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가 끝나고 며칠 뒤에 나는 다수리를 다시 찾아갔다. 계장리 바위동굴길을 지날 때 강 건너편 다수리 쪽에 보였던 돌담집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강가에 작은 기와집이 있었다. 마당은 100평 정도 될까. 사람이 다니는 통로 빼고 모든 공간에 빈틈없이 돌탑을 쌓았다. 돌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수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멋진 돌들이었다. 정자도 하나 있고.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탁자도 돌로 만들어놓았다. 내가 인복이 있어서인지 주인장을 만날 수 있었다. 통성명을 해보니 주인장 전희택 선생은 나보다 13살이나 위였다. 그분은 다수리 토박이로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나이 60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일해서 5남매를 잘 길러 모두 출가시켰다고 한다. 환갑을 넘기면서 그는 고향을 위해서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인근 강과 산에서 근사한 돌을 모아다가 탑을 쌓기 시작했다. 큰 돌은 경운기로 날랐다. 무려 20년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돌탑을 쌓아 아름다운 돌탑집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집은 “평창군의 아름다운 집”으로 뽑혔고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했다. 그는 사람들이 와서 돌탑집을 즐겁게 감상하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계절의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주는 전령사는 꽃이라 하겠다. 3월에 매화가 피고 4월에 벚꽃, 개나리가 만발하다가 5월에는 장미가 피기 시작해 6월에 온통 세상을 빨갛게 물들이는데 7월에는 우리나라가 연꽃 천지로 변한 것 같다. 예전 함창 공갈못가에 많이 피어 민요도 많이 만들어졌다지만 요즘엔 서울 근교 양평의 세미원을 비롯해 멀리 무안 백련지의 연꽃단지도 그렇고 지자체들의 노력으로 전국에 연꽃이 피는 곳이 엄청 많아졌다. 좀 부지런을 떨어 아침 일찍 연밭에 나가서 막 피어나는 연꽃 봉우리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고결한 꽃이 나올 수 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이란 글에서 “국화는 꽃 중의 숨은 선비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함인데, 연꽃이야말로 꽃 중의 군자로다”라고 칭찬한 이후 우리나라 선비들은 더욱 연꽃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니 줄기의 속은 통하고 겉은 곧아서 덩굴이나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맑고 우뚝하게 서 있는 모습” ... 애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은 계절에 따른 다양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올해 봄비가 꾸준히 자주 내렸기 때문에 봄다운 화창한 날씨를 별로 경험하지 못하다가 어느덧 7월 중순이 다가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본격적인 여름 더위는 6월 말 무렵의 장마가 지나면 다가오기 시작해서 8월 중순까지 진행되는데 올해는 약간 늦게 시작됐다. 문제는 늦게 오면서 매우 덥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잠들 무렵부터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도 더위가 지속되는 열대야(熱帶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열대야란 일본에서 유래된 용어인데 최근에는 우리나라 기상청에서 2009년 7월 24일부터 밤(저녁 6시 1분 ~ 다음 날 아침 9시)의 최저기온이 25℃ 이상인 날을 열대야로 말하고 있다, 아울러 최저기온이 30°C 이상인 밤을 가리켜 초열대야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열대야가 우리 몸에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요소는 수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1. 체열을 쉽고 빠르게 발산할 때 숙면이 이루어진다. 