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나라의 주식은 쌀을 바탕으로 한 밥이다. 우리가 빵을 주식으로 하지 않고 밥을 주식으로 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 환자들에게도 종종 이야기하고 있다. 밀가루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의학적이고 영양학적인 여러 과학의 분석적인 설명을 떠나서, 먹다 보면 거북하고 불편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입안이 텁텁해지는데, 입안에 밀가루 흔적이 남아 점막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양치질하거나 개운한 것을 먹어서 입안의 거스름을 해소한다. 이런 입안의 밀가루 때가 소화기관 점막 전체에 유사한 현상을 일으키면서 소화액의 분비를 방해하고, 영양분이 흡수되기 어렵게 하며, 장의 운동에 불규칙성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밀가루 제품 곧 빵과 과자를 주식으로 삼으면 첫 끼니는 맛있게 먹지만 반복하면 느끼하고 질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밀가루 제품을 먹고 속이 조금 안 좋을 때 밀가루 제품 대신 밥을 먹다 보면 소화기관의 부담이 사라지므로 밀가루의 고소함과 달콤함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밥 대신 빵을 주식으로 삼게 되면 밀가루의 부담을 바로 해소하지 못해서 누적된 부담으로 만성소화흡수 장애군을 앓는 상태에 이르게
[우리문화신문=이영일 생태과학연구가] 쪽동백나무[학명: Styrax obassia Siebold & Zucc.]는 때죽나무과의 ‘낙엽이 지는 넓은 잎 키가 작은 나무’다. 노단피(老丹被), 산봉자(山棒子), 쪽동백, 개동백나무, 물박달나무, 산아주까리나무, 정나무, 넙죽이나무라고도 한다. 한방에서는 옥령화(玉鈴花)란 생약 이름으로 약용한다. 관상용, 약용, 머릿기름 재료, 국자와 팽이 가구재로 이용한다. 꽃말은 겸손이다. 쪽동백나무는 때죽나무(S. japonicus Siebold & Zucc.)와 형님 아우 하는 사이다. 형제 사이가 판박이인 경우도 있지만, 얼굴이 닮지 않아 엄마가 모호한 의심을 받기도 하는 것처럼 두 나무는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잎사귀가 서로 다르다. 쪽동백나무 잎은 둥그스름한 모습이 얼핏 오동나무 잎이 연상되는데, 손바닥을 펼친 만큼의 크기에서부터 때로는 잎 한 장으로 얼굴 전부를 가릴 수도 있을 정도로 크다. 그래도 같은 피라는 사실은 숨기기 어렵다. 잎을 빼고는 꽃 모양도 거의 같고 껍질도 서로 구분이 안 될 만큼 비슷하다. 쪽동백이라는 나무 이름이 흥미롭다. 옛 여인들은 동백기름으로 머리단장을 하고 참빗으로 곱게 쪽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앙카라 성채 관광 어제 병산은 혼자서 앙카라 시내 관광을 나섰지만, 중요한 관광지를 방문하지는 않고 오늘 우리와 함께 관광할 계획이었다. 오늘 우리는 박물관, 성채, 그리고 6.26 전쟁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한국공원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 뒤에 병산의 치통을 치료하기 위하여 지난 토요일에 갔던 보건소를 1km를 걸어서 다시 찾아갔다. 우리가 9시에 도착했는데, 보건소는 이미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터키 사람은 우리에게 매우 친절했다. 직원 한 사람이 병산을 데리고 기다란 줄을 무시하고 신속히 진료를 안내해 주었다. 역시 진료비는 무료였고 약 처방전을 받아 나오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번 치과 의사도 에르진잔에서와 똑같은 처방전을 써 주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치료는 한국에 돌아간 뒤에 받아야 할 것 같다. 보건소를 나와 순례단 4명은 지하철을 타고서 ‘아나탈리아 문명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앙카라 성벽 외곽에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은 15세기에는 원래 지붕이 달린 바자르(주: 시장을 말함)로 사용되었는데, 아타튀르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안성 봉업사터(경기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8-5) 찾아가기 전에 죽산향교 들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름에 반쯤 가려진 비봉산 자락이 유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좋은 가람 하나쯤은 있을 만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폐사지 근처엔 송문주 장군 동상과 라이온스 클럽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어 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봉업사는 양주 회암사, 여주 고달사와 더불어 고려시대 경기도 3대 절로 꼽히는 거대 사찰이었다고 한다. 초겨울의 폐사지는 황량하다. 