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김영조, 얼레빗)》 표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이 이번에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라는 책을 냈습니다. 김소장은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라는 메일을 벌써 12년째 하루도 쉬지 않고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그 독자 중에 한 사람이지요. 그뿐만 아닙니다. 김소장은 우리문화신문이라는 인터넷 신문(http://www.koya-culture.com/) 편집자로 독자들에게 한국문화 알리느라고 매일 매일 바쁜 하루를 보냅니다. 그렇게 사명감으로 바쁘게 살아가시는 분이 이번에 모처럼 틈을 내어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라는 책까지 내셨네요. 김 소장은 2013년부터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를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또 하나의 사명감에 전국의 명문 종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반만년 역사 오랜 우리나라에 종가는 많지만 김 소장이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로 세운 기준은 이렇습니다. 1. 재물을 나눠 배고픈 이웃을 구휼했는가? 2. 재물을 쏟아 교육으로 베풀었는가? 3. 모든 것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바쳤는가? 김 소장이 이런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오케스트라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카라얀, 번스타인 등 오케스트라 지휘자 한 두 명의 이름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데 똑 같은 곡이라도 어느 지휘자가 지휘하느냐에 따라 곡의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느껴보셨습니까? 물론 음악 애호가들이야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고 하시겠지만, 보통 사람은 특별히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수동적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김남윤 클래식 투어 3기 네 번째 강의에서 김남윤 W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이러한 다양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모습들에 대해 얘기해주고, 또 그들이 지휘하는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지금이야 오케스트라에 지휘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최초의 전업 지휘자는 17세기의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 ~ 1687)랍니다. 륄리 이전에는 보통 그 곡을 직접 쓴 작곡가가 지휘도 했다는군요. 륄리는 정확한 템포와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 긴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두드리면서 지휘를 했답니다. 그런데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더니, 륄리도 믿는 지팡이에 발등을 찍혔네요. 물론 속담처럼 남한테 배신당했다는 것이 아니라,
▲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책 표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추적하여 이를 시로 승화시킨, 그리하여 이를 <서간도에 들꽃 피다>라는 시리즈로 책을 낸 이윤옥 교수가 이번에는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이란 책을 냈습니다. 한동안 여성 독립운동에 천착하던 이교수님이 이번에는 어떻게 풀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교수는 책을 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몇 해 전 봄날, 벗에게 앙증맞은 들꽃 사진 하나를 슬기전화(스마트폰)로 받았다. 은은한 푸른빛의 어여쁜 이 들꽃 이름이 ‘큰개불알꽃’이라는데 놀랐다. 누가 이름을 붙인 것인지 참 안 어울린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 말 이누노후구리(犬の陰囊)를 옮긴 이름이었다. 맙소사! 올해로 일본어를 공부한 지 37년째, 고전이 전공인 내가 팔자에 없는 풀꽃 이름에 매달리게 된 것은 큰개불알꽃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교수님 참 대단하십니다. 우리의 예쁜 풀꽃들의 이름이 일본말로 창씨개명 되었다고 하니까,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식물도감을 뒤지면서 일본말에 오염된 우리 풀꽃들을 찾기 시작하다니요. 그런데 이교수가 이렇게 도서관을 뒤졌는데도 화려한 사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김산은 3.1. 