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삿갓 시비를 떠나 강 따라 조금 더 가자 작은 언덕이 나타났다. 이정표가 보인다. 언덕은 흙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경사가 급했다. 이어서 한적한 숲길이 나타난다. 숲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4박자 울음이 독특한 검은등뻐꾸기 소리였다. 속칭으로는 ‘홀딱새’라고 부른다. 숲속에서 새 소리를 잘 들어보면 ‘홀-딱-벗-고, 홀-딱-벗-고’라고 들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검은등뻐꾸기는 철새다. 중부지방에서는 5월에 잠간 머물다가 날아가 버린다. 아래 인터넷 주소에서 홀딱새의 울음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 검은등뻐꾸기(홀딱새) 울음소리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GvPjhUqxhXM 산길을 따라 조금 가자 왼편에 쉼터가 나타나고 그 옆에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강 건너편 마을이 마지리다. 안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지리는 읍의 남부 동남쪽에 위치하며, 본래부터 龍(용)물이에서 말(馬)이 났다고 하여 마지리(馬池里)라 불려졌다고 전하여 온다. 연대는 미상이나 마지마을이 생길 때, 高山골에 나주(羅州) 羅씨가 살았는데 어느 날 어린 아기가 태어났다. 태어난 지 사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시대 조선의 과학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으뜸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평가가 가능한 까닭은 우수한 과학기술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사학자들은 조선 세종 때 장영실보다 뛰어났던 과학기술자가 있다고 한다. 누굴까? 과학사학자들은 장영실이 노비 출신 등 극적인 개인사 때문에 일반인에게 으뜸 인기 과학자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국사학과 교수들은 세종 시대 최고 과학자로 ‘이순지, 이천, 정인지’(서울대 문중양교수)를, ‘이순지와 이천’(전북대 김근배교수)을 꼽았다.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은 2003년 1월 과학기술을 존중하는 사회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을 마련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과학기술인 15인 가운데 세종 때 △이천 △장영실 △이순지 3명이 들어갔다. 세종대왕의 재위 기간인 1418∼1450년은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서 황금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볼 때 국책사업으로 과학기술을 이끌어 천문학은 물론 활자 인쇄, 도량형, 화약, 농업, 의약, 음악 분야 등 과학기술이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었다. 세종이 임금이 된 1418년은 아직 새 왕조가 개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산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모시고 한라산을 한번 올라가 보려 했으나, 그건 아무래도 무모한 일이다 싶어, <비자림 숲>으로 모시고 갔다. 그러나 이번 제주도 여행은 첫날부터 가을비가 마치 스토커처럼 따라다녔다. <비자림 숲>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얼른 비옷을 샀다. 아버지에게 비옷을 씌워 드리고, 행여나 추우실까 싶어 큰 우산을 아버지 머리에 씌우며 천천히 걸었다. 나는 제주에 올 때면 자주 비자림 숲길을 찾곤 하지만 그렇게 비를 맞으며 걷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꽤나 많은 사람이 숲길 어귀부터 붐비고 있었다. 아버지는 칠순이 넘으시면서 통풍을 앓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너무 다니지 않으셔서 그런지 다리근육이 너무 약해져 있으셨다. 숲 길가에 바위라도 보일라치면 자꾸만 앉아 쉬기를 반복하셨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후~ 하며 긴 한숨을 쉬셨고, 그런 당신의 노쇠함을 보며 옆에 있던 나는 그 숲길이 어느 때보다도 더 길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아버지는 내 나이 다섯 살쯤 됐을 때부터 나를 데리고 등산을 자주 다니셨다. 아버지 친구들 몇 분과 함께하는 등산모임이 있었는데, 대구, 경북권 산은 물론이거니와, 전국에 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갑자기 주위에서 들리는 신음소리다. 아침 영하로 내려가고 출근하는 볼따구니에 찬 바람이 몰아치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무의식적으로 토해내는 비명인 것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가지에 잔뜩 매달려 웃을 때는 아름답고 멋있는 이 가을에 감사하다가 며칠 뒤 금방 추워지니까 가을에 대해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것에 감사하던 마음이 어느새 쑥 들어가 버린 것이다. 