공터에 서 있는 껑충한 당간지주가 더욱 을씨년스럽다. 두 개의 당간지주 사이로 오층석탑이 보인다. 그래도 이 두 유적이 남아 있어 상호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오층석탑은 경기도의 대표적인 고려 전기 석탑이다. 탑은 높이가 6m로 여러 장의 크고 넓적한 돌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단층기단을 두고 5층의 탑신을 올렸다. 전체적으로 우뚝하고 늠름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상륜부가 없어진 것이 아쉽다. 하지만 이만하기도 다행이란 생각으로 마음 다독이며 그곳을 떠나왔다. (시인 이달균)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가 먹는 음식을 가장 단순하게 살펴보면 에너지원이 되는 탄수화물과 지방, 몸의 구성성분이 되는 단백질과 지방, 몸에서 촉매 역할을 하는 비타민과 무기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각각의 문명권에 따라 식습관이 매우 다르지만 가장 명확하게 구분되는 특성 가운데 하나가 에너지를 어떠한 것으로 취하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크게 보면 밀가루와 쌀의 구분이 있고, 밥과 국수 빵으로 구분도 가능하다. 그밖에도 다양한 품종에서 전분과 당을 취할 수 있는데 옥수수와 조, 수수, 율무와 같은 여러 구황 작물들과 감자, 고구마, 카사바를 비롯한 뿌리 작물, 그리고 과일들이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가운데 우리나라는 쌀을 주종으로 밥이란 형태를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으로 먹고 있다. 1. 쌀의 한의학적 효능과 식품영양학에서 영양과 작용 한의학의 관점에서 모든 음식은 또한 훌륭한 약재가 된다. 건강을 생각할 때 건강보조식품이나 좀 더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약재만을 소중하게 생각기 쉬운데,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의 기본을 제공하는 우리가 먹는 밥과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의 소중함은 없을 때, 부족할 때 저절로 드러난다. 한약의 약재로서 멥쌀(갱미)은
[우리문화신문=글ㆍ사진 이영일 생태과학연구가] 불두화[학명:Viburnum sargentii for. sterile]는 인동과의 ‘낙엽이 지는 넚은 잎 키가 작은 나무’다.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피므로 ‘불두화(佛頭花)’라고 부르고 절에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한방에서는 불두수(佛頭樹), 팔선화(八仙花)란 약재로 활용한다. 불두화는 백당나무를 개량한 것으로 잎의 끝이 3개로 갈라지고 꽃잎은 5장 꽃의 색깔은 처음 필 때는 연초록 활짝 필 때는 순백색 질 때는 누런색이며, 잎은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꽃잎은 4장으로 꽃의 색깔은 땅의 성분에 따라 산성토양이면 청색 알칼리토양이면 붉은색 그리고 하얀색 분홍색으로 다양하다. 불두화(佛頭花)는 번식력이 없다. 백당나무를 개량하면서 꽃의 아름다움을 위해 생식기능을 없앴기 때문이다. 꽃은 탐스러우나 무성화(無性花)여서 암술과 수술이 없다. 그래서 씨를 맺지 못한다. 스스로 번식할 수 없기에 꺾꽂이를 통해서만 번식할 수 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정진하는 스님들과 닮은 꽃이다. 세 갈래로 갈라진 잎은 불(佛)ㆍ법(法)ㆍ승(僧)을 상징한다. 불두화에 꽃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병산이 시내 구경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안사리의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이슬람을 공부하였다. 여기에서 나의 종교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6.25 전쟁이 나던 1950년 4월에 태어났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일주일도 안 되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주 전동성당에서 ‘갈리스도’라는 본명(세례명)을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집안이 3대째 천주교였기 때문에 모태 신앙을 물려받은 것이다. 나는 30년 동안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가 개신교에 다니는 아내를 만나 혼인한 뒤 31살이 될 무렵부터 아내를 따라 개신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30년 동안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십일조를 빠지지 않고 내었고 성가대에도 열심히 나갔다. 그러다가 61살이 되던 해에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나는 불교에 관심을 두었다. 