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돼지 잡고 전 부치니 동네잔치 따로 없다 원근 각설이들 떼 몰려 들어온다 조문은 나중 일이고 술 한 잔이 우선이다 발인이다 발인이야 소리꾼 괭쇠 소리 상주 백관 뒤따르고 꽃상여 길 떠나자 꽃잎은 난분분 지고 청산은 푸르러 온다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앞소리꾼 매김 따라 상두꾼 상여 어를 때 명정대(銘旌帶) 용머리 얹고 붉은 깃발 요란하다 < 해설 > 큰어미 죽고, 갓난아이 죽어 쑥대밭 된 마을이지만 그래도 형식은 갖춰야 하니 발인하고 상여 메어 묏자리라도 봐야지. 상주 백관은 곡하고, 여기저기 문상객도 찾아와 그런대로 상갓집 분위기는 난다. 아무리 원통한 죽음이라도 마냥 슬픈 울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복 누리고 오래 살다 떠난 사람이라 해도 호상(好喪)이란 없다. 이 상가는 어처구니없는 애사이니 문상객인들 뭐라 할 말 있겠는가. 어쩔거나. 이제 와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랴. 죽은 이는 죽어서 잊히고, 산자는 살아서 또 한 세상 사는 것을. 그래서 돼지도 잡고 전도 부친다. 이 가족에겐 슬픔이지만 각설이들에겐 거룩한 잔칫날이다. 이런 날 어찌 걸인이라고 내쫓을 수 있을 것인가. 지지고 볶은 음식일랑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연구 작업 도와 성삼문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크게 도왔다. 창제 시에도 도왔지만 세종 25년 청제 이후 언어학적인 구성체계를 확인하기 중국의 학자와 만나 음운 법칙을 검증하게 했다. 세종 27년(1445) : (집현전 부수찬 신숙주 등에게 요동에 가서 운서를 질문해 오게 하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와 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과 행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을 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실록 27/ 1/ 7) 이런 작업은 그 활용에서도 오류가 없게 하려고 세종 28년 반포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세종 32년, 1450년 성삼문ㆍ신숙주ㆍ손수산 등에게 명하여 운서를 사신에게 묻게 하다) 직 집현전 성삼문(成三問)ㆍ응교 신숙주ㆍ봉례랑 손수산(孫壽山)에게 명하여 운서(韻書)를 사신에게 묻게 하였는데, 삼문 등이 관반(館伴)을 따라 뵈니, 정인지가 말하기를, "소방(小邦)이 멀리 나라 밖에 있어서 바른 음(音)을 바로 잡으려 해도 스승이 없어 배울 수 없고, 본국의 음(音)은 처음에 쌍기학사(雙冀學士)에게서 배웠는데, 그 역시 중국 복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차를 타기 전 대합실에 있는 책방에서 산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를 읽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칼슨이라는 심리 치료사인데 이 책은 1997년 저작으로 미국에서 5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내용의 짧은 글들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당시에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그 일의 결과에 따라서 세상이 크게 변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 사소한 일이고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거나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며칠 전 아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아내는 여섯 자매 가운데 둘째니까, 언니 하나에 여동생이 넷이나 된다. 자매가 많다 보니 여러 가지로 좋은 일 나쁜 일이 일어난다. 최근에는 둘째 여동생과 무슨 일로 서운했다고 이야기했었다. 자기가 동생을 생각하는 만큼 동생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는 3남 4녀의 장남인데, 역시 형제자매 간에 희로애락이 많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세상살이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부산은 참 특별한 도시다. 바다가 있어 다양한 풍경과 체험을 할 수 있기에 연중 관광객들이 넘치는 곳이지만 험준한 산기슭에 들어서다 보니 땅이 좁아 도시가 산비탈을 따라 위로 조성될 수밖에 없었다. 부산의 도심은 용두산을 끼고 형성돼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전망탑이 있는 용두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기 이를 데 없다. 예로부터 40계단이 만들어져 그 이름이 지금도 남아있다. 중앙동이라는 데에 하룻밤을 잘 기회가 있어 아침에 나와서 걸어보니 보지 못하던 부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곧 용두산 쪽으로 다닥닥닥 위로 가며 붙어있는 집들을 연결하는 길과 계단들이 구경하는 것으로도 색다른 볼거리가 되더라는 것이다. 