참으로 간사한 것이 우리네 마음이구나. 허둥지둥 우리 마음이 바빠진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추위가 오면 걱정할 일이 많다. 늘 우리가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말을 듣고 마치 준비를 다 해놓은 듯 느긋하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마음이나 생각이 허둥지둥. 정신이 바람에 날려 무인지경으로 밀려간다. 아등바등 그러다가 이젠 몸이 아등바등해진다. 방한복이 좋아져 웬만하면 옛날처럼 추위를 심하게 타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제는 손가락도 발걸음도 빨리 따뜻한 피난처로 가기 위해 온통 내 머리와 상관없이 재빨리 움직이려고 하는데, 그것이 곧 아등바등이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적확한 표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현대인들은 어느덧 100세 시대를 말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70~80살에 건장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 걸 보면 현재 청소년들은 당연히 ‘100살을 넘어 장수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80살은 기본이 되는 것 같으며 인생을 80으로 보면 그 중간인 40살까지는 기력(氣力)이 절정에 달하고 이를 유지하다가 60살은 넘어서 꺾일 것 같은데, 인간의 생리적 퇴화는 아직도 너무 이른 시점에 오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은 대략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폐경이 시작되면서 갱년기가 오는 명확한 지점이 있다. 수명이 환갑을 겨우 넘던 4~50년 전과 현재를 견줘 볼 때, 갱년기의 시작점에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보통 생리적인 퇴화의 시작을 공통으로 경험하는 시점이 노안(老眼)이다. 이를 시작점으로 해서 오관(五官)의 기능이 감퇴하는 인식을 하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중년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노안(老眼)은 평균적으로 보면 40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50대 무렵이면 대부분 시작된다. 곧 인생의 반고개에서 생리적 퇴화가 진행되는데 이때부터 피로, 수면시간의 감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 후기의 문인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 1673)은 금강산에 대해 다섯 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 첫수에서 다음과 같이 금강산을 묘사한다. 金剛雄六合 금강산이 천하에서 으뜸이니 造化此偏鍾 조화를 여기에 쏟아 놓았구나 海有東南地 바다에는 동남의 땅이 있고 山開一萬峯 산은 일만이천봉을 열었다 門前琪樹出 문전엔 구슬 같은 나무 빼어나고 洞口羽人逢 동구에선 신선을 만난다 絶壁通河漢 절벽은 은하수를 통하였고 淵中帝賜龍 연못 속엔 옥황상제가 용을 하사하였다 과연 신선들이 사는, 하늘의 만들어준 경치란 뜻일 게다. 굳이 옛 문인들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금강산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10여 년 전에는 익히 보아왔다. 그런데 금강산이 왜 우리에게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은 별반 없다. 이럴 때 조선 후기 인문정신의 으뜸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년~1836년)이 소환된다. 다산은 금강산을 유람하러 떠나는 친구들을 전송하면서 글을 한 편 썼는데 귀는 어찌하여 밝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고, 꾸짖는 소리를 듣고 중지하고, 포효(咆哮)하는 소리를 듣고 해를 피하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금석사죽(金石絲竹, 예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중년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라떼”를 들먹이게 된다. ‘나 때는 20대에’, ‘나 때는 30대에’라는 식으로 말을 하다가 어느 순간 “한 해”가 다르다는 표현을 하는 시점이 오게 된다. 이런 느낌을 받게 될 때 본격적으로 중년의 슬픔이 시작된다. 그 시작을 어떤 이는 ‘노안’에서 인식하고, 어떤 이는 귀찮음으로 시작되는 피로에서 인식하고, 어떤 이는 소화력이 떨어진 것에서 인식한다. 