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엄마시절, 우리집에 문 열고 들어서면 부엌으로부터 온돌위의 공상(팔걸이와 등받이가 없는 걸상)에까지 줄느런히 장독, 간장독, 물독, 쌀독……들이 있었는데 창고가 따로 없던 자그마한 집이었건만 한꺼번에 엄마의 깨끗함과 알뜰함이 한눈에 안겨 왔었다. “와~ 이 짐독(큰 단지)은 곱기두 하오? 반질반질하네……” 지금처럼 오지독이면야 얼마나 좋으련만, 그때엔 전부 토기독들이었단다. 마을의 엄마들은 만져도 보고 독을 열어도 보시더란다. “와~ 입쌀(하얀쌀)? 이렇게 많이?”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엄마를 쳐다보시더란다. 바로 이 제일 고운 짐독은 아무도 모르는 엄마의 “절약독”이었단다. 이 독에는 늘 보기 좋게 입쌀이 넉넉히 들어 있었단다. 엄마는 우리에게 “모주석(모택동 주석)께선 랑비는 최대의 수치라고 하셨단다. 올해 풍년이지, 계속 풍년일지 알 수 없지 않니? 흉년이 들면 바가지 들고 어디 가서 빌어먹겠니? 랑비는 말아야한다.”고 하셨단다. 하기에 엄마는 밥 할 때마다 한줌씩 꺼내어 절약독에 놓고 이삭 주은 쌀도 가끔씩은 절약독에 넣곤 마음대로 꺼내지 않으셨다고 하는구나! 이것은 점차 엄마의 습관으로 되였단다. 하기에 이 고운 독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제는 여느 날보다 몸이 더 무거웠습니다. 다 까닭이 있겠지만 그만큼 힘들어서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들말마을배곳 갈침이님들 기별을 받고 저도 모르게 기운이 났습니다. 새로나꽃배곳(신진초등학교) 놀이교실을 빌려 이레끝(주말) 놀배움터를 여는데 그곳을 토박이말로 꾸미고 싶다는 것이었죠. 곧 쓰임새가 바뀌지만 붙였다 떼기 쉬운 것으로 꾸미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생각하기에 따라 그곳을 꾸미자고 하면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스스로 꾸미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들말마을배곳과 같은 자리느낌(분위기)가 배곳 안으로 번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이레가 훌쩍 흘렀습니다. 토박이말 되익힘을 하시며 토박이말과 더욱 가까워지시길 비손합니다. *이 되익힘 틀은 좋은메 조상현 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시 보기> 1)ㄱㅇㄷ-https://bit.ly/2Xu93jh 2)ㄱㅇㅈㄷ-https://bit.ly/2FTD3tY 3)ㄱㅊㄷ-https://bit.ly/2Ytw6at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91부채꼴,어미금,밑넓이,옆넓이,부피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은4284해(1951년)펴낸‘셈본6-1’의56쪽, 57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56쪽 첫째 줄에‘부채꼴’이 나옵니다.이 말은 요즘 책에서도 쓰는 말이라 다들 눈에 익으실 것입니다. ‘부채’를 왜 부채라고 했을까를 아이들한테 물었더니‘부채는 부치는 거니까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라고 말을 하더라구요.아이들도 조금만 생각해서 말밑을 알 수 있는 이런 말이 쉬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형’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부채꼴’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참 좋습니다. 셋째 줄에‘원뿔’이 나옵니다.그림꼴 이름으로‘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썼고‘세모뿔’, ‘네모뿔’, ‘다섯모뿔’이라는 말도 썼는데 왜‘원뿔’은‘동그라미뿔’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어디에도 그 까닭을 밝혀 놓지는 않아 알 수는 없지만 낱말이 길어서 그랬지 싶습니다.하지만‘둥글뿔’이라고 하면 짧으면서도 그 뜻을 담은 말이 되니‘셈갈(수학)’을 하시는 분들이 슬기를 보태 더 좋은 말로 다듬어 주었으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소통] 정신은 정암 조광조로 이어져 세종의 정치는 민본(民本)의 생민정신으로 나타나 누구나 자기의 재능을 나타내 일의 보람을 통한 업 정신을 가진 생민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처지를 면하고, ‘곳곳에서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끊어져서 각기 생생하는 즐거움[生生之樂]을 이루도록 할 것’을 바라는 정치를 폈다. (《세종실록》5/7/3) “노비는 비록 천민(賤民)이나 하늘이 낸 백성 곧 천민(天民)이 아닌 이가 없다.