인간에게 있어서 낮의 활동은 세포의 왕성한 대사 작용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세포의 왕성한 활동만큼 체열이 높아 정상체온인 36.5℃를 유지하고 때로 심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국의 노인은 지금도 변소에 갈 때 조용히 허리를 일으키며 <총독부에 다녀온다> 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조선총독부에서 호출장이 오면 가지 않고는 못 배겼던 시대 어쩔 수 없는 사정 그것을 배설에 빗댄 해학과 신랄함 서울에서 버스를 탔을 때 시골에서 상경한 듯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한복을 입고 까만 모자를 쓰고 소년이 그대로 할아버지가 된 것 같은 순수함 그 자체의 인상이었다 일본인 여러 명이 선 채로 일본어를 조금 지껄였을 때 노인의 얼굴에 두려움과 혐오의 표정 획 달려가는 것을 봤다. 천만 마디의 말을 쓰는 것보다 강렬하게 일본이 해온 짓을 거기에서 봤다. 이 시의 제목은 <총독부에 다녀온다>다. 이 시를 쓴 사람은 아마도 일제시대 한국 민족이 당한 아픔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낀 모양이다. 이 시를 쓴 사람이 누구인가? 뜻밖에도 일본인 여성이었다. 2006년 2월 21일 일본 최대의 일간지인 요미우리는 1면 맨 밑에 있는 칼럼난인 <편집수첩(編集手帳)>에서 “시대에 뒤떨어져”라는 제목의 시 하나를 인용하면서 이례적으로 한 시인의 죽음을 애도한다. 자동차도 없고 워드프로세서도 없고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 몸은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열을 생산하고, 넘치는 열은 피부와 털을 통해 식히고, 그래도 넘치면 땀구멍을 열어 땀을 방출하면서 조절한다. 또한 몸의 불필요한 피지 같은 노폐물을 피부를 통해 방출하는데 이때 땀구멍과 털구멍이 통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통로가 시원하게 뚫려있고 상황에 따른 조절을 원활하게 하면 체온조절도 쉬울뿐더러 피부자체도 맑고 깨끗한 윤택을 자랑하게 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통로가 막히거나 조절을 원활하지 못해 체열을 발산하지 못하여 더위에 취약해지고, 체온을 보존하지 못하여 추위를 타며 심해지면 아토피가 생긴다. 아울러 피지를 방출하지 못하면 여드름이 생기고, 막히면 한포진이 발생하며 모공각화와 같은 다양한 피부 트러블이 드러난다. 따라서 건강한 피부와 능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피부에 대한 이해와 한방에서 말하는 경맥의 흐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 우리 몸의 피부는 외부와 끊임없는 소통하는 통로가 있다. 우리 몸은 피부라는 막으로 온몸을 감싸 외부로부터 보호하면서 땀구멍과 털을 통하여 외부와 소통을 한다. 그러므로 피부가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와 마지막여행이 되어버린 제주도는 비가 계속 내렸다. 구순이 넘은 나이의 노인이 이곳저곳을 다니기엔 참 어려운 날씨였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파도가 일렁거리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와 묵는 호텔의 뒤편엔 새파랗게 펼쳐진 녹차밭이 보이고 앞으로는 멀리 제주도 남쪽바다와 대정읍, 그리고 <산방산>이 보이는 중산간 부근에 자리 잡은 호텔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바다가 아쉬우셨던지,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싶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바다는 파도가 쳐야 보는 맛이 있지...” 송악산... 제주 <산방산> 근처에 산이라고 하기엔 그저 아담하게 소나무가 많은 언덕이 있는데, 그 아래쪽 바다가 그나마 숙소에서 멀지 않아 보이기에 차로 모셔다드렸다. 겨울용 중절모와 패딩에 목도리를 하고, 그날따라 유난히 파도가 더 거세게 몰려오는 제주의 남쪽바다는 아마도 당신이 한국전쟁 때 배로 이곳 제주에 오시던 그 날의 파도가 생각나는지 자꾸만 자꾸만 뭐라고 중얼거리셨다. “아부지... 노래 하나 하세요...” 나는 노래를 유난히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가슴에 갑갑하게 갇혀있는 무언가를 뱉어낼 수 있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계 으뜸글자 한글은 조형에서도 과학적인 창제 방식이 드러난다. 신비로움을 담고 있는 한글의 조형성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려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다. 여기 “한글 엽서 디자인”은,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한재준 교수가 진행하는 활자꼴을 만들거나 다루는 기초 디자인 과정에서 이끌어낸 학생들의 결과물이다. 이 실습 과정은, 수년 전부터 ‘한글디자인’ 또는 ‘타이포그래피’ 과목의 기초 실습 과정에서 진행해 왔는데 ‘헬로(hello)’ 대신 ‘안녕’ 또는 ‘안녕하세요’를 멋지게 디자인해서 한국어와 한글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려보자는 뜻으로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시작된 온라인 실습을 강화하여 더욱 알차게 준비한 결과를 누리소통망(sns)을 통해서 널리 알리는 중이다. 