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원균이 손뼉까지 쳤다. 이장군은 득도를 한 것 같소이다. 성은을 입어서! 우수사 이억기가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물었다. 하지만 장군이 돌아오셔야 합니다. 바다는 넓고 적들은 넘실대고 있으니 우리의 힘만으로 어찌 왜적의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겠소이까. 최호수사도 거들었다. 이장군의 위엄이 아니라면 일본 수군의 거침없는 도전을 누가 방어할 수 있겠소. 이순신은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이 사람이 남해바다를 수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것이 여러 장수들의 신뢰에 기인한 것이외다. 절대 나 혼자서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바다인 것은 자명한 노릇이요. 원균은 불만이 섞여있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제 방문하신 목적이나 들어 봅시다. 혹시 도원수에게 당한 봉변을 듣고 고소하여 몸소 확인하러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원수사, 그 무슨 아이들 같은 말씀이요. 우수사 이억기 장군이 나무랬다. 이순신은 별로 노한 얼굴이 아니었다. 원수사에게 긴한 청이 있어서 온 것이요. 원균은 설마 이순신이 자신에게 어떤 부탁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 오히려 당혹해 하였다. 오호...... 내게 청이 있단 말이요? 이장군이? 그렇습니다. 들어 주시겠습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원균은 갑옷으로 무장하며 내심 이를 부드득 갈았다. 도원수 권율에게 당한 치욕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겨질 것이었다. 형틀에 묶여서 수많은 나인들이 보는 가운데서 곤장을 맞다니! 빌어먹을 영감 같으니라고. 욕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영감이 더위를 먹지 않고서야 그리 광분할 리가 있나?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신임 삼도수군통제사를 이리 엿 먹일 수가 있는가 말이다. 분노가 끓어올라서 내리 이틀 간 술을 퍼 마셨다. 머리도 지끈 거리고 속도 거북했지만 더 이상 군령을 거역 할 수는 없었다. 원균이 무장을 끝냈을 무렵에 만호 김경호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장군, 전 통제사께서 납시었습니다. 원균은 처음에 잘못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전 통제사라면 이순신을 호칭하는 것이 아닌가. 이순신은 백의종군의 신분으로 도원수부의 명령을 대기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자신이 불렀던 전라우수사 이억기장군이나 충청수사 최호장군 보다 그가 먼저 온 까닭은 없었다. 이순신장군이 왔다고? 그러합니다. 원균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별로 대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도원수부의 치욕이 원균을 아직 지배하고 있었다. 만나고 싶지 않구나.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원균수사를 그대로 두십시오.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순리와 이치를 따르셔야 합니다. 정도령이 설명하자 이순신은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소? 정도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은 말을 돌리지 않았다. 원균장군이 무모하게 출전을 감행하게 된 것은 도원수 권율장군의 징계에 의한 것이라고 하오. 적군과 대치하는 일선의 장수에게 곤장 형을 가하는 예는 들은 바가 없소. 내가 알고 있는 권율 도원수는 그리 경솔한 분이 아니시오. 어찌된 영문인지 정도령은 아시오? 이순신은 조카 이분을 통해서 도원수 권율과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사이에서 벌어진 사태를 보고 받았으나 이번에는 정도령에게 직접 물었다. 정도령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면 분명 진상을 꿰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과연 정도령은 이순신의 의도대로 명확하게 요지(要旨)를 전달하였다. 영상이 권율장군에게 청하였지요. 서애대감이요? 그렇습니다. 한양에서 전갈을 보냈습니까? 도원수부로 직접 방문하셨습니다. 어명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영상의 개인적 판단이었습니다. 영상께서 왜 그런 무리한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이런 건방진 작자가 있나?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돼먹지 않은 수작을 벌리는 것이냐? 살고 싶지 않은 것이지? 정도령이 싱긋 웃었다. 장군의 천명을 도와드려서 개벽의 대업을 완수하고자 달려온 사람에게 너무 무례한 언사가 아니요? 이순신을 비롯한 일행은 전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순신의 대업에 대해서 정도령이란 작자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역모(逆謀)는 왕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가장 위중한 죄목으로, 발각 당하게 되면 삼족(三族)이 멸문을 당하는 위험천만한 음모였다. 