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은곡은 어디서나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술이 들어가자 기분이 좋아진 은곡은 주인장에게 허락을 받고서 판소리 춘향전의 한 토막을 무반주로 구성지게 하였다. 나는 단골메뉴인 사철가를 했는데, 은곡이 추임새를 적절하게 넣어주어서 소리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우리는 1시 45분에 식당을 출발하였다. 82번 도로를 따라 조금 가자 왼쪽으로 강 따라가는 좁은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도로표지판에 장충동길이라고 쓰여 있다. 영월군청 누리집에서는 장충동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장충동(長忠洞)은 영월군 서면 광전리 매운(梅雲)과 평창강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마을로서, 충주 지(池)씨가 개척한 지씨 집성촌이다. 원래 주녹골(朱帥谷)이라고 불렀는데 주녹골의 유래는 마을 뒷산에 예부터 노루와 사슴이 많았으므로 '주녹골'이라 하였다. 지계최(池繼崔) 장군이 병자호란 때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므로 '장충동(長忠洞)'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평창강 따라 나 있는 장충동길은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다. 넓이는 차가 한 대 지나갈 정도인데, 중간중간에 교차를 할 수 있도록 조금 넓은 지점을 만들어놓았다. 장충동길로 들어서자 바로 장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희망의 2022년 새해를 우리 함께 맞이합니다. 코로나 돌림병으로 저마다 힘들어 무너졌던 우리들 마음도 함께 일으켜 세우는 새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방귀희 선생은 외환위기(IMF) 때 그러니까 1997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일어서거나 걸어 본 적이 없는 1급 지체 장애인이지만 서울 무학여고를 수석으로 입학했으며 동국대 불교철학과를 수석 졸업한 화제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창간 발행하던 장애인의 문학잡지 <솟대문학>을 차마 폐간할 수 없으니 허 시인의 주변에 후원해 주실 분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요. 하지만, 그 어려운 시기에 누가 손들고 나서서 도와주겠습니까? 그러나 방 회장의 간절함이 이루어졌고 제가 소개한 ㈜놀부의 창업주 오진권 대표가 십수 년 동안 꾸준히 후원해 주었지요.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지듯 넘어져 주저앉은 우리들 마음도 일으켜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방송작가로, 대학 강의와 장애인의 복지 관련 단체에서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방귀희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방 귀 희* 남의 마음을 어찌 읽을 수 있으랴만 태어나서 한 번도 일어서서 걷지 못한 그 절망의 마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매일 아침 산책을 하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은 구름정원길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산자락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구름 속을 걸어가는 착각을 하게 하는 멋진 구간인데 이 가운데 뉴타운 폭포동 아파트 쪽에는 물길이 모이는 작은 계곡이 있다. 향로봉 서쪽 암반에 난 길을 타고 폭포를 이루며 쏟아져 내려와 평지를 흐르는데 큰비가 오면 물은 콸콸콸 멋지게 흐르지만 동시에 모래도 깎여 내려가며 계곡을 메우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지난봄에 구청에서 대대적인 사방공사를 하는 바람에 전에 보던 자연적인 계곡은 판석이 깔린 물길로 바뀌었다. 당연히 예전 자연스러운 골짜기를 즐기던 우리들에게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다. 그 전에 사람들은 물길 옆에 하나둘씩 작은 돌탑들을 많이 쌓아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즐기곤 했는데 공사 이후에는 다 없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두 달쯤 전에 작은 돌탑 하나가 생겼다. 돌탑이라고 해야 작은 돌들을 위로 쌓아 무릎에 찰까 말까 하는 정도인데, 무미건조한 판석의 물길로 바뀐 것을 약간이나마 보완해주는 효과가 있어 어느새 사람들은 쳐다보면서 좋아하곤 했다. 예전의 돌탑만큼은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쌓은 돌탑은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추위와 더불어 본격적인 겨울이 되었다. 어릴 적 시골생활을 할 때 겨울이 되면 양볼이 빨개져서 콧물을 줄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한의사가 되어서도 겨울이 되면 물코 비염이라는 환절기 질환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감기에 걸려서 콧물이 나기도 하지만 감기와 상관없이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데 흔히 말하는 물코비염(겨울비염)이다.