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는 태양 주위를 쉬지 않고 공전하였다. 김 과장이 나목에서 미스 나를 만난 지도 넉 달이 지나 10월이 되었다.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 퇴근 무렵, 김 과장은 갑자기 나목과 아가씨가 생각났다. 그사이 두어 번 술집에 갈 기회는 있었지만 김 과장은 일부러 나목은 피하였다. 어떻게 보면 순수했던 짧은 시간의 추억이 더럽혀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비를 맞으며 뚝뚝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려니까 아가씨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싶은 생각이 자꾸만 솟아났다.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해도 아가씨의 모습은 계속 어른거렸다. 내가 왜 이럴까?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혼자 가기에는 아무래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김 과장은 박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길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박 과장도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박 과장은 선뜻 좋다고 대답했다. 둘은 늘 가던 돼지갈비집에 먼저 들렸다. 소주잔을 비우며 김 과장이 물었다. “박 과장님, 왜 사람들은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할까요?” “글쎄요, 김 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한문을 끌어들이지 않았던 시절, 우리 겨레는 땅덩이 위에서도 손꼽힐 만큼 앞선 문화를 일으키며 살았다. 비록 글자가 온전하지 못하여 경험을 쌓고 가르치는 일이 엉성했을지라도, 입말로 위아래 막힘없이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하나로 어우러져 살기 좋은 세상을 일구어 이웃한 중국과 일본을 도우며 살았다. 이런 사실이 모두 우리나라 고고학의 발전에 발맞추어 알려진 터라 기껏 지난 삼사십 년 사이에 밝혀졌다. 이제까지 밝혀진 사실로만 보아도, 우리 겨레는 구석기 시대에 이미 대동강 언저리(검은모루, 60만 년 전)와 한탄강 언저리(전곡리, 26~7만 년 전)와 금강 언저리(석장리, 4~5만 년 전)에서 앞선 문화를 일구며 살았다. 무엇보다도 구석기 말엽인 일만 삼천 년 전에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벼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이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드러났다. 그것은 이제까지 세상에서 맨 먼저 벼농사를 지었다고 알려진 중국 양자강 언저리의 그것보다 삼천 년이나 앞서는 것이다. 게다가 청원군 두루봉 동굴에서는 죽은 사람에게 꽃을 바치며 장례를 치른 신앙생활의 자취까지 드러나, 구석기 시대에 이미 높은 문화를 누리며 살았던 사실도 밝혀졌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가씨는 왠지 이 남자가 좋아졌다. 술자리에서 별별 남자를 다 만났으나 이 남자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가씨가 담배를 한 대 꺼내어 입에 물었다. 김 과장은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 많이 피나?” “하루에 한 갑 정도요.” “담배를 끊지 그래. 나중에 시집가 임신하면 애기에게도 나쁘고.” “잘 안 끊어져요.” “약국에 금연 껌이 나왔다던데, 한번 먹어 봐. 내가 다음에 올 때 사올게. 그때까지 아가씨가 이 집에 있다면.” “언제 오실 거에요?” “글쎄, 돈 펑펑 쓸 수 있는 사업가도 아니고 봉급쟁이가 이런 델 자주 올 수가 있나. 가을이 되어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하기 전에 한 번 오지.” “꼭 한번 오세요.” 이제는 조금 친해진 두 사람은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법이다. 밤 12시를 훌쩍 넘어 밤이 깊어지자, 김 과장은 은근히 지갑이 걱정되었다. 그저 아가씨가 시키자는 대로 마주앙과 안주를 계속 주문했는데 술값이 얼마가 나올지 감이 안 잡혔다. 이윽고 계산서가 나왔다. 아뿔싸, 낭패였다. 원고료로 받은 5만 원을 훨씬 넘었다. 지갑을 꺼내어 원고료 5만 원에다가 아내에게서 “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과장은 술이 약했다. 기껏해야 맥주는 두 잔, 소주는 석 잔이면 얼굴이 빨개지고 졸음이 왔다. 그래서 김 과장은 아내로부터 ‘술새우’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도주는 한 병까지 마셔도 그저 즐겁게 취할 뿐이어서 김 과장은 스스로 포도주 체질이라고 생각해 왔다. 김 과장은 일요일마다 아내 따라서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간다. 