나는 사진 전문가도 아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위로만 뻗어올라갈 수밖에 없는 부산이란 지형적인 조건에 따라 형성된 수직도시의 몇몇 얼굴들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그것이 바다와 생선회와 영화제와 해수욕장 등 수평적으로 이뤄진 화려한 얼굴의 뒤편에 있는 부산의 대조적인 속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동 책방거리에서 봄이 오는 길목의 부산 아침산책은 끝난다. 닫혀있던 책방들이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개발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우리는 매일 한글의 덕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 참 좋은 글자구나 하고 느끼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큽니다. 그러나 혹 외국인이라도 만나면 한글을 누가 어떻게 해서 만들었는지, 글자로서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소리를 표기하는 원리는 무엇인지 등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직접 서문을 쓴 《훈민정음해례》라는 책이 있어 이런 문제가 없는데 한글에 관해서는 마땅한 책도 없습니다. 앞에서 인류가 5,500년 동안 문자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를 보았는데 이 글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어떤 문자생활을 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훌륭한 훈민정음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2만 년 전에 정점을 찍고 그 뒤 1만 년 동안 온도가 차차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에 인류는 해를 쫓아 따뜻한 동쪽으로 이동하여 결국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주로 북쪽의 중앙아시아와 남쪽의 인도 남부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1만 년이 넘는 이 긴 세월을 더 이상 큰 이동 없이 한반도와 인근에서 농사나 수렵으로 살면서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어 살아 온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의 생명활동은 낮의 활동과 밤 수면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정(精)에서 신(神)으로 가는 과정은 낮의 활동이며 신(神)에서 정(精)으로 가는 과정은 밤의 수면상태다. 이때 이를 조절하면서 중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한방에서 말하는 기(氣)의 작용이다. 이것은 육체적으로는 심장의 혈액순환이며 정서적으로는 마음의 작용이다. 정신(精神)이 정상적으로 순환이 이루어지면 낮의 활동도 왕성하며 밤의 숙면도 깊어지게 된다. 그런데 정신의 순환이 원만하지 못할 때는 이러한 순환을 조절하는 중간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 이에 따라 양질의 수면은 의식과 무의식의 안정(安定)과 건강한 몸에서 이루어지는 정(精)의 튼실함에서 이루어진다. 반면에 수면이 온전치 못할 때는 이를 조절하는 심장의 튼튼함, 마음의 강약에 따라 불면을 겪거나 숙면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심장, 마음의 총칭을 심(心)이라 했을 때 심(心)의 상황에 따라 수면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면이 불안정해지는 상태, 곧 잠드는 것이 오래 걸리거나 수면 유지가 어렵거나 꿈을 많이 꾸거나 아침에 힘들게 일어나는 현상 등이 드러날 때 이를 도와주는 것도 심(心)이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잘 가소 훌훌 털고 다 잊고 떠나 가소 죄 있다면 이놈의 시상, 여자로 난 게 한 가지 죄요, 서방 복 못 타고난 게 두 번째 죄요, 대 이을 자식 바란 일이 죄라면 세 번째 죈데, 곰곰 생각하니 전부 사내가 엮고 사내가 비튼 여자의 운명이오. 다음 생엔 할멈이 맹글고 뚜르르 울리는 시상에 태어나 정승판서도 해 보고 꽃미남 기방에 불러 꺾고 만지고 빨아도 보소. 미련 둘 무엇도 없는 이승 하직 하구려 객사에 상주 없는 쓸쓸한 장례지만 발상(發喪) 고한 후에 만가(輓歌) 한 줄 지어 읽고 안동포 고운 수의하여 향나무관에 모시리다 < 해설 > 독자 여러분, 이제 슬슬 오광대놀이의 결말이 보입니다. 별사라니, 떠나는 이에게 보내는 노래를 부른다. 여자로 난 죄니 다음 세상에선 팔자나 바꿔 태어나라고, 그것도 마지막 고별사라고 고개 주억거리며 중얼댄다. 이 노래 같지 않은 노래가 혼령 위로하는 만가인가? 행랑에 든 엽전들 모두 긁어모아 안동포 수의 입히면 무엇하나. 향나무 관에 고이 누인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여자의 생이 이리 비극만 있을까. 