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코의 점막을 마비시켜 겨울 추운 날씨에 심신이 움츠러들면서 코는 빨개지고, 콧물이 많아지고 입과 코에서는 하얀 김이 나오기 시작한다. 더 심해지면 코에서 수돗물이 나오듯 점성이 없는 맑은 콧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면 바로 회복되지만 지속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것은 쌀쌀한 공기가 코에서 충분히 가온, 가습 되지 못한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인후와 기관지에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유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면 인후부에 가래가 생기고 기관지가 부담받아 기침하게 된다. 아침저녁에만 조금 기침을 한다면 생활을 관리하면서 지켜봐도 되지만 낮이나 잠잘 때도 기침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산에는 녹음이 우거졌다. 봄꽃은 다 졌고, 이제는 여름꽃이 많이 보인다. 흰꽃으로는 데이지(정확한 이름은 샤스타 데이지)가 많이 보이고, 노란꽃으로는 금계국이 곳곳에서 보인다. 군데군데 노란 애기똥풀도 보이고. 강에는 다슬기를 잡는 사람과 낚시하는 사람이 보인다. 물고기를 잡아먹는 백로와 가마우지도 보인다. 감자밭에서는 하얀 감자꽃이 벌써 피었다. 옥수수밭에서는 옥수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세상 만물은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82번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자 판운교가 나타났다. 판운교를 지나 이제는 강을 왼쪽에 두고 계속 걸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오른쪽에 영월화석박물관이 나타났다. 답사팀의 일원인 석주는 전공이 지구과학이다. 나는 박물관에 도착하기 전에 석주에게 박물관에 가면 화석에 대한 설명을 좀 해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두었다. 그런데 12시에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휴관 중이다. 좋은 기회인데, 아쉬웠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월군에는 박물관이 많다. 《영월군지》를 읽어보니, 영월군에서는 2005년부터 ‘박물관 고을사업 육성’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2005년에 8개였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는 소나무를 참 좋아하셨다. 사계절 푸르른 솔이 산에 빼곡하게 있어야 정말 산(山이)라 할 수 있다고 늘 주장 하셨다. 소나무가 많지 않은 바위산이나 삭막한 가지만 있는 겨울산은 산도 아니라고 늘 얘기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는 그저 돌덩어리일 뿐일 것 같다고 늘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제주의 유명한 <비자림 숲>을 산책하고 오시면서도 비자나무만 가득한 숲을 가리켜, “솔이 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셨다. 그래서 내가 딸아이의 이름을 ‘솔’이라 지었을 때, 여자 아이 이름에는 ‘희’ 자나 ‘숙’자가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며 하시다가도 곧, “그래도 ‘솔’이 항상 푸르니 좋다.”라고 하셨다.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잘한 일 하나가 있다면 바로 딸아이 ‘솔’을 아버지의 손녀로 안겨드린 일, 그것뿐일 것이다.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조에 무인 출신으로 세종의 천문의기제작 프로젝트에 이천이 총괄 책임자로 임명되자 이후 명에 따라 실무연구팀을 구성했다. 이 연구팀에는 장영실이 제작 실무 책임자가 되었고 당대의 천문학자인 이순지가 이론을 뒷받침하여 먼저 혼천의를 비롯한 목간의를 제작했으며 계속하여 대간의, 소간의, 혼의, 혼상,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자격루 등을 만들어 냈다. 간의대 설치 이전인 세종 18년(1436)에는 천문의기 제작사업이 마무리 단계로 들어가고 있을 무렵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야인(野人)들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세종은 이듬해에 이천을 평안도 도절제사로 임명하고 야인정벌의 명을 내렸다. 평안도 도절제사 이천이 상언하기를, "대완구(大碗口)가 너무 무거워서 싣고 부리기에 어려워서 실제로 쓸모가 없고, 오직 중완구(中碗口)가 성을 공격하는 데 편리하지만, 소에게 실을 수 없으며, 소완구(小碗口)는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만약에 중완구와 소완구의 중간 정도쯤 되게 다시 만든다면 말에 싣는 데 편리할 것입니다. 