는 우리 나그네의 심사를 온통 다 쓸어 담았을까? 床前明月光 침상 앞 달빛 어찌 그리 밝은지 疑是地上霜 서리가 내린 줄 알았잖아 擧頭望明月 고개 들어 밝은 달 보다 보니 低頭思故鄕 고향 생각에 고개 절로 내려가네 。 다섯 글자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살아가는 순간 순간에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 인생은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닐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월요일이 그랬다. 광화문 근처에서 마침 시간이 나길래 내 발길은 나도 모르게 교보문고의 음반매장으로 향한다. 거기는 요즈음 기준으로 한물도 많이 간 CD들을 여전히 팔고 있는 곳이다. 음반매장에서 음반 고르는 행복 최근 보급판으로 몇십 장으로 묶어서 파는 전집류들이 많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싼 것은 비싼 편인데, 내가 이곳을 자주 간 이유는 '낙소스'라는 아주 대중적인 가격의 CD를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장에 8천원.,..이 정도면 정말로 싼 것이 아닌가? 게다가 맘에 드는 음반이라도 고를 때는 그것이 아주 큰 기쁨과 행복으로 변하니 말이다. 음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매니아들처럼 전문적인 게 아니라 그저 이것저것 듣기 쉽거나 기분 좋은 곡들을 듣는 수준이어서 나는 낙소스 라벨 가운데서도 클래식 기타곡집을 즐겨 고르곤 한다. 사실 낙소스 라벨이 장 당 8천원이라는 낮은 값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기성의 최정상 음악가들 대신에 젊고 유능한, 그리고 장래가 촉망되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여자들처럼 말 곧 언어를 안주로 해서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남자’라는 종족들은 자나 깨나 술을 마시기만 하면서 술잔에 대해서는 그리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이 술잔에 대해서도 애착이 있고 집착이 많았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기왕에 먹는 술, 뭔가 색다르고 정취가 있고 멋있게 먹느냐를 궁리하다 보니, 술잔에 멋이 있어야 한다는 데로 생각이 미친 것이리라.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한학자인 아오키 마사루(靑木正兒, 1887~1964)는 중국의 문화를 연구해서 펴낸 책 《중화명물고(中華名物考)》의 ‘주상취담(酒觴趣談)’이란 항목에서 술잔의 등급을 매겨 발표한다. 으뜸으로 치는 것은 ‘야광배(夜光杯)’다. 전설에 따르면 주(周)나라 5대 목왕(穆王)이 순시하기 위해 서역에 왔을 때 서역 사람들은 백옥의 정(百玉之精)으로 만든 술잔을 그에게 바쳤다. 달은 밝고 바람이 맑은 밤에 술이 잔 속으로 들어가자 술잔은 선명한 광채를 발하면서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주나라 목왕은 크게 기뻐하여 이를 나라의 보배로 여기고 “야광상만배(夜光常滿杯; 밤에 광채가 항상 잔에 가득하다)”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맑은 시내가 흐르고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 그곳에 고래등 같이 우뚝 솟은 기와집을 짓는다. 마루는 시원하고 방은 따뜻하며 둘레에 난간이 처져 있고, 창과 출입문은 밝고 깨끗하며 방바닥에는 왕골자리가 시원하게 깔린다. 흐르는 물이 당 아래에 감아 돌고 기암괴석이 처마 끝자락에 우뚝 솟아 있으며, 맑은 못이 고요하고 시원하며 해묵은 버드나무가 무성하다. 이리하여 무더운 여름 한낮에도 이곳의 바람은 시원하다." - 김창협. 청청각기(淸淸閣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 이런 집을 짓고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살고 싶은 것이 보통의 바람일 것이다. 조선시대에 문인들이 이런 좋은 환경에 집을 마련하고 살았을 것이지만 그들의 그윽한 경지를 눈으로 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해서 벼슬을 한다고 해도 여간해서는 나라에서 주는 녹봉만으로 이런 집을 지을 재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렇게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집안에 재력이 있는 경우임이 틀림없다. 조선시대의 문장가로 유명한 농암 김창협(1651,효종 2∼1708,숙종 34)은 아버지 김수항이 기사환국(숙종 15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