출발은 “안녕하세요”로 시작하지만, 점차 학생들 스스로 다양한 글귀도 끌어내고,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해 간다는 계획이다. 누리소통망에서 “#swu안녕하세요”, “#helloswu”, "한글예술" 등으로 검색하면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편집자말) ▶ <헬로, 안녕하세요 1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20년 4월 12일 중시(重試)가 있었다. 33명이 합격했는데 그 중 하위지(河緯地)가 27살의 나이로 장원을 차지했다. 시험 과제는 ‘국정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내라는 것’이었는데 하위지는 임금과 언관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내용을 적어냈다. 그러자 조정과 신료들 사이에 소용돌이가 일었다. 대사헌 안숭선ㆍ이승손ㆍ강진덕 등 10여 명의 사헌부 대간들이 사직을 청하게 되었다. 하위지의 간언 먼저 대사헌 안숭선(安崇善)이 사직하여 말하기를, "신이 본시 유약한 힘으로 중임(重任)을 맡고서 스스로 맞지 않음을 헤아리고 부끄럽던 차에 탄핵을 당하였으니, 그 죄를 달게받고 물러남을 편하게 생각하였사온데, 그대로 본직에 돌아가게 하시니 근일에 와서는 몸과 기운이 파리하고 피곤하며, 바라옵건대, 직무를 해면케 하시고 한산한 곳에 버려두시어 온전히 의약의 치료나 받게 하옵시면, 성은에 보답도록 하겠나이다." 다시 집의(執義) 이승손(李承孫)이 사직하여 말하기를, "청하옵건대, 신의 직임을 해면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장령 강진덕(姜進德)ㆍ지평 민건(閔騫), 그리고 우사간 임종선(任從善) 등이 역시 글을 올려 사직하며, 아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강 따라서 조금 가니 차단기로 길을 막아놓았다. 나는 답사 날 며칠 전에 제4구간을 사전 답사한 적이 있다.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길을 조사하였다. 지도상으로는 길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에 차단기 건너 산 밑으로 길이 있어 보였다. 그때 마침 하일교 부근에서 산불감시원을 만났다. 그는 이곳 토박이였다. 그에게 물어보니 차단기를 넘어서 걸어가면 옛날 길이 나 있어서 다수대교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중간에 바위동굴이 나타나는데, 사람이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차단기 앞에서 일행에게 설명한 뒤 내가 먼저 차단기를 넘어갔다. 모두 뒤따라왔다. 처음 가는 길이지만 일행이 있어서 나는 무섭다기보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인적이 없이 낯선 길은 낡은 시멘트 길이었다. 바위가 부서져 내린 곳도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작년에 무성했던 잡풀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시덤불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통행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았다. 가는 중간에 괭이눈 군락지가 나타났다. 씨앗 모양이 고양이의 눈을 닮았다고 해서 괭이눈이라는 이름을 가진 들꽃이다. 이 길을 계속 가면 다수대교까지 연결되는데, 하일교에서 다수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조 2대 정종 2년인 1400년 3월 15일, 임금은 권근(權近)을 정당 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大司憲)으로 발령을 내었다. 나흘 후인 3월 19일 대사헌 권근(權近·1352∼1409)은 경연(經筵)에서 임금에게 “신이 본래 혼미하고 우직하며, 젊었을 때 일을 경험하지 못하여 관리들의 이치(吏治)에 서투릅니다. 전하께서 신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하게 사번부(憲司)의 장이 되게 하시니, 진실로 황공하고 진실로 기쁘나, 중외에 웃음을 남길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도 한 가지 얻는 것이 있으니, 어찌 올릴 사항(事項)이 없겠습니까? 원하건대, 전하께서 관대히 굽어 실피셔서, 혹시 올리는 말이 이치에 해롭지 않거든 특별히 유윤(兪允)을 내려 주소서.”라고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보름 후인 4월 5일에 봄 가뭄이 심해지자 임슴에게 말하기를 “금년에 봄이 가무니, 벼나 곡식들이 풍성하지 못할 징조인가 두렵습니다. 신이 언관(言官)으로서 감히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근심하고 두렵게 생각하여, 다시 금주령을 내려 나라의 비용을 절약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라 금주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