어느 날 목사님 설교 가운데 예수가 가나촌 (예수가 처음으로 기적을 행한 동네 이름. 혼인식에 초대받은 예수가 술이 떨어지자, 물을 술로 변하게 하는 기적을 행한 곳) 혼인잔치에서 여섯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여 잔치에 참석한 모든 이를 즐겁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예수를 믿더라도 포도주는 마셔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교회를 나가면서도 마주앙을 마시는 것이 조금도 죄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나가서 노래해요.” “그러자.” 김 과장은 최희준의 ‘하숙생’, 양희은의 ‘내 님의 사랑’ 등 옛날 노래를 불렀고, 아가씨는 김 과장이 잘 모르는 최신의 대중가요를 불렀다. 함께 춤도 췄다. 김 과장은 기분이 좋았다. 아가씨도 기분이 좋아졌다. 둘은 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 겨레의 삶을 구렁으로 몰아넣은 옹이는 바로 중국 글말인 한문이었다. 기원 어름 고구려의 상류층에서 한문을 끌어들였고, 그것은 저절로 백제와 신라의 상류층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말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우리말에 맞추어 보려고 애를 쓰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쪽으로는 중국 글자(한자)를 우리말에 맞추는 일에 힘을 쏟으면서, 또 한쪽으로는 한문을 그냥 받아들여 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자로 우리말을 적으려는 일은 적어도 5세기에 비롯하여 7세기 후반에는 웬만큼 이루어졌으니, 삼백 년 세월에 걸쳐 씨름한 셈이었다. 한문을 바로 끌어다 쓰는 일은 이보다 훨씬 빠르게 이루어져, 고구려에서는 초창기에 이미 일백 권에 이르는 역사책 《유기》를 펴냈고, 백제에서는 4세기 후반에 고흥이 《서기》를 펴냈으며, 신라에서는 6세기 중엽에 거칠부가 《국사》를 펴냈다. 상류층이 이처럼 한문에 마음을 쏟으면서, 우리 겨레 동아리에는 갈수록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배워서 익힐 시간을 가진 상류층 사람들은 한문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새로운 길로 내달았으며, 배워서 익힐 시간을 갖지 못한 백성들은 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재담꾼인 박 과장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잘했다. 군대 가서 고생 안 했다는 사람 없고 모두 자신이 빳다도 제일 많이 맞고 기합도 제일 심하게 받았다고 우기며, 대개는 튀밥 튀기듯이 침소봉대하는 것이 군대 이야기이다. 이윽고 아가씨 두 명이 들어와 각각 옆에 앉았다. 김 과장은 여전히 박 과장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박 과장은 이제 병장이 되었고, 제대 말년에 졸병들을 종처럼 부리며 왕처럼 편하게 지낸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동안 김 과장은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기다리기가 지루했던지 아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스 나에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그러고 나서도 박 과장이 제대하기까지는 10분 이상이 지나갔다. 그제야 김 과장은 아가씨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둑한 실내등에 비친 아가씨를 보니, 토끼처럼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귀여운 아가씨인데 이름이 뭡니까?” “수련이에요.” “나수련이라, 예쁜 이름인데요.” “고맙습니다.” “우리 이렇게 인연이 되어 만났으니, 술이나 한잔 같이합시다. 아가씨 잔을 가져오라고 해요.” 맑은 포도주를 반쯤 담은 유리잔이 쨍하며 마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고 김수업 선생은 전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우리말대학원장과 국어심의위원장을 지낸 분이다. 특히 선생은 토박이말 연구에 평생을 바쳤으며, 쉬운 말글생활을 위해 온 정성을 쏟았다. 그런 선생은 토박이말사전을 만들다가 지난 2018년 우리 곁을 떠났다. 선생이 생전에 펴낸 책 《우리말은 서럽다》는 우리가 왜 쉬운 토박이말을 써야 하는지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 신문은 지난 2014년 《우리말은 서럽다》 본문을 연재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건만 대한민국은 오히려 토박이말을 더욱 홀대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다시 선생의 《우리말은 서럽다》를 끄집어내 토박이말을 써야하는 까닭을 또렷이 해두고자 한다. <편집자 말> 사람에게 가장 몹쓸 병은 제가 스스로 업신여기는 병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다지만, 제가 스스로 업신여기는 병보다 더 무서운 절망은 없으며, 이는 스스로 손쓸 수 없는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겨레는 지난 이즈믄(천) 년 세월에 걸쳐, 글 읽는 사람들이 앞장서 스스로 업신여기는 병에 갈수록 깊이 빠져 살았다. 