외부에 알려지는 날에는 참혹한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완의 칼이 섬광처럼 빠르게 출수 되었다. 정체를 밝혀라! 칼은 어둑해지는 저녁노을의 희미한 빛을 반사하며 싸늘한 감촉을 정도령의 목에 안겨 주었다. 그 칼은 예리 했고 무정한 살기만이 감돌았다. 하지만 정도령이라 자처한 선비는 놀랍도록 태연했다. 난 이미 여러 가지 내용을 전달했소. 성명을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정도령이라 불러주길 희망했고, 나이도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를 알 만 할 정도는 되었고. 무엇보다도 장군의 천명에 참여 하고자 이 자리에 나 온 것이요. 이회가 한 걸음 앞으로 나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예엣? 임진년으로부터 난 무적의 장수로 군림해 오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목포해전으로 시작하여 사천과 한산도대첩, 부산과 웅포 해전 등 불패의 신화를 남기셨습니다. 명나라와 일본군들 사이에서도 숙부님의 전승은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회자(膾炙)되었습니다. 그것이 나 이순신을 방자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하여서 감히 성상의 어명조차 거부할 수 있는 역심을 내게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찌 나의 불찰이 아니겠느냐? 오로지 나만이 이 나라를 수호 할 수 있고, 오직 나만이 백성들의 고단함을 구휼(救恤)할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 이런 방자하고 무례한 심성을 지니게 된 것은 내 승리에 도취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공적(功績)이 과해질수록 경계해야 한다는 공자님의 말씀을 잊었던 어리석은 무부(武夫)의 최후가 아니겠느냐. 그것은...... 이분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면 이순신의 견해가 옳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의 어명을 거역할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신하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순신이 탄식했다. 내 잘못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못내 담담한 자세로 의금부로 압송 당해 갔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34일 간
-조선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왕 선조가 포기한 나라이다. 과연 그 나라에 어떤 가치가 존재 하겠는가. 왕이 나라를 포기 하였다면, 그 나라 역시 왕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특히 이분은 통역에 능숙하여 명나라 장수들이나 일본의 패잔병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순신에 대한 항간의 소문을 섭렵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순신을 조선 최고의 장수로 지목함에 있어 망설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조선 왕 선조가 이순신에 대한 백성의 신망이 두려워서 그를 모함하여 참수(斬首)하고자 한다는 만행을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 드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실 이분은 이순신이 의금부로 압송 당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이순신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날은 1597년 정유년 2월 중순이었다. 바람이 차갑고 세우(細雨)을 동반한 먹장구름이 하늘을 종횡하던 험악한 날씨였다. 숙부님, 미련을 두지 마소서. 결행 하시지 않으면 오로지 죽음뿐이옵니다. 그럼 당하면 되지 않느냐. 그까짓 죽음이란 것. 명예롭고 값진 죽음이 아니라 그것은 허망한 죽음입니다. 무엇이 명예롭고, 무엇이 허망한 것이더냐? 죽음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더냐. 왜 이러십니까? 구국의 명장으로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숙부님, 원균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후 제일 먼저 자행한 업무가 바로 숙부님의 측근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일이였습니다. 병선의 제조 달인 나대용, 바닷길의 전문 길잡이 이몽귀, 천자포, 지자포, 함포 사격의 명사수 최대성, 함대의 살림꾼 정경달, 무적 돌격대장 송희립, 함선의 중요 전략가 이순신 등이 모두 배척당했습니다. 물론 저도 포함해서요. 그것은 당연한 처사가 아니겠느냐? 원균장군 역시 자신이 총애하는 장수들을 임명하여 진영을 재정비했겠지. 이분은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순신에게 항의했다. 그들 전원은 삼도수군의 대표적인 무적무패(無敵無敗)의 전사들입니다. 물론 당연히 저는 통역관이니 제외하고요. 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고 다시 함대의 용사로 복귀될 것이야. 그토록 훌륭한 장수들을 한 사람이라도 잃는다는 것은 조선으로서는 엄청난 손실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조카 이분의 울분을 조용한 어조로 달래주었다. 문득 제일 어렸으나 기골이 장대한 이완이 물었다. 혹시 원균장군을 도우시겠다는 것이 우리 측근 장수들을 다시 기용해 달라는 청탁을 하시려는 것인지요? 아직 나이가 어렸으므로 그런 의
