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물거윤(勿巨尹) 이철(李徹)이 죽었다. (가운데 줄임) 철은 진을 치는 법에 밝고, 장기와 바둑[博奕ㆍ박혁]을 잘 두었으며, 젊어서 기병(奇兵)과 정병(正兵)을 도모(圖謀)하는 것에 능하여 눈에 들더니, 마침내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항상 대궐에서 거처하였다. 그가 죽자 염빈(주검에 수의를 입혀 관에 넣어 안치함) 하는 것을 곧바로 하지 말게 하였으니, 이것은 다시 살아나기를 바람에서였다.” 이는 《세조실록》 세조 13년(1467년) 2월 11일 기록입니다. 이를 보면 세조는 바둑을 무척 좋아했음이 드러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둑을 한자말로 ‘박혁(博奕)’ 또는 ‘기(碁)’라고 표현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수사, 충청수사, 장흥부사 등과 바둑을 두었다는 《난중일기》 기록으로 보아 이순신 장군도 바둑을 즐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서구가 쓴 《기객소전(棋客小傳)》에 조선 후기 정운창이라는 인물이 바둑을 잘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정운창은 6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고 바둑만 손에 쥐면 먹고 자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고 하지요. 그는 10년을 바둑에 매진한 결과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하는데 그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73-74)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방법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배가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얕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 든든한 장계를 쓴 주인공은 잘 알려진 것처럼, 성웅 이순신이다. 그는 존폐 위기에 선 조선의 수군과 마지막 남은 12척의 배로 조선 바다를 지켜냈다. 역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은 나를 알고, 적을 알고, 때를 알았던 이순신의 승부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공로의 이면에 조선의 명재상, 류성룡의 빛나는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뜻밖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규희가 쓴 이 책,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는 무척 소중하다. 책의 부제인 ‘이순신과 류성룡의 임진왜란 이야기’가 보여주듯, 이 책은 이순신을 있게 한 ‘동네 형’ 류성룡의 역할도 비중 있게 다뤘다. 류성룡과 이순신은 어린 시절 남산 아래 건청동에서 함께 뛰어놀며 자란 사이였다. 건청동은 오늘날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를 써서 ‘충무로’라 불리는 지역이다. 류성룡은 이순신에게 동네 형이자 인생 지도자였다. 이순신은 나이는 류성룡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