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지난 이레 여러 곳을 다녀왔습니다.일터를 옮기게 된 언니 아우를 만나 함께 기뻐해 주러 거제에 갔었습니다. 참 많이 뭉쳐 다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어 보니 벌써 열 세해가 넘었더군요. 아이들이 큰 만큼 저희도 나이를 먹었던 거죠. 새로운 자리에서 잘 지내길 빌어 주었습니다. 지난 닷날과 엿날은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셈본(수학)에서 쓰는 갈말(학술용어)을 쉬운 토박이말로 다듬어 쓰는 것이 좋겠다는 글을 쓰신 광운대학교 허민 교수님을 찾아 뵈러 갔었지요. 가서 뵈니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셨다는 데 많이 놀랐고 이미 그런 생각을 말과 글로 옮기셨다는 것이 우러러보였습니다. 때새 가는 줄 모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앞으로 저희가 마련할 말나눔 잔치에 함께해 주시기로 입다짐을 해 주셔서 짜장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코엑스에서 열린 초등교육박람회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누구보다 토박이말 살리기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시는 (주)지란지교컴즈 오진연 대표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마련한 여러 가지 갈배움감(교수학습자료)들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앞으로 토박이말 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귀국하는 날이다. 다람살라에서 델리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오후 1시 출발이므로 우리는 다람살라에 살고 있는 청전스님을 오전에 만나고 가기로 했다. 델리로 가서 밤 12시 30분 비행기를 타면 한국에는 내일 오전에 도착할 것이다. 아침 3시에 잠이 깨어 <사피엔스>를 읽었다. 유발 하라리는 여러 종교는 물론 자연과학도 열심히 공부한 학자임에 틀림없다. 제3부의 제목은 인류의 통합이다. 그는 제3부에서 종교를 설명하면서 자연과학의 개념을 자유자재로 동원한다. 물리학과 생물학, 역사학과 인류학, 컴퓨터와 경제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흥미로운 내용으로 책을 써갔다. 나는 그가 종교에 관해 쓴 부분에 관심이 갔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라고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은 나도 들어보았다. 유교 역시 공자를 절대자로 믿는 것이 아니고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고 윤리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종교가 꼭 절대자를 믿어야 한다는 것은 종교를 매우 좁게 해석하는 견해로서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불교에는 사원이 있고 법회가 있다. 유교에는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엄마는 자애로운 분이었다. 그리고 생활의 강자였단다. 일은 힘들고 생활은 곤란했어도 말없이 이겨냈었고 철모르는 우리를 욕하거나 때리는 법 없었단다. 그러나 나도 커가면서 종종 엄마가 흘리는 눈물을 보았었다. 엄마의 눈물은 설음의 눈물, 기쁨의 눈물, 감사하여 흘린 눈물이었다. 내가 6~7살 되던 해의 싸늘한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단다. 맑은 날씨지만 나뭇잎이 우수수 바람에 떨어져가는 늦가을의 싸늘한 날이었다. 오빠네들은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엄마는 나를 보고 “오늘 시간이 있을 때 쉬바자(수숫대울타리)를 세워야겠다. 너라도 날 도와줘야겠구나.고 하셨다. 그 시절엔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집의 3면에 수수짚으로 바자를 세웠단다. 엄마는 땅을 낮게 파고 거기에 수수대들을 둥그렇게 세웠단다. 가을바람에 세워놓은 수수대들이 떨더구나! 엄마는 바삐 띠를 대면서 나를 불렀단다. 엄마는 밖에서 나는 안에서 엄마가 밀어주는 수수끈을 되받아서 다시 수수대 사이로 엄마에게 넘겨줘야하는데 어린 나는 잘 안되더구나. 추워서 몸은 떨렸고 언손은 말을 듣지 않아 그만 세워놓은 바자를 나는 몽땅 넘어 뜨렸단다. 엄마는 어이없어 하시면서도 또 다시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96-쇠붙이,처음,틈,뜻,익힘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은4284해(1951년)펴낸‘우리나라의 발달6-1’의5, 6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5쪽 둘째 줄과 셋째 줄에‘자리를 잡아 집을 짓고,마을을 이루어 살림살이를 하게 되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착 생활’과‘촌락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이렇게 쉽게 풀어 쓸 수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아이들에게 어떤 말이 더 쉬운 말인지 견주어 보면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줄에“오래 동안 지나면서 천천히 발달하여 음식도 익혀 먹고 옷도 지어 입으며 쇠붙이도 만들어 쓰게 되었다.”