그런 병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 소설은 필자가 국토개발원에서 근무하던 1988년에 네 차례에 걸쳐서 연구원 소식지에 연재했던 단편소설입니다. 지금부터 무려 35년 전에 쓴 글이므로 술집의 풍속도나 화폐의 값어치가 지금과는 다릅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중산층 봉급생활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지는 마십시오. 소설이란 반쯤의 사실과 반쯤의 허구로 구성되는 것이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 16회를 매주 금요일에 연재하려고 합니다. 우리문화신문 독자들에게 심심풀이 땅콩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필자 말씀>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같은 봄꽃은 이미 다 지고, 더워지기 시작한 6월의 어느 금요일, 김 과장은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 사보에 잡문을 하나 썼는데 그 원고료가 나왔기 때문이다. 원고료라고 해도 소득세에 방위세,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민세까지 떼고 나니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매월 봉급 타서 지로로 꼬박꼬박 아내에게 가져다 바치는 봉급장이에게 5만 원은 큰돈이었다. 더욱이 그 돈은 아내가 모르는 진정한 의미에서 가처분소득이고 보니 김 과장은 기분이 매우 유쾌했다. “자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을 도와 세종르네상스를 만든 인물(집단)을 살피고 있다. 집현전과 집단 지성② 세종 시대 이루어진 연구 집단으로 한국 첫 ‘집단지성’이라 할 집현전이 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集團知性]이란 다수의 개체가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된 집단적 능력을 일컫는 용어다. 이는 개체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전회에 이어 집단 지성으로서의 집현전의 몇 활동을 이어가 보자. (영돈녕 유정현이 사직하고자 청했으나 허락하지 아니하다.) 유정현이 사직하는 글을 올려 아뢰기를, “신이 용렬한 자격으로 오랫동안 높은 벼슬을 더럽히고, 많고 후한 녹을 받으면서 처리하고 다스리는데 보람이나 효과가 조금도 없고 오히려 가물의 재앙을 부르게 되었나이다. 신은 나이 7순이 넘어 여러 가지 병이 몸에 얽혀서 기거하기도 불편하오니, 비옵건대, 신의 관직을 파면하시어 어질고 능한 이를 기다리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직집현전(直集賢殿) 정인지(鄭麟趾)를 시켜 정현의 집에 가서 사표를 도로 주고, 말하기를, " ... 경은 사양하지마는, 나는 늙지 않았다고 생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강을 따라 답사하면서 곳곳에서 보게 되는 식당과 카페의 영어 이름들에 짜증이 날 정도다.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2021년 기준)이 되었다. 이제는 한류가 동남아시아를 거쳐 세계로 뻗어나가는 문화 강국이 되었는데, 굳이 영어로 아파트 이름을 짓고 영어로 관광지 이름을 지어야 하나? 거꾸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내가 너무도 국수주의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가? 국수주의자를 비하하는 유행어는 국뽕이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마약의 일종)의 합성어로서 무조건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나는 국뽕인가?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인가? 헷갈린다. 내가 나를 모르겠다. 하지만, 10여 년 전쯤 한국에 온 중국 연변대학교 김병민 총장이 “만주족은 말에서 내렸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김 총장은 ‘중의법’을 쓴 것으로‘말’은 만주족이 타던 말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언어 ‘만주어’을 뜻하기도 한다. 만주족은 말에서도 내렸지만, 그들의 언어를 잊은 탓에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만주에는 숙신ㆍ읍루ㆍ물길ㆍ말갈ㆍ여진 따위의 만주족이 옛날엔 많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