신이 본도에서 감독해서 만들려 하오나 도내에서 철물이 없사오니, 청하건대, 유사(有司)에게 명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84년 3월 2일 김포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가는 대한항공. 1등석에는 이주일, 조용필 씨가 타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문화훈장을 받으러 가는 중이었다. 3등석에는 필자가 있었다. 우리 텔레비전 역사상 최초로 나라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 예술가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다. 4일 후 파리 시내 에릭 파브레 화랑, 이우환 씨의 파리초대전이 개막되었다. 필자는 이 전시회를 이렇게 서울에 소개했다. “이우환 씨의 작품은 자연석과 거대한 철판을 배열하는 특이한 작품입니다. 에릭 파브레의 넓은 전시장에 놓은 작품들은 모두 5개로서, 각각 형태와 놓는 방법이 달라지면서 돌과 철판과의 직감적인 관계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우환 씨가 파리에서 알려지게 된 것은 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회 파리청년비엔날레. 이 씨는 넓은 유리판 위에 큰 자연석을 올려놓았는데, 유리는 깨져 사방으로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이 작품이 당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켜 이를 계기로 이우환은 유럽과 미국 미술계에 주목을 받게 된다. 필자는 1984년의 초대전 취재와 함께 암스텔담, 베를린 등 여러 나라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이우환 씨의 작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인간의 삶에서 인연(因緣)이라는 말은 한 몸과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생의 진로를 한의사의 삶으로 정하고 한의대에 진학하는데 결정적으로 인연이 된 단어가 있다. 바로 정기신(精氣神) 삼보(三寶)이다. 대학을 선택하기 위하여 당시 종로서적에 있는 한의학서적을 훑어보는 과정에서 그 단어가 마음에 쑥 파고들어 왔다. 이때 피상적으로 알게 된 정기신(精氣神)이 한의학을 공부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진료와 치료의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문화신문에 건강 칼럼을 올리면서 되도록 쉬우면서도 현대에 사용하는 일상용어로 풀어서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만, 한방에서 사용하는 고유 명사만은 그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는 일이 빈번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고유 명사가 정기신(精氣神)과 수승화강(水升火降)이었건 것같다. 아울러 단전(丹田)이란 용어도 어쩔 수 없이 자주 사용하는데 단전이라는 말만 하면 구체적인 현상이 관념적 설명으로 바뀌는 듯하여 아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되도록 단전(丹田)과 정기신(精氣神)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쓰고, 진료할 때도 말을 안 하려 하지만, 이것이 한의학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조 중기 명종 선조 대에 살았던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올바른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며 학문과 수양,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아 마침내 최고의 유학자로 추앙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족, 자손들의 건강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퇴계는 자신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큰아들 준(寯)에게 제대로 아버지로서의 정을 주지 못한 때문인 듯 41살 때 얻은 맏손자 안도(安道)에게는 할아버지로서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편지로 수시로 훈육하였다. 손자 안도는 퇴계가 68살 때인 1568년 3월에 아들, 곧 퇴계의 증손자를 낳았는데, 퇴계는 그 소식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직접 수창이란 이름을 지어 한 달 뒤에 편지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때는 안도가 성균관에 유학하기 위해 한양의 처가에 있을 때인데, 안도의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있지 않아 둘째가 들어서게 되자 엄마의 젖이 끊어져 당장 젖을 못 받아먹게 된 아들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고 한다. 증손자가 자주 설사를 하는 등 건강이 나쁘다는 소식을 들은 퇴계는 손자 앞으로 편지를 보내어 걱정을 많이 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알려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