(《세종실록》26/윤7/24)는 세종의 생민 사상은 모든 사람은 다 같다는 ‘하늘 백성’ 정신으로 뒷받침 된다. 올해는 조선의 의로운 선비 한 사람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선생(1482년 8월 10일 ~ 1519년 12월 20일)의 죽은 50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6월 18일 이를 기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유학의 현대화 작업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가졌다. 여기서 세종의 삶 철학과 정암선생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궁금히 여길 것이다. 《정암집》 속의 세종 시대 조선조가 이어지는 동안 후대 여러 임금과 사대부들이 세종시대를 정치의 본보기로 삼았다. 조광조 선생은 그의 문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지난 닷날(금요일) 토박이말 교육연구회 모두모임(총회)이 충무공초등학교에서 있었습니다. 으뜸빛(회장)님 인사말씀에 이어 모임이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슬기를 모았습니다. 꾸림일꾼(운영위원) 모임을 지멸있게 하고 모람(회원)들께 일거리를 알리고 나눠 주어서 함께한다는 느낌을 가지도록 해 주자는 데 뜻을 같이하였습니다. 엿날(토요일)에는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이 있어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땀을 실컷 흘렸지만 그 만큼 보람이 있었습니다. 옛날 배움책에서 캐낸 쉬운 토박이말들을 알려 드리고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지름길은 쉬운 배움책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시고 크게 손뼉을 쳐 주셨습니다. 덧붙여 토박이말바라기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과 새로나꽃배곳과 들말마을배곳에서 펼치고 있는 토박이말 놀배움 이야기를 해 드리고 힘과 슬기를 보태주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이 해 주신 좋다, 잘한다는 말씀도 기분 좋고 고마웠지만 제가 더 마음을 쓰고 꼼꼼하게 챙겨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셔서 더 고마웠습니다. 더 많은 분들께 알릴 수 있는 자리를 더 자주 그리고 더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어제는 티비엔 경남교통방송 '토박이말바라기' 꼭지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지난해 했던 이야기를 돌아보고 새로운 토박이말을 알려드렸습니다. 제가 들이는 품과 때새 만큼 많은 분들이 들으시고 토박이말과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는 이야기와 아랑곳한 노래를 골라 듣는 게 저는 참 좋습니다. 앞으로는 노랫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 보는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낮밥을 먹고 배곳 안 토박이말바라기 푸름이 아이들과 마을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토박이말로 된 가게 이름을 찾으러 나선 길이었습니다. 한 모둠은 미리 알아둔 가게에 가서 임자를 만나고 다른 한 모둠은 저랑 골목 골목을 돌며 가게 이름을 살폈습니다. 토박이말 가게 이름이 많지 않고 영어, 일본어로 된 가게가 많아 놀랍다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찾아 낸 토박이말 이름 가운데 저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뽑아 보고 그 열매를 토박이말바라기 푸름이 이야기방에 올려 놓았더군요. 글 끝에 우리가 토박이말을 널리 알려, 가게 이름들이 토박이말로 되어 있는 날이 빨리 다가오면 좋겠다는 말이 제 어깨 위에 얹히는 것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씻은들 무엇하며 아닌들 어이하리 이내몸 땀구멍은 샘물이 따로없네 재빨리 물닦고 보니 그자리에 땀방울 오란비 장마철에 무더위 찾아오니 찬바람 반갑지만 남들은 춥다하네 아이고 바람틀 없나 그마저도 아쉽소 어제 아침에 씻고 나와 물을 닦은 자리에 땀방울이 맺혀 흘러 내리는 것을 보며 씻은 보람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무더위에 시원한 바람이 저는 좋지만 다른 사람들은 춥다고 할 때는 제 곁에 바람틀을 하나 갖다 놓지 않은 게 참 많이 아쉬웠습니다. 오늘은 꼭 챙겨 놓아야겠습니다. 오늘 맛보여 드릴 토박이말은 '걸림새'입니다. '매끄럽거나 잘 다듬어지지 않아 걸리는 모양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토박이말입니다. '걸림+새'의 짜임이라고 할 수 있고 같은 짜임으로 된 말에 '팔림새'가 있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여러분 하시는 일은 걸림새 하나 없이 시원하게 잘 되기를 비손합니다.^^
