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대왕 아래에는 유독 고집 센 신하가 있었다. 고약해(高若海, 1377년~1443년)는 세종 때 형조참판, 개성부유수 등을 지닌 문관이다. 고약해는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는 고집쟁이 문신이었다. 문제는 그 고집을 내세운 주장이 그 시대를 개혁해 가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인데 그 판단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쉽게 내릴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변혁이라도 너무 급하게 서두르면 백성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정책으로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연재에 이어 고약해의 주장 보자. 라) 양녕 벌주기 (고약해 등이 양녕의 죄를 청하다) 병조 참의 고약해가 성난 목소리로 저지하고 나아가서 아뢰기를, "근일에 정부ㆍ육조ㆍ대간(臺諫)이 연달아 장소(章疏)를 올려 양녕의 죄를 청하니, 전하께서는 마땅히 힘써 따르시어 임금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부도(不道)한 일을 마음대로 행한 죄를 징계하소서." 하였다. 사간 김효정(金孝貞)ㆍ집의 김종서(金宗瑞) 등이 또 계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태종께서 말씀한바 나라에 맡긴다고 한 것은 특별히 큰일에 대한 것이지 이와 같은 작은 일을 이른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날에 범한 죄만은 논할 것이지 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번 주말이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그다음 날 일요일이 크리스마스다. 우리말로는 성탄절이라고 하는데 웬일인지 성탄절이라고 하면 너무 딱딱하고 엄숙한 것 같아 신세대들은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성탄절 즈음해서 많이 듣는 말이 '할렐루야'일 것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짐으로써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그 아들이 이 땅에 태어난 날이니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가? 그야말로 구세주이신 신의 영광을 찬양해서 마땅한 날이기에, 할렐루야라는 말로 기쁨을 표현한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도, 밖에서도, 기도하면서도, 또는 심지어는 거리에서 전도를 강요하는 분들에게서도 이 말은 자주 듣는다. 할렐루야(Hallelujah)는 고대 히브리어에서 ‘찬양하다’를 뜻하는 ‘hallel’과 유태교의 신 ‘Yahweh’의 준말인 ‘yah’가 합쳐진 말이라고 하니 글자 그대로 신을 '찬양하다', '찬양하라'의 뜻이 된다. 필자는 기독계인 대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학교는 한 해에 한 번씩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를 하며 그때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나오는 '할렐루야' 합창곡을 꼭 불렀고,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 주변에 마음에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가볍게는 사소한 언행에 의한 마음의 상처부터 시작하여 울화(鬱火)로 표현되는 전통적인 마음이 병이 있다. 이러한 마음의 병은 우리 생활에 언어로 녹아 있다. 가벼운 마음의 흔들림은 심란(心亂)하다 하고, 마음의 위축이 심하여 사소함에도 부담받는 상태를 소심(小心)하다 한다. 현대에 들어서 마음의 병이 부쩍 많아졌는데 두뇌의 이상에 의한 정신적인 질환 몇 가지를 빼면 정신적인 질환은 모두 마음의 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병이 구체화하여 질병으로 드러난 것들로 우울증과 조울증, 공황장애와 조현병 등이 있다. 오늘은 우울증에 대하여 대략을 살펴보고 한방과 양방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1. 우울증의 정의와 진단 기준 우리가 말하는 우울증의 공식적인 병병은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다.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와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을 말한다. 