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창의성에 대해서는 많은 정의가 있지만, 대체로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이리저리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기존에 있던 요소를 절묘하게 섞어 만드는 ‘융복합’이 창의성이라는 거다. 그렇게 보면 조선에서 창의성으로 으뜸가는 인재가 있다.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정약용은 학자이자 정치가이고, 작가이자 교육자이고, 의사이자 건축 기술자였다. 요즘 말로 하면 문과, 이과가 다 되는 천재였던 것이다. 단지 문학, 사학, 철학만 잘한 것이 아니라 산술, 의학 등에도 능해 진정한 ‘융복합 인재’라 불릴 만했다. 고정욱이 쓴 책, 《다산, 조선을 바꾸다》는 ‘정약용에게 배우는 융합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정약용의 이런 다재다능한 면모를 조명한 책이다. 정약용은 ‘실학’의 선구자인 만큼 세상과 학문의 접목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고, 늘 배우며 협력하고, 정보를 모으며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삶의 태도가 ‘유배형’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시련을 만났을 때 오히려 아름답게 피어났다. 그러나 아무리 유배지에서 시간이 많았다지만 어떻게 그렇게 방대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興到卽運意(흥도즉운의) 흥이 나면 곧 뜻을 움직이고 意到卽寫之(의도즉사지) 뜻이 이르면 곧 써내려 간다 我是朝鮮人(아시조선인) 나는 조선 사람이니 甘作朝鮮詩(감작조선시) 조선시를 즐겨 쓰리 卿當用卿法(경당용경법) 그대들은 마땅히 그대들의 법을 따르면 되지 迂哉議者誰(우재의자수) 오활하다 말 많은 자 누구인가? 區區格與律(구구격여률) 구구한 그대들의 시격과 운율을 遠人何得知(원인하득지) 먼 곳의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으랴?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무려 5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는 다산(茶山)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실학자의 으뜸 인물이다. 위 한시는 다산 정약용이 쓴 <노인일쾌사 육수 효향산(老人一快事 六首 效香山)>의 한 꼭지로 다산이 노인의 한 가지 즐거운 일에 관한 시 여섯 수를 향산거사(香山居士) 곧 백거이(白居易, 중국 당나라 때의 뛰어난 시인)의 시체(詩體)를 본받아 1832년 지은 것이다. 《조선시대 한시읽기(한국학술정보)》에서 원주용 교수는 다산이 <척발위론(拓跋魏論)>에서, “성인의 법은 중국이면서도 오랑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은 개관 2돌을 맞이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서 <하피첩(霞帔帖): 아버지 정약용의 마음을 담은 글> 특별전(2023. 8. 1.~8. 20.)을 연다. 2015년 산 <하피첩>은 2016년 5~6월 열린 특별전에서 처음 원본이 공개되었고, 파주관 개방형 수장고에서는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보일 예정이다. 원본은 안전한 보존ㆍ관리를 위해 2주만(8. 1.~8. 13.) 공개된다. □ 노을빛(霞) 치마(帔)로 만든 서첩(帖), <하피첩> 2010년 보물로 지정된 <하피첩>은 조선 후기의 대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이 1810년에 만든 서첩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자 사랑하는 자녀들을 둔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하피첩>은 정약용이 천주교 박해 사건에 연루되어 1801년부터 1818년까지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때 제작되었다. 부인 홍씨는 애달픈 마음을 담아 시집올 때 가져온 노을 빛깔의 치마를 남편 정약용에게 보냈고, 정약용은 이 치마를 잘라 서첩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 아들 학연(學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