[우리문화신문=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기자] ▲ 지리산 법계사 3층석탑(보물 제473호), 손묵광 작가 지리산 좀 올랐다 자랑해도 정작 법계사 석탑(보물제 473호)을 보지 못한 이는 많다. 로터리 산장에서 잠시 호흡 고르고 곧바로 천황봉 향해 출발하기 때문이다. 탑 구경은 새벽 여명이 좋은데, 산꾼에게는 정상에서 일출 보는 일이 더 중한 탓이다. 절 마당 거대한 바윗돌에 탑신 올렸으니 기단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튼튼하다. 법계사는 해발 1,400m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이니 운 좋은 날엔 구름 자욱이 내려와 운평선(雲平線) 너머 산봉이 흡사 섬처럼 떠 있는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산의 발목은 남해바다에 닿고 우린 탑을 품고 마을로 내려온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드디어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는 날이다. 평소처럼 새벽 3시에 잠이 깨었다. 나는 <사피엔스>의 제2부인 농업혁명을 읽기 시작하였다. 채집수렵하면서 겨우 겨우 영양을 섭취하던 인류가 1만년 전 농사를 시작하게 되자 두 가지 큰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는 짐승을 따라 이동하던 인류가 농사를 짓기 위하여 한 곳에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 농사는 협동작업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둘째는 잉여 식량이 발생하면서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가족이 충분히 먹고도 식량이 남게 되자 잉여 식량을 빼앗아가는 권력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지역별로 권력자가 나타나면서 부족국가가 형성되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임금이 등장하면서 제국이 나타났다. 백성들에게서 잉여 식량을 빼앗아갈 수 있는 권력의 유지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제국의 통치는 백성들에게 허구에 근거한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들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미국의 독립선언서나 모두 진실이 아닌 상상의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힌두교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힌두교 신들은 원시 인간인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한가위도 오래지 않은 따뜻한 가을의 어느 날이었단다. 나는 아버지산소에 올릴 메밥을 담을 그릇으로 덥개가 있는 자그마한 불수강식기(스테인리스 스틸 식기)를 하나 사들고 집에 왔었다. 그 식기를 한참 보시던 엄마는 불쑥 “너 놋그릇 기억나니?” 하여 내가 “예, 놋이면 동으로 만든 구리그릇인데 옛날 엄마가 그 그릇에 밥이랑 떠주었잖아요?” “너 어릴 때 일인데 그래도 기억있구나!”하셨다. ‘ 그때엔 전부 구리(놋)로 만든 밥식기, 놋대접, 놋소래, 놋다라 같은 것들을 쓰셨다 한다. 우리집은 큰집가문으로 이런 그릇들이 많아 살강엔 보기 좋게 올망졸망 앉아있었다는구나! 이런 놋그릇들은 벼짚으로 닦아야 윤기가 돌기에 그릇을 보고도 그 집의 엄마들의 깨끗하고 알뜰함을 갸늠했다는구나! * 놋소래 : 놋으로 만든 소래기, ‘소래기’는 굽 없는 접시 모양의 넓은 질그릇 우리 조선민족도 여느 민족처럼 아주 깨끗하고 례절바른 민족이 아니니? 윤기 도는 놋식기에 하얀이밥(새하얀 쌀밥)을 담고 덮개로 꼭 덮고 올망졸망한 놋공기에 김치며 젖갈들을 담고 놋대접에 국을 떠서 놋숫가락 놋젖가락을 놓아 동그란 밥상에 받쳐 흰앞치마 두른 며늘아기가 손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