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 ‘먹거리’ 시비 김수업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 먹거리라는 낱말이 한때 제법 쓰였으나 요즘은 거의 자취를 감춘 듯하다. 한때 제법 쓰인 데에도 어느 한 분의 애태움이 있었고, 자취를 감춘 말미에도 어느 한 분의 걱정이 있었음을 나는 안다. 나처럼 이런 속내를 아는 사람은 말이라는 것이 저절로 생겨났다가 저절로 죽어버린다는 통설을 믿기 어려워진다. 말이라는 것이 더불어 쓰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약속으로 살아나기도 하고 죽어버리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반드시 맨 처음에는 누군가가 씨앗을 뿌려야 하고 마침내 누군가가 싹을 자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먹거리를 살리려 애태우던 분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분이 먹거리라는 낱말을 살리려고 애를 태우던 시절의 한 고비를 잘 알고 있다. 내가 경상대학교에 있던 1970년대 후반에 그분은 우리 대학으로 먹거리라는 낱말을 써도 좋으냐고 글을 보내 물어왔다. 그분이 보낸 글들에는 자신이 세계식량기구에서 일하며 우리말에는 영어 ‘food’처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싸잡는 낱말이 없어 찾아 헤맨 사연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먹거리’라는 낱말을
일상생활에서 낱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삶의 애환이 깃든’의 ‘애환’은 ‘슬픔과 기쁨’이라는 뜻인데, 슬픔인줄만 알고 쓴다. 그래서 가끔 ‘삶의 애환과 기쁨이 깃든’과 같이 겹친 표현이 나온다. 뜻을 잘못 알고 쓰는 말 가운데 ‘서구’라는 말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경제의 위기는 세계 경제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광복후 서구의 학문, 특히 미국의 학문 방법론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여기서 ‘서구’(西歐)라는 말은 잘못 쓰였다. 이는 서구라파(西歐羅巴)를 줄인 말이다. 구라파는 ‘유럽’을 한자음을 빌려쓴 표기다. 프랑스를 한자음을 따서 ‘불란서’라 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그렇다면 앞에서 ‘미국을 비롯한, 미국의 학문방법론’과 같이 미국을 포함하는 경우 ‘서부 유럽’을 뜻하는 서구라는 낱말을 쓰는 것은 적합하지 못하다. 대신 ‘서양’이라는 말을 써야 올바르다. 따라서 서유럽을 가리킬 때는 ‘서구’라는 낱말을, 미국과 유럽을 함께 묶어 표현할 때는 ‘서양’이라는 낱말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제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한자음을 빌려 적은 지명은 될수록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에 보기를 든 ‘구라
구경하는 집 언어는 하나의 기호일 뿐이어서 그 자체가 지닌 뜻이 별 게 없으므로 자주 써서 쓰임을 공유하면 그만이라고들 한다. 코끼리도 ‘코끼리’ 아닌 ‘끼리코’나 ‘상’(象)이라고 많은 이가 써서 통하면 된다는 얘기고, 마침내 ‘불고깃집’을 ‘가든’이라 불러도 통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랜 내림과 그 얼이 스민 좋은 연장을 갖춘 겨레한테는 이 말이 잘 먹히지 않는다. 외래어 ‘모델’은 광대·배우 뜻을 빼면 ‘본보기·본·틀·모형’으로 쓸 말이다. ‘모델케이스’도 ‘본보기’다. ‘모델하우스’라면 ‘본보기집, 본보기주택’이 쉽게 나온다. 이것보다 ‘견본주택’이라고 쓰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견본’ 역시 일제여서 즐겨 쓸 게 못 된다. 우리식 한자말로 ‘간색’(看色)이 있지만, 이를 아는 이나 쓰는 이가 거의 없다. 그러니 ‘본보기집’ 정도가 무방할 터이다. 요즘 서울 공덕동 달동네 자투리땅을 비집고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가 들어섰다. 많아야 스무남은 칸짜리인 그 새 집 언덕축대에 흰 펼침막을 내걸었는데, ‘구경하는 집’이라고 써놓았다. 흔히 ‘모델하우스·견본주택’처럼 임시로 번지르르 얽어놓은 가짜집이 아니다. 다 지은 집 가운데 길에서 드나들기 편한 집을