운동 후 공부하러 잠시 일본에 갔다가 소련으로 갈 생각을 합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김산은 작은 형이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하라며 준 200원을 갖고 국경을 몰래 넘지요. 김산의 계획은 안동(지금의 단동)으로 가서 거기서 기차를 타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 혁명을 저지하기 위한 시베리아 간섭군이(백군과 이를 지원하는 외국 세력으로 추정) 초래한 전란 상태로 기차가 다니지 않았습니다. 김산은 방향을 바꿔, 우당 이회영 선생이 세운 합니하의 신흥무관학교로 향하는데, 신흥무관학교로 가기 위하여 홀로 700리를 걸어가지요. 그것도 15살의 어린 나이에 홀로 한 달 이상을 걸어서 여행합니다. 여행 중 김산은 중국인 여인숙에 숙박할 때 어린 조선놈이 혼자 다니다가 돈을 뺏길까봐, 매일 밤 밖에 나가 몰래 땅에 돈을 파묻었다가, 새벽에 돈을 파내가지고 아침도 먹지 않고 여인숙을 떠났답니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조국 독립을 위하여 홀로 타국의 700리를 걸어간다? 저요? 으~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김산은 가는 도중 어느 마을에 들렀는데, '아리랑'에 중국 정부군의 형편없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 주 김남윤 클래식 투어 수업은 오케스트라 펼쳐보기로 오케스트라의 얼굴인 현악기, 그 중에서도 첼로와 더블베이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연히 연주자들이 나와서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시간도 있었지요. 연주곡 중에는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 Saens)의 동물의 사육제도 있었는데, 첼로는 사육제에 나오는 동물 중 백조를, 더블베이스는 코끼리를 연주합니다. 첼리스트 이지영씨의 연주를 들으니 첼로 연주가 백조의 우아함을 더하는 것 같고, 또한 신윤경씨가 연주하는 더블베이스는 뒤뚱뒤뚱 대는 코끼리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 듯합니다. 더블베이스는 워낙 저음 악기라 독주 연주를 듣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 더블베이스 독주 연주도 들어보았습니다. 연주곡 중에서 수강생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신 것은 이지영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쟈클린의 눈물입니다. 원래 첼로의 음색이 처연한 맛이 있지만, 쟈클린의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쥐어짜는 애절함이 더합니다. 이는 쟈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운의 천재 첼리스트 쟈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1945~1987)에게 헌정된 음악이라 더욱
▲ 《아리랑》, 김산ㆍ님웨일즈, 동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아리랑을 읽었습니다. 책 표지의 《아리랑》 제목 밑에는 폭풍의 시대, 역사가 명하는 바에 따라 불화살 같이 살아간 한 조선인 독립혁명가 김산의 고뇌, 좌절, 사랑, 열정, 사상의 피어린 발자취!!라고 쓰여 있네요. 이 책은 1937년 죽음을 각오하고 장개석 국민당 군대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중국 연안의 중국 공산당을 찾아간 푸른 눈의 여인 님 웨일즈(본명 : 헬렌 포스터 스노우)가 김산(본명 장지락, 1905-1938)에 대해 쓴 전기입니다. 님 웨일즈는 그곳에서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새로 결성한 조선 민족해방동맹을 승인받기 위하여 대표로 파견된 김산을 만나, 김산의 파란만장한 삶을 듣고 글로 풀어냈습니다. 당연히 1941년에 먼저 영문으로 책이 나왔고, 나중에 우리말로 번역된 것입니다. 김산! 자기의 꿈과 이상을 바쳐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바친 공산당에 의해 오히려 일본 스파이, 트로츠키 주의자로 몰려 1938년 억울하게 총살당한 순결한 김산! 책에는 민족주의자에서 무정부주의자를 거쳐 공산주의자로 변하는 김산의 삶이 생생하게 나옵니다. 그리고 광동코뮌에 참여
[한국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안응칠 역사라고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혹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말씀드린다면,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 때에 쓴 자신의 자서전입니다. 그러면 안중근 의사 자서전이라면서 안응칠 역사는 또 뭐냐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응칠은 안 의사의 자(字)입니다. 안 의사의 배와 가슴에 7개의 검은 점이 있어 응칠(應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응칠 역사는 안응칠(중근) 개인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고, 이를 직접 썼으니까 자서전이라고 하겠습니다. 안 의사는 이 자서전을 1909. 12. 13. 