난봉꾼 남편 만나는 순간, 여자 팔자 이러구 마는 것이지. 이제 곧 발인하여 상여 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들어가는 말: 강원도 태백시 백두대간 근처 깊은 산골에 예수원이라는 수행공동체가 있다. 필자가 50살이었던 2000년에, 나는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철 어느 날, 나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하여 예수원에 2박 3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의 방문 기록을 우리문화신문 독자들에게 6회에 걸쳐 소개한다. 단, 오해할 독자들이 있을까 봐 사족을 단다. 이 이야기는 종교이야기가 아니다.(글쓴이) 내가 예수원에 대해서 처음 들은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가가 강원도고 장인어른이 태백시 황지 초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신 적이 있어서 아마도 처가에 갔다가 처음 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수원이라고, 태백시 근처 깊은 산속에 성공회 신부(Reuben Archer Torrey III, 한국 이름 대천덕)가 세운 기도의 집이 있는데, 신앙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이 그곳에 가면 안식을 되찾고 온다는 정도로 들은 것 같다. 예수원 사람들은 매우 자유분방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을 강요하지도 않고, 또 한 가족처럼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부터 예수원은 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도자기를 하는 작가의 집을 방문했더니 응접실 나지막한 옛 가구 위 화병 속에서 맑은 매화꽃들이 보시시 웃으며 인사를 한다. 뒤에 걸린 화가의 검은 색 바탕의 그림에 어울려 마치 영창(映窓)에 비치는 듯한 선명한 아름다움을 풍겨준다. 작가의 작업장이 있는 부산 기장 쪽에서 핀 매화란다. 꺾어 와서 작가가 만든 달항아리 옆 화병에 꽂힌 것인데 고결한 자태로 겨우내 잊고 살았던 화신(花信), 곧 꽃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입춘이 지나고 계절이 우수를 넘고 있으니 이제 봄이라 해도 누가 시비하지 못할 때가 되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 살았던 옛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간절히 기다렸다. 이즈음에 추위 속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매화를 보면서 이어 다른 꽃들이 피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때에는 5일마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는 그 꽃을 몰고 오는 것이 바람이라는 생각에 일일이 이름을 붙이며 반겼다는 것이 아닌가? 이름하여 ‘이십사번 화신풍(二十四番 花信風)’, 그것이 줄어서 ‘화신풍(花信風)’이라는 것인데, 양력 1월의 소한에서부터 5일마다 기후가 바뀌고, 그것을 일후(一候)라 계산하면 4월의 곡우까지 4달 120일에 24개의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앞에서 훈민정음은 인간의 말소리를 가장 정확히 그리고 가장 쉽게 표기할 수 있는 글자라 하였습니다. 문자의 목적이 말을 기록하는 것이라면 훈민정음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훈민정음은 문자 발전과정의 끝판왕이라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라틴 알파벳은 소리를 적을 수가 없고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한자는 상형문자의 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세 번째로 많이 쓰이는 아랍문자는 상형문자에서 겨우 한 단계를 발전한 미숙한 문자라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문자인 데바나가리는 소리를 적지만 여러모로 훈민정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가 훈민정음 같은 문자를 만들기 위해 오늘날까지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그 얼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시 인류가 힘도 약하고 재빠르지도 못했지만 맹수들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돌도끼나 활 같은 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랍니다. 역사가들은 이러한 물건을 만들 때 여럿이 의견을 모아야 했으며 결국 말을 필요로 했다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토마스 몰간 교수는 이러한 논리로 인류는 2백만 년 전부터 일종의 말을 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