는 월(문장)도 참 쉽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저보고 좀 더 다듬어 보라고 한다면‘발달하여’는‘나아져서’로 하고‘음식’은‘먹거리’로 바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여섯째 줄에 있었던‘쇠붙이’는 더 반가운 말이었지요. ‘금속’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바람에 배움책에‘쇠붙이’라는 말이 안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낯선 말이 되었습니다. ‘겨레붙이’라는 말도 있고‘피붙이’, ‘살붙이’라는 말도 있는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창경궁 팔각 칠층석탑 - 이 달 균 네게선 외로운 타관의 냄새가 난다 코끼리 숨결 배인 낯익은 남방의 탑신 어디서 어떤 연류로 이곳까지 왔느냐? 아서라, 묻지 마라 퇴락한 이씨 왕가에 기꺼이 뼈를 묻는 문지기가 될 일이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여도 벌써 백년이 지났다 낯익다. 우리 것이라서 낯익은 게 아니라 동남아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본 탑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1470년대 중국에서 만들었는데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 역력하다. 일제 강점기 때 어느 상인이 만주에서 가져온 것을 이곳 창경궁 후원 춘당지 연못가에 세웠다고 한다. 한때는 창경원이라 하여 동물원이 되었다가 다시 창경궁으로 궁 이름을 되찾았는데, 이래저래 사연 많은 궁궐과 탑이란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 이달균(시인)
[우리문화신문=유용우 원장] 지난 칼럼에서는 우리가 ‘기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인해 피로를 느끼는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폐물을 제거는 방안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기능을 발현할 힘이 없어서’ 만성피로를 느끼는 경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피로 양상 가운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느 순간 귀찮음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다음에”, “내일”로 미루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기본적인 흐름은 세포의 활동성이 나의 의지를 따르지 못하고 어느 순간 의지마저 게을러진 모습인 것이다. 왜 세포의 활동성이 떨어지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 나도 귀찮아 피로증후군인가? ① 움직임이 귀찮고 싫어졌다. ② 몸이 무겁고 다음으로 미루어지는 현상이 드러난다. ③ 순간적인 [인격 상실]의 모습이 드러난다. ④ 머리가 무겁고 수시로 졸음이 온다. 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일어나서 오후 3시 무렵까지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 ⑥ 소화속도가 느려지고 배고픔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⑦ 자주 체하고 식곤증이 종종 드러난다. 왜 만사가 귀찮아질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우리 네 사람이 카페에서 다람살라 사원 쪽으로 내려오니 삼거리가 나타났다. 로자 씨가 말하기를 옆으로 난 다른 길을 따라 3km 정도 걸어가면 히말라야 산맥에 가장 가까운 카페가 있다고 한다. 왕복 6km이면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우리는 코스를 바꾸어 히말라야 산맥 쪽으로 카페까지 갔다 오자고 결정했다. 날씨는 초봄 날씨로 따뜻했다. 봄바람이 살살 불고 기온은 아주 적당했다. 기분이 상쾌했다. 아직 잎이 우거지지는 않았지만 땅에서 돋아나는 새싹이 보였다, 나뭇가지에서는 새잎이 조금씩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숲속에서는 이름 모를 새 소리가 들렸다. 다람살라에 봄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서도 유채꽃은 빨리 피나 보다. 노란 유채꽃이 피기 시작한 밭이 보였다. 로자 씨는 델리에서 대안학교 교장이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 선교사라고 말할 수 있다. 로자 씨는 인도와 한국을 연결해주는 종교적 교량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병산이 말하기를, “선교사는 두 종교 사이에 서 있는 매개자이다. 현대 사회는 전문가도 필요하지만 매개자가 각광 받는 시대이다. 로자 씨야말로 현대가 요구하는 인재이다. 