쓰기 시작하여 사형집행 11일 전인 1910. 3. 15. 집필을 마쳤습니다. 안 의사는 자서전 집필을 끝낼 무렵 동양평화론도 쓰기 시작하였는데, 일제가 사형을 빨리 집행하는 바람에 동양평화론은 서론만 쓰고 더 이상 쓸 수가 없었지요. 안응칠 역사 끝부분에 가면 안 의사가 평석(平石) 고등법원장에게 동양평화론 저술을 위해 사형집행일을 예정보다 한 달 남짓 늦추어 달라고 요청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평석 고등법원장은 어찌 한달 뿐이겠는가. 설사 몇 달이 걸리더라도 특별히 허가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한국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비행기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 5시 30분에 광조우 공항에 내렸다. 광조우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이지만 서울 가는 비행기는 17시 05분에나 있기에 그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는 광조우 시내 관광을 나선다. 첫 번째 목적지인 월수공원(越秀公園)으로 향하는데, 가는 동안 전기 자동차가 지붕 위의 전선에 접선하여 운행하는 것이 눈에 띈다. 월수공원(越秀公园) - 얼마나 뛰어나고 빼어난 공원이기에 공원 이름도 월수공원인가?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태극 기공운동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야 중국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또 한쪽에서는 중년과 노년의 남녀들이 사교춤을 춘다. 글쎄 공공장소에서 저렇게 사교춤을 추는 모습은 나에게는 낯설다. 이런 것도 문화 충격이라 할 만 하겠지. ▲ 공원에서 태극 기공운동을 하고 있는 중국인들 ▲ 공원에서 사교춤을 추고 있는 중국 중,노년의 남녀들 조금 위로 올라가니 5마리의 양을 조각해놓았다. 오색 예복을 입은 5명의 선인들이 양을 타고 하늘에서 광조우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벼이삭을 나눠주고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일 큰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16세기 함경도 홍원 기생 홍랑이 사랑하는 연인 고죽 최경창을 떠나보낸 후 애절한 마음을 담아 쓴 시입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처음 이 시를 배운 뒤 홍랑의 고죽에 대한 애절한 사랑에 감동을 받았었지요. 그러다가 고죽의 자손들이 홍랑의 무덤을 고죽의 옆에 같이 모셔두고, 지금까지 예를 갖춰 돌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 전에 두 연인의 무덤에 다녀왔습니다. ▲ 홍랑 무덤 앞에 세워진 홍랑시비 참! 무덤에 다녀온 얘기를 하기 전에 두 연인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들의 사랑 이야기부터 해야겠군요. 홍랑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홍원 기생이 됩니다. 홍랑이란 이름도 요즘처럼 말하면 미스 홍이라 할 것이니, 사실 홍랑의 이름은 모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최경창(1539~1583)은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써, 백광훈, 이달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불렸으며, 정철, 송익필, 백광홍, 김득신 등과 함께 조선 8대 문장가의 한 명으로 꼽힐 만큼 문재(文才)를 날렸습니다. 그런데 최경창의 호 고죽(孤竹)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네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사실 어제 작가들 작품 발표를 하면서 이번 여행의 큰 줄기는 끝난 것이다.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카트만두 시내 관광을 하고 한국에서 온 일행들은 밤 비행기로 떠나고, 외국 작가들은 각자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다들 며칠 정도만 더 머무르다 네팔을 뜬다는데, 요코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간다고 한다. 중국 쪽에서야 차타고 휑하니 갔다 왔지만, 여기서는 15일간이 소요되는 트레킹 일정이다. 하여튼 요코 대단하다! 저 조그만 체구에 카메라 짐이 많아 배낭도 앞뒤로 메고 다니던데 또 15일간의 고난의 행군을 하려 하다니... 짐을 다 싸서 호텔 로비에 맡겨놓은 후 우리는 시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헨릭은 그대로 호텔에 남는다. 몸살이 났단다. 세미나까지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린 것일까? 하긴 5,200m의 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현지인들과 그렇게 미니 축구를 하였으니, 아무리 강인한 헨릭이라도 긴장이 풀리면서 몸살이 날만 하지. 사실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나로서는 전에 이미 가보았던 곳이고, 따라서 여행기로 기록을 남긴 곳이다. 그래도 간단하게라도 훑으며 지나가자. ▲ 스와얌부