얼마 전 어떤 사람으로부터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외국에 나간 한국인이 앞에는 영어로만 씌어 있고, 뒷면에는 한자로만 되어 있는 명함을 서양인에게 내밀었다고 한다. 이 명함을 받아든 사람은 얼굴은 분명 동양인인 그에게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물었다 한다. 그 사람의 반응이 어떠했을지 우리 모두가 상상해 보자. 오늘(2000년 10월 9일)은 554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나라의 말글문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일제시대의 선각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우리 말글이 이제 세계화, 보수화의 추세에 밀려 다시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글과 문화가 없는 민족은 오늘의 세계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면서도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많은 사람들이 한자 또는 영어 등 외국어를 써야 유식한 듯 착각하고, 초등학교부터 한자와 영어 가르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더하여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지 벌써 55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일본말 찌꺼기를 무심코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우리는 새롭게 각성하고, 자기네 나라의 말글을
.. 편지이야기까지 하고난 룡호는 슬그머니 눈길을 떨구며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뒤늦게야 철없이 이런 이야기를 해서 장군님께서 마음 쓰시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들었던것입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고뿌메 단물을 부어 룡호의 손에 들려주며 어서 마시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잡지 1998.12. 6쪽"달게 만든 물"이 `단물'일 테죠. 하지만 북녘에서는 남녘과 조금 다른 뜻으로 `단물'이라는 말을 씁니다. ┌ [북녘]│ (1) `민물'을 짠물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2) 단맛이 나는 물. 쓴 물│ (3) 청량음료나 약품을 만들 때에 쓰는 진 하게 졸인 사탕물│ (4) 고기붙이나 물고기 등을 끓이거나 고았을 때 우러나오는 │ 입맛이 단 구수한 물│ (5) (남새나 나물 등을 절이거나 삶을 때)제맛이 나는 물│├ [남녘]│ (1) = 민물(소금기가 없는 강물,냇물,우물물,호숫물)│ (2) 단맛이 나는 물│ (3) 알짜나 실속이 있는 곳│ │ (4) 칼슘 및 마그네슘 염류가 적은 물│ (5-북) 청량음료나 약품을 만들 때 쓰는 진하게 졸인 설탕물│├ 청량음료(淸凉飮料) : 탄산가스가 들어 있어 맛이 산뜻하고 시원한 │ 음료를 통틀어 이르는 말. 사이다, 콜라 따위가
하리놀아 - 둘 사이를 갈라놓다 낱말풀이를 보다가 이런 용례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하리놀아'가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잘못 실은 말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러다가 혹시나 하고 `하리놀다'라는 말을 찾아보았죠.[하리놀다] 윗사람에게 아무개를 헐뜯어 일러바치다이 말뜻을 살피니 우리가 흔히 쓰는 `이간질'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입니다. 꼭 같지는 않으나 아무개를 헐뜯어서 일러바치면 애꿎잖아요. 애꿎게 고자질을 당했을 때, 남과 남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헐뜯을 때 `하리놀다' 같은 말을 쓰면 알맞으리라 생각합니다.4336(2003).2.5.물.ㅎㄲㅅㄱ 최종규 / 말글운동가("함께살기-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나눔터'에서 퍼옮)
.. 크로우저는 이때다 하고 득의양양해서 사내애 둘한테 슬롭을 붙잡고 있으라고 하고 마르타에게 정의의 복수를 하라고 했다는 거야. 그러자 마르타가, 이 쪼끄만 여자애한테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정통으로 슬롭의 코에 주먹을 한방 먹였어. 코에서 코피가 주루룩 흘러내리자 슬롭은 대성통곡 울음을 터뜨렸고, 주위에 있던 반 아이들은 잘코사니 통쾌해 했다는 거야 .. 69쪽"미운 사람이 잘못되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고소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잘코사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쌤통'이라는 말을 씁니다. `쌤통'도 `잘코사니'와 뜻이 비슷합니다. `쌤통'은 어떤 사람이 일을 하다가 쓴맛을 보거나 하는 일이 어긋나서 딱한 형편에 놓인 일을 고소하게 여기는 말입니다.┌ 반 아이들은 잘코사니 통쾌해 했다는 거야└ 반 아이들은 쌤통이라며 통쾌해 했다는 거야요즘 에스케이 그룹이나 다른 문어발 회사가 그동안 우리 나라 살림을 우리고 보통사람 등을 처먹으면서 뱃속에 넣었던 검은 돈 문제가 하나둘 튀어나옵니다. 이런 일을 보면서 "아따! 잘코사니구만!" "고것 보라지. 쌤통 도라무통 깡통이다!" 하고 한마디 놀려주면 좋습니다.4336(2003).2.25.불.ㅎㄲㅅㄱ 최종