우울증을 진단하는 기준은 최소 2주 동안의 우울한 기분 또는 대부분의 활동에서의 흥미 또는 즐거움의 상실하는 것이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영감아, 나도 엄연히 입술 붉은 꽃이요 술청에서 장마당에서 꽃 본 듯 희롱해 보소 지천엔 분분한 꽃잎 벌나비는 희희낙락 월향인 듯 매향인 듯 눈길 한 번 주어보소 세상 수컷이란 다 요렇코롬 변죽인가? 장인 사위도 쑥떡쑥떡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방출입이라더니, 열녀문 홍살문에 이름은 좋다만은 기생질에 처첩 살림 아이고 내 팔자야! 들병이도 방물년도 뽀얀 분단장에 찡긋 눈짓이면 은근슬쩍 지분대는 내 서방 바람끼 감당키 어려워라. 나도 한때는 눈부셨거니, 연지 곤지 찍고 초례청에 섰을 때는 천지간 눈발에도 향기 그윽하였으니, 오호라! 그 지엄한 법도가 날 가두네. 남녀가 유별하고 칠거지악 엄존하니 눈멀고 귀 먼 삼 년에 벙어리 석삼 년이 뉘집 똥개 신세던가. 진사댁 친정 가문에 똥칠할까 참아 왔소 홧김에 서방질이라 맞바람 피워 볼까 벌나비야 남정네야 꽃 지고 저무는 봄날 나 홀로 지지도 못해 속절없이 서러워라 누구 없소? 화급한 그림자로 담 넘어와 쿵떡쿵 마주 찧는 방아방아 양다리방아 물 철철 휘감아 도는 물레방아 퉁방아 한밤을 삭신 저리 아리고 쑤시도록 좌삼삼 우삼삼 휘몰아 좌우삼삼 부랑한 치한이라도 어울려 볼까 훠 얼 훨 < 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무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개다래나무가 자주 나타난다. 다래나무과에 속하는 개다래나무는 덩굴식물로서 줄기는 4~6m에 달한다. 잎의 상반부 또는 전체가 하얗게 되는 산반현상을 나타내어 멀리서도 개다래나무를 뚜렷이 알아볼 수 있다. 걷기에 좋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벌들이 나타난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보고 벌을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벌통이 400통이나 길가에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람이 지나가자 호기심 많은 가양이 요즘 무슨 꿀을 따느냐고 물었다. 피나무꿀과 밤나무꿀 그리고 잡꿀을 딴다고 한다. 벌통을 지나고 도로 차단기를 지나자 다리가 나타났다. 수항교다. 반대편에서 수항교까지는 차로 들어올 수 있다. 우회도로(구 59번도로)가 끝나고 터널을 통과한 59번 도로로 나왔다. 이제부터는 막동리가 시작된다. 막동리(幕洞里)는 진부면의 남부지역으로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움막을 치고 살았다고 해서 막골이라고 불렀다. 1906년에 평창군에 편입되었다. 《조선지지(朝鮮地誌)》에 막동, 현재도 막동이다. 59번 도로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다시 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2년여 동안 집 뒤편 둘레길을 돌면서 하루하루 신경을 쓴 것이 있다. 바로 둘레길 입구에 세워져 있던 작은 돌탑의 존재였다. 굵은 돌 10여 개 남짓을 위로 쌓아 올린 돌탑이 하나가 서 있다가 어느 날 보면 누군가가 무너뜨려 놓았다. 돌탑은 두 개일 때도 있었지만 역시 세워지면 곧 무너졌다. 그렇게 세우고 무너트리는. 말하자면 돌탑 전쟁이 일 년 넘게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대 계곡은 큰비가 오면 물이 넘치고 토사가 휩쓸려가 이에 대해 계곡의 바닥을 파고 굵은 돌로 물길을 새로 만드는 사방작업이 2년 전 봄 여름에 있었는데 그 공사가 끝난 뒤 가을 계곡 옆 언덕배기에 누군가가 작은 돌탑을 처음 만들어 세웠다. 그런데 며칠 뒤에는 그게 무너져 있었고 이에 다시 세워졌다가 며칠 뒤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해가 바뀌면 무너뜨리는 분이 참고 넘어가 줄까 했지만, 여전히 세우고 부수고 하는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돌탑을 쌓는 분은 남이 일껏 힘들게 만들어놓은 돌탑을 왜 그렇게 부수려 하느냐고 경고성 글을 쓴 종이를 달았는데 부수는 분은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수는 바람에 종이도 땅에 떨어졌다.
여행 내내 오문수 선생이 늑대가 보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이에 저리거 씨가 처남에게 물어보니 이 지역에 늑대가 자주 출몰한다고 하며,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다고 한다. 사막과 초원의 주인인 늑대를 보려고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 중국 국경 지대로 가서, 늑대가 출몰하는 언덕 오보에서 망원경으로 늑대를 찾고 있다. 늑대는 해가 뜰 무렵에 출몰한다고 한다. 모기 씨 막냇동생이 총을 메고 오토바이를 몰고 앞장서 달린다. 우리는 새벽바람이 차서 방한모와 오리털 점퍼를 입었는데, 그는 델(전통 복장)을 입고 일반 모자만 썼다. 거친 사막을 바람처럼 달린다. 