그 뒤 재혼한 각시와는 전라남도 고흥군 거금도에 있는 금산정사에 둘이 가서 불교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금산정사를 통하여 받은 조계종 신도증에는 법명이 무심(無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는 우리나라 3대 종교를 두루 섭렵하였으나 이슬람은 생소했는데, 이번 순례 여행에서 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현재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코로나19’와 연관해 지난번에는 대응전략에서 전문가가 앞에 서서 적극적이냐 그리고 뉴스 처리에 있어 공개적이고 투명한가, 그리고 사회적 거리를 잘 지켜내느냐를 보았다. 생활방역 정부는 5월 6일부터 그간의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방역으로 전환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거리는 50센티 안팎인데 코로나 시대에는 1미터에서 2미터는 떨어져 있으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중규모 집단 사회규칙이고 생활방역은 소집단 곧 가족 단위의 규칙을 일컬음이다. 집단 소통은 수십 명 안팎의 집단 모임으로 교회, 세미나, 교실 등이 대상이 되었다. 이를 이제 가족 단위의 모임 곧 식당이나 산책 등은 마스크 착용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4월 15일 국회의원 투표 때 부부인데도 투표장에는 1미터씩 떨어져 걸어 들어가야 했다. 왜 그럴까? 투표장은 집 안이 아니기에 가족 기준이 아니라 남 곧 사회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생활방역은 가족, 연인이면 두 손 잡고 다녀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5월 1일에서 5일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연휴기간 서울 이태원 술집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집단으로 나타나고 이후 전국으로 확장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하긴 남는다고 영원하랴. 아무리 기원이 간절한들 어찌 세월을 이길 것인가. 우리 사랑했던 한 사람을 보내고 사라진 절을 찾아 먼 길 떠난다. 강이 있는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 있는 곳에 절이 있었다. 남한강 유역 폐사지를 오롯이 지키는 거돈사터 삼층석탑. 곳곳에 층층이 쌓여있는 석축 흔적만으로도 당시 웅장한 절의 크기와 공력을 짐작케 한다. 석탑 뒤 대웅전 터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공터엔 커다란 불상의 대좌가 놓여있다. 석탑 앞에 부서진 채 놓인 배례석엔 연꽃 모양이 선명하다. 다 사라진 가람에 견주어 쁫밖에 탑은 의연하다. 이 탑은 흔히 보던 것들과 달리, 흙을 둔덕지게 쌓아 단을 만들어 세웠으니 폐허 속에서도 자태가 늠름히 드러난다. 탑신 자체에 별다른 장식이 없어 밋밋해 보이나 오히려 그런 고졸함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연지 곤지를 찍지 않았다고 미인을 알아보지 못할 것인가. 사람을 잃고 탑을 얻었으니 크게 슬퍼할 일은 아니다. 버려진 이를 버려두고 담담히 돌아올 수 있어 좋았다.(시인 이달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실크로드 순례길에 동참하러 와서 세 번째 맞는 일요일이다. 에너지가 충만하고 씩씩한 병산은 오늘도 앙카라 시내를 구경하겠다고 나갔고, 나는 하루 쉬기로 했다. 로자 씨와 따님도 밀린 빨래를 하면서 오늘 하루는 쉰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혼자 앙카라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사와야 한다. 지금까지는 모든 결정을 병산이 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졸졸 따라다니면 되었다. 막상 혼자 지하철을 타고 앙카라역까지 갔다 오려고 하니 길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 약간은 걱정이 앞선다. 터키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구글 지도를 검색하여 숙소에서 가까운 역에서부터 앙카라역까지 표시된 지도를 사진 찍었다. 그리고 출발역과 도착역을 외우고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숙소를 나섰다. 가까운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우선 표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헷갈린다. 매표창구 앞에서 서성이는데, 갑자기 “May I help you?”라고 말하면서 터키 여인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와 도와준다. 영어로 대화가 되니 수월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여인이 자기가 가진 신용카드로 내게 일회용 표까지 사주는 것이 아닌가? 터키 사람의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