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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나간 신석기시대 사람들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20 - 배 모양 토제품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흙을 빚어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원리로 토기를 만들고 자기 몸을 꾸미는 장신구나 예술품을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석기시대 예술품은 사람의 얼굴이나 여성의 몸, 동물 등을 본떠 사실적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미적 감각의 표현을 넘어 집단의 신앙ㆍ의례와 관련되거나 소속, 사회적 신분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크기가 아주 작아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에 지니던 혼신용으로 지니던 부적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배를 닮은 토제품의 발견

 

국립중앙박물관 신석기실에서 ‘장식과 예술’을 소개하는 진열장을 보면, 오목하게 만들어진 토기 세 조각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이름을 보지 않고서는 무엇을 본뜬 것인지 맞히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시품의 이름은 ‘배 모양 토제품’입니다. 1969년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부산 동삼동 유적은 서울 암사동 유적과 더불어 신석기인들이 오랫동안 머물며 살아온 곳으로, 한반도 신석기시대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동삼동 유적은 조개무지 유적입니다. 조개무지는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들이 쌓여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토양 성분이 바뀌어 썩기 쉬운 유물들도 잘 발견됩니다. 토기, 석기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물고기 뼈들이 풍부하게 남아있어 당시 생활상을 복원해 볼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동삼동 유적을 조사했는데 이 토기 조각들은 1969년에 발견되었습니다. 토층 가운데 4층에서 확인된 것으로, 각각 배의 머리나 꼬리, 몸통 부분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배를 본뜬 것일까?

 

동삼동 유적 배 모양 토제품들은 현재 남아있는 길이가 4~12cm로 매우 작습니다. 반원형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이 작은 조각들이 배를 본뜬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동삼동 유적에 관한 종합보고서는 2005년에 펴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가 나오기 직전인 2004년, 신석기시대 연구의 가장 큰 수확이라 불릴 만한 엄청난 발굴이 시작됩니다. 이 토제품들의 정체를 확인해 줄 획기적인 발굴이 창녕 비봉리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2004년 봄, 태풍 피해를 막는 시설 공사현장을 지나가던 한 고고학도가 발견한 유적입니다. 이 우연한 발견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처음, 그리고 가장 많은 신석기시대 유물ㆍ유구의 발굴로 이어집니다. 특히 물이 차 있는 저습지였기에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비봉리 유적은 현재 내륙에 있지만, 토층에서 발견된 바다 동물 뼈와 조개껍데기 등을 통해 신석기시대에는 바닷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종 식물과 동물 뼈, 조개껍데기뿐만 아니라 멧돼지 그림이 새겨진 토기 조각, 망태기, 사람 또는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똥 화석[糞石] 등 새로운 자료가 다량 발견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건 통나무배 두 척이었습니다. 신석기시대 배가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비봉리에서 발견된 두 척의 배 가운데 1호는 200년이 된 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제작 연대가 기원전 6000년 무렵으로 측정되어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배이기도 합니다.

 

비봉리 유적에서 발견된 배는 동삼동 유적의 토제품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이로써 배를 본뜬 것이라는 추측에 좀 더 힘이 실렸고, 수장고에 고이 보관하던 동삼동 유적의 토제품은 전시실의 한쪽 공간을 차지하게 됩니다. ‘배 모양 토제품’이라는 이름과 함께 번듯이 말입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배

 

비봉리 유적에서 배가 발견되기 전까지 선사시대 배의 모습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바위그림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울주 대곡리 반구대 바위그림에서는 여섯 개의 배 그림이 확인된다고 합니다. 배는 머리와 꼬리가 모두 올라간 형태이고, 여러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대부분 고래를 잡는 포경선(捕鯨船)의 모습입니다.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배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요? 아쉽게도 두 척 모두 완전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형태를 바탕으로 보면 신석기시대의 배는 소나무를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내어 만든 통나무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남아있는 1호 배 조각의 최대 길이는 3m 10cm이고, 폭은 62cm입니다. 원래는 5~7m 정도의 가늘고 긴 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군데군데 그을린 흔적도 보입니다. 신석기인들은 나무를 쉽게 깎았고, 벌레가 먹는 것을 막으려고 불에 그슬려 가며 다듬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다로 나간 신석기시대 사람들

 

빙하기가 끝나면서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에 여러 변화가 나타납니다. ‘신석기시대’ 하면 많은 사람이 농경을 떠올립니다. 물론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사람들도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신석기시대에는 구석기시대 또는 청동기시대와는 달리 바다 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고기잡이는 한반도 신석기시대에 중요한 생업 활동이었습니다. ‘선사시대’ 하면 굉장히 원시적인 삶을 떠올리지만, 현재 행해지는 어업 방식의 대부분이 시작되었던 시대입니다. 또한 이른 시기부터 먼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큰 물고기나 바다 동물을 잡고 다른 지역 사람들과 교류했습니다. 깊은 바닷속에 있는 자원을 얻기 위해 해녀처럼 잠수한 흔적도 확인됩니다.

 

울산 황성동 유적에서는 작살이 꽂힌 고래의 척추뼈와 어깨뼈가 발견되어 반구대 바위그림처럼 신석기시대에 실제로 고래잡이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배는 먼바다로 나가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였을 것입니다. 신석기시대 배와 배 모양 토제품은 바다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진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