[그린경제/ 얼레빗 = 유광남 작가] 도원수 권율의 명령에 의해서 조선의 전 함대가 공격 대형으로 출전한다는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은 병법에 있어서도 으뜸이지만 금일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도원수 권율과 통제사 원균 사이에서 벌어졌던 파행에 대하여 조카 이분이 찾아와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한 것에 대한 이순신의 반응이었다. 이분은 역관(譯官) 출신으로 외교에 능숙하며 이순신을 보좌하여 명나라와의 통역을 담당 했었다. 장군, 고정하십시오. 육군은 어찌 행동한다는 것이냐? 조선 수군만이 출동하는 것으로 압니다. 이순신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일본 수군의 수뇌부에 대해서 혹시 들은 바가 있느냐? 이분은 숙부 이순신의 신색이 극도로 심각하게 변하자 당혹스러웠다. 이순신의 장자인 이회와 이완 등도 매우 긴장된 모습으로 이분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도 다카토라를 비롯한 구루시마 미치후사, 오키사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 등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일본의 해적 출신으로 바다 물길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는 자들이다. 수전(水戰)에 능숙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조선 함대가 위험한 것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과연 운만 따른다고 연전연승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오표는 반박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것은 사실일세. 백성이란 것이 무지해서 그렇지. 주상과 신료들이 구국을 위하여 명과의 관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해. 명나라 군사가 조선에 10만 이상이 투입되었네.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 그들 천군(天君)의 영입을 위하여 주상이 얼마나 눈물겨운 공을 세웠는지 무지한 백성들은 상상도 못할 걸세. 오표는 반박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조선 왕 선조에 대한 분석은 이미 임진 원년에 끝나 있는 상태였다. 그와 관련 된 사안들은 고스란히 정리되어 여진의 칸 누르하치에게 보고된 상황이었다. 오표와 일패공주는 조선 왕 선조의 무능함과 권력욕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었다. 멍청한 조선 왕 선조, 모자란 강두명, 너희들은 조선의 해악일 뿐이야. 오표는 여진의 북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보폭을 천천히 옮기고 있었다. * * * 출전을 하란 말씀이옵니까? 원균은 부당한 명령에 항의하는 눈빛으로 도원수 권율장군을 노려보았다. 그대에게 삼도수군통제사의 중책을 맡긴 것은 바다를 수호하기 위함일세. 한가롭게 연합 공격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이런 빌어먹을 놈! 정신세계가 약간 까다로운 작자를 만났구나. 칼솜씨가 아주 비범하다 하니 내 참는 바이다. 조영은 어딘가 모르게 오표가 불편했다. 강두명이 굉장한 칼잡이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여서 오표를 만났을 뿐이었다. 상대가 조선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사이며 그의 수하들 역시 무섭게 칼질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칼솜씨는 고사하고 해괴한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채비를 하고 자하문 밖에서 대기 하도록 하지요. 오표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조영은 내심 술맛이 떨어져 가던 차에 상대가 먼저 일어나자 옳다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이틀 후에 출발이요. 묘시(=오전 5시에서 7시)에 보시지요. 오표는 다소 냉랭한 어조를 꺼내며 주막을 나섰다. 강두명이 그 뒤를 부랴부랴 따랐다. 장도에 오를 몸인데 오늘은 마음껏 취하는 것이 어떤가? 왜 이리 서두르시는가? 술 맛이 별로야. 저 늙은이하고는. 하지만 주상 전하의 밀사일세. 자네가 내금위에 오를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위인이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으나 자네의 목적을 잊지 말게나. 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