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즉위년(1418) 8월 11일 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 교서를 반포하기를 “아아, ... 그 처음을 삼가서, 종사의 소중함을 받들어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행하여야... 하였다.” (《세종실록》 즉위년 8/11,1418) ‘시인발정(施仁發政)’은 중국 고사에서 먼저 ‘발정시인(發政施仁)’으로 나왔다. 양혜왕 장구 상’에 ‘今王發政施仁・使天下仕者皆欲立於王之朝・耕者皆欲耕於王之野・商賈皆欲藏於王之市・行旅皆欲出於王之塗・天下之欲疾其君者皆欲赴愬於王・其如是孰能禦之’로 되어 있다. “지금 임금께서 정사를 하실 때 인정을 베푸시는 것은 천하에서 벼슬하려는 사람이 모두 임금의 벼슬에 오르기를 바라게 하고, 밭을 가는 사람이 모두 임금의 들판에서 밭을 갈기를 바라게 하고, 장사하는 사람이 모두 임금의 시장에서 물건을 두기를 바라게 하고, 여행하는 사람이 모두 임금의 길에 나오기를 바라게 하고, 천하에서 자기 임금을 싫어하는 사람이 모두 임금께 나아가 하소연하기를 바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그러면서, 파는 것을 상(商), 생활하면서 파는 것을 고(賈)라고 하고, 정사를 할 때 인정을 베푸는 것은 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주변 사람들을 보면 초ㆍ중ㆍ고 12년 동안 국어를 배우고, 대학국어까지 공부한 사람들 모두 글쓰기는 참 어려워합니다. 그 까닭은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가 그저 입시에 맞춰서 공부했을 뿐 학교에서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여기에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모두 잘난 체에 급급한 나머지 어려운 말을 마구 써대기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글쓰기가 두려워진 것입니다. 576년 전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그 목표를 어려운 한문이 아닌 글자로 백성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도록 하려 함이었습니다. 곧 글쓰기는 쉽게,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되도록 짧은 글이어야 하지요. 어떤 이는 한 글월(문장)을 5줄이 넘게 이어 쓰는데 그러면 분명히 임자씨(주어)와 풀이씨(술어) 관계가 명확해지지 않으면서 글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됩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한 낱말을 빼도 말이 통하면 그 말은 과감히 빼버려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서 뛰었다.”에서 ‘불구하고’는 일본말로 쓸데없는 군더더기입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