돌부리를 치고 달리는데,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맞다. 해 뜰 무렵에 망원경으로 저리거와 동생이 늑대를 보았다고 하여, 그 방향으로 가까이 가려고 차를 몰고 가는데, 늑대가 도망가버렸다. 워낙 빠르고 영리한 동물이라 쉽게 촬영하기 어렵다. 사막을 달리는 도중 가젤이 떼로 몰려가고 야생말 한 마리가 도망간다. 멀리서 지켜보던 모기 동생이 오토바이로 반대 방향에서 말보다 더 빨리 달린다. 야생마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다 잽싸게 방향을 바꾸어 사막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말몰이로 잔뼈가 굵은 유목민이 오토바이를 말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당연하게 여기면서 소중한 것을 놓치는 일들이 많다. 자연에서는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회에서는 가족의 소중함,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 전반에 대한 값어치에 대하여 등한시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 생활 속에서 가깝지만, 소홀히 여기는 것 가운데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수면’이 있다. 보통 한의사나 수면에 대한 고민이 있으신 분들은 ‘잠이 보약’이라는 말의 값어치를 인지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를 알아내지 못하고 등한시한다. 그러다 잠이 부족해도 버티던 젊은 시절을 지나 중년의 한 지점을 통과하다 보면 수면장애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고 더불어 회복력의 저하라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수면에 대하여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을 되짚어 보면서 건강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1. 수면의 중요성을 먼저 인식하라 수면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생리 활동으로서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특별한 지식이나 교육이 없어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국한해서 생각해볼 때 수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삼천리 방방곡곡 면면촌촌 다 다녔소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 팔만 구암당 유점사 법당 뒤 칠성단에 홀로 앉아 집 나간 영감님 찾아달라 빌고 빌며 도톨밤으로 점심 먹고 찬 샘물로 저녁 떼우다 급기야 부황들어 부기 다 빠지니 얼굴은 수세미 같고 팔다리는 수숫대 됐소 <해설> 만났으니 서러운 마음에 하소연이다. 방방곡곡 돈 사연일랑 어찌 다 말할까. 발 디딘 곳은 그렇다지만 끼니도 채우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돌았다. 아이구, 내 팔자야. “도톨밤으로 점심 먹고 찬 샘물로 저녁 떼우다 급기야 부황” 들었다가 부기 다 빠지니 “얼굴은 / 수세미 같고 / 팔다리는/수숫대” 됐으니 이 팔자를 어찌할꼬. 하긴, 아무리 뻔뻔한 영감이라 한들, 이런 마누라 하소연을 어찌 묵묵히 듣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고약해(高若海, 1377년, 우왕3 ~1443년, 세종 25)는 세종 때 형조참판, 개성부유수 등을 지닌 문관이다. 세종대왕 아래에는 유독 고집 센 신하가 있었다. 바로 고약해로 한자는 ‘같을 약(若)‘, ‘바다 해(海)’ 자로 ‘바다 같은 인물’이 되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는 형조참판으로서 태조, 정종, 태종, 세종까지 모두 4명의 임금을 섬겼다. 도 관찰사, 사헌부, 인수부 등 중직 등을 두루 거친 명재상이다. 그는 세종에게 사사건건 직언하는 신하였다. 오죽하면 그의 이름을 빗대 “이런 고약해 같으니”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고약해 같다’라는 말은 비위나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고약하다’라는 말로 발전했다고 한다. 흔히들 세상에서 ‘고약하다’라는 말을 쓰는데 국어사전의 뜻은 가) 괴악(怪惡)하다의 의미고 나) 정태륜의 ‘한국인의 상말 전서’(고요아침 2016)에 나오는 《세종실록》에 고약해라는 인물에서 비롯했다는 설인데 국립국어원에서도 이 질문에 확인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설이라 하겠다. 세종은 고약해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다른 신하들이 직언하지 못할까 봐 고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