중년의 고달픔을 알리는 신호는 각 개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지만, 진료 중에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모습과 귀찮음에서 출발하여 몸무게가 늘어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결국은 ‘피로함’을 통해 어느 순간 건강에 대한 빨간신호등을 느끼는 것인데 우리가 느끼는 피로는 삶 속에서 다양하게 우리를 힘들게 한다. 나이를 먹어가는 중에 피로를 느끼면 어느 순간 귀찮음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다음에”, “내일”로 미루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인 흐름은 세포의 활동성이 나의 의지를 따르지 못하고 어느 순간 의지마저 게을러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 몸무게가 늘면서 좋게 말해서 중년의 인품이 드러나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삿갓의 이름은 김병연(金炳淵, 1807~1863)으로 호는 난고(蘭皐)다. 김립(笠) 또는 김삿갓은 방랑할 때 쓴 이름이다. 그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는데, 평안도 선천의 부사였던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는데 사내종의 도움으로 형 김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였다. 뒷날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김안근은 홧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은 20살에 혼인하고 그 해 영월 동헌에서 실시한 백일장에서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을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22살 때 아들 학균을 낳고 24살 때에 둘째 아들 익균을 낳았지만,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느 날 그는 처자식을 남겨둔 채 가출한다.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는 뜻으로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 그는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곳곳에 있는 서당을 주로 순방하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조선 세종 때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장영실(1390년경~?)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든 인물이다. 세종은 ‘임현사능’ 곧 “어진 이를 임명하고 유능(有能)한 인재를 부리시어 널리 문·무를 겸하여 걷어 들이시는 길을 열었다.”(任賢使能, 廣開兼收之路。)(《세종실록》 14/4/28) 이에 따라 장영실은 세종 5년 관노에서 벗어나 상의원 별좌 자리를 받게 되었다. 이후 세종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여러 기구를 만들었는데 천문기구는 자격루, 혼천의, 혼상, 물시계, 해시계, 측우기, 간의대 등이고 이를 종합해 세종 20년에 흠경각을 세운다. 흠경각 이루다 흠경각(欽敬閣)이 완성되었다. 이는 대호군 장영실(蔣英實)이 지은 것이나 그 규모와 제도의 묘함은 모두 임금의 결단에서 나온 것이며, 각은 경복궁 침전 곁에 있었다. 임금이 우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기문을 짓게 하니, "예전을 돌아보건대, 임금이 정사를 하고 사업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먼저 역수(曆數)를 밝혀서 세상에 절후를 알려줘야 하는 것이니, 이 절후를 알려주는 중요한 방법은 천기를 보고 기후를 살피는 데에 있는 것이므로, 기형 (璣衡)과 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다시 가을이 왔구나.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니 우리 마음도 함께 떨어지는 듯 감정이 예민해지고 처연한 느낌도 생긴다. 우리 주변에서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럴 때 흔히 프랑스의 이브 몽땅. 혹은 줄리에타 그레코가 부른 '고엽(낙엽)'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와인이건, 맥주 건, 커피 건 한 잔씩 나누며 센치해지곤 한다. 이런 가을에 나는 최근 그런 노래와는 다른 새 '낙엽'을 즐겨 찾는다. 그리고는 떠나간 그 가수를 생각한다. 노래 제목은 ' Autumn Leaves', 가을의 잎이니 '추엽(秋葉)이라고 할까? 낙엽들이 창가에서 휘날리네요 빨갛고 노란 낙엽들이 말이지요 그 잎에 여름이 키스한 당신의 입술과 햇빛에 거슬린 당신의 손이 보입니다. 당신이 가고 나서 날이 참 오래되었네요 곧 오랜 겨울의 노랫소리가 들리겠지요 그런데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랑하는 당신이 미치도록 그립답니다. 왜 이브 몽땅이나 그레코의 노래 대신에 이 노래를 듣는가? 이 노래가 더 쓸쓸하고 사무치고 외로워, 진짜 가을을 타게 하기 때문이다. 여성인 이 가수의 목소리가 더 투명하고 깨끗해서 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