낱말책에 낱말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우리 말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말이라 해도 `죽은 말'과 다름없다고 말할 수 있어요. 죽은 말이 아니라 해도 `묻힌 말'이 되기 쉽고 오래지 않아 낱말책에서조차 사라질 수 있습니다. 쓰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집지기는 받은 물건을 땅에 내던졌다 ..`집지기'라는 말은 "집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 수위(守衛)│ (1) 지키어 호위함│ (2) 관청,학교,공장,회사에서 경비를 맡아봄. 그런 일을 맡은 사람├ 경비(警備)│ (1) 도난,재난,침략을 걱정하여 사고가 나지 않게 미리 살피고 지│ 키는 일│ (2) = 경비원└ 경비원(警備員) : 경비 임무를 맡은 사람우리가 살아가는 남녘에서 집을 지키는 사람을 `집지기'라 쓰는 일을 거의 만나지 못합니다. 드문드문 북녘 책에서 만날 수 있을 뿐. 하지만 남녘 낱말책 몇 군데에는 `집지기'가 실려 있습니다. `집지기'라 할 때 `집'은 살림집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하는 곳이라면 두루 `집'이라 할 수 있어요. 가게를 가리켜 `집'이라고도 해서 `밥집, 술집, 옷집'을 말하니까요. 드나드는 문 앞에서 지키는 사람은 문지기요, 집 안팎에서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33=문화어 북녘을 방문해 만난 주민들에게 '괜찮습니까'라고 물으면 금방 '일없습니다'란 대답이 나온다. '무슨 일이 없다는 거지' 어리둥절할 지 모르지만 북에서 '일없다'란 말은 '괜찮다'는 뜻이다.이처럼 분단 반세기가 지나면서 남과 북의 언어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발생했다. 북에서는 도시락을 곽밥, 주차장을 차마당, 각선미를 다리매, 주먹밥을 줴기밥, 맞벌이세대를 직장세대로 부른다. 또 노크는 손기척, 레코드는 소리판, 원피스는 외동옷, 투피스는 동강옷, 삐삐는 주머니종, 아파트는 살림집 등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쓰고 있다. 현재 이북말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1960년대 후반 만들어진 문화어로 지칭된다. 북한은 문화어에 대해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 각 지방의 모든 우수한 말을 받아들이고 고유말을 바탕으로 하여 민족적 특성을 살리면서 현대적 요구에 맞게 발전된 말"이라고 정의한다. 북은 1966년 5월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 서울말을 이르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평양말을 표준어로 정했다. 또 김 주석은 10여 년 전에 고유어와 한자어의 뜻이 같을 때는 고유어를 사용하며 한
고운 한글이름은 개인, 단체 개성을 돋보이게 해 벌써 10 수년전쯤 지난 일이다. 나의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보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오더니 갑자기 뾰루퉁하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다."아버지 내 이름은 왜 한글이름이어요? 이상하다고 아이들이 놀리잖아요."빙그레 웃어주었다. 그리곤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그 아이들에게 이름으로 상받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구 해." 그 뒤로는 우리 아이의 입에서는 다신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우리 집안에는 족보가 있어서 나는 한자 돌림자를 이름 중에 가지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이름 중에 한자 돌림자를 써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자손이 많이 퍼진 가문을 보면 사촌간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오며, 전화번호부에 보면 동명이인이 많게는 수백 명에서 수십 명씩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젠 한자로의 돌림자는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한글로 짓게 되었다. 큰 아이는 "아름 솔", 작은 아이는 "으뜸 솔"이다. 한자 대신에 순 우리말 '솔'자로 돌림자를 대신했다. '솔'자는 우리말사전에 보면 다음과 같이 좋은 뜻을 가진 낱말들이 나온다.1. 소나무, 우리 조상들이 소나무 외에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