앞으로 큰일을 해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낱말 풀이 * 경리, 로반: 조그만 기업체 사장을 낮춰서 부르는 말 < 해설 > 석화의 시는 “능청스러움”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감정과잉보다는 감정절제가 잘 되어 있다. 어쩌면 지극히 객관적인 담시 속에 감정적인 가치판단은 녹아있다. 시 “륙촌형”을 보자. 여기서 보다시피 우연히 “륙촌형”을 만난 반가움이나 그의 비극적 삶에 감정파문이 없을 수 없겠으나 시적 자아는 조용하고 담담하기만 하다. 감정적인 가치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석화의 시는 음미할 만하다. 한마디로 말하여 석화 시는 내용과 형식에 걸쳐 풍부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의 시는 생활을 민감하게 포용하고 시대와 더불어 호흡을 같이 하며 조선족의 실존적 삶에 예각을 맞추어 예술적 승화를 가져왔다. 특히 그는 개혁개방 초기 조선족시단의 현대시에로의 변신 및 포스트모던시대 조선족의 정체성을 비롯한 삶의 실존에 대한 조명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겠다. 이로부터 적어도 그의 시는 중국조선족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장식하게 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우상렬 “석화의 시세계”에서)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당산동(堂山同)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속해 있다. 지리적으로 동쪽으로 여의도동. 서쪽으로 양평동 그리고 남쪽으로 영등포동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한강 건너로 마포구 합정동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이곳은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시흥군 북면 당산리라 불리었고, 1936년 행정구역 변동으로 인해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당산정이 되었다. 그리고 1945년에 영등포구 관할에 속하게 되었고, 1946년에 당산동이 된 것이다. 당산(堂山)이라는 지명은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지역에 오래전부터 당(堂)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집은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 일대를 원당산이라고 불렀다. 원당산 위쪽은 웃당산이라 하였고, 마을 안쪽 지역은 안당산(또는 벌당산)이라 불렀다. 세 지역의 모든 당산동 사람들은 때가 되면 이곳 당집에 모여 의례를 열면서 마을과 가가호호 모든 구성원의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빈다. 당집이 있었던 원당산에는 한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이가 약 500살이 훨씬 넘은 은행나무가 두 그루가 있었다. 당산동 토박이 황인균(2001년도 부군당굿 제주)은 이곳 은행나무에 대해 다음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길벗 91' 동무들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봄내(춘천)를 거쳐 모임을 하는 속새(속초)까지 갔습니다. 덥다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시원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를 만큼 많이 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오는지 알겠더군요. 시원한 그곳에서 거의 일곱 달 만에 동무들을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이슥할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하루 자고 한나절 놀고 오기엔 아까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할 일이 있어서 더 놀 수도 없었지요. 짙은 안개와 비를 뜷고 줄수레(케이블카)로 살뫼(설악산) 구경을 한 뒤 막국수 낮밥(점심)을 먹고 아쉽게도 헤어져야 했습니다. 다섯 달 뒤에 다시 보기로 하고 저마다 집으로 떠났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다들 잘 지내다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맛보여 드릴 토박이말은 '곤댓짓'입니다. '곤대'는 '고운대'의 준말인데 '고운대'는 흙알(토란)의 줄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흔히 '토란대'라고 하지요. 이 '곤대'가 흔들리는 것을 보신 분이라면 '곤댓짓'의 풀이를 보지 않고도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짓을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삼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